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08화
경기도 남양주시.
이곳에는 경기도 소방청 산하의 특수 구조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맡고 있는 팀장은 바로…….
“오랜만이군.”
김갑수였다.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수혁이 김갑수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김갑수는 반가운 표정으로 수혁을 맞아주었다.
신일역 붕괴사고 당시, 매몰되어 있던 수혁을 구조한 뒤 처음으로 보는 것이었다.
“팀장님 덕분이죠, 뭐.”
수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실제로 김갑수와 그가 이끄는 특수 구조대가 아니었다면, 수혁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회포는 나중에 풀기로 하고. 이 녀석들이야?”
김갑수가 수혁의 뒤에서 멀뚱히 서 있는 둘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이번에 같이 현장 실습할 놈들입니다.”
수혁이 다니엘과 슈미츠를 소개했다.
둘은 눈치껏 자신들이 인사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앞으로 나섰다.
“다니엘입니다.”
“슈미츠라고 합니다.”
김갑수는 그런 둘을 찬찬히 살폈다.
두 사람 모두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그중에서도 슈미츠는 김갑수가 감탄할 정도였고.
“원래는 세 명이 온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 사정이 좀 있습니다.”
김갑수는 사고에 대해 듣지 못한 듯했기에, 수혁은 대충 얼버무렸다.
좋지도 않은 일을 굳이 떠들어댈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김갑수는 별로 궁금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보단 눈앞의 파릇파릇한 애송이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었다.
“둘 다 영어 가능하지?”
김갑수가 영어로 묻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행이군. 우리 쪽에는 독일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거든.”
김갑수는 하하- 웃으며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전에는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꽤나 화통한 성격인 것 같았다.
수혁은 또다시 영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에 영어 공부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지금도 틈이 날 때마다 최은송에게 배우고 있긴 했지만, 사실 아직은 대화하기엔 한없이 부족했다.
“실습 기간 동안 너희는 우리 팀과 같이 현장에 출동할 예정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희가 직접 뭔가를 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다니엘과 슈미츠는 아직 정식 소방관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소방관 시보.
아직은 배우는 입장의 학생인 것이다.
그러니 직접 구조에 나서는 것보단, 자신들이 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현장의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것이 주가 될 예정이었다.
“알겠습니다.”
다니엘은 이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만, 슈미츠는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자신은 지금 당장 현장에 투입돼도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진 않았다.
이전에 수혁에게 들었던 말이, 아직 슈미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탓이었다.
“그럼 일단 안으로 들어가지.”
김갑수는 수혁과 다른 둘을 데리고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왔습니까?”
안에는 특수 구조대의 대원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수혁은 다 알지?”
김갑수가 수혁을 가리키며 묻자, 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구했고, 그 후로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다루었던 사람이니 말이다.
“이렇게 다시 보니까 반갑네요.”
대원들이 웃으며 수혁에게 다가왔다.
“저도 반갑습니다. 김수혁입니다.”
그들은 서로 악수를 하며 통성명을 했다.
“그리고 이쪽 두 명이 이번에 우리 특구에서 현장 실습하게 될 교육생들이다.”
인사가 대충 마무리 되어가자, 김갑수는 이번엔 다니엘과 슈미츠를 소개했다.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아 분위기가 좀 어색했지만, 대원들은 그 두 명을 환영해 주었다.
국가는 달라도 같은 길을 걸어가는 후배들이었으니,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써주는 것 같았다.
물론 수혁이 보기엔 갓 자대 배치를 받은 신병과 선임병들의 모습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다니엘과 슈미츠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소개를 하고는 김갑수의 안내에 따라 자리로 가서 앉았다.
“쟤들 어때?”
김갑수가 곁눈질로 그런 두 사람을 쳐다보고는 수혁에게 물었다.
“괜찮은 애들입니다. 성적도 좋고, 독일 쪽 소방 학교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할 걸요?”
“그래? 그럼 좀 기대해도 되려나?”
김갑수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아무래도 어리바리한 고문관을 데리고 다니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뛰어난 신입들을 데리고 다니는 게 편했다.
“글쎄요…….”
하지만 수혁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왜? 무슨 문제 있어?”
“문제라면 문제일 수도 있고요.”
수혁의 말에 김갑수가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뭐 걸리는 게 있구나?”
“네.”
수혁은 뺨을 긁적였다.
실력과 능력만 보자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재들이다.
하지만 수혁은 둘의 성격이 아무래도 계속 마음이 쓰였다.
“말해봐.”
앞으로 10일간 자신이 책임져야 할 대원이다.
문제가 있다면 사전에 알아두어야만 했다.
그래야 실수나 사고로 번지지 않는다.
“다니엘은 너무 소심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능력에 비해 자존감도 낮고. 얼마 전 사고가 하나 있었는데, 그 후로 좀 더 심해진 것 같아서 걱정이네요.”
원래부터도 그리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 같았지만, 헤인델의 부상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그래도 자신이 맡은 일은 잘해내는 편이니 다니엘은 별로 걱정이 되진 않지만……. 문제는 슈미츠네요.”
