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56화
떨렸다.
한여름에도 흘리지 않던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솔직히 이렇게 긴장되고 떨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차라리 불길 앞에 도끼 한 자루만 들고 서 있는 게 훨씬 더 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 긴장되냐?”
옆에서 김강식과 이재한이 낄낄거리며 놀렸다.
“아, 정신 사나우니까 저리 가요.”
수혁이 인상을 쓰며 둘을 노려봤다.
하지만 둘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낯선 수혁의 모습에 더욱 신이 난 표정이었다.
“가긴 어딜 가, 인마. 이런 구경을 언제 또 할 수 있다고.”
“그럼. 내 평생에 이놈이 저런 표정을 짓는 걸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두 아저씨의 진상에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에라도 턱시도를 벗어 던지고 둘의 목이라도 조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야! 김수혁!”
수혁의 몇 안 되는 하객 중 한 명이 온 것이었다.
“어, 어. 왔어?”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수혁의 친구인 고승우였다.
미래에 대머리가 될 예정인…….
‘아직은 괜찮네.’
조금 숱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아직까진 봐줄 만했다.
고승우는 곧장 수혁에게 다가와 덥석 안았다.
“이 새끼, 결국은 가는구나!”
그동안 서로 너무 바빠 직접 만나는 것은 간만이었다.
수혁이 입원했을 때, 몇 번 병문안 온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혁에게 최은송을 소개시켜 준 장본인이기도 했고.
“고맙다.”
수혁은 고승우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최은송 같은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 주었으니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내 덕분이니까 한 턱 쏴라.”
“한 턱뿐이겠냐? 열 턱이라도 쏜다.”
둘은 시시덕거리며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었지만, 바로 어제 만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아, 이쪽은 내 선배들.”
그러다 옆에서 멀뚱히 서 있는 김강식과 이재한을 발견하고는 소개시켜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놈 친구인 고승우라고 합니다.”
“아, 제수씨 소개시켜 줬다던?”
김강식이 알은체하자 이재한은 웃으며 고승우와 인사를 나눴다.
“다른 애들은?”
수혁의 친구라고 해봐야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오고 있단다.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야.”
고승우는 스마트폰을 확인하고는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결혼식을 진짜 여기서 할 줄은 몰랐다.”
고승우가 고개를 위로 들었다.
‘119 신일 소방서’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박혀 있었다.
“누가 소방관 아니랄까 봐……. 은송이가 이걸 허락해 준 게 신기하네.”
고승우가 아는 최은송은 괜찮은 집안에,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름 잘나가는 여자였다.
그녀가 결혼한다면 서울에 있는 커다란 호텔에서 고급스러운 결혼식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소방서라니.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그래도 결혼식이라고 나름 예쁘게 꾸미긴 했다.
예식장만은 못 해도, 야외 결혼식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고승우가 생각하기엔 조금 부족해 보였다.
“좋아하던데?”
하지만 수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실제로 최은송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소방서에서의 결혼식을 찬성했다.
특별하기도 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뭐, 그건 당사자들끼리 결정할 문제니까.”
고승우는 어련히 잘 알아서 했을 것이라 믿으며 더는 신경쓰지 않았다.
“은송이 보러 갈 거지?”
“봐야지. 이 결혼은 내 지분이 50%쯤 되니까.”
“안쪽에 신부대기실 있어.”
“그래. 그럼 좀 이따 보자.”
고승우는 김강식과 이재한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서 안으로 들어갔다.
“너는 저 친구 업고 다녀야겠다.”
“제수씨 같은 사람 소개해 줬으면 평생을 업고 다녀야죠.”
김강식의 말에 이재한이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수혁은 둘의 말에 동의했다.
고승우가 아니었다면, 최은송 같은 사람을 어떻게 만났을까?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수혁이 웃으며 대답하자, 둘은 재미없다는 듯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또 뭔가 꾸미고 있었던 것 같았다.
수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최은송의 하객들이었다.
덕분에 수혁은 이제 장인어른 장모님이 될 두 사람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부럽냐?”
수혁의 표정을 본 김강식이 물었다.
“네? 뭐가요?”
혹시나 하객의 수를 보고 부러워하는 것이라 묻는 거라면 아니라고 대답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게 부럽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김강식이 가리킨 것은 다른 것이었다.
“부모님.”
“아…….”
수혁은 부모님이 없다.
오늘 이 자리에도, 본래라면 부모님이 수혁의 옆에 계셔야 했다.
하지만 부모님 대신 김강식과 이재한이 서 있었다.
비록 근무시간이었는지라 제복을 입은 상태이긴 했지만, 두 사람이 부모님 대신 수혁의 곁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수혁은 뺨을 긁었다.
‘부러운가?’
속으로 질문해 봤다.
솔직히 부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런 감정을 갖기엔, 부모가 없는 삶이 너무도 익숙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수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런 수혁을 보는 김강식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혁의 웃음이 너무도 어색했던 것이다.
“왜 그런 표정으로 봐요?”
수혁은 자신의 얼굴이 어떤지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니다, 아무것도.”
김강식이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신부 측을 바라봤다.
확실히 자신도 부모님과 함께 이 자리에 있고 싶다거나, 외롭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의 옆에는 가족과도 같은 대원들이 있었으니까.
그거면 충분했다.
그럼에도…….
조금 가슴이 쑤셔오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이내 그 생각을 떨쳐 냈다.
오늘은 그의 결혼식이다.
