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98화
“일어났냐?”
쾅쾅- 하는 시끄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박상태의 외침이 들렸다.
“네, 일어났어요. 문 좀 그만 두들겨요.”
수혁이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
문밖에선 박상태가 팔팔한 모습으로 수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의 지쳐서 힘들어하던 것이 거짓말 같았다.
‘하여간 이 양반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야.’
박상태의 모습에 수혁이 혀를 찼다.
“뭐야, 아직 준비 다 안 했어?”
“이제 옷만 갈아입으면 돼요. 뭐가 그렇게 급해요?”
박상태가 방안으로 들어오면서 수혁을 재촉했다.
“인마, 다른 애들은 벌써 밖에 집합하고 있어.”
“벌써요?”
수혁이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집합 시간까지는 15분가량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다들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야. 하긴, 이런 상황엔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겠지.”
자신들이 편히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건물의 잔해에 매몰되어 있는 이들은 지옥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맘 편히 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너도 어서 준비해.”
“옷만 갈아입으면 끝난다니까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움직였다.
다들 모이기 시작했다면 늑장을 부릴 수 없었다.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은 수혁이 박상태와 함께 방을 나섰다.
1층으로 내려가자 그의 말대로 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아직 모두 집합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충 보니 거의 모든 사람이 미리 준비를 끝낸 것 같았다.
“현장까진 얼마나 걸려요?”
“차 타고 가면 20분 정도 거리라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교통 상황이 평소랑은 다를 테니까.”
테러로 인해 현장 주변은 엉망진창이 되었을 터.
당연히 교통 상황이 정상적이진 않을 게 분명했다.
수혁은 어젯밤 자신들을 싣고 왔던 버스를 쳐다봤다.
“응? 오늘도 다섯 대를 다 써요?”
“이홍관 씨 말로는 그렇다더라. 아예 우리 전용으로 운행한다더라고.”
“허이고.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텐데.”
수혁은 독일 측의 배려가 고마웠다.
현장에 다녀오고 복귀할 때쯤 되면, 대원들은 녹초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를 위해 조금이나마 편히 이동하라고 고급 버스를 다섯 대나 지원해 주었으니,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해도 되지 않을까요?”
잠시 밖에 서 있는 사이 모든 대원이 집합을 끝냈다.
자신의 팀원들 확인을 끝낸 팀장들이 버스의 탑승을 명했다.
수혁은 빠르게 버스에 타고는 박상태에게 물었다.
“장비들은요?”
“현장에 도착해 있을 거다.”
“현장에요?”
“구조 본부까지 만들어져 있어. 어제 이홍관 씨가 모두 준비를 끝냈다.”
박상태의 말에 수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본인도 피곤할 텐데 지난밤에 쉬지도 않고 일을 한 것이다.
“아니, 같이하지 않고?”
“우리는 오늘부터 개고생이 예약되어 있으니까. 자기가 하루 정도는 고생해야 우리가 편해진다면서 하더라고. 난 말렸지만 말이지.”
이전에도 느낀 것이었지만, 일을 참 잘하는 사람 같았다.
공무원치고는 열심이기도 했고.
버스가 출발했다.
현장으로 이동하는 사이, 수혁은 다른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팀장인 박상태를 제외하면 팀원은 모두 다섯 명.
수혁, 전진형, 현명환, 양희성, 그리고 백진호.
팀원들은 수혁을 보며 신기해했다.
TV와 소문으로만 듣던 수혁과 한 팀이 되어 구조에 나선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항에서의 백진호처럼 사진을 찍자거나 반말하는 등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진 않았다.
그저 악수하며 수혁의 얼굴을 몇 번 더 쳐다봤을 뿐이었다.
수혁은 그런 팀원들이 마음에 들었다.
진중해 보이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 박상태가 장담한 것처럼 실력도 꽤 있어 보였다.
단 한 사람.
백진호만 빼면 말이다.
그는 뭔가 찔리는 것이 있는지 수혁의 시선을 요리조리 피하며, 계속해서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잘 났다고 저리들 난리인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구만.”
헛웃음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정말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고 저러는 건가?’
백진호의 중얼거림을 들은 사람은 수혁만이 아니었다.
아니, 못 들은 팀원들이 한 명도 없었다.
다들 불편한 표정으로 수혁과 백진호를 번갈아 쳐다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장본인인 수혁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데, 자신들이 굳이 나설 순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주 그냥 혼자 무덤을 파네.’
지금 당장은 그냥 넘어간다 해도, 이미 백진호는 안 좋은 인식이 박혀 버렸다.
사소한 인식이었지만, 그것은 두고두고 백진호를 괴롭힐 게 뻔했다.
수혁은 고개를 저으며 백진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지금은 저런 무개념에게 신경쓰고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이제 거의 도착한 것 같은데.’
창밖의 풍경은 숙소 주변과 완전히 달랐다.
어수선하고 복잡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게 확실한 풍경이었다.
“여기서부턴 내려서 간다.”
출발 전 박상태가 한 예상처럼, 도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버스가 조금 전부턴 서서 꼼짝도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상태의 말대로 걸어서 이동하는 것이 훨씬 빠를 듯싶었다.
