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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71화 (271/425)

레스큐 시스템 271화

“케인 로저스…….”

수혁이 NSA 국장의 이름을 되뇌었다.

“문제가 될까요?”

수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짐 머레이에게 물었다.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미국의 국가 기관 국장에게 수혁의 능력이 들통났다.

그러니 문제가 될 소지는 차고 넘쳤다.

그런데 짐 머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크게 문제가 되진 않을 걸세.”

“네?”

의외의 말에 수혁이 눈을 크게 떴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는데 별문제 없을 거라니?

“나와 케인은 꽤나 각별한 사이지.”

짐 머레이는 이미 케인 로저스와 이야기를 끝마친 후였다.

케인 로저스는 수혁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대가로 꽤나 큰 것이 오가긴 했지만, 짐 머레이에게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수혁은 정확히 짐 머레이가 무슨 대가를 치렀는지 궁금해했지만, 그는 웃기만 할 뿐 가르쳐 주지 않았다.

“다만, 자리를 한번 주선해 달라는 부탁까지는 거절할 수가 없더군.”

“저와 말입니까?”

“그렇다네.”

수혁은 케인 로저스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에 살짝 놀랐다.

그것은 짐 머레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수혁을 만나려는 이유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유를 물었지만, 케인 로저스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본인에게 직접 말하겠다면서 말이다.

그러니 짐 머레이도 케인 로저스가 수혁을 만나려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어쩌겠나?”

짐 머레이는 수혁의 의향을 물었다.

만약 수혁이 고개를 젓는다면, 아무리 거절하기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다시 해결 방안을 찾으면 되었으니까.

수혁은 잠시 고민했다.

“그냥 만나보는 건 어때요? 별로 손해일 것 같진 않은데.”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은송이 입을 열었다.

“절대로 자네에게 해를 끼칠 일은 하지 못할 걸세.”

짐 머레이가 보증했다.

케인 로저스가 NSA의 국장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지만, 짐 머레이는 그것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러니 수혁에게 걱정하지 말고 결정하라고 말해주었다.

“그럼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즐거운 신혼여행은 물 건너갔다.

아직 예정된 여행 기간이 10일이나 남아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 제대로 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뉴욕 시내 어딜 가든 결코 좋은 분위기는 아닐 테니까.

그럴 바에야 짐 머레이의 말대로 하는 것이 나았다.

“알겠네. 그럼 자리를 한번 마련해 보도록 하지.”

“무슨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까?”

그래도 아직 약간의 불안감이 남아 있던 수혁이 물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군.”

짐 머레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로 케인 로저스가 수혁을 왜 만나려고 하는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수혁에 대해 함구하고,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좋지 않은 일이 아닌 것은 확실했지만.

“혹시 모르니 그 자리에 나도 대동하도록 하지.”

만약 그가 딴마음을 먹고 있다고 해도, 자신이 함께 있다면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자네도 피곤할 텐데 오늘은 좀 쉬게. 약속이 잡히는 대로 연락하지.”

짐 머레이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 혹시나 필요한 게 있으면 제임스에게 연락하고. 마음 놓고 관광은 다니지 못하겠지만, 계속 대기시켜 두겠네.”

“알겠습니다.”

짐 머레이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호텔을 나섰다.

“후우.”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테러를 막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너무 앞뒤 생각하지 않고 행동했다.

덕분에 괜한 짐 머레이만 고생하게 만들었다.

“참 고마우신 분이에요.”

“그렇죠.”

푸켓에서의 인연.

수혁이 구해준 은혜는 이미 충분히 갚고도 남았다.

하지만 짐 머레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수혁은 그것이 미안했다.

“오늘은 어떻게 할까요? 밖에 나가긴 힘들겠죠?”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아요.”

지금 밖은 삼엄한 경계와 비탄에 잠긴 유족, 그리고 분노를 터트리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이런 상황에 밖에 나갔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에, 둘은 그냥 방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수혁은 케인 로저스를 떠올리며 속으로 제발 아무 일도 생기지 않길 바랐다.

케인 로저스와의 약속이 잡혔다.

말이 나온 바로 다음 날 약속이 잡히다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케인 로저스가 수혁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도 갈게요.”

“괜찮겠어요?”

“혼자 있는 게 더 불안해요.”

최은송은 배시시 웃으며 수혁을 따라나섰다.

수혁과 최은송이 1층으로 내려가자, 그곳에는 제임스가 리무진을 대기시켜 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제임스는 공손하게 두 사람을 맞이했다.

수혁이 지난번 테러범 중 한 명을 붙잡았다는 사실을 듣고 난 뒤, 더욱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이었다.

‘부담스럽네.’

수혁은 그런 제임스의 태도가 살짝 부담스러웠다.

마치 자신을 고객이 아닌, 상전으로 모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조금 편하게 대하라고 해도 제임스는 전혀 듣질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타면 됩니까?”

“예. 목적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 바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제임스는 차 문을 열며 정중하게 대답했다.