그랬다.
이전의 면담 이후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었지만, 수혁은 사람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지만, 언제 다시 본래의 성격이 튀어나올지는 알 수 없었다.
“자존심과 승부욕이 너무 강합니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간혹 그 성격 때문에 주변 동료들에게 폐를 끼칠 정도로.”
수혁의 말을 들은 김갑수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대충 어떤 성격들인지 짐작이 가는군.”
김갑수가 특수 구조대에서 일한 지 벌써 10년이 넘는다.
그동안 수많은 대원들과 소방관들을 보며 별의별 성격의 소유자들을 많이 경험했었고.
그중에는 다니엘이나 슈미츠 같은 성격의 대원들도 있었다.
“보자, 그럼 다니엘이란 녀석은 자신감을 좀 심어줄 필요가 있을 거 같고.”
10일 동안 적어도 현장 출동을 수십 번은 나갈 것이다.
그것을 통해 다니엘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상기시켜 주기로 했다.
“슈미츠란 놈은 좀 밟아줘야 하나?”
자존심? 승부욕?
그런 건 소방 학교에서나 통용되는 것들이다.
현장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고, 동료들과 경쟁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일단은 저도 그렇게 할 생각이긴 한데…….”
수혁 역시 김갑수가 말한 것처럼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좋아. 일단은 그런 식으로 진행하기로 하지.”
다니엘 같은 경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임무를 주고, 그것을 완벽히 수행해 냈을 때 오는 보람과 성취감을 계속 느끼게 해주면 되었으니까.
약간의 칭찬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이 효과가 좋을 것이다.
반대로 슈미츠는?
현장의 무서움을 제대로 보여주기로 했다.
너의 실수 하나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
그것을 통해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게 만들어야만 했다.
생명의 무게 앞에서 자존심과 승부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직접 현장에 출동하면, 어쩔 수 없이 배우는 것이기도 했다.
수혁과 김갑수는 슈미츠가 정말로 누군가를 잃기 전에 그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앞으로 10일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내가 할 부탁이지. 소문이 자자한 김수혁 덕 좀 보자고.”
김갑수가 웃으며 말을 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김갑수의 말에는 진심이 듬뿍 담겨 있었다.
교육생이라는 두 명의 짐이 딸려오긴 했지만, 그가 들었던 수혁의 실력이라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그 소문이 정말인지 보고 싶기도 하고.’
워낙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많다 보니 김갑수는 그 실체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다니엘! 로프!”
김갑수 소리를 지르자, 다니엘은 급히 로프를 챙겨 들고는 그에게로 달려갔다.
“땡큐.”
로프를 받아 든 김갑수는 한쪽에 단단하게 묶고는 레펠을 준비했다.
다니엘은 그런 김갑수의 옆에서 돕기 시작했다.
훈련할 때와는 달리, 긴장으로 인해 손이 굳어서 그런지 마음처럼 잘되질 않았다.
김갑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상가 화재.
고층 상가 건물의 화재로 인해 갇혀 있는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직접 로프를 이용해 구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다니엘의 행동이 너무 굼떴다.
평소였다면 벌써 준비를 끝냈을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몇 배는 길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김갑수는 그런 다니엘을 재촉하지 않았다.
첫 출동.
얼마나 긴장되고 떨릴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다니엘의 소심한 성격을 바꾸기로 계획까지 세웠으니 나무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좀 더 서둘러.”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아무리 교육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요구조자의 생명보다 중요할 리는 없었으니까.
김갑수의 말에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심호흡을 했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킨 다니엘은 최대한 빠르게 로프를 연결했다.
“좋아, 잘했어.”
준비가 끝나자 김갑수는 다니엘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고는 아래쪽으로 뛰어내렸다.
“후우.”
다니엘은 다리가 풀렸는지 자리에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섭다.’
별것 아닌 현장이었다.
화재는 그리 크지 않았고, 시간도 그리 촉박하지 않았다.
여유롭다라고까지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당장 생명이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긴장으로 온몸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게 현장.’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예전에도 출동에 대한 두려움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은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성적도 좋았고, 교관들도 잘하고 있다며 칭찬해 주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정말로 현장에 나오자, 몸이 자신의 것 같지가 않았다.
물을 잔뜩 머금은 솜을 잔뜩 지고 있는 것 같았고, 그렇게 명석하게 돌아가던 두뇌도 술을 마신 것처럼 몽롱했다.
직접적인 구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심부름과 조력 정도만 하는데도, 느껴지는 압박이 장난 아니었다.
‘지금도 이런데 나중에는 어떻게 하지?’
자신이 정말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다니엘이 옥상 위에서 그렇게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을 때.
슈미츠는 더욱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누가 그딴 식으로 하라고 했어!”
수혁의 주먹이 슈미츠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빠악-!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지금 이게 훈련인 줄 알아?”
수혁의 호통에 슈미츠가 몸을 떨었다.
“너 한 명의 실수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 그걸 명심해.”
수혁의 싸늘한 눈동자가 슈미츠를 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