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밖으로 나갔다.
“음…….”
수혁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저 멀리서 테러의 참혹한 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한 채가 통째로 무너져 있었고, 폭발의 영향 때문인지 주변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수많은 소방관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도 보였다.
‘최소한 백 명은 넘겠네.’
그냥 눈에 띄는 것만 해도 그 정도였다.
시야에 가려져 확인하지 못한 이들까지 합친다면 최소한 수백 명은 저 현장에 있다는 소리였다.
“뉴스로 보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심각한 것 같은데.”
팀원 중 한 명인 양희성이었다.
그는 현장 쪽을 쳐다보며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구조 자체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단순히 건물이 붕괴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지켜보니,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정확한 건 가봐야 알겠군. 이동 시작합시다.”
박상태가 앞장서 걷자, 팀원들이 따랐다.
버스에서 내린 다른 팀의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현장을 향해 다가갔다.
‘후우.’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 참혹했다.
한쪽에서 조금 전에 발견한 것처럼 보이는 시체들이 하얀 천에 뒤덮인 채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향하고 있었다.
최소한 다섯 구.
테러가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난 후라 비명과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보다 가슴 아픈 침묵이 흘렀다.
‘시체만 발견되고 있다더니…….’
생존자가 단 한 명이라도 발견되었다면, 이토록 숨 막히는 침묵이 흐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희망적인 분위기가 넘쳤을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일 때에는, 그런 희망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은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간간이 지시와 명령을 하는 말소리만 들릴 뿐, 모두가 묵묵히 손을 움직일 뿐이었다.
오직 가슴 아픈 비통함만이 현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좋지 않아.”
박상태가 분위기를 읽고는 무겁게 말했다.
“그러게요.”
“살아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 것 같냐?”
박상태가 일말의 기대를 품고 수혁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박상태는 수혁의 능력들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그중 요구조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는 것도.
만약 수혁이 이번에도 그것을 알아낸다면, 지금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조금 더 가까이 가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수혁은 이미 ‘생명감지Ⅲ’ 스킬을 사용한 상태였다.
그리고 몇 명이나 살아 있는지 파악도 끝냈다.
‘미니 맵’은 아래쪽에 파묻혀 있는 요구조자의 위치까지 모조리 수혁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럼에도 수혁은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여덟 명.’
추정 백 명에서 3백 명 사이의 요구조자.
그들 중 살아 있는 사람이 고작 여덟 명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죽었어.’
사상자가 대체 몇 명이나 되는 것일까.
어제 슈미츠가 말했던 사망자와 수혁이 파악한 이들까지 합치면 최소한 2백 명 이상.
많으면 4백에서 5백 명까지 늘어난다.
상상을 초월하는 사상자.
수혁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이건 말 못 해.’
여덟 명이나 되는 생존자가 있다고 밝히면, 과연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희망?’
어림도 없었다.
오히려 절망에 빠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래서 수혁은 입을 다물었다.
절대로 자신이 안 것을 말할 수 없었다.
수혁은 더없이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구조 본부가 만들어진 곳을 향해 갔다.
“수혁!”
그곳에선 율리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며칠 사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한 것인지, 율리안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율리안.”
수혁은 율리안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율리안은 수혁이 내민 손을 잡는 대신 두 손을 벌려 안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수혁이 당황하는데, 율리안의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나 지쳤으면…….’
율리안의 떨림은 체력의 한계 때문이었다.
고작 손을 들어올리는 행동 하나도 힘에 부쳐 몸이 떨려온 것이다.
수혁은 몸을 빼내려다 가만히 율리안을 안아주었다.
그것으로 율리안이 위안 삼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줄 용의가 있었다.
율리안은 잠시 동안 수혁을 안은 채 가만있다 한숨을 내쉬며 팔을 풀었다.
“이렇게 와주어서 고맙다.”
율리안의 말에 수혁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 어떤 말을 해도 율리안에게 위안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수혁은 그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피해가……. 그러니까 지금까지 피해가.”
“이미 들었어요, 율리안.”
수혁이 더는 말하지 말라는 듯, 율리안의 입을 막았다.
“수고 많았어요. 그러니 조금 쉬세요. 이제부턴 저희가 맡을 테니까.”
수혁은 그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탁한다.”
율리안은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수혁과 대원들에게 부탁했다.
그러곤 자신의 부하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어딘가로 이동했다.
더는 버틸 힘이 없어 보였으니,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쉼터에서 휴식을 취할 것으로 보였다.
“장비 착용해.”
옆에 서서 율리안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박상태가 명령했다.
구조 본부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장비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홍관이 어찌나 꼼꼼히 준비했는지, 전혀 어수선해 보이지 않았다.
수혁은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곳으로 가서 장비들을 착용했다.
화재 현장이 아니었으니 방화복은 필요 없었지만, 다른 장비들이라고 해서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수혁은 그 무거운 장비들을 메며, 더욱 무거운 마음을 다스렸다.
‘……고작 여덟 명?’
아니다.
수혁은 마음을 바꿨다.
얼마 전 톰과의 대화에서 느끼지 않았던가?
‘여덟 명이나 있다.’
수혁은 그 여덟 명 중 단 한 명도 잃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절대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