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09화
슈미츠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첫 출동의 긴장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수혁의 명령 때문이었다.
장비를 챙기는 것은 물론, 온갖 잡다한 심부름까지 모두 슈미츠가 도맡아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실수로 장비 하나를 챙겨오지 못했다.
그 대가로 수혁에게 엄청난 잔소리와 함께 머리를 한 대 얻어맞기까지 했고.
“괜찮냐?”
수혁과 슈미츠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던 대원 한 명이 물었다.
“……네.”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슈미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면 말해. 좀 쉬게 해줄 테니까.”
“괜찮습니다.”
대원의 배려에 슈미츠는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언제나 1등이었다.
이론에서는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실기와 훈련에선 그 누구보다도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그래서 자신이 있었다.
지금 당장 현장에 투입되어도, 선배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
그런데 정작 현장에 출동하자,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요구조자?
구경도 하지 못했다.
수혁을 비롯한 대원들이 시키는 일만 하는데도 버겁기 그지없었다.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해 혼나기 일쑤였고.
오죽하면 참다못한 수혁이 주먹을 날릴 정도일까.
물론 수혁이 일부러 더 엄격하고 심하게 굴린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수혁이 주먹을 날린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화재 현장에 왔는데, 봄베도 안 챙기고 나오는 머저리가 어디 있어!”
슈미츠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너무도 터무니없는 실수.
직접 화재 현장 내부로 들어갈 일이 없긴 하겠지만, 그래도 당연히 장비를 했어야 할 것을 챙기지 않았다.
이건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는 실수였다.
“죄송합니다.”
슈미츠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정신 똑바로 차려. 여긴 훈련장이 아니야.”
수혁이 씹어뱉듯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렸다.
“요구조자 파악됐습니까?”
“지금까지 파악된 건 세 명. 모두 안전한 곳에 피신해 있는 상태고, 불길 때문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라 팀장님이 옥상에서부터 안으로 진입하시기로 했다.”
“세 명…….”
최소한 세 명이다.
수혁은 혹시나 파악하지 못한 요구조자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생명탐지Ⅲ’를 사용했다.
‘없네.’
화재 현장에서 감지된 사람은 세 명이 전부였다.
그리고 대원이 말해준 것처럼 모두 베란다에 피신해 있는 상태였고.
‘불길도 그리 심각하진 않으니 진압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 같고.’
구조 자체도 힘들진 않았다.
수혁은 잠시 고민을 했다.
수혁이 스킬로 확인한 바로 더는 요구조자가 없긴 했지만, 매뉴얼상 수색은 해야만 했다.
파악하지 못한 요구조자가 더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그 수색에 슈미츠를 데리고 갈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쩔까?’
별다른 위험 요소도 없었으니, 한번 경험시켜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슈미츠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
괜히 데리고 들어갔다가 사고라도 칠지 걱정이 되었다.
“왜? 데리고 가게?”
대원 한 명이 슈미츠를 보며 고민하는 수혁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물었다.
“그럴까 생각 중이긴 한데……. 저 정신으로 제대로 따라올 수나 있을지 걱정이네요.”
수혁의 말에 대원이 픽- 하고 웃었다.
“한번 데리고 들어가. 이런 기회 흔치 않잖아.”
“그렇긴 하죠.”
대원의 권유를 들은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이 직접 나서면 된다.
수혁이 나서서 해결 못 할 문제는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나 이런 작은 화재 현장에서는 더욱더.
수혁은 고민을 끝냈다.
슈미츠가 경험을 쌓을 더없이 좋은 기회였으니, 그것을 놓치기엔 너무 아쉬웠다.
“슈미츠.”
수혁이 부르자 슈미츠가 침을 삼키며 돌아봤다.
혹시 자신이 또 무슨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생각하는 눈치였다.
“장비 모두 착용했는지 체크하고, 진입 준비해.”
슈미츠의 눈이 커졌다.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이었던 것이다.
“저도 들어갑니까?”
“그래, 그러니까 빨리 준비해.”
슈미츠는 그제야 자기가 잘못 듣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황급히 장비들을 챙겼다.
그러곤 빠트린 것은 없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준비 다 됐습니다.”
슈미츠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첫 출동에, 첫 현장 진입이다.
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혁은 슈미츠를 한번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준비는 제대로 끝마친 것 같았다.
“따라와.”
수혁은 대원 한 명과 함께 앞장서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화재가 일어난 층은 10층.
화재 시 엘리베이터 사용은 절대 금지였으므로, 수혁은 뛰어 올라가기로 했다.
“뒤쳐지지 마라.”
“알겠습니다.”
슈미츠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수혁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슈미츠도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고작 10층을 오르는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수혁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슈미츠가 그 뒤를 따랐다.
장비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지만, 힘이 들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흥분과 기대가 슈미츠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드레날린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탓에, 슈미츠는 평소보다도 빠른 속도로 계단을 오를 수가 있었다.
셋은 순식간에 10층에 도착했다.
“후욱- 후욱-”
슈미츠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수혁은 슈미츠가 잠시 호흡을 고를 수 있도록 기다려 준 뒤, 철문으로 다가갔다.
