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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91화 (191/425)

레스큐 시스템 191화

“저희가 말입니까?”

지양호가 물었다.

그는 이미 이야기에 대해 들었는지, 수혁과 달리 크게 놀라진 않은 것 같았다.

“물론 자네 둘에게만 부탁하는 것은 아닐세. 다른 교관들도 참여할 테니.”

대사의 말에 따르면, 이미 한국 쪽과 어느 정도 협의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대사가 바라는 것은 수혁과 지양호가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었고.

“그건 저희가 결정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만…….”

지양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말 대로였다.

둘은 일개 소방관이었다.

자신의 거취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위에서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 위치.

그것이 지금 수혁과 지양호의 위치였다.

지양호의 말에 대사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설마 내가 그걸 모르고 이야기를 꺼냈겠나?”

대사는 맥주를 크게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 정도는 우리가 요청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네. 다만, 혹여나 자네들이 원하지 않을까 싶어 먼저 물어보는 것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둘의 의견 따위는 필요도 없이 그냥 포함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선 훈장까지 받은 둘의 의사를 존중했기에 이렇게 따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대사의 말에 지양호가 수혁을 쳐다봤다.

어떻게 생각하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너무도 갑작스러운 제의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러자 지양호가 먼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런가요?”

이번 일은 독일로 교육연수를 받으러 가는 것보다 더욱 큰 기회였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수혁에게는 더욱 그랬다.

임용된 지 이제 갓 1년을 넘긴 수혁이, 무려 연수 교육을 담당한다?

굳이 찾을 필요도 없이 이건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화제가 될 일이었고, 앞으로 수혁의 이력에 큰 도움이 될 일이 분명했다.

그런 것을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수혁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연수 기간은 아무리 못해도 한 달 이상이 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현장에 나가지 않고 교육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리 끌리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수혁이 기억하기론,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사고가 하나 발생한다.

만약 그때 수혁이 자리에 없다면 이전 생처럼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수혁은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생각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모양이군?”

수혁이 계속해서 머뭇거리자 눈치챈 대사가 웃으며 물었다.

“저도 이게 좋은 기회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나?”

“혹시 연수가 언제 시작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직 협의 중이긴 하네만, 일단 다음 달 중순부터 6주간 진행할 예정이네.”

“음…….”

연수 기간을 들은 수혁이 더욱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고가 언제 일어나는지 정확한 날짜는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다음 달 중순부터 6주간이라면 그 기간 안에 포함될 확률이 높았다.

“교육 장소는 서울이겠죠?”

“그렇다네.”

서울에는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로운 소방학교가 있었다.

연수는 아마도 그곳에서 진행될 것이다.

서울에서도 외곽인 은평구 쪽이었기에, 혹시나 출동한다 하더라도 도착하기까진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문제가 있나?”

수혁이 계속 갈등하는 표정이자, 대사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고민하는 것인지.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 후에 큰 재난이 발생할 텐데, 연수 교육을 맡게 되면 그곳에 출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사실 좀 내키지 않기도 하고.’

좋은 기회임에는 분명하지만, 아직 경력이 짧은 수혁이 교육을 진행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신뢰성이 떨어진다.

질투하는 사람도 분명히 생길 테고.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대사의 제의를 거절하는 편이 더 나은 것 같았다.

수혁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

하지만 대사는 수혁을 놓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무슨 문제인지 한 번 얘기해 보게.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라면 최대한 힘을 써보겠네.”

“이건 좋은 기회야.”

지양호 역시 대사의 말을 거들었다.

하지만 수혁은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마음 같아선 이 자리에서 바로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대답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

나중에 박상태나 최은송과도 의논을 해본 후에 결정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러자 대사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맥주를 마시며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율리안도 이야기가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수혁을 쳐다보았다.

그런 율리안을 위해 지양호가 영어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율리안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충분히 생각해 보고 해도 늦지 않아.”

율리안의 말을 들은 수혁이 한결 편해진 얼굴로 율리안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자네를 위한 자리는 계속해서 비워둘 테니, 숙고한 뒤에 결정하게.”

대사 역시 자신이 너무 압박감을 줬다고 생각을 했는지,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자, 한잔하지.”

네 사람은 맥주를 들고 건배를 했다.

“그거 좋은 기회 아니에요?”

최은송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좋은 기회이긴 하죠.”

수혁 역시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의 디메리트도 너무 컸다.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최은송은 일단 수혁의 의견을 물었다.

