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15화
다니엘이 슈미츠의 말뜻을 이해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사흘이었다.
가장 겪고 싶지 않았던 경험과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을 동시에 봤다더니.
다니엘은 그 말에 뼈저리게 공감했다.
“후욱, 후욱.”
방금 전, 다니엘과 슈미츠는 수혁의 뒤를 따라 화재 현장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리고 요구조자 한 명을 발견해 데리고 빠져나왔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8분.
고작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사람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주저앉아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힘드냐?”
밖에서 지휘하고 있던 김갑수가 다가오며 물었다.
“괘, 괜찮습니다.”
둘은 애써 멀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힘도 없을 정도로 지쳐 있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그래? 그럼 다시 현장에 투입해도 되겠지?”
김갑수의 말에 다니엘이 사색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김갑수가 픽- 하고 웃었다.
“농담이다. 오늘 실습은 여기서 끝이니까, 쉬고 있어.”
다니엘이 민망한 표정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만 해도 벌써 다섯 번째 출동.
각 현장에서 그들이 한 일은 대부분 그냥 수혁을 따라다닌 것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진이 다 빠질 정도로 지쳐 버렸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도저히 더는 뭔가를 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된 것이었다.
‘독일에서도 이럴까?’
다니엘은 제발 독일에서는 이 정도가 아니길 바랐다.
반면 슈미츠는 지친 와중에도 분한 표정이었다.
다니엘은 계속해서 쉴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그는 반대였다.
‘대체 뭐가 다른 거지?’
같이 출동했고, 같이 현장에 진입했다.
하지만 자신들은 딱히 하는 일도 없었음에도 이렇게 지쳐 버렸는데, 수혁은 아직도 쌩쌩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 같은 생각을 수십 번 하긴 했지만, 수혁은 정말로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슈미츠가 대단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수혁 한 명이 아니었다.
수혁의 괴물 같은 모습에 묻혔지만, 특수 구조대 대원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대단했다.
오죽하면 슈미츠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인가?’
현장 실습을 시작한 지 5일도 되지 않아 수십, 수백 번을 되뇌었다.
소방 학교 내에서야 압도적으로 성적이 좋았던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그런 교육생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후우…….”
슈미츠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래?”
옆에서 쉬고 있던 다니엘이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슈미츠를 향해 물었다.
“그냥.”
하지만 슈미츠는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쪽팔리기도 했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다니엘은 이해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다니엘은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다니엘에게 슈미츠의 상태보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이 나타났던 것이다.
“아, 나온다.”
슈미츠가 고개를 들었다.
다니엘의 말대로 화재 현장에서 누군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바로 수혁이었다.
수혁은 양옆에 요구조자 두 명을 부축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하!’
슈미츠가 속으로 감탄했다.
오늘 이 현장에서만 수혁이 구해낸 요구조자가 다섯 명이다.
그리고 총 다섯 번의 출동에서 구한 것은 열 명이 넘었고.
슈미츠의 눈엔 수혁이 단순한 구조대원이 아닌, 구조의 신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절대로 쉬운 현장들이 아니었음에도, 수혁은 너무도 쉽게 요구조자들을 구해냈다.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이.
단순히 힘과 체력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수혁의 능력이 진가를 드러내는 곳은 현장이었다.
마치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요구조자들을 찾아냈으며, 그 어떤 위험 요소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만약 수혁이 아니었다면, 오늘 구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요구조자를 잃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슈미츠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경험.
저 대단한 수혁조차도 요구조자를 구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슈미츠는 아직 그것을 겪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그래서 두려워졌다.
만약 내 잘못으로, 내 실수로 요구조자를 잃는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위축되었다.
“복귀한다.”
구조가 모두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화재 진압뿐.
하지만 그 일은 특수 구조대가 할 일이 아니었기에, 이제 복귀하면 되었다.
김갑수의 말에 다니엘과 슈미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휴식을 취했음에도, 아직 온몸이 삐걱거렸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니엘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수혁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너희도 수고 많았다.”
수혁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빈말이 아니었다.
솔직히 수혁은 다니엘과 슈미츠, 둘 모두에게 감탄했다.
자신이 저 시절에 어떠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더욱 놀라웠다.
저 둘은 지금 당장 임용해서 소방서에 배치받아 현장에 출동해도 괜찮을 정도였다.
물론 아직 경험이 부족했으니 사수 밑에서 여러 가지를 배워야겠지만 말이다.
“감사합니다.”
다니엘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금까지 수혁은 자신들에게 단 한 번도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다니엘은 그것이 못내 아쉬웠었다.
사실 정말로 한 일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복귀할 때면 항상 대원들끼리 서로 고생했다며 격려해 주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수혁이 처음으로 해주었다.
그러니 왠지 인정받은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것은 슈미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한 자존심으로 인해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것만큼은 감출 수가 없었다.
