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67화
수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붉은색!’
분명 위험 요소 표시였다.
그 말은 곧 저 붉게 빛나는 것이 이번 테러에 사용될 폭탄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수혁은 붉은 표시가 빛나고 있는 것의 정체를 확인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뛰었다.
‘너무 멀어서 안 보여.’
이럴 줄 알았으면 톰의 말대로 망원경을 찾아서 올 걸 조금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일단 폭탄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의 대략적인 위치를 확인했으니까.
늦기 전에 막기만 하면 된다.
“수혁 씨!”
갑작스런 수혁의 행동에 깜짝 놀란 톰이 수혁을 부르며 뒤늦게 쫓아갔다.
“무슨 일입니까?”
“찾았어요!”
“찾다니 뭘……. 설마 폭탄을 찾았단 말입니까?”
“네!”
톰은 수혁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이 빌딩의 층수는 25층.
지금 이곳은 옥상이었으니 26층이라고 봐도 무방한 높이다.
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손톱만 하게 보인다.
그런데 폭탄을 발견했다고?
톰이 믿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혁은 확신에 가득 찬 모습으로 곧장 아래로 내려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톰 역시 늦지 않게 탑승하고는 수혁을 돌아봤다.
그러곤 이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었다.
수혁은 어느새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짐!”
[무슨 일인가?]
수혁이 전화한 사람은 바로 짐 머레이였다.
“발견한 것 같아요.”
수혁은 짐 머레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본론을 꺼냈다.
[발견했다고?]
그 말에 짐 머레이가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폭탄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곳이 어디지?]
수혁은 자신이 본 붉은색의 위치를 설명해 주려다 멈칫했다.
낯선 동네였는지라 어디라고 확실히 설명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혁이 톰을 쳐다봤다.
“이 건물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는 두 번째 사거리에 있는 흰색 건물을 어디라고 설명하면 될까요?”
수혁의 질문에 톰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빠르게 머릿속을 뒤졌다.
이곳은 톰의 홈그라운드.
눈을 감고 돌아다녀도 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곳이었다.
5초도 지나지 않아 톰은 수혁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픽 어 베이글!”
수혁은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지만, 톰의 말을 믿고는 짐 머레이에게 가르쳐 주었다.
[알겠네. 지금 바로 그쪽에 사람을 보낼 테니 가까이 다가가지 말…….]
“시간 없어요.”
수혁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대회 시작까지 남은 시간 3분.
경찰과 요원들이 이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늦지 않게 도착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뭐?]
짐 머레이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시간이 없다는 수혁의 말에서,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예상을 한 것이다.
“일단 저랑 톰이 갑니다.”
[안 돼!]
“최대한 빨리 사람들 좀 보내주세요.”
[수혁! 이보게, 잠시……!]
짐 머레이가 말리기 위해 다급하게 말을 했지만,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띵-!
그사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수혁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헤치며 앞으로 뛰었다.
“잠시만요, 실례합니다! 급해요!”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나? 하는 표정으로 수혁을 쳐다봤다.
하지만 수혁은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쓸 정신이 없었다.
“픽 인 베이글로! 지금 당장!”
톰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혁의 통화를 들은 톰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부하들에게 무전을 쳤다.
그러곤 당장 수혁이 말한 곳으로 지원 요청을 했다.
자신들보다는 늦겠지만, 근처에 있다면 늦어도 5분 내로는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연락을 끝낸 톰은 앞으로 달려가는 수혁을 쳐다봤다.
그러곤 눈을 부릅떴다.
잠깐 무전을 하는 사이, 수혁과의 거리가 엄청나게 벌어져 있었다.
‘아니, 무슨 놈의 달리기가!’
소방관이 아니라 육상 선수인 것 같았다.
무전을 끊은 지금, 최대한 빠르게 달리고 있음에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톰의 달리기가 빠른 것은 아니었다.
워낙 근육질의 몸매이다 보니 체력과 근력은 좋았지만, 상대적으로 민첩성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느리다는 뜻도 아니었다.
톰은 나름대로 자신의 스피드에 자신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수혁은 차원이 달랐다.
잠깐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도 계속해서 격차가 벌어졌다.
‘사람이 아니군.’
톰은 결국 허! 하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서둘러야겠어.’
톰은 더 이상 차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더욱 박차를 가했다.
‘저기다!’
한편 인파들을 헤치며 놀라운 속도로 달려가던 수혁은 저 앞쪽에서 붉은 표시를 발견했다.
그러곤 경악했다.
붉은색으로 빛나는 것의 정체를 확인한 것이다.
‘차다!’
수혁은 눈을 부릅떴다.
이전 생에서는 분명 차량을 이용한 테러가 아니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그것만은 확실했다.
폭탄은 마라톤 코스 주변의 두 곳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시간차를 두고 폭발했다.
때문에 구조하던 소방관들이 희생되지 않았던가?
차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바뀌었어.’
이전 생과는 뭔가가 바뀌었다.
‘나 때문인가?’
이전 생과 이번 생에서 달라진 것이라곤 수혁이 미리 테러에 대한 경고를 했다는 것뿐이었다.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폭탄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테러에 대비해 경계하고 있었다.
