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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45화 (245/425)

레스큐 시스템 245화

‘입이 방정이지!’

수혁은 자신의 입을 원망했다.

이 정도로 타이밍이 좋으면, 왠지 자신이 화재를 입에 올려서 벌어진 것만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찝찝함을 털어낼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럴 시간에 달려야만 했으니까.

“뛰어요!”

수혁이 김예슬을 향해 소리쳤다.

김예슬은 그래도 어제 하루 경험해 본 덕분인지, 망설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타!”

구조차에는 이미 다른 대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수혁은 김예슬을 데리고 구조차에 빠르게 탑승했다.

“방화복 입으세요.”

수혁이 김예슬을 챙겼다.

“다리 넣은 뒤에 멜빵끈 조여야 해요.”

김예슬의 행동은 느렸다.

당연했다.

그녀는 제대로 된 훈련도 받아본 적 없는 일반인인 데다, 체력과 근력도 매우 부족했으니까.

때문에 수혁은 다급해하지 않고 차근차근 김예슬을 지도했다.

그런 둘의 모습을 VJ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에 담았다.

젊은 남녀가 함께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은 꽤나 보기 좋았던 것이다.

물론 수혁이 선남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김예슬이 선녀였으니 얼추 그림이 나왔다.

그사이 상황실과 연락을 마친 박상태가 상황을 브리핑해 주기 시작했다.

“지하상가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아직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연기 때문에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꽤 있는 듯하고.”

“몇 명인지는 파악됐습니까?”

“최소한 열 명. 하지만 정확한 건 모른다.”

지하상가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당연히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구조 3팀은 별다른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수혁이 있었으니까.

“오늘도 잘 부탁한다, 수혁 레이더.”

“……그건 또 무슨 별명이에요?”

“레이더 뺨치잖아, 너.”

어찌 그렇게 정확하게 요구조자가 있는 장소를 콕콕 찍는 것인지…….

수혁만 있다면 요구조자를 발견하지 못해 잘못될 일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 왔다.

“도착하면 수혁이는 요구조자 파악하고, 나머지는 장비 챙겨서 돌입 준비해. 화재는 그리 심하지 않다니까 바로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구조차 안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대원들은 수도 없이 많이 경험하는 화재였지만,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질 않는 것이 현장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김예슬과 박동석도 있다.

안전을 위해 현장 내부로는 데리고 들어가지는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럼에도 긴장됐다.

‘카메라 때문인가?’

대원들은 평소와 달리, 부담감이 느껴지자 몸을 풀기 시작했다.

사소한 부분 하나 때문에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기에, 몸을 푸는 대원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김예슬 역시 대원들의 모습에 덩달아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긴장은 하지 마시고.”

김예슬에게 방화복을 입혀준 수혁은, 순식간에 자신의 장비를 착용하고는 김예슬에게 말을 걸었다.

“벌써 다 입으셨어요?”

김예슬이 깜짝 놀랐다.

자신이 방화복을 입는데 걸린 시간의 절반도 걸리지 않았다.

‘아니, 절반이 뭐야? 1/3도 안 걸린 거 같은데?’

대체 어떻게 저리도 행동이 빠른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긴장하면 몸이 굳어요. 그리고 몸이 굳으면 다칠 위험도 커지죠.”

수혁은 마치 요구조자를 대하듯, 낮고 안정적인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 덕분일까?

딱딱하게 굳어졌던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풀어지는 게 보였다.

“화재 현장은 항상 이렇게 긴장이 되나요?”

어제도 긴장이 되긴 했다.

하지만 단순 구조와 화재 현장 구조는 듣는 것만으로도 무게감이 달랐다.

“뭐, 어떤 현장이든 긴장되긴 마찬가지죠.”

이번 생에는 사람 같지도 않은 능력을 얻어 긴장감이 많이 줄었지만, 이전 생에서는 10년이 흘러도 언제나 긴장이 되었다.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화재라고 하면 조금 더 긴장되긴 합니다.”

수혁은 김예슬의 말에 동의해 주었다.

확실히 화재 현장이 주는 압박감은, 여타 현장에 비해 더 긴장이 되었다.

무거운 장비.

제한된 시야.

뜨거운 열기.

긴장이 되는 이유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촉박한 시간 때문에 요구조자를 잃을 수도 있다는 초조함이었다.

화재 시 발생하는 연기를 한 모금만 잘못 마셔도, 요구조자는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화재 현장에서의 구조는, 그 어느 곳보다 신속하게 이루어져야만 했다.

“예슬 씨와 동석 씨는 안까지 들어가진 않을 테니까,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혁은 안심하라는 듯 김예슬에게 웃어 보였다.

화재 현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김예슬은 긴장을 완전히 놓을 수 있었다.

“그럼 저희는 뭐하면 됩니까?”

박동석 역시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가, 수혁의 말에 내심 안도하며 물었다.

“여러분은 일단 밖에서 대기하시다가, 여기 팀장님의 지시를 따르시면 될 겁니다.”

수혁의 말에 박상태가 뒤를 돌아봤다.

“자세한 건 상황을 봐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상태는 밖에서 현장 지휘를 하며 출연자 두 명을 데리고 있기로 했다.

“도착했습니다.”

이윽고 구조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화재가 일어난 곳은 박상태에게 들은 것처럼 지하상가 내부였다.