그 말은 곧 수혁에게 가족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난생처음으로 진짜 가족이 생긴다.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최은송과 가족이 되어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는 날.
그런 좋은 날에 쓸데없는 생각으로 기분이 상하고 싶지 않았다.
수혁은 미소를 지었다.
아내가 될 최은송과 가족과도 같은 구조 3팀의 대원들.
그거면 된다.
수혁은 충분히 행복했다.
신부 측의 하객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숫자였지만, 수혁의 친구들도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수혁은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몇 명의 친구들과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지인들.
한참을 정신없이 그들을 맞이하는데, 고급 세단 한 대가 서 앞에 멈춰 서는 것이 보였다.
부촌이 아닌 이상 평생을 가도 한 번 볼까 말까 한 가격의 차량이 멈춰 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에 집중됐다.
수혁이 미소 지었다.
수혁이 아는 사람 중, 저런 차를 끌고 다닐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차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온 사람은 수혁의 예상대로였다.
“짐!”
말끔한 정장을 입고, 손에는 고급스러운 지팡이를 든 채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짐 머레이였다.
“수혁!”
짐 머레이는 수혁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아니, 진짜로 왔네.”
수혁이 더듬더듬 영어로 말을 건넸다.
“영어가 많이 늘었군?”
아직 갈 길이 멀긴 했지만, 그동안 최은송과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한 성과가 나타났다.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니까요. 그런데 정말로 올 줄은 몰랐어요.”
짐 머레이는 미국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수혁은 그를 초대하긴 했지만, 솔직히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워낙 바쁜 사람인 데다, 미국이 옆 동네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짐 머레이는 수혁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자네가 결혼한다는데, 내가 빠질 수야 있나?”
초대하지 않았어도 왔을 마당에, 청첩장까지 보냈으니 만사를 제쳐 두고 올 수밖에.
짐 머레이는 웃으며 수혁과 포옹을 나눴다.
사람들은 짐 머레이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수근거렸다.
평범한 사람은 평생을 벌어도 못 살 차를 타고 온 외국인.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런 수근거림을 무시했다.
“결혼 선물은 기대하게.”
짐 머레이는 은근한 시선으로 수혁을 쳐다봤다.
“그런 건 괜찮은데…….”
“원래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짐 머레이는 허허- 웃으며 수혁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자리를 이동했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수혁의 장인어른인 최문식이 있는 곳이었다.
짐 머레이는 특수 구조대 설립을 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도중 최문식과 인연을 맺은 상태였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 사람이 대체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공무원이라더니.’
최은송은 자신의 아버지를 공무원이라고 소개했었다.
그것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장관도 대통령이 임명할 뿐, 공무원이 맞긴 했으니까.
수혁은 눈을 끔뻑이며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쳐다봤다.
왠지 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았다.
궁금증이 치솟았지만, 지금 당장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다음을 기약했다.
한참 동안이나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보니, 이제 시간이 되었다.
“가서 준비해라.”
김강식이 수혁을 보냈다.
이제 결혼식을 올릴 때가 되었으니, 더는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지막 준비를 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을 고치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러곤 웨딩 플래너에게 다시 한 번 식순을 교육받았다.
인사를 나누며 사라졌던 긴장이 다시 치솟아 올랐다.
“이제 나가세요.”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됐다.
“신랑 입장!”
사회를 보기로 한 박정우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수혁을 소개했다.
수혁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앞으로 행진했다.
버진로드의 끝에 다다르자, 박정우가 뭐라고 말을 하는 것이 들렸지만, 솔직히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신부 입장곡이 들려왔다.
수혁이 고개를 들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아버지인 최문식과 팔짱을 끼고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는 최은송이 보였다.
그러자 지금까지 머릿속을 드리우고 있던 안개가 모두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곤 최은송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최문식의 불편한 심기가 담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수혁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서 최은송의 손을 넘겨받았다.
둘은 앞쪽에 새하얀 길을 걸어 종착지에 도착했다.
이어 계속해서 식순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수혁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고, 오직 최은송만 보일 뿐이었다.
‘아름답네.’
수혁이 미소 지었다.
앞으로 평생을 함께하게 될 여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서장의 주례가 시작되고, 혼인 서약과 축가까지 끝이 났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
결혼 행진만이 남은 상태.
수혁은 최은송과 팔짱을 끼고 버진로드를 함께 걸었다.
결혼 행진곡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둘을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화재 출동, 화재 출동.]
아름다운 결혼 행진곡과 환호성을 뚫고, 출동 명령이 터져 나왔다.
행복감에 젖어 있던 수혁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그러곤 반사적으로 최은송을 바라봤다.
최은송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수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수혁이 피식- 웃었다.
설마하니 결혼식에서까지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몰랐다.
“빨리 뛰어!”
이미 대원들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구조 3팀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낸 채 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다녀와요.”
수혁의 표정을 본 최은송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당황스럽긴 하지만 어쩌랴?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하는 일인 것을.
“금방 다녀올게요.”
수혁이 미안한 표정으로 최은송에게 사과하고는 그대로 달렸다.
갑작스런 상황에 하객들이 당황했지만, 수혁은 그 누구보다도 빨리 구조차에 탑승했다.
“이 미친놈.”
대원들은 그런 수혁을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결혼식 도중에 출동하는 놈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수혁은 개의치 않았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면, 결혼식이 아니라 장례식에서라도 달려나갈 테니까.
대원들은 수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출발!”
구조차가 출발했다.
이제 막 새신랑이 된 수혁을 태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