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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53화 (253/425)

레스큐 시스템 253화

수혁은 자신의 주변에 서 있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수혁을 포함해 총 열여섯 명.

가벼운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이들은, 오늘 있을 테스트에 참가하는 구조대원들이었다.

수혁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젊은 대원부터 박상태나 김강식 정도로 보이는 베테랑까지.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와우.’

수혁은 그들을 보며 감탄했다.

단 한 명도 얕잡아볼 만한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대단한 육체를 소유하고 있었고,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특구에 지원했겠지.’

실력도 없이 자신만 있는 사람이었다면, 서류 심사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혁이 감탄한 얼굴로 그들을 관찰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혹시 김수혁 씨 아니십니까?”

180㎝는 훌쩍 넘어 보이는 키에, 옷으로 가려졌음에도 느껴지는 단단한 육체.

수혁을 제외하면 이곳에 모여 있는 지원자 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얼굴 가득 호감을 품은 채로 수혁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아, 네. 그렇습니다만.”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지원하셨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여기서 정말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마치 연예인이라도 본 것처럼 들뜬 음성으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무슨 팬도 아니고…….’

수혁이 당황해하는데, 그가 손을 내밀었다.

“팬입니다.”

팬이었다.

손민준.

29세.

경기도 부천에 있는 소방서에서 근무 중인 구조대원이며, 특채 출신.

대충 요약하자면 이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소개를 한 손민준은 계속해서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수혁을 쳐다봤다.

수혁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처음 수혁 씨를 알게 된 건 바로 푸켓 쓰나미 때문이었습니다.”

“아…….”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다.

엄청난 피해를 입힌 쓰나미 자체도 큰 이슈였지만, 그 현장에 한국인 구조대원이 있었으니 언론에서 가만둘 리가 없었다.

거기다 BBC에서도 수혁을 영웅이라며 치켜세워 주는 바람에 더욱 그랬고.

“그때 백 명을 구하셨다죠?”

정확히 말하자면 그보다 훨씬 많이 구했지만, 굳이 정정해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비슷합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수혁은 점점 더 부담스러워졌다.

손민준뿐만 아니라, 다른 지원자들의 시선이 조금씩 이쪽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들 중에도 수혁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늘어나고 있었다.

수혁은 한숨을 내쉬며 끊임없이 수다를 이어가는 손민준의 입을 막았다.

“잠시, 잠시만요.”

손민준이 말을 멈추며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중에 이야기해도 될까요? 테스트 전이라 모두 예민하실 텐데, 방해하고 싶지 않거든요.”

수혁의 말에 손민준이 ‘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 것을 확인하곤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수혁을 만나 들뜨는 바람에 생각이 짧았다.

손민준은 지원자들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수혁에게 조용하게 속삭였다.

“그럼 테스트 끝나고 잠시 시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수혁은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설마하니 테스트가 끝나고 지친 와중에 자신을 찾겠나 싶었던 것이다.

손민준은 희희낙락하며 되돌아갔다.

테스트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친 느낌이었다.

“지금부터 체력 테스트를 실시하겠습니다.”

수혁이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진행을 맡은 공무원 한 명이 나와 테스트의 시작을 알렸다.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테스트는 조를 나누지 않고 한 번에 다 같이 진행이 되었다.

‘배근력부터인가?’

배근력의 ‘배’는 복부를 뜻하는 것이 아닌, ‘등 배’를 뜻한다.

등의 근력을 이용해 바를 수직으로 들어올려 기록을 측정하는 종목.

소방 공무원 체력 시험 기준 배근력의 만점은 206㎏이었다.

수혁의 순서는 정확히 중간인 여덟 번째.

수혁은 뒤쪽에 서서 테스트를 지켜보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220㎏!”

첫 번째 지원자부터 그 만점 기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하지만 그것에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저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뜻인가 본데.’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점 기준이 206㎏이지만, 사실 훈련을 좀 하기만 하면 그것을 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220㎏은 절대 쉬운 기록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다들 자신 있는 표정을 보아하니, 괜히 특수 구조대에 지원한 것은 아닌 듯했다.

‘다들 그만큼 자신이 있겠지.’

그 이후로도 테스트는 계속 진행됐다.

대부분은 첫 번째 지원자와 비슷한 기록이 나왔다.

그리고 수혁의 전번 순서인 일곱 번째 지원자가 앞으로 나왔다.

“응?”

손민준이었다.

그는 측정자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손잡이를 잡았다.

“시작하세요.”

“흐읍!”

완벽한 자세.

수혁이 감탄할 정도로 완벽 그 자체였다.

“238㎏!”

첫 번째 지원자보다 무려 18㎏이나 높은 기록이 나왔다.

지금까지 중에 압도적인 1등이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천의 자랑, 손민준! 대단하다!”

“역시 우리 막내!”

응원을 온 사람들 쪽에서 커다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손민준의 동료들인 것 같았다.

‘…안 부끄럽나?’

부끄러울 만도 한데, 오히려 손민준은 그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위협적인 육체와는 반대로 너무 순박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수혁도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다음 지원자 나오세요.”

