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57화
최은송을 식장에 두고 출동을 다녀온 수혁은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다행히 최은송은 이해해 주었다. 하지만 장인어른과 장모에게 눈칫밥을 먹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밤새 처가 식구들에게 갈굼 아닌 갈굼을 당한 수혁은 잠 한숨 이루지 못하고 다음 날을 맞이했다.
바로 신혼여행 날이었다.
수혁의 고개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최은송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차원이 달랐다.
이곳은 바로 뉴욕이었으니까.
“여기가 미국…….”
냄새부터가 달랐다.
정확히 뭐가 어떻게 다른지는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한국과는 다른 냄새였다.
수혁이 킁킁거리자, 최은송이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
“뭐 하는 거예요?”
최은송이 살짝 부끄러운 표정으로 타박을 했다.
“아, 아니, 그냥 좀 신기해서요.”
수혁은 민망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푸켓 공항과는 그 규모나 시설이 차원이 달랐다.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했는데.”
짐을 찾고 출국장 밖으로 나온 수혁과 최은송은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하얀 팻말에 한글로 김수혁의 이름을 발견했다.
“저분인가 봐요.”
수혁이 최은송을 이끌고 팻말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김수혁 씨?”
수혁을 확인한 사람이 한국말로 물었다.
“네, 김수혁입니다.”
“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임스라고 합니다. 이번 미국 여행을 책임질 가이드죠.”
수혁이 자신을 제임스라 소개한 백인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하얀 피부의 외국인이 한국말을 술술 하는 게 너무도 신기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런 수혁에 제임스가 슬쩍 웃었다.
수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였던 탓이다.
“할머니가 한국분이십니다.”
“아…….”
수혁과 최은송은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가족 중 한국 사람이 있다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짐이 꽤 신경을 써준 것 같네요.”
이 여행은 바로 짐 머레이가 이야기했던 선물이었다.
신혼여행 풀 패키지.
두 사람이 본래 계획하고 있던 여행지도 미국이었다.
그런데 짐 머레이의 선물 덕에 모든 계획을 취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몇 단계는 업그레이드 된 계획이었으니 당연했다.
“일단 차로 모시겠습니다.”
제임스가 한쪽으로 신호를 주자, 커다란 덩치의 흑인 두 명이 다가왔다.
그들은 놀랍게도 짐꾼이었다.
짐 머레이는 수혁과 최은송이 캐리어조차 끌지 않게 준비해 준 것이다.
해외여행을 꽤나 다녀본 최은송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였다.
제임스는 차가 있는 곳으로 둘을 안내했다.
그리고 주차되어 있는 차를 본 두 사람은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밴이나 승용차 정도로 생각했는데, 기다리고 있던 차량은 새하얀색의 기다란 리무진이었다.
“이런 건 영화에서나 봤는데…….”
수혁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저도요.”
해외여행을 와서 리무진을 타고 돌아다닐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타시죠.”
제임스가 문을 열어주었다.
둘은 얼떨떨해하며 리무진에 올라탔다.
“차가 무슨 방만 하네요.”
차량 내부는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짐 머레이가 끊어준 퍼스트 클래스 좌석보다 몇 배는 편했다.
“그냥 여기서 자도 되겠어요.”
최은송 역시 마음에 드는지 방긋 웃었다.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열두 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
아무리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편하게 왔다고는 하지만,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시차 문제도 있었고.
제임스는 일단 두 사람이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리무진은 한참을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이쯤 되자 기대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어떤 숙소에 묵게 될지 말이다.
“도착했습니다.”
차문이 열리고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호텔에 관한 지식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는 수혁도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호텔이었다.
제임스는 흑인 두 명과 함께 짐을 들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호텔 로비는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 작품을 보는 것만 같았다.
새하얀 대리석과 금장으로 된 장식들은 고급스러움을 넘어 황홀할 지경이었다.
수혁과 최은송이 로비 구경을 하는 사이, 어느새 체크인을 끝마친 제임스가 키를 들고 다가왔다.
“가시죠.”
어디까지 놀라야 할까?
제임스의 뒤를 따라가던 수혁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용 엘리베이터라니.”
오직 수혁이 묵는 방이 있는 층만 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가드가 있어 허가되지 않은 사람은 탑승조차 할 수 없게 통제하고 있었다.
제임스가 키를 보여주자 가드가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
평범한 엘리베이터와는 다르게, 화려하기 짝이 없는 내부 인테리어.
괜히 주눅이 들 정도였다.
“이런 걸 받아도 되나 모르겠네요.”
최은송은 부담감을 느끼며 속삭였다.
“그, 그러게요.”
사실 부담스럽기는 수혁이 더했다.
짐 머레이에게 더는 빚을 지길 원치 않았던 수혁이었으니까.
그런데 결혼 선물이랍시고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뒀다고 하니, 취소할 수도 없었다.
수혁이 작게 한숨을 내쉬는 사이,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와아.”
최은송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호텔의 최상층.
뉴욕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은 1박에 얼마나 합니까?”
수혁이 제임스에게 물었다.
그냥 봐도 절대 평범한 방은 아니었다.
최소한 수백, 아니, 그 이상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방이었다.
제임스는 수혁의 물음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냥 즐기시면 됩니다.”
