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86화
특수 구조대의 일은 신일서에서 하던 것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평소에는 서류 작업이나 운동으로 시간을 보내다,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구조차를 타고 출동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구조 3팀의 대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하고 빠른 구조가 가능하다는 것뿐.
한 명 한 명이 정예들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승철과의 마찰도 없었다.
그는 수혁에게 사과한 이후, 정말 자신의 팀원을 대하듯 수혁을 대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수혁 역시 상대가 그렇게 나오는데 혼자 적대적인 감정을 품을 수도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동안 전승철과의 의견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어느새 수혁은 특수 구조대 1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 있었다.
“수혁아! 커피나 한잔하자.”
인천에서 지원 나온 오지환이 책상에 앉아 있던 수혁을 불렀다.
“아, 예!”
수혁은 서류들을 대충 정리해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거도 뽑아줘요.”
특수 구조대의 대원인 이희도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네가 직접 뽑아다 마셔, 인마.”
오지환은 이희도에게 핀잔을 주고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제가 뽑아다 드릴게요.”
수혁은 그런 오지환의 뒤를 따라 나가며 이희도를 향해 그렇게 말을 하자, 이희도가 씩- 하고 웃었다.
밖으로 나가자 오지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아서 뽑아 마시라고 그러지.”
오지환은 밖에서 수혁의 말을 들었는지 혀를 찼다.
“그냥 겸사겸사 뽑으면 되죠.”
수혁은 웃으며 그렇게 말을 했고, 둘은 자판기로 향했다.
“일은 안 힘드냐?”
진한 블랙커피를 한 잔 뽑아 든 오지환이 물었다.
“아직은 괜찮아요. 잔뜩 긴장했었는데, 생각보단 출동이 그렇게 많지가 않네요.”
물론 이건 수혁의 입장이었다.
“이게 출동이 많지 않은 거라고?”
오지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오지환은 수혁과 완전히 반대였던 것이다.
“아니, 하루에 열 번 가까이 구조 출동을 나가는데, 이게 별로 안 나가는 거면……. 네가 있던 서는 지옥에라도 있는 거냐?”
전국 평균 재난 발생률의 다섯 배에 달하는 도시.
말이 다섯 배지, 체감은 그보다 훨씬 컸다.
복귀해서 잠깐 숨이라도 돌릴라치면 곧장 또 출동 명령이 떨어질 정도였으니까.
그나마도 이곳이 특수 구조대라 각 서에서 해결이 가능한 현장에는 출동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였다.
“그냥, 뭐 바쁘긴 했죠.”
수혁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하자, 오지환은 그를 괴물을 발견했다는 듯 쳐다봤다.
“어쩐지……. 이제 배치받은 지 갓 1년밖에 안 된 놈이 엄청 능숙하다 했다. 그런 식으로 일을 하니 능숙해질 수밖에 없겠네.”
오지환은 자신이라면 절대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며 치를 떨었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신일서의 구조대나 다른 서의 대원들도 힘들긴 하지만 어찌저찌 버티고는 있었으니까.
충분히 한 팀의 팀장을 맡아도 될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는 오지환 정도라면 충분히 버티고도 남았다.
질린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떤 오지환이 갑자기 주위를 살폈다.
그러고는 수혁을 향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너 혹시 전 팀장이랑 무슨 일 있었냐?”
“예? 갑자기 그건 왜……?”
수혁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너 처음 오자마자 전 팀장이랑 따로 나가서 얘기했잖냐.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못 들었는데, 왠지 분위기가 심각해 보였거든.”
사실 장님이 아닌 이상, 그날의 분위기가 심각했다는 것을 못 알아차리는 게 이상했다.
“별일 아니었어요.”
실제로 그 이후로 둘은 별다른 충돌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까.
“흠, 그래?”
오지환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수혁의 얼굴을 살폈다.
‘이것 참, 나이 든 정우 선배 같네.’
소문에 민감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절대 참지 못하는 성격.
박정우가 나이가 들면 오지환과 같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뭐, 할 말이 없지만.”
오지환은 살짝 아쉽다는 듯, 커피를 홀짝거렸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니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아무리 그래도 둘 사이의 일을 제삼자에게까지 떠벌릴 필요는 없었기에, 수혁은 선을 그었다.
그러자 오지환이 쩝- 하며 입맛을 다셨다.
왠지 흥미를 끌 만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가르쳐 주질 않으니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계속 캐물을 수도 없었으니 참는 수밖에.
“그래, 알았다. 더는 안 물을게. 대신, 그것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꼭 먼저 말해줘야 한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할 수 없었는지, 오지환은 그렇게 여지를 남겨두었다.
“아이고, 알겠습니다. 꼭 먼저 말씀드릴게요.”
수혁은 웃으며 오지환을 데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 커피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이희도가 물었고, 수혁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지환의 갑작스런 물음에 당황해서 이희도의 커피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뽑아 올…….”
[구조 출동, 구조 출동!]
수혁이 뒤를 돌아 다시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는 타이밍에, 구조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아이씨, 내 커피!”
“뛰어, 인마! 지금 커피 타령할 때야?”
이희도는 울상을 지었고, 오지환은 그런 이희도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수혁 역시 누구보다 빠르게 구조차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수혁이 아니었다.