이제 수혁의 차례였다.

‘어떻게 할까…….’

특수 구조대에 들어가려면 일단 1등은 해야 한다.

본래 수혁이 배근력에서 목표로 했던 기록은 235kg.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1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손민준이 튀어나와 그것을 넘어버렸다.

그래서 고민이 되었다.

혹시나 손민준보다 더한 사람이 튀어나와 자신의 기록을 깨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압도적인 기록을 세워야 하려나.’

그 어떤 변수가 나와도 불안하지 않도록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너무 집중을 받을 텐데.’

손민준의 기록을 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기록을 세우면 분명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나올 가능성이 컸다.

수혁이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도중, 측정자가 말했다.

“시작하세요.”

그 말에 수혁이 반사적으로 손잡이를 잡고 위로 들어올렸다.

쑤욱-

바가 너무도 쉽게 들어올려졌다.

‘아차!’

수혁이 속으로 깜짝 놀라며 힘을 풀었다.

고민하다 아무 생각 없이 힘을 주었던 것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그땐 이미 너무 늦었다.

“3, 392㎏!”

손민준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그때는 놀랍다는 듯 웅성거렸다면, 지금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말이 안 되는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고장 난 거 아니야?”

“그, 그렇겠지?”

392㎏이라니.

지원자들 평균보다 150㎏이 넘는 기록이었다.

당연히 기기의 고장을 의심하는 쪽이 훨씬 논리적이었다.

‘이런.’

수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측정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기기를 살폈다.

정말로 고장이 난 건 아닌지 점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확인한다고 해서, 나지도 않은 고장을 발견할 리가 없었다.

“이상하네.”

측정자가 자신의 상급자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하냐는 눈빛이었다.

기기가 고장이 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믿기엔 너무도 말이 안 되는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재측정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상급자가 수혁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그것은 수혁 역시 바라던 바였다.

“그러시죠. 기기가 잠깐 오작동을 했나 보네요.”

수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이게 원래 잘 고장이 안 나는데…….”

그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럼 재측정 하도록 하겠습니다.”

수혁이 다시 손잡이를 잡고 섰다.

‘살살, 살살.’

수혁은 잡생각을 떨쳐 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시작하세요.”

측정관의 말에 수혁이 바를 들어올렸다.

이번에도 쉽게 끌어 올려졌다.

하지만 수혁은 이번엔 힘에 한계를 두었다.

측정기의 숫자가 가파르게 올라갔다.

220, 225, 230…….

그리고 245㎏.

수혁은 거기서 멈추었다.

“245㎏!”

이번에도 측정관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달랐다.

그래도 이번 기록은 납득이 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와, 미쳤네.”

“난 저런 기록 본 적도 없다.”

“밥 먹고 운동만 했나?”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운동선수들이라면 모를까, 소방관 체력 테스트에서 240㎏이 넘는 기록이 나오다니.

수혁의 기록을 본 지원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너무 큰 차이를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역전을 허락하지 않는 압도적인 기록.

수혁은 만족했다.

“이야, 진짜 대단하시네요.”

자리로 돌아가는 수혁에게 손민준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자신의 기록이 깨졌다는 것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최강 소방관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셨다더니, 역시 장난 아니십니다.”

혹시나 비꼬는 건 아닌지 확인해 봤지만, 그런 것은 아닌 듯했다.

손민준은 정말로 수혁의 기록에 감탄하고 있었다.

‘괜찮은 사람이네.’

이런 기록을 다투는 장소에서 수혁은 여러 사람을 만나봤다.

그리고 항상 수혁을 질투하며 아니꼽게 보는 사람들을 만나왔다.

하지만 손민준은 그런 사람들과는 달랐다.

수혁은 그런 손민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없었더라면 이 사람이 특구에 합격했겠지.’

배근력 테스트 하나만 했을 뿐인데, 수혁은 손민준이 이곳에 있는 그 어떤 지원자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왠지 조금 미안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져줄 수는 없었다.

이번 특수 구조대 채용에 지원하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거듭했고, 그 결과 들어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손민준 씨라고 했었죠?”

손민준은 수혁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자 활짝 웃었다.

“그렇습니다, 하하!”

순박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수혁 역시 미소를 지었다.

“민준 씨도 대단하시던데.”

빈말이 아니었다.

수혁의 칭찬에 손민준이 부끄러운 듯 몸을 배배 꼬았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면도 있었다.

“오늘 테스트, 서로 잘해봅시다.”

수혁이 손을 내밀었다.

아까도 악수하긴 했지만, 그땐 그저 형식적인 인사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수혁은 왠지 손민준이 마음에 들었고, 그와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수혁의 손을 본 손민준이 씨익- 웃으며 마주 잡았다.

“특구에 들어가는 건 수혁 씨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손민준의 손바닥은 딱딱했다.

엄청나게 단련이 된 손이었다.

‘언젠간 같이 일을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수혁은 왠지 손민준과 함께 사람을 구하는 날이 올 것만 같았다.

그게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리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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