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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37화 (237/425)

레스큐 시스템 237화

‘이건 또 무슨 일이래?’

수혁은 전화를 끊자마자 머리를 긁적였다.

일이 공교롭게 됐다.

사실 수혁은 특수 구조대의 전승철, 김갑수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둘의 직책은 고작 팀장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특수 구조대의 팀장이었다.

엘리트 중 엘리트란 뜻.

자신들의 힘은 약할지 몰라도, 그들이 선을 대고 있는 이들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들의 힘을 이용하면 일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애의 전화를 받은 수혁은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확실히 언론을 이용하는 것이 좋긴 한데…….’

수혁 역시 언론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상태가 이야기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방법을 쓸 요량이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꼬리만 자르고 도망갈 가능성이 컸으니 말이다.

‘이왕 건드리는 거, 아주 대놓고 찔러 버리는 게 낫지.’

시청자들이 직접 이 사태를 목도하게 만드는 것.

그러면 단순히 뉴스에 보도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이슈를 만들어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시애의 부탁을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받아들였다.

정확히 어떤 플롯의 예능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지만, 자신을 섭외한 것을 보면 소방관 일이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누구 전화야?”

그때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상태가 물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생각에 잠겨 있는 수혁이 이상하게 보였던 것이다.

“아, 전에 라오스에서 제가 구했던 걸 그룹 있잖아요.”

“그 버블걸스인지 마블걸스인지 하는 애들 말이지?”

“네. 오랜만에 연락을 해줬네요.”

“무슨 일인데?”

“혹시 예능 한 번 출연해 줄 수 있냐고요.”

예능이라는 말에 박상태의 눈이 반짝였다.

“너 또 예능 출연하려고?”

수혁이 TV에 출연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수혁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때보다 관심이 식은 것도 사실이었다.

“인기가 그립냐?”

박상태가 실실 웃으며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수혁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럼 뭔데? 방송이라면 학을 떼더니 갑자기 예능에 나간다는 이유가. 그 아이돌이 부탁해서 그런 거란 웃기는 이유는 대지 말고.”

박상태는 수혁이 예능에 출연하기로 한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아는 수혁은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조금 더 확실해지면.”

오늘 저녁에 시애와 만나 어떤 예능인지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박상태에게는 그 이후에 가르쳐주기로 했다.

‘혹시 모르니 다른 계획도 생각을 좀 해두고.’

아예 뜬금없는 플롯이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었기에, 수혁은 만약을 대비해 전승철과 김갑수에게도 연락해 두기로 했다.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긴 수혁을 보며, 박상태가 눈살을 찌푸렸다.

“좀 먼저 얘기해 주면 어디가 덧나냐. 망할 새끼.”

그저 몰래 욕을 하는 것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 * *

“오빠! 여기요!”

카페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음성.

“조용히 좀 불러. 여기에 너 있다고 광고라도 할 셈이야?”

수혁이 황급히 다가와 시애에게 속삭였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인기가 하늘을 높은지 모르고 치솟아 오르고 있는 시애였다.

이런 곳에서 정체를 들켰다간 미팅이고 뭐고, 도망쳐야 할지도 몰랐다.

“아하하.”

수혁이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대며 말을 하자, 시애가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죄송해요.”

시애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그녀를 알아본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한바탕 난리가 날 뻔했다.

“언니는요?”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한 최은송이 보이지 않자, 시애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어보았다.

“조금 이따 올 거야. 오늘 일이 바쁜지 퇴근이 좀 늦어진다고 하더라고.”

“그렇구나.”

시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냥요. 오랜만에 보니까 반가워서?”

시애가 히히- 하며 웃었다.

“아참, 그리고 오늘 PD님도 잠깐 오시기로 했어요.”

“PD님이?”

“아무래도 제가 설명하는 것보단 직접 하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확실히 출연자인 시애보다는 기획자가 직접 설명해 주는 것이 더 정확했다.

“언제쯤 오신다는데?”

수혁이 물었다.

“자료 준비가 조금 늦어져서, 지금 오고 계시대요.”

“그래?”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하고 있다 최은송이 오면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면 될 것 같았다.

“오빠, 뭐 마실래요?”

“내가 살게.”

“무슨! 오빠한텐 커피가 아니라 카페를 통째로 사드려도 되거든요? 저 요즘 돈 엄청 잘 벌어요!”

확실히 그녀의 수입은 수혁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많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 그래.”

수혁은 그녀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는 오버지만, 커피 한 잔 정도야…….

시애는 수혁의 음료를 주문하고는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언니랑 결혼은 언제예요?”

“아직 날은 안 잡았어.”

“청첩장 나오면 줄 거죠?”

“당연하지.”

시애는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 건지,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처음에는 그런 시애를 귀엽게 보고 있던 수혁이 슬슬 지쳐갈 때쯤.

누군가 수혁에게 다가와 아는 척을 했다.

“김수혁 씨.”

웬 시커먼 남자가 인사하자 수혁이 누구냐는 듯 쳐다봤다.

“어? PD님. 언제 오셨어요?”

