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16화
수혁의 표정은 심각했다.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진, 그저 퇴근 직전에 출동 명령이 떨어진 것이 조금 짜증 날 뿐이었다.
조금만 더 늦게 신고가 들어왔다면, 출동은 다음 근무자들이 나갔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한 수혁은 차라리 자신이 출동한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
“너무 심한데…….”
김갑수 역시 표정이 어두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화재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었다.
그 엄청난 열기 덕분에, 근처로 다가가기도 힘들 정도였다.
먼저 도착한 관할 소방서 펌프차들이 일제히 방수하고 있었지만, 불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관할서와 우리만으론 무리겠습니다.”
대형 물류 창고에서 갑작스레 일어난 화재.
직원들은 불이 난 것을 인지하고는 손쓰려 했지만, 불은 그들이 무슨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산처럼 제 몸집을 불렸다.
소화기 한두 개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결국 그들은 신고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요구조자는?”
“파악된 바로는 여섯 명입니다.”
창고 내에서 정리하고 있던 인원들이었다.
수혁 역시 ‘생명감지Ⅲ’로 요구조자의 숫자를 파악해 둔 상태였다.
“여섯 명…….”
지금 당장은 안으로 진입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불길이 거셌다.
지원이 도착해서 길을 연다고 해도 과연 그때까지 그들이 버틸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이거 큰일인데.’
수혁이 혀로 마른 입술을 적셨다.
요구조자 여섯 명은 지금까진 무사했다.
냉장 물품들을 보관하는 대형 냉장실 안에 피신한 것 같았다.
차단된 공간인 데다 불길이 쉽게 침범할 수 없는 곳이었으니, 당분간은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할 게 뻔했다.
화재는 거대한 창고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아무리 냉장실 안에 있다 한들, 오래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수혁이 일단 김갑수에게 물었다.
하지만 김갑수라고 해서 딱히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선 정말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불길을 좀 잡아야 진입을 시도할 텐데.”
“그건 그렇죠.”
수혁은 들어갈 수 있었다.
‘실드’를 사용하면 아무리 거센 불길이라 하더라도, 수혁에게 해를 입힐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5분씩 5번.
즉, 하루에 ‘실드’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25분에 불과하다는 말이었다.
거기다 보호 가능 범위가 좁았기 때문에 저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을 뿐, 구조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전 상가 건물 화재 때처럼 엄호 방수를 하며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의 화재였기에, 호스 하나만 달랑 갖고 들어가기엔 너무도 위험했다.
결국은 김갑수의 말처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원은 요청했답니까?”
“그래. 이 근방 소방서란 소방서에선 죄다 몰려올 거다.”
소방서 한두 군데론 무리였다.
최소한 펌프차가 열 대 이상은 투입되어야만 하는 규모의 화재였으니까.
서울 쪽에서도 지원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글쎄. 우리와 비슷한 시간에 지원 요청이 들어갔을 테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다.”
한눈에 봐도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당연히 곧장 지원 요청을 했을 테고, 그중 특수 구조대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먼저 도착했다.
그러니 이제부터 속속 도착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일단 언제든 들어갈 수 있게 준비부터 해두자.”
“알겠습니다.”
수혁이 김갑수의 말에 대답하고는 몸을 돌릴 때였다.
“응?”
수혁이 걸음을 멈췄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글자들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퀘스트 : 요구조자들을 모두 구조하라!]
[내용 :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불타는 화염, 매캐한 연기. 여섯 명의 요구조자가 그것들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 상태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늦기 전에 교육생들과 함께 그들을 모두 구조하라!]
[보상 : 경험치, 스킬, 신뢰, 성장.]
퀘스트를 본 수혁은, 처음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퀘스트를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레벨 업과 스킬을 얻으며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퀘스트를 자세히 읽어보던 수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두 번, 세 번 다시 읽기 시작했다.
‘미친……!’
요구조자를 구조하는 것 자체는 평소와 똑같았다.
그런데 이전에는 붙지 않았던 사족이 붙어 있었다.
‘교육생들과 함께.’
그 말은 다니엘, 슈미츠와 함께 저 불덩이 안으로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너무도 위험한 현장이었기에 교육생들은 일단 밖에서 대기시켜 놓으려고 생각했던 수혁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놈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대체 어떻게 하라고?’
그냥 무시할까도 생각했다.
퀘스트에 실패를 해도 별다른 페널티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보상에 있는 ‘신뢰’와 ‘성장’이라는 단어는 수혁을 망설이게 했다.
그것들이 뜻하는 건 아마도…….
‘저 녀석들과 연관된 것이겠지.’
그것을 생각하면 선뜻 퀘스트를 포기하지 못했다.
“아, 젠장.”
고민하던 수혁은 결국 욕설을 내뱉었다.
저 둘을 데리고 들어간다면 난이도는 급상승할 것이다.
요구조자들뿐만이 아니라 두 애송이의 안전도 책임져야 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혁은 데리고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좀 더 고생하면 돼.’
