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스큐 시스템-232화 (232/425)

레스큐 시스템 232화

강선우의 모습을 본 박상태는 확신했다.

‘뭔가 켕기는 것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업체 사장이 직접 이곳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

우연?

그럴 리가.

이 타이밍에 우연히 강선우가 이 근처를 지나다 관리인을 만나서 함께 되돌아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분명 강선우는 자신들이 점검을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수습을 하기 위함일 터.

박상태는 자신의 생각을 내색하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위에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일괄 점검하라고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아마 조만간 시 전체를 다 점검할 것 같더군요.”

박상태의 말에 강선우의 눈이 살짝 떨려왔다.

하지만 이내 신색을 회복하고는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이런 경우는 별로 없었잖아.”

“그렇긴 하죠. 그런데 요즘 화재 현장에서 소방 설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꽤 빈번하게 일어난 것 같습니다.”

박상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강선우를 살폈다.

그의 회사가 점검을 허투루 하고 점검 일지를 허위로 작성했다는 것은 이미 파악했다.

하지만 조금 더 명확한 증거가 필요했다.

이를테면…….

‘뒷돈이라던가.’

단순히 점검 일지를 허위로 작성한 것과 뒷돈을 받고 일부러 점검을 피한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그리고 박상태는 강선우가 후자를 저질렀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조금 더 확실한 증거를 잡길 바랐다.

“그래? 이거 안타까운 일이로구만.”

강선우는 혀를 차며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기 하나는 잘한단 말이지.’

그가 현역으로 뛸 때도 그랬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언제나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선배들은 그런 강선우를 좋아했지만, 사실 껄끄러워 하는 사람도 없진 않았다.

전형적으로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박상태도 있었다.

박상태는 강선우의 사람 좋은 미소에 속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이쪽은 누구? 신입?”

강선우가 수혁에게 관심을 주며 말을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김수혁이라고 합니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껏 알아챈 수혁이 강선우에게 고개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저희 팀 막내입니다. 이제 2년 차의 햇병아리죠.”

박상태의 소개에 강선우가 허허 웃었다.

“이거 반갑군. 나는 강선우라고 한다. 신일서에서 구조대원으로 일을 했었지.”

강선우는 수혁을 보며 이런 후배를 만나 반갑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선배님이셨군요.”

수혁의 고개가 다시 한 번 숙여졌다.

이전보다 더 깊게.

하지만 그런 수혁의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강선우라면 하나 방재 산업의 사장.’

박상태와의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상태야, 점검은 이쪽 녀석한테 맡기고, 우린 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나 좀 할까?”

수혁 혼자 일을 하게 두고 농땡이를 피우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죄송합니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라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가…….”

박상태는 당연하게도 강선우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거 웃기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상태가 근무 시간 중에 농땡이를?

수혁이 속으로 웃었다.

같이 일을 했다면서 박상태의 성정이 어떤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래돼서 잊어버렸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거나.

어떤 경우든 박상태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밥이나 먹으면서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선배님.”

박상태는 능청스럽게 이야기하는 강선우의 말을 끊었다.

그러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를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강선우는 갑자기 정색하는 박상태의 모습이 낯설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박상태는 구조팀의 막내로,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의 짬 차이가 나는 신입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것도 저렇게 정색을 하면서 말이다.

“허, 참.”

강선우는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곤 박상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야, 박상태. 너 사람 민망하게 왜 그러냐? 내가 뭐 거창한 걸 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얘기나 좀 하자고 한 것뿐인데. 선배를 이렇게 꼽줘도 돼?”

강선우는 옛 친분을 내세웠지만, 박상태에게 그런 것이 통할 리가 없었다.

“공무 수행 중입니다. 아무리 선배님이라고 해도 그것을 방해하실 순 없습니다.”

차갑게 말을 하는 박상태의 모습은 무서웠다.

작지만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묘한 압박감에 강선우가 결국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아, 새끼. X나 빡빡하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인 강선우는 좋은 사람의 가면을 집어 던지고는 본색을 드러냈다.

“그래, 어디 한번 해 봐라. 공무 수행.”

박상태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을 하는 강선우를 잠시 쳐다보다 옆에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는 관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점검 일지는 어디 있습니까?”

“그게…….”

관리인이 강선우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강선우가 나서서 해결하겠다고 큰소리를 친 것 같았다.

그런데 상황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점검 일지 어디 있냐고 물었습니다.”

“야, 여기 있다!”

관리인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강선우를 쳐다보자, 강선우는 혀를 차며 품에서 파일철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수혁에게 던졌다.

감정이 실렸는지 꽤나 빠른 속도였지만, 수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러곤 펼쳤다.

‘정상, 정상, 정상, 정상…….’

