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69화
열풍이 몰려왔다.
폭발의 범위에는 미치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뜨겁게 달궈진 공기가 밀려온 것이다.
늦여름의 무더운 날씨보다도 뜨거운 공기가 수혁과 주변을 휩쓸었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불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폭발 현장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단 한 사람.
수혁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수혁은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눈치챘다.
두통이 일어날 정도로 심각한 이명이 울려댔고, 저 앞쪽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혁이 뭔가를 하기도 전에 폭발이 일어나고 말았다.
‘X발…….’
막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퀘스트는 실패하지 않았다.
퀘스트는 이미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었고, 최대한 많은 요구조자를 구하라고만 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수혁은 퀘스트 따윈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딴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조금 더 신중해야 했다.’
‘몇 명이나 죽었을까?’
‘부상은 몇 명이지?’
‘구해야 한다!’
수혁의 머릿속은 죄책감과 더불어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뒤죽박죽이 되었다.
‘답답해.’
수혁은 자신의 몸을 속박하고 있는 수갑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힘을 주었다.
틱- 하는 소리와 함께, 수갑은 너무도 쉽게 끊어져 버렸다.
수혁을 위에서 누르고 있는 경찰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비켜…….”
수갑을 끊어낸 수혁이 몸을 일으켰다.
“어, 어?”
경찰은 수혁이 움직이자 힘을 주며 제압하려 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멈춰! 움직이지 마!”
경찰이 소리를 질렀다.
물론 수혁은 그것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결국은 완전히 일어났다.
주위에 있던 경찰들이 그것을 발견하곤 총을 겨눴다.
“쏘지 마! 쏘지 마!”
그때, 누군가 다급히 뛰어들며 수혁의 앞을 막았다.
검은 정장을 입고 한눈에 봐도 연방 요원이라는 티를 내고 있는 그는, 품에서 자신의 신분증을 꺼내 경찰들에게 보여주었다.
“국토 안전 보장국의 스미스요! 이 시간부로 이분의 신병은 우리가 맡도록 하겠소!”
국토 안전 보장국.
즉, NSA의 요원이라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들은 경찰들이 멈칫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단순한 범죄 현장에 출동한 것이 아니었다.
테러 경고가 있었고, 실제로 테러가 일어난 상황.
이런 쪽은 경찰보단 NSA의 요원이 훨씬 전문적이었다.
경찰들이 총을 거두자, 자신을 스미스라고 소개한 요원이 수혁을 돌아보았다.
“괜찮으십니까?”
수혁이 그를 쳐다보았다.
“위쪽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폭탄 수색에 최대한 협조하라고……. 그런데 늦어버렸군요.”
스미스는 침음성을 내뱉었다.
수혁이 폭탄을 찾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니, 지금 당장 경찰들에게서 구해내라고 명령을 받은 것이 조금 전이다.
그래서 빠르게 달려왔지만, 수혁을 빼내기도 전에 폭탄이 터져 버렸다.
“일단 수갑을 풀어…….”
스미스는 수혁의 손에 있는 수갑을 풀어주려다 흠칫했다.
수갑의 체인은 이미 끊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곤 손목에 채워져 있는 쇳덩이조차 짜증이 난다는 듯, 손으로 잡고 그대로 뜯어버렸다.
무슨 수수깡을 꺾듯, 손쉽게 수갑을 잘라낸 수혁은 스미스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주고는 톰을 쳐다봤다.
가만히 서서 폭발의 현장을 쳐다보고 있는 거구의 사내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톰.”
수혁은 그런 톰을 불렀다.
하지만 톰은 수혁의 말을 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들었음에도 반응하지 못하는 것인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하아.’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짐 머레이를 통해 톰의 대략적인 정보를 들었다.
‘911테러에서 동료들을 모두 잃었다고 했었지.’
그리고 그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고.
그런 사람이 눈앞에서 다시 한 번 참상을 목격했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클까?
수혁으로선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일 것이다.
톰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이렇게 가만있을 순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톰!”
수혁이 다시 한 번 강하게 톰을 불렀다.
그 소리에 톰이 흠칫 놀라며 수혁을 돌아봤다.
그의 눈동자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수혁은 톰을 향해 빠르게, 하지만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부하들 집결시켜요. 화재 진압대와 구급대도 호출하고, 인근 병원에 연락 돌려서 대비하고 있으라고 요청해요. 그렇게 멍청하게 서 있지만 말고 서둘러!”
이것은 폭발이 일어나자마자 톰이 취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톰은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였기에, 수혁은 그를 대신해 지시했다.
그 덕분일까?
초점이 나가 있던 톰의 눈동자가 빛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 당신이 안 움직이면, 저기 있는 사람들 다 죽어. 이번에도 그때처럼 손놓고 구경만 할 거야?”
수혁은 톰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속삭였다.
그 말에 톰은 완전히 정신이 돌아왔다.
‘구경만 한다고? 누가? 내가?’
톰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뉴욕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의 노력은 부하들뿐만 아니라,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그 긴 세월 동안 말이다.
그런데 뭐?
톰의 머릿속에서 트라우마는 어느새 사라지고,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득 차올랐다.
“폭발 테러 발생. 위치는 웨스트 53번가. 지금 당장 모든 인원 이곳으로 출동해!”
