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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29화 (229/425)

레스큐 시스템 229화

“……뭐하지?”

수혁이 출근하고 집에 혼자 남은 최은송은 한숨을 내쉬며 거실을 서성였다.

오늘은 수혁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는지라 딱히 다른 계획이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볼까?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친구들 역시 지금쯤이면 열심히 출근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의미 없이 거실을 돌아다니던 최은송이 소파에 털썩 앉아 TV를 틀었다.

평소에 TV를 즐겨보지 않았는지라 무엇이 재밌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던 최은송은 결국 TV를 꺼버렸다.

“청소나 할까?”

최은송이 청소기를 가져와 거실부터 청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에 청소를 잘해둔 덕분에, 집안은 너무 깨끗했다.

“그냥 정리하자.”

청소기를 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최은송은 청소를 그만두고 주방 쪽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쪽엔 할 일이 좀 있었다.

찬장 속에 있는 그릇들의 먼지를 닦아내고, 냉장고를 정리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주방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응?”

최은송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곤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냄새지?”

방금 전까진 느끼지 못했던 매캐한 냄새가 났다.

최은송은 혹시 냉장고에서 나는 냄새인가 싶어 냉장고 안을 살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별다른 냄새가 나질 않았다.

“뭐지?”

최은송은 냉장고를 닫고 집안을 살펴보았다.

왠지 익숙한 냄새였다.

꽤나 많이 맡아본…….

‘연기?’

주방에서 요리할 때 나는 연기의 냄새가 아니었다.

바로 수혁이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은근히 풍겨져 오는 화재 현장의 냄새.

그것을 깨달은 최은송이 다급하게 집안을 살펴보았다.

1층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청소를 하기 위해 돌아다녔을 때도 화재의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최은송은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2층 역시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빠르게 계단을 내려온 최은송은 지하로 내려가 보았다.

“이런…….”

매캐한 냄새를 풍기던 연기는 지하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기의 양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조금 희미하게 깔린 정도였다.

연기의 진원지 또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최은송은 잠시 고민했다.

지하로 내려가 화점을 찾아 불을 끌 것인가?

아니면 신고를 할 것인가?

고민하던 최은송은 후자를 택하기로 결정했다

괜히 나섰다가 일을 더 키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수혁 역시 이런 경우엔 신고부터 하라고 했기에, 최은송은 지체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119를 눌렀다.

* * *

“신고 들어왔다!”

박상태가 크게 소리쳤다.

“모두 출동 준비!”

박상태의 명령에 대원들이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대원들의 표정이 평소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긴장과 다급함으로 가득해야 할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던 것이다.

오직 수혁만이 긴장했는지, 잔뜩 굳어있었다.

“이놈 굳은 거 봐라.”

“진짜 출동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놈이 이럴 때 쫄아 버리네요.”

김강식과 이재한이 낄낄거리며 그런 수혁을 놀렸다.

“잡소리 하지 말고, 빨리 준비해. 저놈 똥줄 타서 죽겠다.”

박상태가 웃으며 말하자, 대원들이 빠르게 구조차에 올라탔다.

“그럼 좀 부탁한다.”

박상태가 구조 1팀 팀장에게 뒷일을 부탁했다.

“걱정하지 마쇼.”

대답한 구조 1팀 팀장은 수혁을 쳐다보며 주먹을 쥐었다.

“잘하고 와라.”

“……네.”

수혁이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출발!”

구조차가 출발했다.

“그나저나 기계가 다행히 잘 작동했나 보네.”

이재한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수혁을 향해 말했다.

“그러게요. 어제 실험해보긴 했는데 좀 불안하긴 했거든요.”

“제수씨가 눈치는 못 챘겠지?”

“눈치챘으면 신고를 안 했겠죠.”

“하긴 그렇겠네.”

수혁은 사실 대화할 정신이 없었다.

앞으로 다가올 일에 긴장이 극에 달해 손마저 떨릴 지경이었다.

‘차라리 화재 현장에 출동하는 게 낫지.’

푸켓에서 쓰나미를 마주했을 때도 이렇게 떨리진 않았던 것 같았다.

대원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구조차는 어느새 수혁의 집 근처에 다다랐다.

“다들 준비!”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원들이 구조차 밖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이윽고 차가 멈추자,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자 집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최은송이 대원들을 향해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여기예요!”

최은송은 꽤나 당황한 표정이었다.

대원들은 그런 최은송의 모습을 보고는 소리 죽여 웃었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빠르게 장비들을 챙긴 뒤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어딥니까?”

그나마 최은송과 안면을 가장 적게 마주친 박정우가 물었다.

“이쪽이요. 바로 이집 지하요!”

최은송이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대원들은 그녀의 말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집으로 들어가는 대신, 최은송의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처음 최은송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뭔가 준비한 뒤 진입하겠거니 한 것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들은 왠지 집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느새 자신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있는 그들의 모습에, 최은송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1초라도 빨리 움직여야 할 때 가만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너무도 이상했다.

“지금 뭐 하시는……?”

최은송이 그렇게 물으려던 때였다.

소방관들 중 한 명이 갑자기 앞으로 나서며 최은송의 눈앞에 섰다.

그 소방관은 최은송이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손을 내밀었다.

최은송이 흠칫하며 손을 내려다봤다.

소방관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하나 올려져 있었다.

최은송은 그것이 마치 반지 케이스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이해하진 못했다.

