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26화
“저 녀석들이 어떻게?”
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군데?”
박상태는 갑자기 방문한 두 명의 외국인을 보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아, 독일에서 온 연수생들이요. 지금은 실습하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네요.”
수혁이 병원에 입원하고, 다니엘과 슈미츠의 실습은 김갑수가 맡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교관이 다쳤다고 실습을 중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 지금은 근무 시간이었음에도 둘이 온 것을 보곤, 혹시 뭔가 잘못된 건 아닌지 생각되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교관님?”
슈미츠가 영어로 물었다.
당연히 수혁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옆에는 박상태가 있었다.
“너보고 괜찮으냐고 물어보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요.”
서로의 대화를 통역해 줄 사람 한 명도 없이 올 생각을 하다니.
아니, 애초에 달랑 둘이 여기까지 온 것이 신기했다.
“얘기해. 내가 통역해 줄 테니까.”
박상태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연수생을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수혁을 교관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으니, 더욱 그랬다.
“몸은 그럭저럭 버틸 만한데……. 여긴 대체 어떻게 온 건지 좀 물어봐 주시겠어요?”
수혁의 말에 박상태가 능숙한 영어로 통역해 주기 시작했다.
“팀장님이 잠시 시간을 빼주셨습니다. 한 시간 정도는 다녀와도 좋다고…….”
슈미츠가 대답했다.
“팀장님이?”
서에서 병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택시를 타면 고작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그러니 그 정도 편의를 봐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김갑수가 허락해 주었다는 게 의외였다.
‘웬만하면 퇴근 후에 가라고 했을 것 같은 양반인데.’
그러고 보니 최은송과 박상태를 제외하면, 가장 처음으로 문병을 온 사람들이었다.
“오려면 같이 오지.”
굳이 이 둘만 먼저 보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같이 오는 편이 이 둘이게도 훨씬 편하고, 대화도 용이했을 텐데 말이다.
사실 김갑수 역시 수혁의 말처럼 오늘 퇴근 후에 다 같이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슈미츠가 어제의 일 때문인지, 도무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느끼곤 시간을 빼준 것이었다.
머릿속을 조금 정리하고 오라는 의미였다.
겸사겸사 수혁이 무사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더는 걱정하지 말라는 뜻도 있었고.
그런 김갑수의 생각을 알 리가 없던 수혁은 의아할 뿐이었다.
“뭐, 어쨌든 들어와서 앉아라.”
문병을 온 사람들을 계속해서 세워둘 순 없었기에,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둘을 불렀다.
둘은 쭈뼛거리며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언제나 사람 같지도 않은 모습만 보여주었던 수혁이, 온몸을 붕대로 감은 채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몸은 좀 어떠십…….”
“그건 아까도 물어봤잖아, 슈미츠.”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하던 슈미츠가 애써 입을 뗐지만, 다니엘이 옆에서 핀잔을 주었다.
“이놈들 귀엽네.”
둘의 행동을 본 박상태가 픽- 하고 웃었다.
옛날 어리바리하던 자신의 소방 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나이로만 따지면 수혁과 별다른 차이도 없었지만, 사실 수혁은 애늙은이 같았기에 귀여운 맛이 없었다.
오랜만에 이런 햇병아리들을 보니 괜히 귀엽게만 느껴졌다.
“오늘은 별로 안 바쁜가 보지?”
“네. 어제에 비하면 오늘은 휴일 같았습니다.”
수혁의 질문에 다니엘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좀 쉴 것이지.”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소방관에겐 휴식도 중요했다.
쉴 수 있을 때 최대한 쉬어주지 않으면, 나중에 필요할 때 제힘을 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출동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휴식이 되네요.”
현장 출동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요 며칠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한 번만 나갔다 와도 녹초가 되기 일쑤였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출동하니, 과연 이 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그렇긴 하지.”
수혁 역시 동감하는 말이었다.
자신도 이전 생에서는 제발 출동 좀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했었다.
지금이야 하루에 백 번을 출동해도 지치지 않을 힘과 체력이 있지만 말이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수혁과 다니엘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슈미츠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수혁의 상태는 대충 들었다.
골절된 뼈만 열 곳이 넘는 데다, 온몸의 뼈에 모조리 금이 간 상태라고 했다.
그런데도 수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엄청날 텐데…….
슈미츠는 뼈가 부러져 본 적이 있다.
손가락 하나가 부러진 정도에 불과했지만, 당시엔 정말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아팠다.
그런데 수혁은 도대체 어떻게 저리도 편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자신이었다면 절대로 저렇게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수혁이 피식했다.
확실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의 부상이었다.
아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계속해서 진통제와 안정제를 맞고 잠에 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수혁은 ‘회복Ⅱ’ 스킬 덕분에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약간의 욱신거림이 전부였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둘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박상태야 그저 그러려니 하고 있었고.
