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스큐 시스템-203화 (203/425)

레스큐 시스템 203화

“어떻게 할까…….”

수혁은 아무도 없는 공터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교육생들이 훈련에 들어갔으니, 사실 이대로 내려가서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교육생들에겐 힘든 훈련이 되겠지만, 사실 교관들의 입장에선 꿀을 빨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수혁은 별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저……. 교관님?”

수혁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자, 옆에 있던 통역사가 눈치를 보며 불렀다.

“아!”

수혁은 그제야 통역사의 존재를 깨닫고는 자신의 머리를 쳤다.

“일단 같이 내려가시죠.”

사실 통역사 혼자 내려보내도 상관없는 일이기는 했다.

험한 산도 아니고, 그냥 등산로처럼 나 있는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은 통역사와 함께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이거 죄송합니다. 생각하시는데 괜히 방해한 것 같아서…….”

통역사가 송구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수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별것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오히려 제가 더 죄송하네요.”

통역사는 자신들을 도와주기 위해 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이제 할 일 끝났다고 혼자 내려가라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수혁은 통역사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산을 내려갔다.

올라올 때는 한 시간이 걸렸지만, 내려갈 때는 그 절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교육생들이 훈련을 마치고 복귀할 때까지 쉬고 계시면 됩니다.”

“네. 그럼 좀 쉬고 있겠습니다.”

통역사는 난데없는 등산에 지쳤는지, 수혁의 말을 거절하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혼자 남은 수혁 역시 휴게실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네.”

당연한 일이었다.

수혁을 제외한 모든 교관은 현재 산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 준비를 끝낸 그들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무전기를 들고 대기 중이었다.

그래서 수혁도 위에서 어떻게 할까? 고민했던 것이었고.

“그냥 좀 쉴까?”

피곤하진 않았다.

하지만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수혁은 휴게실 안에 두었던 스마트폰을 들고 소파 위에 몸을 뉘였다.

그러곤 최은송과 연락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여유로운 시간에, 둘은 한참 동안이나 대화했다.

한 시간 정도 흐른 뒤, 이제 최은송도 디너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수혁은 아쉬운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껐다.

혼자 휴게실에 누워 있으려니 무료함이 몰려왔다.

‘지금이라도 다시 올라가는 게 나으려나?’

심심함을 참지 못한 수혁이 그렇게 고민할 때였다.

다행히도 수혁의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 줄 상황이 일어났다.

[김수혁.]

무전기에서 지양호의 음성이 들린 것이다.

무전기 너머에서 들리는 지양호의 목소리는 왠지 심각했다.

본능적으로 뭔가 심상찮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수혁이 재빨리 무전기를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연락이 두절된 조가 발생했다.]

“연락 두절이요?”

수혁이 다급히 시계를 확인했다.

훈련이 시작된 지 이제 고작 두 시간 정도밖에 흐르지 않은 상태.

안전을 위해 30분에 한 번씩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오지 않은 것이다.

수혁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휴게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누구의 조예요?”

[다니엘, 슈미츠, 헤인델.]

모두 아는 이름이었다.

다니엘과 슈미츠는 교육생들 중 최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하는 이들이었으니 모를 리가 없었고, 헤인델 역시 수혁이 잘 아는 사람이었다.

‘언젠간 사고 한번 칠 것 같았는데…….’

수혁이 헤인델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두 사람과는 정반대였다.

대체 어떻게 이 연수에 참가하게 되었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체력을 비롯한 피지컬은 물론이고, 생각도 그리 깊지 못했다.

성격은 소심하고, 다른 교육생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경우도 자주 보았다.

그래서 교관들이 특별히 예의주시하고 있는 교육생이었는데…….

‘사고가 생겼다면 헤인델일 확률이 높다.’

다른 두 사람은 이런 훈련에서 낙오할 정도로 어설프지 않았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수혁은 재빨리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수색은 하고 있어요?”

[지금 수색 중인데, 중간에 경로를 이탈했는지 위치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쯧.”

수혁이 혀를 찼다.

혹시나 그런 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다.

훈련용 더미가 있는 곳은 대부분 길만 따라가도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몇몇 장소는 길에서 벗어나 있는 곳들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조들이 그런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했는데…….

그것이 이렇게 사고로 이어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아직 사고라고 단정짓긴 이르지.’

단순히 무전기가 고장이 난 것일 수도 있었다.

사고가 날 확률보단, 무전기가 고장 날 확률이 더 높았으니까.

“일단 제가 올라갈게요. 선배님은 다른 교육생들 상황을 한번 확인해 주세요.”

[알겠다.]

수혁은 무전을 끝내고는 걸음을 빨리했다.

조금 전 교육생들과 올라갈 때 걸린 시간이 한 시간.

통역사와 내려올 때 걸린 시간은 30분.