다니엘과 슈미츠는 수혁의 뒤를 따라 구조차에 탔다.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자 바깥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땀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창문 좀 열겠습니다.”
“그래. 안 그래도 코가 썩는 것 같았다.”
김갑수의 허락에 수혁이 창문을 열었다.
여름이 성큼 다가온 계절.
가만있어도 더운 날씨에 화재 속으로 들어가 그 뜨거운 열기와 싸웠으니, 땀으로 범벅이 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당연히 구조대원들은 항상 땀에 젖어 있었고, 그들이 탄 차는 땀 냄새가 지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 냄새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자신들이 흘린 땀 덕분에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뭐, 난 별로 안 흘렸지만 말이지.’
수혁이 속으로 웃었다.
수혁의 육체는 반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있었다.
퀘스트가 뜸해 레벨 업을 하지 못했으니 망정이지, 계속 레벨이 올랐으면 지금쯤은 초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늘을 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수혁은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곤 앞으로 남은 일정을 떠올렸다.
현장 실습도 이제 절반 정도 왔다.
앞으로 6일이면 이 실습도 끝이 나고, 연수 역시 종료된다.
길고 길었던 외유를 끝내고, 마침내 신일서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은송 씨도 볼 수 있고.’
거의 한 달이나 보지 못했더니 너무도 그리웠다.
연락은 자주 했지만, 그렇다고 그리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박상태를 비롯한 구조 3팀도 보고 싶었고, 신일서의 마스코트가 된 치즈도 보고 싶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수혁은 하루라도 빨리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교관이란 직책에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혁의 시선이 다니엘과 슈미츠를 향했다.
둘은 많이 지쳤는지, 등받이에 몸을 파묻고는 눈을 감고 있었다.
‘흐음.’
다니엘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능력도 출중했고, 성격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이전에 실수하긴 했지만, 그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니엘이라면 정말 지금 당장 현장에 투입시킨다 해도 수혁은 반대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에 반해 슈미츠는 조금 애매했다.
피지컬을 비롯한 소방관으로서의 재능은 다니엘을 훨씬 웃돈다.
30명의 교육생 중에서는 단연 톱이었고, 지금껏 수혁이 봐온 수많은 소방관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뛰어났다.
아직은 애송이에 불과했지만, 훗날 경험이 쌓인다면 제2의 율리안이라고 불릴지도 몰랐다.
‘문제는 성격인데…….’
사실 현장 실습을 시작한 요 며칠간, 슈미츠는 꽤나 변화했다.
워낙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기에 알아차리기는 힘들었지만, 변한 것은 확실했다.
일단 수혁에 대한 적개심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았다.
소방 학교에서 훈련할 때, 슈미츠가 수혁을 바라보는 눈빛은 항상 반항적이고 도전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이 많이 희석되어 있었다.
그리고 성격도 조금 유해진 것 같았다.
절대 꺾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자존심을 굽히기 시작한 것이다.
수혁이나 김갑수 외에도, 다른 대원들이 알려주는 것을 쉽게 받아들였다.
그것은 슈미츠가 그들을 인정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둘 중 어느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변화였다.
만약 이대로만 계속 간다면, 슈미츠는 분명 좋은 소방관이 될 수 있었다.
‘아직 멀긴 했지.’
하지만 수혁은 아직 슈미츠에 대한 평가를 박하게 주었다.
많이 좋아졌고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처음 보여주었던 모습에 비해서였다.
뭔가 결정적인 계기가 하나 생긴다면 모를까, 아직은 부족했다.
‘차근차근하는 수밖에.’
수혁은 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도착했습니다.”
수혁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구조차는 본부에 도착했다.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던 대원들이 모두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켰다.
“어으, 이제 오늘 하루도 끝나가네.”
이제 퇴근 시간까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별일이 없다면 이대로 오늘 일과가 마무리될 것이다.
“장비들 정리하고, 슬슬 퇴근 준비들 해.”
“알겠습니다.”
대원들은 퇴근 생각에 싱글벙글했다.
수혁은 다니엘, 슈미츠와 함께 장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소방관에게 중요한 것은 진화와 구조뿐 만이 아니었다.
평소 장비 관리를 하는 것 역시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했다.
장비 관리는 대원과 요구조자, 모두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둘에게 장비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천천히 시범을 보이며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정리가 끝나고,
“우리도 이제 퇴근 준비하자.”
수혁이 슬슬 퇴근을 위해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하지만 하늘은 어림도 없다는 듯, 사이렌 소리와 함께 출동 명령을 내렸다.
[구조 출동, 구조 출동.]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고, 수혁은 지금까지 정리해 두었던 장비들을 재빨리 꺼내 들었다.
“준비해!”
수혁이 소리를 지르자, 다니엘과 슈미츠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출동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