그는 굳이 가격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만약 수혁이 이 방의 가격을 들으면, 절대 여행을 즐기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그만큼 비싼 곳이었고, 아무나 묵을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수혁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안 듣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하십쇼.”
제임스는 자신의 번호를 가르쳐 주고는 인사한 뒤 밖으로 나갔다.
둘만 남게 되자 침묵이 흘렀다.
“미쳤네요, 진짜.”
잠깐 둘러본 결과, 방이 여섯 개였다.
아니, 호텔에 방이 여섯 개나 있을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고작 두 명이서 묵는데 말이다.
그뿐인가?
욕실이 수혁의 집 거실만 했다.
진짜 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휘황찬란한 금색 장식들이 가득한 욕실을 보곤 수혁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거 부담스러워서 씻지도 못하겠네.”
수혁이 고개를 저으며 밖으로 나오자, 최은송이 짐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어느새 적응했는지, 그리 동요한 모습이 아니었다.
“이왕 온 거니까요. 제임스 말대로 그냥 즐겨요.”
최은송이 태평하게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최은송은 짐 머레이의 선물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예전에 차 선물을 받았을 때도 거절하려던 수혁과는 달리, 그녀는 찬성했으니까.
오히려 수혁에게 받으라며 설득하기까지 했다.
수혁은 그런 최은송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이제 와 무를 수도 없었으니, 최대한 즐기는 게 예의였다.
준비해 준 짐 머레이에게도, 여행을 도와줄 제임스와 다른 두 명에게도.
“그래요. 우리가 이런 호사를 언제 또 누려보겠어요.”
수혁은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그러자 부담스럽기 그지없던 방이 기꺼워졌다.
최은송과 함께하는 신혼여행.
평생에 단 한 번밖에 없을 그 중대한 여행을 이런 좋은 곳에서 보내게 되었으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쉴까요?”
수혁은 팔팔했다.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서 마라톤을 뛰어도 될 만큼.
하지만 최은송은 아니었다.
긴 시간의 비행에 지쳤을 게 분명했다.
“씻고 한 시간 정도만 쉬었다 나가요. 방이 아무리 좋더라도 뉴욕까지 왔는데 안에서만 있을 순 없으니까.”
“그렇게 해요.”
둘은 욕실인지 궁전인지 모를 곳에서 씻고는 푹신하기 그지없는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침대 옆으로 난 커다란 창을 통해 뉴욕 시내를 구경하던 둘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시간을 쉬기로 했지만, 밖을 보고 있다 보니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임스한테 연락할게요.”
수혁이 제임스에게 전화했고, 최은송은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신혼여행의 첫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 *
“아직도 환청이 들리십니까?”
톰은 자신의 정신과 의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하던가요?”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톰에게 다시 물었다.
“항상 똑같습니다.”
살려달라고.
제발 구해달라고.
벌써 10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톰은 여전히 그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그것은 톰뿐만이 아니었다.
그날 현장에 출동했던 뉴욕 소방관들은 대부분 톰과 비슷했다.
9월 11일.
역사상 가장 최악의 테러이며, 무려 3천 명이 넘는 사상자를 일으킨 최악의 재난.
그중 343명이 뉴욕의 소방관이었다.
톰은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그의 동료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 후로 톰은 환청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동료들의 마지막 무전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죄책감과 슬픔을 견디지 못한 동료 중 몇 명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였다.
톰 역시 지속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점점 더 심해져만 갈 뿐이었다.
“더는 버티기가 힘듭니다.”
톰의 상태를 살펴보던 의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소방관의 죽음은 순직률보다 자살률이 더 높았다.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이들이 더 많은 것이다.
의사는 지금껏 수많은 소방관을 도왔고, 그들의 고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톰, 그들의 죽음은 당신의 죄가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톰 역시 그런 것쯤은 알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생각처럼 조절이 되던가?
톰은 차라리 그날, 자신도 죽는 것이 훨씬 나았을 거란 생각을 할 정도였다.
“루시를 떠올려 봐요.”
의사는 톰의 딸인 루시의 이름을 꺼냈다.
그러자 톰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
“그 아이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겁니다.”
만약 아내와 딸이 없었다면, 진즉에 편해지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의사는 톰의 가족 이야기를 하며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한 시간여.
상담 시간이 끝이 났다.
“감사합니다. 많이 편해진 것 같네요.”
톰이 의사와 악수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거 다행이군요.”
의사가 웃으며 대답했지만,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그 편안함이 얼마 가지 않을 것을 말이다.
‘약 처방을 하면 조금 나아질 텐데.’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처방해 주고 싶었지만, 일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톰은 약 처방을 거부했다.
덕분에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톰은 과거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톰은 의사에게 인사하곤 문밖으로 나왔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쉰 톰은 그대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뉴욕의 거리를 걷길 10분여.
톰의 눈에 익숙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색 벽돌로 이루어진 고풍스러운 건물.
그곳에는 ‘ENGINE 316’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녀오셨습니까?”
그곳에서 나온 누군가가 톰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 별일 없었지?”
“네. 오늘은 조금 한가합니다.”
“다행이군.”
“따로 지시하실 게 있습니까?”
“아니, 없다.”
톰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후우.”
책상에 앉은 톰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의 책상 위에는 ‘Rescue Chief. Tom Brady’라는 명패가 있었다.
그는 뉴욕 소방서 ENGINE 316의 구조대장인 톰 브래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