‘쯧.’

속으로 혀를 찬 수혁은 최은송과 함께 리무진에 탑승했다.

리무진이 부드럽게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최은송이 제임스에게 목적지를 물었다.

“도시 외곽에 있는 작은 식당입니다. 조용히 이야기하기에 적당한 곳이죠.”

“오래 걸리나요?”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지금 도로 사정이 그리 좋질 않아서…….”

그제 일어난 테러의 여파로 센트럴 파크 인근의 도로는 제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었다.

폭발의 잔해들은 대부분 치워진 상태였지만, 도로가 깨지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회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내를 빠져나가는 것이 오래 걸릴 듯했다.

“우리도 거기 한번 들를 수 있을까요?”

이번엔 수혁이 물었다.

수혁이 말하는 ‘그곳’이란 바로 테러 현장 부근이었다.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이 국화와 촛불을 가져다 놓는 추모식을 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잠시 고민했다.

그렇지 않아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텐데, 거기까지 들렀다간 얼마나 더 오래 걸릴지 알 수가 없었다.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을 두 사람의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이 원한다면 해주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제임스는 기사에게 차를 돌려 추모식장으로 가달라고 지시했다.

“감사합니다.”

수혁이 제임스를 향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물론 제임스는 손사래를 쳤지만 말이다.

수혁은 사실 어제 최은송과 함께 추모식장에 가보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제임스가 만류했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다음으로 미뤘는데, 이왕 나온 김에 잠시 들러 애도를 표하고 싶었다.

수혁은 그날 자신이 직접 차 밑에서 꺼낸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부모가 죽고, 온몸의 뼈가 부서진 채 정신을 잃은 아이.

생명이 경각에 달해 재빨리 구조했건만, 결국 죽고 말았다.

그 아이와 같은 이들이 한둘일까?

누군가의 부모, 자식, 형제, 수십 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수혁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 자리에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차 문이 열리자, 수혁은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아침부터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수혁과 최은송은 제임스가 어디선가 가져온 국화 한 송이를 들고 다가갔다.

수십 장의 사진이 벽에 붙어 있었고, 그들을 추모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론. 그곳에선 행복하렴.

-보고 싶을 거야, 나의 친구.

-평온하길.

그것들을 본 수혁의 마음이 먹먹해졌다.

“수혁 씨.”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수혁을 최은송이 손을 잡아 이끌었다.

둘은 국화를 내려놓고는 묵념했다.

‘미안합니다.’

수혁이 희생자들에게 사과했다.

‘다음 생에선 부디 행복한 일만 있기를…….’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것으로 애도를 끝낸 수혁은 최은송과 함께 리무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목적지인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수혁과 최은송, 제임스는 입을 열지 않았다.

“늦는군.”

케인 로저스가 식탁을 톡톡 치며 말했다.

도착 예정 시간에 맞춰 음식을 시켰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온다고 연락이 왔으니, 조금 기다리게.”

조금은 불만스러웠던 표정이 짐 머레이의 말을 듣고 난 뒤 사라졌다.

희생자 추모식에 다녀오느라 늦는 것을 탓할 순 없었으니까.

잠시 침묵이 흐르자, 그것을 견디지 못한 케인 로저스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그 사람을 어떻게 알게 되었지?”

미국에서도 내로라하는 굴지의 기업을 일궈낸 짐 머레이.

그런 그가 동아시아 작은 나라의 청년과 안면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짐 머레이는 그에게 자신과 수혁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썰을 풀어주었다.

“대단한 사람이군.”

이야기를 모두 들은 케인 로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런 능력이 있었으니 그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생명의 은인이라……. 그래서 자네가 그의 뒤를 봐주고 있는 거로군.”

“후견인이라고 해두지.”

그제야 둘의 관계를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식당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리자 수혁과 최은송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서 오게.”

짐 머레이는 그런 두 사람을 반겼고, 케인 로저스는 호기심 서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여기가 자네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던 케인이란 늙은이네.”

“반갑습니다.”

수혁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케인 로저스는 그런 수혁을 가만히 쳐다보다, 대뜸 입을 열었다.

“자네, 영웅이 되어볼 생각 없나?”

뜬금없는 소리에 수혁의 눈이 커졌다.

“이미 푸켓의 영웅이라 불리고 있다지? 그렇다면 미국의 영웅은 어떤가?”

수혁은 그 말에 케인 로저스가 자신을 왜 보고 싶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퀘스트 보상.’

이번 퀘스트는 수혁 스스로 성공했다고 여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퀘스트 내용상 성공했기에 보상이 주어졌다.

그 보상이란 바로 ‘대량의 경험치’와 ‘명성’.

이 상황은 그중 ‘명성’ 보상에 관련된 것이 분명했다.

수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1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싫습니다.”

영웅?

‘눈앞의 사람들도 구하지 못한 내가 무슨 영웅인가?’

수혁은 케인 로저스의 제안을 단박에 잘라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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