지금쯤이면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는 것을 모두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게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는데,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톰은 무전으로 당황하고 있을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그대로 수혁을 따라 달렸다.
‘이번엔…….’
이미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은 구해내고 말 것이다.
이번엔 그때와 같은 절망감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톰은 달리며 어느새 아득히 앞서가는 수혁의 등을 쳐다봤다.
‘대체 어떻게 저리도 침착할 수가 있는 거지?’
톰은 수혁보다 몇 배는 긴 시간 동안 현장을 뛰었으며, 현재는 뉴욕시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구조대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자신도 눈앞에서 일어난 테러에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했다.
톰뿐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경찰이든, 시민이든.
모두가 넋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수혁은 바로 움직였다.
빠르다 못해 즉각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대처였다.
자신이나 부하들과 비교하자면, 왜소하게 느껴질 정도의 덩치.
하지만 톰은 왠지 현장으로 달려가는 수혁의 등이 너무도 커 보였다.
‘생명감지Ⅲ!’
수혁은 한 블록 떨어진 현장으로 달려가며 스킬을 사용했다.
‘미니 맵’과 연동된 ‘생명감지Ⅲ’는 요구조자의 위치를 일목요연하게 표시해 주었다.
‘망할!’
셀 수가 없었다.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열 명? 스무 명?
그 정도가 아니었다.
최소한 백 명 단위의 부상자가 생겼다.
그리고 그중에는 조금만 지체한다면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중상자도 다수였다.
수혁은 더욱 빠르게 땅을 박찼다.
아직 ‘각성’의 효과가 남아 있었기에, 한 블록 정도는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폭발로 인한 연기와 먼지구름으로 인해 시야가 확보되질 않았다.
오직 신음과 고통에 찬 비명만이 수혁의 귀를 자극했다.
‘젠장.’
폭발의 여파로 인해, 근처의 5층짜리 건물이 위태로웠다.
지금 당장 무너질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조금씩 균열이 커지고 있었다.
그것만 봐도 터진 폭탄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었다.
‘서둘러야겠다.’
요구조자들을 구하기도 전에 건물이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수혁은 숨을 참고 그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뿌연 연기와 먼지가 수혁의 시야를 방해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수혁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시야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수혁은 ‘미니 맵’에 떠오른 생명 반응을 통해 가장 위급한 이들부터 추려냈다.
이 안에 가벼운 부상을 입은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이들부터 구해야만 했다.
‘왼쪽!’
수혁은 일단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중상자에게 달려갔다.
“으…….”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한쪽 다리가 잘려 나간 채, 피를 말 그대로 뿜어대고 있었다.
너무 심각한 출혈에 의식이 날아간 상태였던 것이다.
수혁은 그의 벨트를 풀어 절단된 다리의 허벅지를 꽉 묶었다.
출혈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이 정도론 어림도 없었다.
1초라도 빨리 병원으로 이송을 해야만 했다.
수혁은 그를 안아 들고는 연기 밖으로 빠져나왔다.
때마침 뒤를 따라오던 톰이 도착했다.
수혁은 깜짝 놀란 톰에게 요구조자를 넘겨주었다.
“저기 있는 경찰들도 모조리 불러!”
소방관들이 도착할 때까진 경찰들이라도 써서 요구조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만 했다.
톰은 요구조자를 받아 든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이 부족하다는 건 톰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부탁합니다.”
수혁은 그대로 다시 연기를 헤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가장 위급해 보이는 이들을 차례대로 구조하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잘린 이들도 있었고, 머리가 깨지거나 복부에 큰 상처를 입어 피를 철철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가 위급했다.
하지만 수혁의 손은 두 개뿐이었다.
한 번에 모든 사람을 구할 순 없었다.
수혁은 입술을 깨물며 한쪽으로 향했다.
폭발의 충격으로 인해 날아온 차량 밑에 깔린 작은 아이였다.
열 살이나 되었을까?
부모의 손을 붙잡고 마라톤 대회를 구경하러 가던 아이는, 차 밑에 깔려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처럼 보이는 두 남녀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수혁은 측은한 눈길로 아이를 잠시 쳐다보다 손을 뻗었다.
아이를 짓누르고 있던 차가 들어올려졌다.
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아이의 연약한 뼈는 조각조각 나 있었다.
만약 이대로 정신을 차린다면, 고통을 견디지 못해 쇼크사할 수도 있었다.
수혁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들었다.
“이쪽에 사람 있어!”
“빨리! 한 명 더 이리 와봐!”
경찰들이었다.
그들은 톰과 함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너무 심각한 중상자는 건드리지 말라는 톰의 지시에 의해,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었다.
이대로 소방관들까지 도착하면 구조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듯했다.
수혁은 아이에게 충격이 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조금을 걸어가자 사이렌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연기 밖으로 빠져나간 수혁은 수많은 구급차와 펌프차, 구조차를 발견했다.
지금도 계속해서 이곳으로 향하는 차들까지 합치면, 뉴욕에 있는 모든 소방관이 출동한 것 같았다.
구급대원 한 명이 수혁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를 보고는 달려왔다.
“이리 줘!”
대원은 아이를 소중하게 안아 들고는 구급차로 향했다.
아이를 바라보며 몸을 돌리는 수혁의 옆으로 대원들이 미친 듯이 달려가며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