“어서 타!”
어디에 있다 온 것인지, 전승철이 구조차 앞에 이미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수혁은 그런 전승철을 향해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그대로 구조차에 탑승했다.
“출발!”
모든 대원들이 탑승을 완료하자, 구조차는 곧장 출동을 시작했다.
평범한 날이었다.
* * *
“수혁이는 별일 없다디?”
박상태가 박정우를 향해 물었다.
이런 소문은 그 누구보다 박정우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했으니까.
“지금까진 별일 없는 것 같던데요. 적응도 잘하고 있다고 하고.”
“그래?”
박상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박상태는 수혁이 특수 구조대로 지원 가자마자, 무슨 사고가 터질 줄 알았다.
병원에서 수혁과 전승철 사이에 벌어졌던 일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별문제 없다니 다행이었다.
“아, 수혁이에 대한 일이 하나 있긴 해요.”
“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수혁이가 작년에 독일에 다녀왔잖습니까?”
갑자기 독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박상태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랬지. 교육 훈련받으러 8주인가 다녀왔지, 아마?”
“그때 수혁이가 현장 출동을 했다고 말한 것도 기억나세요?”
굳이 기억을 더듬을 필요도 없었다.
그때 일을 가지고 수혁에게 코X이니 김전X이니 하고 한동안 놀려댔으니까.
휴가를 가도 재난이 일어나고, 연수를 가도 사고가 터지고.
그러니 놀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억난다. 근데, 그게 왜?”
박상태가 묻자 박정우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 일로 독일에서 수혁이한테 훈장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훈장?”
박상태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니, 소방관이 불을 끄고 사람을 구조한 일을 가지고 무슨 훈장이란 말인가?
그것도 다른 나라 사람에게?
“또 어디서 헛소문 들은 거 아니야?”
“소문이 맞긴 한데, 헛소문은 아닌 것 같아요. 실제로 독일에서 그 누구더라? 율리안인지 율무차인지가 오늘 입국했다고 하더라고요.”
율리안이라면 독일에서도 영웅이라 불리는 뛰어난 소방관이다.
만약 수혁이 아니었다면 최강 소방관 경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거머쥐었을 정도로 말이다.
그 유명한 율리안이 오늘 한국에 입국했다.
그냥 관광 온 것이 아니라면, 박정우의 말이 마냥 헛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무슨 훈장이라디?”
무공훈장 같은 건 아닐 테고.
“그건 저도 모르죠.”
아무리 박정우라 할지라도 알아낼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수혁이 놈은 알고?”
“글쎄요. 모르지 않을까요? 원래 그런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놈이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들이 아는 수혁이라면 오히려 그런 것을 귀찮아할 게 뻔했다.
하지만 이건 대단한 일이다.
아마 뉴스에서도 보도가 될 테고, 인터넷 기사도 꽤나 많이 올라갈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방관이 독일에서 훈장을 받는 일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런 종류의 소식을 특히나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생각보다 더 크게 이슈가 될지도 몰랐다.
“곧 소식이 전해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자세히 한번 알아봐.”
“저 일이 좀 밀려 있는데…….”
“내가 그러기에 일 제때제때 끝내놓으라고 했지, 이 새끼야!”
갑자기 불똥이 튀자 박정우가 화들짝 놀라며 사무실 밖으로 도망을 쳐버렸다.
“하여간 이놈이나, 저놈이나 빠져가지고…….”
도망가는 박정우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차던 박상태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수혁의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어, 수혁이냐?”
* * *
“훈장이요?”
[아직 정확한 건 아니고. 그런데 율리안이 직접 한국에 왔다니, 아주 헛소문은 아닌 것 같아서. 혹시 들은 것 없냐?]
“아뇨,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
박상태의 전화를 받은 수혁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훈장이라니?
그것도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일로?
‘그러고 보니…….’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율리안이 좋은 일이 있을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했던 것도 같았다.
‘너무 늦지 않아?’
수혁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일이다.
사실 독일 측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훈장 수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하지만 그사이 수혁이 시장 화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미뤄졌던 것이고.
수혁이 퇴원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난 뒤에야 다시 논의가 시작됐고, 이제야 수여가 결정된 것이다.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던 수혁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아무튼 알고 있으라고. 정우 얘기 들어보니까 너 말고도 한 명 더 받는다는 것 같던데.]
“아!”
지양호.
수혁과 함께 그날의 현장에 있었던 지양호일 것이다.
[누군지 알겠어?]
“네, 지양호 선배일 걸요?”
[지양호?]
박상태의 음성에서 수혁은 그가 지양호를 알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세요?”
수혁이 묻자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 양반도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뛰어난 분이지.]
왕년의 전설이 신재식이었다면, 지양호는 실시간으로 그 업적을 쌓아가는 중이었다.
‘왜 난 몰랐지?’
그렇게 뛰어난 소방관이라면 수혁이 못 들어봤을 리가 없었다.
이번 생은 물론이고, 이전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상태가 저렇게 말을 할 정도라면, 어떻게든 이름이라도 들어봤을 법한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나?’
수혁은 제발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박상태가 전화 너머로 무슨 말을 했지만, 수혁은 듣지 못했다.
사무실 문이 열리며 낯익은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키의 외국인.
“……율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