레스큐 시스템 185화
톡톡-
전승철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면 으레 하는 버릇이었다.
“김수혁…….”
전승철은 수혁의 이름을 되뇌었다.
바로 얼마 전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 실수다.’
흥분이 가시고 어느 정도 이성이 되돌아오자, 전승철을 찾아온 것은 후회였다.
사실 수혁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구조 요청을 듣고 달려와 도와준 것에 불과했다.
물론 그 방법이 다소 과격하고 성급했다지만,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내가 잘못한 거다.’
그런 수혁을 윽박지르고, 멱살을 잡아 구조 활동을 막은 것은 분명히 자신의 잘못이었다.
“하아…….”
대체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때 자신은 겁먹은 상태였으니까.
젊은 나이에 뛰어난 실적을 올리고, 그 공을 인정받아 빠른 속도로 진급했다.
게다가 운까지 좋았다.
본래대로라면 아직 팀장이 되기엔 일렀음에도, 갑자기 특수 구조대가 설립이 되며 자리가 나는 바람에 팀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경험이 부족했다.
물론 현장 경험은 충분했다.
부족한 경험은 출동 횟수나 구조 경력이 아닌, 팀장으로서의 경험이었다.
팀장은 그저 지휘와 통솔만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
‘책임’.
자신의 팀과 팀원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하는 자리다.
전승철은 그런 자리를 처음 맡았다.
처음에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지만, 병원에서 자신의 부하들이 부상을 입자 덜컥 겁이 났다.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에 겁이 난 것이 아니었다.
부하가, 동료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것에서 온 두려움.
그리고 그들을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감.
그런 감정들이 패닉을 불러왔다.
그래서 수혁에게 예민하게 굴었다.
소방관으로서, 구조대의 팀장으로서.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을 했다.
전승철은 그것이 너무도 후회가 되었다.
“사과부터 해야겠군.”
오늘부터 부상당한 대원을 대신해 수혁이 지원을 오기로 했다.
전승철이 요청한 것은 아니었다.
특수 구조대 대장이 수혁의 이야기를 듣고는 실력을 한번 보고 싶다며 요청한 것이었다.
언젠간 수혁도 특수 구조대에 올 것이라면서 말이다.
전승철은 수혁이 오면 일단 그날의 일을 사과하기로 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수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전승철이 본 수혁은 뛰어난 소방관이었고, 서로에게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과연 그게 가능할는지…….”
수혁이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봐도 자신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은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그런 식으로 행동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다시 한 번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대원들이 출근할 시간이었다.
수혁 역시 시간에 맞춰 올 테고.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진심을 담아 사과부터 해야 했다.
관계 개선은 그 후에 차근차근.
수혁이 당분간 특수 구조대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시간은 많았다.
전승철은 긴장한 표정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 *
“여긴가?”
수혁이 한 건물 앞에 서서 머뭇거렸다.
3층짜리 건물에는 큼지막하게 ‘119 특수 구조대’라는 붉은 글자가 걸려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더니, 좋네.”
지어진 지 10년이 넘는 신일서와는 때깔부터가 달랐다.
화재 진압대와 구급대가 없는지라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딱 봐도 신축건물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앞으로 여기에서 한 달이나 근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암울해졌다.
대체 전승철과 어떻게 한 달이나 얼굴을 맞대고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위에서 결정한 일이었으니, 이제 와 거부할 수도 없었다.
수혁은 고개를 내저으며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쪽도 깨끗했다.
아직 새 건물 냄새도 나는 듯했다.
안내판도 잘 되어 있어서, 수혁은 헤매지 않고 자신이 발령받은 특수 구조대 1팀 사무실로 가는 길을 곧장 찾을 수가 있었다.
수혁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
신일서의 구조차보다 1.5배는 커 보이는 차량을 지나치자, 사무실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였다.
수혁은 표정 관리를 하며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딸랑-
문 위에 달려 있던 작은 종이 수혁의 방문을 알렸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신일서에서 지원 나온 김수혁이라고 합니다.”
수혁이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낯익은 얼굴이…….’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의 숫자는 다섯 명.
그중 세 명의 얼굴은 낯이 익었고, 다른 두 명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제 다 왔군.”
낯이 익은 얼굴은 전승철과 그날 병원에 있었던 나머지 대원 둘이고, 처음 보는 사람들은 수혁처럼 지원 나온 대원들인 것 같았다.
“다 도착했으니 일단 통성명부터 하지.”
의외로 전승철은 담담한 눈빛으로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자마자 욕을 하며 적대적인 표정을 지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담백하게 맞아줄 것이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 이것대로 당황스럽네.’
전승철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건만.
“합정서에서 지원을 온 김진태입니다.”
“인천에 있는 남동서에서 온 오지환입니다.”