불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검은 연기가 계단을 통해 밖으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준비해.”

수혁은 구조차에서 하차하는 것과 동시에 ‘생명감지Ⅲ’를 사용했다.

‘음…….’

생각보단 요구조자의 숫자가 많지는 않았다.

‘열네 명인가?’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때 탈출을 한 것 같았다.

박상태가 이야기한 최소보다 네 명이 많긴 했지만, 이 정도라면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다.

“열다섯 명 정도 되는 것 같네요.”

수혁이 박상태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너무 정확하게 숫자를 맞추면 이상하니, 일부러 한 명이 더 많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좋아. 숫자에 맞춰서 보조 마스크 챙기고, 곧바로 들어갈 준비해.”

“네.”

수혁은 박정우와 함께 보조 마스크를 챙겼다.

“조심하세요.”

모든 준비가 끝나자, 김예슬이 대원들을 향해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건넸다.

화재가 심하지 않다고 들었는데, 연기를 보니 왠지 심각해 보였던 것이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대답한 것은 박정우였다.

박정우는 왠지 모르게 비장한 표정으로 김예슬을 바라보며 무거운 음성으로 대답을 했다.

“영화 찍냐?”

이재한이 지나가며 그런 박정우의 뒤통수를 한 대 쳤다.

“아, 진짜!”

“개폼 잡을 시간에 장비 체크나 한 번 더 해, 인마.”

이재한과 박정우가 티격대는 모습에 김예슬이 픽- 하고 웃었다.

저렇게 장난치는 것을 보니, 정말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럼 예슬 씨,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리고 계십쇼. 후딱 다녀오겠습니다.”

이재한은 김예슬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 후, 박정우의 머리를 잡고 현장 쪽으로 끌고 갔다.

“진짜 괜찮은 것 맞죠?”

김예슬이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수혁에게 물었다.

“네, 뭐. 재한 선배 말대로 그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세요.”

수혁은 그녀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여 주고는, 이재한과 박정우의 뒤를 따랐다.

“이걸 안에서 못 찍는 게 아쉽네요.”

김예슬의 곁에 있던 VJ가 입맛을 다셨다.

“어쩔 수 없잖아요. 어차피 들어가도 아무것도 안 보일 거라는데.”

“그럴 거 같긴 하네요.”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오는 것을 보니,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아무리 방화복과 마스크를 쓴다고 해도, 안에 들어가면 한 발자국도 제대로 옮기지 못할 것만 같았다.

“장비들 착용하고 카메라까지 들면 탈진할 걸요?”

VJ는 장비들이 얼마나 무거운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다.

김예슬은 경험자 특유의 여유를 부리며 VJ에게 아는 척을 했다.

“그렇게 무거워요?”

“어어엄청요.”

과장된 모습으로 무게를 강조하는 김예슬의 모습에, VJ는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진입합니다.”

선두에 있던 김강식이 무전기로 박상태에게 보고했다.

그러곤 대원들과 함께 천천히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어두우니까 다들 발 조심해.”

연기로 인해 시야는 거의 확보가 되지 않는 상태였다.

랜턴을 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조심스럽게 눈앞을 확인하며 천천히 전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화재에 비해 연기가 너무 심한데.”

“상가다 보니, 아무래도 비닐이나 유기 화학 제품들이 많겠죠.”

그런 것들에 불이 붙으면, 연기가 심하게 발생한다.

거기다 유독성도 강했고.

“조금 서둘러야 하겠는데.”

이 연기는 요구조자들에게 심각할 정도로 해롭다.

연기를 마시기 전에 구조해야만 했다.

“흩어진다.”

이 지하상가는 신일서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덕분에 구조는 눈을 감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숙지해 둔 상태.

김강식은 모여서 수색하기보단, 흩어지기로 결정했다.

“화재 진압대 들어오기 전에 최소한 절반은 구한다.”

김강식은 대원들의 속도를 내기 위해 목표를 설정했다.

구조대와는 달리 화재 진압대는 준비할 것이 많았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몇 분 차이는 나지 않는다.

김강식은 그 몇 분 안으로 요구조자들을 찾으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그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흩어져.”

김강식의 말에 수혁이 가장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가라고 했……!”

김강식은 수혁을 보며 소리를 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알아서 잘하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혁이었다.

김강식은 수혁이라면,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눈을 감고 달릴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수혁은 ‘미니 맵’에 의지한 채로 이동하고 있었으니까.

요구조자가 가장 많이 있는 방향을 선택한 수혁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달렸다.

10초.

수혁이 첫 번째 요구조자 집단을 발견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요구조자들이 모여 있는 곳은 화장실이었다.

그들은 연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화장실 문틈을 옷으로 틀어막고 있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두려움에 떨고 있던 요구조자들이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구조대입니다.”

수혁은 놀란 요구조자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는, 지체하지 않고 보조 마스크를 꺼냈다.

‘네 명.’

마스크를 꺼낸 수혁은 요구조자들이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것들을 씌웠다.

평소였다면 안심을 시키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모두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했는지 체크한 수혁이 몸을 돌렸다.

“저를 따라오세요.”

남은 요구조자는 열 명.

화재 진압대가 투입되기 전까지 절반을 구하자고 했던가?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수혁은 그전에 모두를 구조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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