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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93화 (293/425)

레스큐 시스템 293화

‘대통령 표창이라…….’

조금 놀라긴 했다.

물론 크게 기쁜 것도 아니었다.

수혁이 한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일을 생각해 보면, 대단한 보상이라 말할 순 없었다.

그러니 심드렁할 수밖에.

하지만 진급은 달랐다.

표창을 백 번 받는 것보다, 진급이나 성과상여금을 받는 쪽이 훨씬 나았다.

원하지 않은 것을 억지로 떠맡은 덕분에, 명예 따위는 지금도 차고 넘친다.

그에 반해 돈은 항상 부족하다.

수당들을 합친다면 공무원치고는 꽤 많은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넉넉한 건 아니다.

가정을 생각해야 하는 수혁의 입장에선 진급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수혁의 얼굴에 미소가 맺히자, 대통령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허허, 감사한 건 오히려 우리입니다. 이 정도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아쉬울 정도군요.”

사실 대통령은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것을 수혁에게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규정상 그 이상의 것을 줄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흐뭇하게 수혁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몇몇 인사들이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 앞이라 크게 내색은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 중에는 수혁을 탐탁지 않아 하는 이들도 분명 있었다.

아니,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얼마 전, 수혁의 행동으로 인해 날아간 모가지가 몇 개던가?

그중에는 그들과 친한 지인도 있었고, 아끼는 부하들도 있었다.

그런 고위직 공무원 십여 명이 단숨에 직위 해제당해 버렸다.

아무리 비리를 저질렀다고 하지만, 그냥 징계도 아니고 곧장 직위 해제라니?

그것도 말단 공무원도 아니고 고위직 공무원들이 말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뒤져 봐도 이런 일은 흔하지가 않았다.

깜짝 놀란 그들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다, 수혁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강현성이 슬쩍 이야기를 흘린 것이다.

덕분에 대부분 수혁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데, 표창과 진급이라니?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그들의 표정을 발견한 수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찍혔네.’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이미 각오하고 저지른 일이었다.

방송에 나와 그 사실을 터트렸을 때부터 위쪽 분들과는 척을 지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이전 생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럴 깜냥도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수혁의 뒤를 봐줄 사람들이 많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장인어른인 최문식만 해도 재정부 장관이다.

보아하니 행안부 장관인 강형주도 수혁에게 호감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이제 수혁은 미국의 명예시민이다.

수혁이 무슨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수혁에게 억지로 불이익을 줄 순 없었다.

저들로선 미국의 눈치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원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이니 수혁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바꾼다.’

개혁이라고까지 말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할 수 있는 건 해보고 싶었다.

“자세한 건 정해지면 다시 이야기해 주도록 하죠.”

대통령의 말에 수혁이 생각에서 깨어났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다시 한 번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자자, 음식들 식겠네요. 얼른 드십시다.”

대통령이 다시 수저를 들었다.

만찬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사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말단 소방관에 불과한 수혁으로선 끼어들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조차 하지 못할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다행히 그런 사람은 수혁 혼자만이 아니었다.

지양호 역시 코를 박고 음식을 먹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간간이 신재식 정도만 대화에 참여해 자신의 주장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자리가 끝이 났다.

차를 홀짝이던 대통령이 웃으며 참석자들을 돌아보았다.

“오늘 많은 이야기를 나눠서 그런지, 꽤 즐거운 식사 자리였습니다.”

“저희야말로 대통령님과 식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강현성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통령에게 아부성 발언을 했다.

그 말에 대통령은 더욱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닮았네.’

수혁은 두 사람의 미소가 왠지 닮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한 명은 정말로 사람이 좋은 것이고, 다른 한 명은 가면이라는 게 조금 다를 뿐이었지만 말이다.

“조만간 다시 한 번 자리를 마련해 볼게요. 그때도 오늘처럼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아, 그때는 수혁 군이 경험했던 현장의 이야기도 듣고 싶군요.”

“…기회가 된다면 그때 해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화들짝 놀랐지만, 수혁은 침착하게 잘 대답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공식적인 만찬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청와대 상주 기자들은 만찬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몇 시간 후엔 인터넷을 통해 기사가 나갈 것이다.

보통 이런 기사엔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겠지만, 이번엔 좀 다를 것이다.

수혁이 참석했으니 말이다.

“그럼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수고해 주십시오.”

대통령의 인사에 고개를 숙인 참석자들이 만찬장을 빠져나왔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처음 수혁과 일행을 안내했던 여자가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이번에도 안내하기 시작했다.

“체하겠네.”

지양호가 불편한 표정으로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자리가 조금 불편하긴 했지.”

신재식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허허 웃으며 동의했다.

“두 분이 그러면 저는 오죽하겠어요.”

수혁은 진이 다 빠졌다는 표정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인마, 너는 그래도 어? 표창도 받고, 진급도 하잖냐. 그 정도면 백 번쯤 체해도 이득이지.”