“소방관은 부상과 평생을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수많은 소방관이 현장에서 다친다.
그리고 그중에는 수혁보다 심각한 부상을 입는 이들도 많았다.
“나만 해도 벌써 입원한 게 몇 번인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지.”
‘자랑이다, 이 새끼야.’
박상태는 수혁의 말을 통역해 주고는 속으로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당연히 죽도록 아프지.”
지금은 그리 아프지 않았지만, 수혁은 그 밑에 깔려 있을 때를 떠올리며 대답해 주었다.
“숨도 쉬기 어렵고, 온몸의 혈관은 터질 것 같았다. 몸이 으깨지는 느낌이지.”
수혁의 담담한 말에 슈미츠가 침을 삼켰다.
과장이 아닐 것이다.
슈미츠는 구조될 당시의 수혁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
당시 수혁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저히 그 몰골로 숨을 쉬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참혹하다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슈미츠 역시 수혁이 죽었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니 수혁이 느꼈을 고통이 어떨지는 굳이 설명해 줄 필요가 없었다.
“어때? 네가 생각했던 소방관의 모습과 비교하면?”
수혁이 슈미츠의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슈미츠가 고개를 숙였다.
대답 그대로였다.
모르겠다.
슈미츠가 생각했던 소방관은 슈퍼 히어로였다.
처참한 재난 현장에서, 자신을 희생해가며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슈퍼 히어로.
하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그 ‘희생’은, 수혁이 보여주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웠다.
같은 단어였지만, 무게감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직접 눈앞에서 목도하고 나니,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슈미츠의 대답을 이해했다.
대부분의 소방관이 그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자신 역시 이전 생에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가?
요구조자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 정도는 선뜻 희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두려움과 망설임 때문이었다.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생긴 망설임이 항상 발목을 잡았다.
소방관 역시 사람이었으니까.
“이게 소방관의 모습이다.”
익숙해지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외면해서도 안 된다.
소방관은 부상과 죽음의 위험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 직업이다.
이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나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혁의 말을 들은 다니엘과 슈미츠가 나름대로 생각에 잠긴 탓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은 바로 박상태였다.
“인마, 누가 들으면 모든 소방관이 다 너 같은 줄 알겠다?”
박상태는 수혁이 햇병아리들에게 너무 겁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수혁처럼 항상 부상을 달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구조 3팀에서도 병원 신세를 진 대원은, 수혁을 제외하면 둘밖에 없었다.
김강식 한 번.
박정우 한 번.
나머지는 모조리 수혁뿐이었다.
그런데 수혁의 말을 들으면 소방관은 매일 만신창이가 되는 것 같았다.
“너무 심하게 말하는 거 아니냐?”
“이 정도는 말해줘야 돼요.”
“그런 건 자기가 직접 경험하다 보면 알기 싫어도 저절로 알게 되는 건데. 굳이 지금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어?”
박상태는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 수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저도 이러고 싶진 않은데요. 그래도 해줘야 돼요.”
사실 수혁도 다른 사람, 다른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강하게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상태의 말대로 소방관 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일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말을 한 건 바로 저 둘이 독일인이었기 때문이다.
“저 믿죠?”
“내가 언제 네 말 안 믿는 거 봤냐?”
몇 번 있긴 했지만, 수혁은 그냥 넘어갔다.
“조만간 독일에서 좀 큰일이 벌어질 거 같거든요.”
“……또 감이냐?”
박상태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그냥 예언이라고 해도 돼요.”
올해 일어날 연쇄 테러.
그것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과 소방관들이 목숨을 잃는다.
수혁은 다니엘과 슈미츠가 그 희생자 중 하나가 되지 않길 바랐다.
“소방관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수혁이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다니엘과 슈미츠를 바라봤다.
며칠이 더 흐르고, 다니엘과 슈미츠가 인사를 하러 다시 방문했다.
이번에는 둘만이 아니었다.
김갑수와 함께 온 것이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둘은 수혁을 향해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현장 실습의 마지막 날.
마침내 한 달간의 연수가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둘은 독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수혁을 만나러 온 것이었다.
“그간 수고 많았다.”
수혁은 웃으며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연수 기간 중 훈련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지양호가 짠 커리큘럼을 본 수혁이 혀를 내둘렀을 정도니 말이다.
그것을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준 교육생들이 대견스러웠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만, 여기서 경험한 것들은 분명 너희가 독일에 돌아가서도 도움이 될 거다.”
특히 체력과 정신적인 한계에 부딪혔을 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한 달이란 시간 동안 그리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슈미츠는 그 이상의 것을 배웠다.
며칠 전 수혁이 이야기했던 것.
바로 희생정신.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것을 직접 본 슈미츠는 남들보다 더욱 값진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준 수혁을 진심으로 존경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뛰어난 능력을 닮고 싶은 게 아닌, 수혁과 같은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슈미츠가 다시 한 번 수혁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