아마도 테러범을 그것을 보곤 계획을 바꾼 것 같았다.
‘그러니 못 찾았지!’
테러범이 계획을 바꿔 폭탄을 설치하지 않았으니, 발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수백 명이 뒤진다 한들, 애초에 존재하질 않는 폭탄을 어떻게 찾을까?
수혁은 마음이 급해졌다.
붉게 빛나는 하얀색 밴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젠장.”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할 수 있었는데, 이동을 시작한 밴은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며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톰!”
수혁이 뒤를 돌아보며 톰을 불렀다.
그런데 톰은 너무 멀리 뒤처져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수혁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대답했다.
“대원들한테 연락해요! 폭… 목표가 이쪽으로 향했다고! ‘Home Cleaning Service’라고 적혀 있는 하얀색 밴이에요!”
수혁은 폭탄이라고 말을 하려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톰은 수혁의 말을 알아듣고는 곧장 무전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혁은 그대로 밴을 쫓기 시작했다.
사람과 차 중 누가 더 빠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명확하다.
하지만 수혁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고, 차 역시 속도가 느렸다.
뉴욕 특유의 교통 정체 덕분이었다.
수혁은 빠른 속도로 밴과 점점 가까워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전 생과 달리 대회 시작과 동시에 폭탄이 터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밴이 마라톤 코스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거리는 고작해야 300m 정도였으니까.
차가 많지만 않았다면 그야말로 순식간에 도착해서 폭탄이 터질 수 있는 거리였다.
수혁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숨이 막혀도 좋으니, 반드시 따라잡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다리에 힘을 주었다.
“뭐, 뭐야!”
“꺅!”
수혁이 미친 듯이 길을 달리자, 주변의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제 코앞이었다.
몇 발자국만 더 가면 밴을 따라잡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콰앙-!
수혁은 밴을 따라잡자마자 손바닥으로 조수석을 휘갈겼다.
깜짝 놀랄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차에 타고 있던 알다바위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
그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굉음에 기겁했다.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려던 알다바위는 순간 엄습해 오는 불안감에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았다.
부아아앙-!
천천히 나아가던 밴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쾅! 쾅! 쾅-!
앞을 막고 있던 차들과 충돌을 했지만, 알다바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오직 조수석에 실려 있는 폭탄을 터트리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불도저처럼 앞으로 밀고 나갔다.
“이 새끼가!”
수혁은 가까스로 밴의 뒤쪽 창문을 붙잡았다.
만약 놓쳤으면 손도 쓰지 못할 뻔했다.
수혁은 떨어지지 않게 창문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끼기기긱-!
수혁의 힘을 견디지 못한 프레임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구겨졌다.
‘어떻게 하지?’
차에 매달린 수혁은 빠르게 고민했다.
간신히 붙긴 했지만, 이대로라면 폭발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밴 안으로 들어가 테러범을 붙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지금은 매달려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힘의 문제가 아니라 차의 속도가 너무 빠른 데다, 계속해서 다른 차들과 추돌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기 급급했기 때문이었다.
‘이대론……!’
저 앞으로 선수들이 달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대회가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본 수혁이 입술을 짓씹었다.
‘보내면 안 돼!’
수혁은 재빨리 자신의 스킬이 뭐가 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각성’ 스킬.
바로 슈미츠, 다니엘과 연수 기간에 출동했던 물류창고 화재 퀘스트를 완료하고 받았던 보상이었다.
아직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스킬이었지만, 수혁은 ‘각성’이라는 스킬이 도움이 될 것이란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몸에 알 수 없는 힘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강력한지, 수혁은 몸이 터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수혁은 그 넘치는 힘을 다리에 집중시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콰과곽-!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밴을 앞지를 정도였다.
수혁은 깜짝 놀라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조수석 문과 나란히 서서 달릴 수 있었다.
수혁은 손을 뻗어 문을 붙잡았다.
그러곤 그대로 ‘뜯어’냈다.
차문을 연 것이 아니라, 마치 종잇장처럼 뜯어버린 것이다.
“허억!”
그 모습을 본 알다바위가 경악했다.
알다바위는 누군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난폭하고 빠르게 운전하고 있었는데, 설마 달려서 따라붙었을 줄은 몰랐다.
거기다 저런 괴력이라니!
알다바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수혁은 알다바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대로 차 위에 올라탄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알다바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콰득-!
평소의 수혁이 주먹을 휘둘렀어도, 맞은 사람은 한 방에 정신이 날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각성’ 스킬을 사용한 상태.
하루 한 번.
신체 능력을 두 배 이상 상승시켜 주는 스킬의 능력이 더해지자, 알다바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사실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수혁이 힘을 조금 풀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머리가 깨져 숨을 거뒀을지도 몰랐다.
알다바위가 기절하자, 수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운전대를 붙잡고는 브레이크를 밟아 밴을 멈춰 세웠다.
“휴우.”
수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기에, 수혁은 알다바위의 몸을 수색해 기폭 장치를 찾아냈다.
그리고 조수석 아래쪽에 숨겨져 있던 폭탄 배낭도.
그런데 배낭을 발견한 수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왜 하나밖에 없지?”
이전 생에서 터진 폭탄의 개수는 두 개.
그런데 지금은 하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