지양호가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면 양호 선배가 제 대신 표창 받으시던가요.”

“그건 필요 없고.”

지양호가 키득거리며 대답하다, 여자의 눈총을 받고는 입을 다물었다.

청와대 안에서 대통령 표창을 필요 없다고 했으니, 저런 눈치를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나가서 커피나 한잔하실래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나 좀 더 하다…….”

두 사람과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수혁이 그렇게 말을 하는데, 누군가 끼어들었다.

“그건 좀 미룰 수 있을까?”

강현성이었다.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수혁 쪽으로 다가왔다.

세 사람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수혁과 지양호, 신재식 모두가 강현성에게는 그리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수혁이 딱딱하게 묻자, 강현성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거 섭섭한데, 내가 이래 봬도 청장인데 말이야.”

웃으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은근한 압박이었다.

네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말단 소방관에 불과하고, 자신이 상관이라는.

‘쯧.’

수혁은 속으로 혀를 차고는 고개를 돌렸다.

“먼저 가계시겠어요? 얘기 끝나면 그쪽으로 갈게요.”

수혁의 말에 지양호가 강현성을 슬쩍 노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위치 찍어줄 테니까, 그쪽으로 와라.”

“알겠어요.”

지양호는 강현성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여자에게 이제 가자는 듯 재촉해 자리를 떴다.

“녀석 참, 저흰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도 신재식은 강현성에게 인사한 뒤 지양호의 뒤를 따랐다.

“흠흠.”

지양호의 태도에 기분이 조금 상한 강현성이 헛기침을 하고는 수혁에게 손짓했다.

“우리도 나가지.”

여기는 청와대였다.

아무리 소방청장이라고 한들, 남는 방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다.

“혹시 차 끌고 왔나?”

“예.”

“그럼 자네 차를 타고 가는 게 낫겠군.”

“그렇게 하시죠.”

두 사람은 수혁의 차를 타고 청와대 밖으로 나와 근처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수혁은 대충 커피 한 잔을 시킨 뒤 강현성을 쳐다보았다.

“하실 말씀이라는 게 뭡니까?”

“이렇게 모르는 척할 건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만.”

“홍보 대사 건 말이야.”

수혁은 소방청의 홍보 대사를 맡기로 했었다.

“이제 슬슬 활동해야지.”

“…활동 말입니까?”

홍보 대사라고 해서 뭘 하는지 정확히 알진 못했다.

그저 사진 몇 장 찍어주면 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강현성은 수혁을 고작 그 정도로만 쓸 생각이 없었다.

“일주일 후에 행사가 하나 있네.”

그 말을 들은 수혁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 자리에 자네가 홍보 대사로서 참석을 해줘야겠어.”

‘행사?’

소방관의 날은 오늘이었다.

당연히 전국적으로 소방관의 날 행사가 실시되고 있었다.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준비한 것이었다.

강현성 역시 이제 그런 행사들 중 하나에 참석하러 가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 소방관의 날 행사도 아니고, 다음 주에 있는 행사에 참가하라니?

“무슨 행사입니까?”

“별건 아니고. 11월이 불조심 강조의 달 아닌가? 다음 주에 광주에서 안전 체험 한마당이라는 행사가 열려. 시민들과 아이들에게 소방 안전 체험 교육을 실시하는 행사지.”

“그런데요?”

“자꾸 못 알아듣는 척할 건가?”

강현성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거기에 참가하라는 말이야.”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수혁은 직설적으로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소방 안전 체험 교육.

좋은 의도로 하는 행사인 것은 맞았다.

그런 작은 교육 하나하나가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굳이 수혁이 나서서 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수혁보다는 그것에 익숙한 이들이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게다가 그 행사가 열리는 날은 비번이 아니었다.

근무 날에 홀로 빠져 행사에 참여한다?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거래를 잊은 건 아니겠지?”

강현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수혁을 노려봤다.

“그건 아닙니다만, 제가 그런 자리에까지 반드시 나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홍보 대사의 일은 할 것이다.

사진도 찍고, 소방청 홍보실에서 해달라는 일도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해. 이건 명령이야.”

수혁의 거절에 강현성은 결국 강압적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시작했다.

“하아.”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강현성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거절합니다.”

“…뭐?”

강현성이 당황하며 눈을 크게 떴다.

감히 일개 소방관이, 소방청장인 자신의 명령을 무시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거절을 하다니?

강현성의 입장에선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저 아직 홍보대사 아닙니다. 그런 일 시키시려면 홍보대사 위촉부터 한 후에 시키십쇼.”

수혁은 커피를 한 번에 털어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전 가보겠습니다.”

그러곤 몸을 돌렸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행사는 얼어 죽을.’

마음 같아선 면상에 대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소방청장이었는지라 차마 그렇겐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강현성은 수혁이 자신의 허락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새끼가…….’

강현성의 사람 좋아 보이던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신 그 자리를 수혁을 향한 분노와 적개심이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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