“화재 현장 진입 시 경계해야 할 것은?”
수혁이 느닷없이 슈미츠를 향해 질문했다.
그리고 슈미츠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백 드래프트입니다.”
“징조를 얘기해 봐.”
“문의 열기와 소리입니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 두 가지만 주의해도 충분했다.
‘위험감지Ⅲ’ 스킬이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봐선 백 드래프트 현상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수혁은 슈미츠에게 교육시키기 위해 확인을 명령했다.
“확인해 봐.”
슈미츠는 장갑을 벗고, 조심스럽게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대보았다.
별다른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소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진입한다.”
수혁이 도끼로 문고리를 내려쳤다.
콰직-!
“진입!”
문고리가 떨어지고 문이 열리자, 수혁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화재가 그리 크지는 않아서 불길이 가로막지는 않았지만, 연기로 인해 시야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수색 시작.”
수혁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슈미츠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음.’
확실히 우등생은 우등생이었다.
슈미츠는 첫 현장 경험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서도, 정확하게 모든 곳을 확인했다.
수혁은 자신이 회귀 직후 했던 행동들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상태 형이 뭐라고 생각했을지.’
그때 수혁은 지금 이 상황이 꿈이라고 생각하며 정말 막무가내로 행동했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을 박상태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또라이라고 생각했겠지.’
그에 반해 슈미츠는 정석 그 자체였다.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속도는 느렸지만, 배운 것만큼은 확실하게 실행했다.
‘성격만 좀 고치면 뛰어난 소방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수혁은 다시 한 번 슈미츠의 능력을 인정했다.
“잘하는데?”
대원 한 명이 수혁의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그러게요.”
“세상 모든 신입이 다 저랬으면 소원이 없겠다.”
대원은 킥킥거리며 그렇게 말을 했다.
그 정도로 슈미츠는 뛰어났다.
“클리어!”
그사이 수색이 가능한 장소의 수색을 모두 끝낸 슈미츠가 손을 들고 소리쳤다.
“확실해?”
수혁이 물었다.
정말 요구조자가 전혀 없냐는 질문이었다.
“확실합니다.”
“좋아.”
수혁은 처음부터 요구조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는 슈미츠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뒤는 화재 진압대에게 맡기고 우리는 이만 내려가…….”
말을 하던 수혁이 입을 다물었다.
키이이잉-!
이명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뭐지?’
빠르게 주위를 살펴봤다.
시야 안에 들어오는 곳 중 붉게 물들어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럼에도 ‘위기감지Ⅲ’는 계속해서 수혁에게 신호를 보내왔다.
“김수혁?”
“교관님?”
슈미츠와 대원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수혁을 불렀다.
“잠시 대기.”
수혁이 위험요소를 찾고 있을 때, 무전기에서 다급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김수혁!]
김갑수의 목소리였다.
‘이거다!’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무전기를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화재가 요구조자들이 있는 곳까지 번졌다. 레펠로는 시간 내에 구조가 불가능해!]
수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화재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잖습니까?”
[화재 지점에 인화 물질이 있었던 것 같다. 갑자기 불길이 커졌어. 시간이 없다.]
“젠장.”
그리 어렵지 않았던 현장이 순식간에 분초를 다투는 곳으로 바뀌었다.
“슈미츠, 너는 내려가라.”
지금부터 수혁은 불길을 뚫고 안쪽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런 현장에 슈미츠를 데리고 갈 순 없었기에 복귀를 명령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순순히 명령을 따르던 슈미츠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헛소리하지 말고 돌아가.”
수혁이 재차 명령했지만, 슈미츠는 그것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대로 혼자 내려가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왠지 수혁에게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수혁은 그런 슈미츠를 잠시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슈미츠의 좋지 않은 성격이 다시 고개를 든 것 같았다.
‘좋아, 한번 해보자 이거지?’
수혁은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기회에 슈미츠의 저 같잖은 자존심을 꺾어버리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좋아, 따라와. 대신 지금부터는 교육생이 아닌, 한 명의 소방관으로 대하겠다.”
“좋습니다.”
슈미츠가 도발적인 눈빛으로 수혁과 시선을 마주쳤다.
“괜찮겠어?”
대원이 수혁을 향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슈미츠는 아직 교육생이다.
만약 수혁이 임의대로 데리고 갔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저놈 안전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현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좀 깨닫게 해주고도 싶고.”
대원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알기로 수혁은 정말 뛰어난 구조대원이었다.
자신과 함께라면 슈미츠 한 명 정도는 충분히 챙기고도 남았다.
“그래. 팀장님에게는 내가 나중에 보고하지.”
“감사합니다.”
수혁은 대원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슈미츠를 돌아봤다.
“따라와라.”
‘지옥으로’라는 뒷말은 생략했다.
굳이 말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제부터 뼈저리게 몸으로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수혁은 빠르게 요구조자들이 피신해 있는 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미니 맵’이 있었기에 일행은 단 한 번도 헤매지 않고 도착할 수가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지만, 슈미츠는 그것에 놀랄 틈이 없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불의 장막에 압도되어 버린 것이다.
“저길 뚫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