그녀는 그 무엇보다 우선해서 수혁의 의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하게요?”

“네, 솔직하게.”

수혁은 잠시 고민했다.

모든 상황을 배제하고, 하고 싶은지, 하고 싶지 않은지만 생각해 보았다.

“……하고 싶긴 하네요.”

재미가 있을 것 같긴 했다.

분명히 도움도 될 것 같았고.

최은송이 미소 지었다.

“그럼 하면 되죠.”

“하지만 상황이 좀…….”

“수혁 씨가 왜 망설이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그냥 수혁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수혁과 달리 최은송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항상 이야기했던 거지만, 수혁 씨는 조금 더 자신을 위해 살 필요가 있어요.”

수혁은 언제나 자신보단 남을 우선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었지만, 가끔은 이기적으로 살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이번이 그럴 수 있는 기회 중 하나였다.

앞뒤 재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기회.

“그러니까 수혁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최은송의 말에 수혁의 얼굴에 살짝 웃음기가 돌았다.

사실 그동안 수혁에게 지금과 같은 말을 해준 사람은 많았다.

구조 3팀의 동료들은 물론이고, 신재식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것을 받아들여 본 적이 없었다.

회귀 후, 그의 삶의 목적은 남을 구하고 돕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귀한 이유가 이전 생에는 구하지 못한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항상 남을 돕는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수 교육을 하는 것은 수혁에게도 기회였고, 충분히 뜻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면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수혁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래도 될까요?”

수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최은송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수혁 씨 인생이잖아요. 매번 하고 싶은 대로만 살 순 없어도, 가끔은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

최은송은 수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안아주며 다독였다.

“그동안 수고 많이 했으니까.”

결정했다.

한 번쯤은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대비는 조금 해둘 생각이었다.

‘일단 상태 형한테 얘기를 좀 해둬야겠네.’

그리고 짐 머레이에게도.

“좋은 아침입니다.”

수혁은 특수 구조대로 출근을 했다.

“좋은 아침은 무슨. 피곤해 죽겠는데.”

오지환은 웃는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오는 수혁을 보며 투덜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해 삶에 찌든 모습이었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수혁은 훈장 수여식이 끝나고 곧장 집으로 되돌아갔다.

특수 구조대 대원들이 뒤풀이하자며 붙잡았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던 수혁은 거절했던 것이다.

“어휴, 무슨 술들을 그렇게 마시는지.”

오지환이 질렸다는 듯 몸을 바르르- 떨었다.

“어제 술 드셨어요?”

“오찬인지 뭔지. 뭐 먹는 것 같지도 않아서 같이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하러 갔지.”

특수 구조대로 지원을 온 뒤 첫 비번이었는지라, 전승철이 환영회 겸 회식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단다.

비번에는 항상 집에서 뻗어 있던 것이 일상이던 대원들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 술을 물처럼 들이부었고.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으으으.”

있는지도 몰랐던 이희도가 한쪽 구석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그가 입을 열자 술 냄새가 사방으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래서 오늘 일할 수 있겠어요?”

수혁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출동은커녕, 본인들이 구급차에 실려 가야 할 판이었다.

그것은 오지환과 이희도뿐만이 아니었다.

수혁의 뒤를 이어 출근을 한 다른 대원 두 명과 전승철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과연 씻기는 한 건지, 떡 진 머리에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괜찮으세요?”

처음엔 장난스럽게 웃던 수혁의 얼굴이 조금 심각해졌다.

설마 전원이 이렇게 숙취에 시달리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일에 차질이 생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구조를 해도 모자랄 판에, 숙취에 찌든 상황에서 사람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괜찮다. 일에는 지장 안 가게 할 테니.”

전승철이 걱정스러운 표정의 수혁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나마 상태가 나아 보이는 전승철 역시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러니 전승철의 말이 못 미더울 수밖에 없었다.

“다들 이거 가져가서 마셔라.”

전승철이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대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바로 숙취해소제였다.

“이거 먹으면 조금 나을 거다.”

전승철은 그렇게 말을 하며 자신도 뚜껑을 따서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마시는 것보다 낫긴 하겠지.’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책상에 머리 박고 엎드려 있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수혁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굉장히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구조 출동, 구조 출동!]

근무가 시작된 지 겨우 30분도 채 되지 않아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대원들은 아직도 숙취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같이 달려나가며 그것을 본 수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정말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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