그런데 수혁이 홀로 달리기 시작하자, 정상까지 도착하는 것엔 20분이면 충분했다.

정상에 도착한 수혁은 일단 스킬부터 사용했다.

‘생명 탐지Ⅲ’는 ‘미니 맵’과 연동되어 주변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었다.

‘여긴 아니고, 여기도 아니고.’

수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조들을 확인했지만, 그들은 길에서 벗어나지도 않았고, 문제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점점 더 영역을 넓히며 살피던 수혁이 어느 한 부분에서 멈추었다.

‘여긴가?’

사람은 세 명.

길에서 한참을 벗어난 숲속 한가운데에 있었고, 결정적으로 셋 중 한 명의 생명 반응이 다른 둘과 비교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부상을 입었던지, 뭔가 심각한 상황에 처한 것이 분명했다.

수혁은 무전기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지양호와 연락이 된 지 이제 20분.

수혁이 벌써 산 정상에 올라와 그들을 찾았다고 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기에, 수혁은 일단 보고하지 않고 홀로 움직이기로 했다.

“가장 빠른 쪽이…….”

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었는지라, 수혁도 숲을 통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그들이 있는 곳과 일직선으로 통하는 길을 ‘미니 맵’으로 설정한 뒤,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화아악-!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무를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피한 수혁이 마른침을 삼켰다.

너무 빠른 속도에 하마터면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을 뻔했다.

그렇지만 수혁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약해지고 있는 생명 반응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라오스 때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

라오스에서 시애를 등에 업고 폭우가 쏟아지는 정글을 질주했던 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은 그리 힘든 것도 아니었다.

수혁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달리기 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수혁은 다니엘 조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교관님!”

다니엘은 갑자기 숲속에서 튀어나온 수혁을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리고 그것은 슈미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눈을 크게 뜬 채, 수혁을 보며 지금 자신들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헤인델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헤인델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다리가 심각하게 뒤틀린 채로 정신을 잃고 들것 위에 실려 있었으니까.

수혁은 재빨리 헤인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상태를 확인했다.

‘구른 건가?’

헤인델은 산비탈을 구르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에 흙먼지를 잔뜩 묻히고 있었다.

‘다리 골절.’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있는 외상은 자잘한 찰과상들과 다리 골절이 유일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헤인델은 정신을 잃고 있는 와중에도 고통이 심한지, 조금만 건드려도 신음을 흘렸다.

“……어떻게 된 거지?”

일차적으로 헤인델의 상태를 확인한 수혁이 고개를 돌려 다니엘을 향해 물었다.

그리고 곧바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이 안 통하잖아!’

당연하게도 그들은 서로 대화가 통할 리가 없었다.

다니엘 역시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평소 생각이 깊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던 다니엘은 정신이 없어 보였다.

수혁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야 헤인델에게 조치를 취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단순히 다리 골절뿐이었지만, 정신을 잃을 정도면 다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다.

만약 다른 문제가 있다면,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군.”

고민하던 수혁이 생각한 것은 무전기였다.

무전기로 통역사와 연결해서 통역하면 되었다.

‘조금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과연 수혁이 어떻게 벌써 이들을 찾아냈느냐 하는 것.

아까 했던 걱정과 같은 종류의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선배님.”

[어디쯤이냐?]

수혁이 무전기로 지양호를 부르자, 그는 수혁이 지금쯤 열심히 올라오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 물었다.

“교육생들 찾았습니다.”

수혁의 대답에 무전기는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 헤인델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일단 확인 가능한 외상은 왼쪽 다리골절, 그리고 찰과상 몇 군데가…….”

수혁이 헤인델의 상태보고를 끝마칠 때까지 지양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수혁이 보고를 끝내자 무거운 음성이 들려왔다.

[일단은 알았다.]

지양호는 대체 수혁이 어떻게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그들을 찾을 수 있었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요구조자가 발생한 상황에, 자신의 궁금증을 우선할 수는 없었기에 참았다.

[필요한 건?]

“일단은 통역사 분이랑 무전 연결 가능해요? 지금 대화가 통하질 않아서 자세한 상황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알았다. 그건 내가 바로 해결해 주지. 아, 그전에 거기 위치부터 확인하자.]

상황이 심각하다면 수혁 혼자서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지양호는 수혁이 있는 위치를 파악하고는 곧장 소방 학교에 연락해서 통역사와 연결을 시도했다.

다행히 그때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통역사는 부랴부랴 무전기를 들고는 수혁에게 무전을 쳤다.

[대, 대체 무슨 일입니까?]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통역사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지금은 길게 말씀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고 물어보신 다음, 다니엘이 하는 말을 통역 좀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수혁의 다급한 음성에 통역사는 곧바로 그 말대로 했다.

통역사가 통역을 시작하자, 다니엘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던 수혁은 헤인델이 사고를 쳤을 것이란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