모든 항목은 정상 작동한다고 표시가 되어 있었다.

이것만 보면 이 건물은 안전 그 자체였다.

설사 실수로 화재가 발생한다고 해도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며 인명 피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과연 그럴까?’

수혁도 이 점검 일지를 믿고 싶었지만, 전날 확인했던 건물들의 상태가 너무도 처참했다.

“점검일은 한 달 전, 이상은 없다고 되어 있군요.”

수혁이 일지를 확인하며 말을 하자 관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수혁이 점검 일지를 덮었다.

죄다 정상으로 되어 있었으니, 더는 볼 필요도 없었다.

이젠 진짜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그럼 안 좀 살펴보겠습니다.”

수혁이 박상태에게 눈짓을 하고는 건물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쯧.’

아직 안쪽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건만, 수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겉으로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관리가 엉망이군.’

건물 자체가 엉망이었다.

건물 자체에 대한 유지 보수가 되어있지 않은데, 소방 시설이 제대로 점검되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수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한 대로였던 것이다.

‘위기감지Ⅲ’를 발동한 수혁의 눈에 위험 요소가 가득했다.

어제 봤던 것들과 동일한 위험 요소.

평상시에는 별문제가 없겠지만, 화재가 일어난다면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할 요소들이었다.

대충 눈에 보이는 것만 세어 보아도 양 손가락으로 모자랐다.

“이것 참…….”

지금까지 점검한 건물 중 단연 최악이었다.

건물 자체가 오래되긴 했지만, 이토록 관리가 안 되어 있으니…….

만약 화재가 일어난다면 엄청난 인명 피해가 일어날 것이다.

수혁은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점검을 시작했다.

‘위기감지Ⅲ’로 이미 간파가 끝난 상황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건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너 왜 그러냐?”

밖에서는 박상태와 강선우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가 말입니까?”

“뭐긴 뭐야. 지금 이 상황 말하는 거지.”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냥 공무 수행 중일 뿐입니다만.”

“하, 이 새끼…….”

강선우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무언가 조급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팀장 달더니 이제 선배고 뭐고 뵈는 것도 없냐?”

“그런 얘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상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굳이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상대도 아니었고.

“너, 내가 소방 시설 점검 업체 사장이라는 거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거기서 이 건물 점검하고 있다는 것도?”

박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강선우는 더욱 인상을 썼다.

“인마, 그럼 이딴 식으로 하면 안 되지!”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가 맡은 건물의 점검을 너희가 또 하는 게 말이 돼?”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박상태는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러니까!”

강선우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박상태를 보며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그러곤 주위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조용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관례 몰라? 관례. 원래 이런 상황에선 대충 눈 감고 돌아가는 게 관례야, 이 새끼야.”

무슨 그딴 거지 같은 관례가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무도 간섭을 안 했는데. 넌 왜 이 지랄이야?”

박상태는 강선우의 말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선배 업체가 점검을 맡은 곳은 그냥 넘어갔단 말입니까? 그게 관례고?”

“그렇지!”

강선우는 이제야 박상태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다며 좋아했다.

“네 선배들도 그렇게 했다.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 정년까지 소방관 짓 하다가 은퇴하면 남는 게 뭐냐? 쥐꼬리만 한 연금? 요즘 세상에 그거 가지고 생활이 돼?”

강선우는 마치 박상태에게 조언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서로 이렇게 상부상조하는 거야. 너희는 일감 줄어서 좋고, 나는 돈 벌어서 좋고.”

박상태는 그런 강선우의 말을 가만히 듣기만 하고 있었다.

사실 그의 말이 아주 조금 공감은 갔다.

소방관 은퇴 후에 남는 게 무엇인가?

물론 연금이 있다.

평생을 사람들을 구하며 살아왔다는 명예도 있을 것이고.

‘그리고 질병도 있겠지.’

대부분의 소방관은 질병 한두 개쯤은 몸에 달고 다닌다.

재난 현장에서 연기를 들이마시고, 온몸을 내던지는데 병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은퇴 후 받는 연금은 대부분 병원비로 빠져나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솔직히 소방관의 연봉과 연금이 적다고는 말할 수 없다.

위험한 일인 만큼 수당도 많이 붙으니 평범한 공무원보다는 훨씬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소방관이 하는 일을 보상할 수 있을 정도의 가치라고 묻는다면?

박상태는 단연코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었다.

그러니 강선우의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보상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지.’

돈? 좋다.

보상? 역시 좋다.

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절대로 잘못된 행동이었다.

그때 마침 수혁이 건물 안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어떠냐?”

박상태가 물었다.

그러자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엉망입니다.”

수혁의 대답을 들은 박상태의 시선이 강선우를 향했다.

“이런 X새끼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