최은송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손을 내민 소방관이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던 면체 마스크를 벗었다.

“……어?”

소방관의 얼굴을 본 최은송이 눈을 크게 떴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사람이 서 있었던 것이다.

“수혁 씨?”

당신이 여기서 왜 나와? 라는 표정이었다.

물론 수혁이 오늘 출근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알기로 이곳은 신일서의 관할 구역이 아니었다.

아니, 그런 것은 둘째 치고.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은송이 눈만 끔뻑이고 있자, 수혁이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까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긴장이 그녀의 얼굴을 보자 거짓말처럼 진정되었다.

“은송 씨.”

수혁이 최은송을 불렀다.

익숙한 수혁의 음성에 최은송은 정신 차렸다.

“수혁 씨? 이게 무슨 일이에요?”

최은송의 물음에 수혁은 말 대신 행동으로 대답했다.

바로 손바닥 위에 있는 상자를 연 것이다.

상자 안에는 작은 반지가 하나 들어 있었다.

비싸고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수혁이 고르고 고른 반지였다.

반지를 본 최은송은 그제야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있었다.

그녀가 주위를 돌아보자, 대원들이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박상태, 김강식, 이재한, 강효상, 박정우.

모두 최은송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최은송을 보며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박상태가 말해 준 계획은 간단했다.

수혁의 집 안에 연기를 피우는 장치를 하나 설치한 뒤 출근을 한다.

그 후 타이머에 맞춰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것을 본 최은송이 신고를 하면 자신들이 가짜 출동을 해서 깜짝 이벤트를 해주는 것.

이 이벤트는 실제로 미국의 한 소방관이 했던 프러포즈로, 박상태가 뉴스에서 봤던 것이었다.

연기를 피울 수 있는 장치는 소방서 내에 훈련용으로 비치된 것이 있었기에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근무 시간에 이런 이벤트를 하는 게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기에, 박상태는 구조 1팀에 도움을 요청했다.

서로의 비번을 바꿔 구조 1팀이 대신 금일 근무를 하기로 한 것이다.

상황실의 대원들과도 이야기가 되어, 최은송에게 신고가 오면 출동 명령이 아닌 박상태에게 연락해주기로 했었다.

다행히 장치는 제대로 작동했고, 계획대로 최은송은 119에 신고를 했다.

남은 것은 수혁이 최은송에게 제대로 된 청혼을 하는 것뿐.

그리고 마침내 수혁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부터 최은송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은송 씨.”

수혁이 다시 한 번 최은송을 불렀다.

최은송의 시선이 수혁을 향했다.

그러자 수혁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평소였다면 오글거린다며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이었지만, 왠지 지금은 무릎을 꿇어야만 할 것 같았다.

아래에서 최은송을 올려다본 수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랑 결혼해줄래요?”

수혁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진 당연히 최은송이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프러포즈를 하고 나니 그녀가 거절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1초가 1시간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재난 현장 한가운데 갇혀 있는 것 같은 긴장과 불안이 수혁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최은송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럼 안 할 생각이었어요?”

최은송은 지금껏 수혁이 봐온 것 중 가장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당황했던 표정은 사라지고,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수혁 역시 웃었다.

“반지 안 끼워줘요?”

수혁이 가만히 무릎 꿇고 앉아 웃기만 하자, 최은송이 조용히 속삭였다.

그제야 ‘아차!’ 한 수혁이 상자에서 반지를 꺼냈다.

살짝 떨려오는 손으로 최은송의 왼손을 잡아 반지를 가져다댔다.

반지는 약지에 딱 들어맞았다.

차가운 반지의 감촉을 느낀 최은송이 수혁의 목을 껴안았다.

“고마워요.”

최은송은 수혁에게 고맙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더 고맙죠. 이런 놈이랑 결혼해주는데.”

수혁 역시 그런 최은송을 꼭 껴안아 주었다.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

“그래야 깜짝 이벤트죠.”

“난 그것도 모르고…….”

최은송이 한숨을 내쉬었다.

수혁에게 속았다는 느낌에 괜히 분했다.

“이제 허락만 맡으면 되겠네요.”

“허락이요?”

“아버지한테 허락 맡아야죠. 아마 쉽진 않을걸요?”

최은송이 놀리듯 말하자, 수혁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확실히 최문식에게 허락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요.”

수혁은 살짝 자신이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허락을 받아내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며 웃었다.

“잘 찍고 있냐?”

둘의 모습을 보고 있던 김강식이 박정우를 향해 물었다.

“1초도 안 빼놓고 모조리 다 찍고 있어요.”

“제대로 찍어. 이것도 나중에 다 추억이 될 테니까.”

“그래야죠. 근데 이거 혹시 유튜브에 올려도 되려나요?”

“유튜브?”

유튜브가 뭔지 잠시 생각해 본 김강식은 그것이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라는 것을 떠올리곤 고개를 갸웃했다.

“그걸 거기다 왜 올려?”

그냥 단순한 프러포즈 이벤트다.

그런 걸 누가 본다고 유튜브에 올린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혁이잖아요. 이거 조회 수 꽤 나올 것 같단 말이에요.”

‘소방서 마스코트 치즈’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박정우는 조회 수가 탐이 나는 것 같았다.

“올리려면 허락 맡고 올려라.”

“당연하죠.”

박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박정우의 스마트폰에는, 서로를 껴안은 채 미소를 짓고 있는 수혁과 최은송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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