시애가 나서서 남자의 정체를 이야기해 주었다.

“반갑습니다. 김수혁입니다.”

“저야말로……. 이기석이라고 합니다.”

이기석 PD는 나름 이쪽 바닥에서는 유명한 인사였다.

꽤나 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으로 이끈 전적이 있었고, 얼마 전 새로운 예능을 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이기석 PD는 뭐가 그리 급한지, 인사가 끝나자마자 음료도 주문하지 않고 자신이 준비한 자료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게 현재 진행 중인 기획입니다.”

수혁은 이기석 PD가 내민 서류들을 집어 들어 확인했다.

[타인의 삶.]

예능의 제목치고는 꽤나 진지해 보였다.

“이번 주에 10화를 맞이한 프로그램입니다.”

이기석 PD의 설명이었다.

들어본 적이 없다 했더니,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직업 체험 예능이라고 볼 수 있죠.”

“아하.”

예전부터 이런 식의 예능은 몇 가지가 있었다.

주방에서 요리한다던가, 경찰이 된다던가 하는.

그런 종류의 예능인 것 같았다.

“매 에피소드마다 게스트를 초대해 새로운 직업을 체험하는 것이 큰 줄기입니다.”

“그럼 저를 원하셨다는 건…….”

“예. 이번엔 소방관 체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상대로였다.

이기석 PD는 자신들이 준비한 기획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며, 어떤 장면을 연출하고 싶은지.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열과 성을 다해, 1초도 쉬지도 않고 말이다.

하지만 설명이 계속될수록 수혁의 눈살이 조금씩 찌푸려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수혁이 계획했던 일에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예능은 없었다.

소방관의 생활을 경험시켜 주며,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방관 체험을 한다는 것이 내키질 않았다.

다큐멘터리 촬영 때가 떠올랐던 것이다.

당시에는 제작진의 실수로 인해 박정우가 큰 부상을 입었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수혁이 내키지 않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이기석 PD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수혁 씨가 고민하시는 이유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전의 일 때문이겠죠?”

같은 방송가 사람이라 그런가, 그는 그때의 일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촬영 전에 제작진들에게 충분히 숙지를 시킬 테니 말입니다.”

“……그때도 그렇게 말을 하긴 했었습니다만.”

“절대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이기석 PD는 필사적이었다.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이번 프로그램의 성적은 사실 그리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내용의 예능들이 이미 몇 번 있었던 데다, 자신만의 특색을 보여주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가 욕만 얻어먹고 있었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제작진은 버블걸스라는 대형 게스트를 섭외했다.

그리고 버블걸스와 인연이 있는 수혁도 섭외해 소방관 특집을 준비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사활을 건 기획.

만약 수혁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기획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엎을 수밖에 없었다.

“부탁드립니다.”

이기석 PD가 수혁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아니, 이러실 필요까진…….”

그 모습에 수혁이 당황했다.

“오빠, 저도 부탁드려요.”

옆에서 시애까지 나서자, 수혁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기회이긴 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기석 PD를 잠시 쳐다본 수혁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불안하긴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기엔 너무 아쉬웠다.

‘내가 좀 더 주의를 기울이면 되겠지.’

그때와는 스킬의 레벨도, 신체 능력도 훨씬 높아졌다.

제작진이 조심하고 수혁이 신경을 더 쓴다면, 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수혁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기석 PD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먼저 위쪽에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장 큰 문제는 수혁의 섭외 여부였다.

그 외의 촬영 허가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소방청에서는 이런 종류의 촬영을 반길 것이 분명했다.

TV에 노출이 되면 될수록, 소방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테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언제부터 촬영이 시작되는 겁니까?”

“일단 허가가 떨어진다고 가정하면, 바로 다음 주부터 촬영이 시작될 겁니다.”

“그렇게나 빨리……?”

수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무슨 촬영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한단 말인가?

“대부분의 기획은 이미 짜여 있으니까요. 게다가…….”

그가 시애를 쳐다보았다.

버블걸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녀들의 스케줄이 다음 주밖에 되지 않았다.

이기석 PD의 시선을 본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제가 따로 준비해야 할 일은 없습니까?”

신일서의 다른 대원들과 다르게 수혁은 게스트와 같은 위치였다.

분량도 훨씬 많았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거의 준 연예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랬기에 미리 섭외 요청을 한 것이었고 말이다.

“수혁 씨가 따로 준비하실 것은 없습니다. 준비는 저희가 모두 알아서 하겠습니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다 해준다는데 굳이 나서서 뭔가를 할 이유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며칠 후에 다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신일서 내부의 모습과 사전준비를 위한 약속을 정하고는 이기석 PD는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정신없는 사람이구만.”

용건이 끝나자마자 돌아가 버린 그를 보며 수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바쁜가 봐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다음 주부터 바로 촬영을 시작하려면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테니까.

“오빠, 고마워요.”

시애가 웃으며 수혁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네 부탁 때문에 하는 거 아니야. 나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거지.”

수혁의 말을 들은 시애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이유요?”

시애가 묻자 수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 높으신 양반들 엿 좀 먹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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