수혁은 이런 퀘스트를 준 누군가에게 속으로 불평하며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금 당장은 들어가기 어렵고, 조금 이따 지원이 도착해서 길이 열리면 그때 진입하기로 했습니다.”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까?”
대원 중 한 명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가 보기에도 상황은 급박한 것 같았다.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다간 너무 늦을 것 같았던 것이다.
“지원은 생각보다 금방 올 거예요.”
김갑수와 나눴던 대화를 대충 알려주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일단 진입 준비를 모두 끝내고, 대기하라고 하시네요.”
“그래, 알았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대원들이 서둘러 준비를 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특수 구조대다.
길이 열리기만 한다면, 안에 갇혀 있는 요구조자들을 구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른 것에 있었다.
수혁이 다니엘과 슈미츠를 쳐다봤다.
그들은 대원들이 장비를 챙기는 것을 돕고 있었다.
당연히 자신들은 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자신들의 장비는 챙기지 않았다.
“다니엘, 슈미츠.”
수혁이 둘을 불렀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들은, 수혁의 음성에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봤다.
“너희도 들어간다.”
둘은 멀뚱히 서서 수혁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무도 그 말을 통역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쟤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대원 한 명이 수혁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네,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안 그래도 쉽지 않은 현장인데, 저 둘을 데리고 들어갔다가 무슨 일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대원은 수혁의 말에 반대했다.
저 둘은 교육생이다.
아직 정식으로 임명된 소방관이 아니었다.
그런 이들을 저 위험한 현장에 데리고 가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다른 대원 한 명이 나서서 수혁의 편을 들어주었다.
바로 상가 화재 때 같이 투입되었던 대원이었다.
“쟤도 생각이 있겠지.”
그는 수혁의 능력을 단편적으로나마 확인한 상태였다.
인화 물질로 인해 폭발적으로 커진 화재 속에서도, 수혁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것뿐인가?
그간 현장을 수십 번 같이 누비며 수혁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인지 똑똑히 확인했다.
상황 판단과 결단력, 위기 대처 능력까지.
그 어떤 재난도 수혁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수혁이 이유 없이 교육생들을 데리고 가겠다는 말을 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선배…….”
“걱정하지 마. 저 녀석, 네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니 두 명 정도는 책임질 수 있을 거다. 그렇지?”
“물론입니다.”
수혁이 그를 향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얘기는 끝. 준비나 마저 끝내.”
대원들은 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몰라 멀뚱히 서 있던 다니엘과 슈미츠는, 수혁의 말을 전해 듣고는 눈을 부릅떴다.
“저, 저희도 들어간단 말입니까?”
다니엘의 음성이 떨려왔다.
그동안 현장 출동을 꽤 경험한지라 불에 대한 공포심은 많이 희석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대형 화재는 처음.
다시금 두려움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래, 그러니까 너희도 준비해.”
다니엘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하지만 슈미츠는 달랐다.
그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저런 대형 화재 현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드디어……!’
지금까지 출동했던 화재 현장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
저 안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두렵긴 했지만, 그만큼 기대가 되기도 했다.
슈미츠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흥분한 탓일까?
장비 착용이 평소처럼 되질 않았다.
“그냥 서 있어라.”
어느새 장비 착용을 끝낸 수혁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둘의 장비를 손수 착용시켜 주었다.
아직은 어설픈 그들과 다르게, 수혁은 너무도 능숙하게 움직였다.
수혁은 천천히 둘의 장비를 체크하며 침착한 음성으로 말했다.
“흥분하지 마라. 시야가 좁아지니까. 두려워하지도 말고. 너희가 두려워해야 할 건 불이 아니라, 요구조자를 잃는 거야.”
통역이 없었는지라, 둘은 수혁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내 곁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마. 그것만 지키면, 너희의 안전은 내가 절대적으로 보장하지.”
그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수혁은 둘의 장비 착용을 끝마쳤다.
그리고 지원 역시 도착하기 시작했다.
“모두 돌입 준비해!”
지원을 온 펌프차들이 방수를 시작했고, 절대 사그라지지 않을 것처럼 타오르던 불길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수혁을 비롯한 특수 구조대와 일반 구조대원, 그리고 다니엘과 슈미츠까지.
총 열네 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때를 기다렸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수혁과 김갑수의 눈이 동시에 반짝였다.
‘보였다!’
창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길.
열네 명의 소방관 중 오직 수혁과 김갑수만이 그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김갑수가 크게 소리쳤다.
“돌입!”
동시에 소방관들이 불을 향해 뛰어들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그들을 엄호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물줄기가 쏟아졌고, 대원들은 물을 맞으며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찜통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열기가 대원들을 압박했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방화복과 온갖 장비를 착용한 자신들도 이렇게 힘든데, 이 안에 갇혀 있는 요구조자들은 어떨지를 생각하면, 걸음을 멈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