새로 지원을 온 대원들은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말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수혁은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사십대에 가까워 보이는 그들의 외모로 짐작해 보면, 최소한 경력이 5~10년 사이의 베테랑들인 것 같았다.
수혁은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자신의 책상으로 보이는 곳에 가서 앉았다.
‘뭘 해야 하지?’
신일서였다면 전날 밀린 서류 작업이나 끄적거렸을 텐데, 이곳은 오늘이 첫 출근이었으니 밀린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 멀뚱히 앉아 있는데, 그런 수혁의 어깨를 누군가 툭- 치는 것이 느껴졌다.
“응?”
수혁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전승철이 서 있었다.
“잠시 나와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수혁은 전승철의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 게 온 건가?’
수혁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전승철의 뒤를 따라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전승철은 그런 수혁을 데리고 커피 자판기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멈춰 선 전승철이 잠시 머뭇거리는 눈치이자, 수혁은 자신이 먼저 말을 하기로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날의 일을 후회…….”
“미안하다.”
일단 기선을 제압하려던 수혁은 갑작스런 전승철의 사과에 입을 다물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네?”
당황한 수혁이 되묻자, 전승철은 수혁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날은 내 실수, 아니, 내 잘못이다.”
전승철은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고, 수혁에게 사과했다.
수혁은 그런 전승철을 가만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고, 대체 전승철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전에 봤을 때는 나를 씹어 먹을 것만 같은 표정이었는데.’
그랬던 전승철이 이렇게 돌변하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다른 변명은 하지 않으마. 그날은 내가 이성을 잃었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 그것뿐이다.”
전승철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허리를 폈다.
수혁은 혹시 전승철이 자신을 속이려나 싶어 그의 표정을 살폈지만, 진심만 느껴졌다.
“으음.”
전승철의 사과가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수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괜찮습니다. 저도 죄송하네요. 그날 제 행동도 그리 옳지는 못했으니까.”
수혁은 잠시 고민하다 자신도 사과했다.
어찌 되었든 상급자를 밀치고, 협박성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지금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전승철이 이렇게 나오는 이상 굳이 대립각을 세우고 싶지 않았다.
“고맙군.”
전승철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수혁도 당시 전승철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런 고립에 부하들까지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니, 처음으로 팀장이란 자리에 앉은 전승철로선 그 부담감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판단력이 흐려지고, 냉정을 잃을 수밖에.
“물론 나는 그때 네가 택한 구조 방식에는 아직도 부정적이다.”
전승철은 사과하긴 했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방법은 분명히 위험했고, 자칫 잘못했으면 나나 다른 대원들이 더 큰 위험에 처했을 수도 있었으니까.”
전승철의 말에 수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이전 생에서 수혁과 사사건건 부딪혔을 때 전승철이 보여주었던 모습이니까.
“알고 있습니다.”
전승철이 보기에는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수혁 역시 ‘위기 감지Ⅲ’ 스킬이 없었다면 절대 그렇게 막무가내로 도끼를 휘두르지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는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전승철이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당연히 위험한 구조 방법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신일서 구조 3팀이었다면 어떻게든 수혁을 이해하려고 했겠지만, 특수 구조대는 아니지 않은가?
“나는 너와 안 좋은 감정을 털고, 서로 힘을 합해 사람들을 구했으면 한다.”
전승철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수혁이 눈치를 보며 대답을 하자, 전승철은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 방식은 위험해. 그런 식으로 구조를 하다간 언젠간 큰 사고로 이어질 거다.”
수혁의 얼굴에 ‘이거다!’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전 생에서도 두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은 갈등을 빚었던 이유.
구조 방법에 대한 의견차 때문이었다.
사실 누구의 방법이 더 옳은가?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수혁의 방법을 써도, 전승철의 방법을 써도, 언제나 요구조자를 구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서로의 의견을 고수하느라 감정의 골이 깊어졌을 뿐이었다.
나중에는 상대의 방법이 더 낫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뜻을 굽히지 않아 싸울 때도 있을 정도였다.
그때를 떠올린 수혁이 자신도 모르게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지?”
전승철이 살짝 기분이 상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신은 진심을 다해 상대하고 있었는데, 수혁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아, 죄송합니다. 그런 뜻으로 웃은 건 아니었습니다.”
수혁은 표정을 관리하고는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제 방법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또다시 같은 선택을 할 겁니다.”
전승철이 먼저 고개를 숙여 사과한 이상, 그에게 더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
하지만 이전 생에도 그랬듯이, 구조 방법에 대한 양보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거 괜히 추억 돋네.’
수혁은 왠지 모르게 떠오르는 옛 기억에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전승철의 얼굴은 수혁과 반대로 사정없이 일그러지고 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