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00화
처음엔 잘못 들은 것인 줄 알았다.
그만큼 미약한 소리였다.
그런데 옆에 있는 박상태의 표정을 보니, 수혁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생명감지Ⅲ’로 확인한 요구조자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수혁이 조금만 시간을 지체해도 생명을 잃을 것이라 확신했겠는가?
시간을 많이 단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쯤이면 의식이 없는 상태였어야 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도 작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였지만…….
간절하다 못해 처절하게까지 느껴지는 구조 요청.
그것을 들은 수혁은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나이는 십대 중반. 여자아이고, 상태가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들려오는 작은 음성을 가지고 유추한 사실이었다.
박상태는 그 정도까지 잘 들리지는 않았는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얼마나 걸릴까?”
저 작은 음성이 들려올 정도라면 남은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위험해.’
수혁의 눈에는 온통 붉은색 투성이었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속도만을 생각해 잔해들을 파헤치며 내려온 탓에 주변의 기반이 그리 튼튼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자칫 잘못했다간 그대로 붕괴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더욱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수혁 혼자라면 상관없었다.
아니, 박상태까진 어떻게든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여기서 붕괴가 일어나면, 자신과 박상태는 몰라도 요구조자는 100%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이제부터는 저 혼자 움직일게요.”
“……뭐? 시간 별로 없다며?”
“그렇긴 한데, 어쩔 수 없어요.”
박상태의 실력을 못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주변은 말 그대로 지뢰밭이나 다름없었다.
돌멩이 하나만 잘못 건드려도 끝장이었다.
수혁은 그런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서두른 덕분에 시간도 많이 단축되었으니, 이제부터라도 조심스럽게 구조를 진행해도 될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해.’
박상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봐도 이 주변은 위험했다.
지금까지 잔해들을 치우면서도 몇 번이나 아슬아슬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만약 수혁의 경고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무너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때도 수혁은 혼자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 걸 보면 지금부턴 정말로 위험한 것 같았다.
“그래, 알았다.”
박상태가 허락하자, 수혁은 ‘미니 맵’과 ‘위기감지Ⅲ’ 스킬을 연동해 주변의 위험 요소들을 일목요연하게 살폈다.
어디를 건드리면 위험한지, 어떤 것을 치워도 괜찮은지.
그리고 최대한 빨리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1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수혁은 이 주변을 모조리 파악했다.
‘시작은 여기부터.’
수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엠마는 미소를 지었다.
얼굴의 근육이 마음처럼 움직이질 않았지만, 그래도 애써 웃으려고 노력했다.
‘구조대야. 구조대가 틀림없어.’
혼신을 다해 소리 지르자, 뭔가 화답이 왔다.
엠마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최소한 그들이 자신을 구하러 온 구조대라는 사실은 인지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나갈 수 있어.’
엠마는 희망을 품었다.
다시 엄마와 동생을 볼 수 있었다.
학교를 나가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도 있었고, 이루지 못한 꿈을 계속 키울 수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는 검은 공간에서, 꺾이고 짓밟혀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졌던 희망이.
다시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간신히 버텨왔던 정신이 약간의 안도와 함께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의식이 조금씩 흐려지고, 몸이 나른해졌다.
이대로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잠에 들 것만 같았다.
‘안 되는데.’
본능적으로 지금 잠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는 엠마는 잠을 몰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한 번 찾아온 수마(睡魔)는 빠르게 엠마의 정신을 잠식했다.
‘안…….’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며칠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빵 한 조각 먹지 못했다.
그뿐인가?
여기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이지 못하는 공간이다.
그런 지옥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수혁이 놀라워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열일곱 살 소녀의 연약한 체력과 정신은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더는 버텨낼 수가 없었다.
결국 엠마의 몸에서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엠마는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잠이 들었다간,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렇게 엠마는 두려움 속에서 천천히 의식의 끈을 놓았다.
“괜찮으십니까!”
번쩍-!
엠마의 감겼던 눈이 떠졌다.
‘불빛…….’
남자의 다급한 음성과 함께 엠마의 눈에 불빛이 들어왔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생명의 빛이었다.
***
“괜찮으십니까!”
수혁이 소리를 질렀다.
예상했던 대로 요구조자는 십대 중반의 소녀였다.
‘좋지 않아.’
한눈에 봐도 의식 상태가 불명확했다.
눈을 뜨고는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고, 탈수와 부상 역시 심각한 수준이었다.
‘의식이 거의 없다.’
수혁은 엠마의 눈동자를 보고는 그렇게 판단했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이송해야만 했다.
“상태 형!”
수혁이 박상태를 불렀다.
하지만 박상태는 이미 엠마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무전을 치는 중이었다.
“요구조자 발견, 요구조자 발견. 의식 저하, 탈수, 부상이 심……. 젠장, 들것 갖고 내려와!”
요구조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던 박상태가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일단 구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 몇 분만 더 참으면 돼.”
그사이 수혁은 엠마를 덮고 있는 잔해들을 조심스럽게 치워내며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수혁은 자책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위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이었다.
수혁조차도 위험한 순간을 몇 번이나 넘겼을 정도였다.
그때마다 ‘위기감지Ⅲ’가 발동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엠마를 발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수혁은 계속해서 말을 걸어보았지만, 엠마에게선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분명 의식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다.
불빛에 따라 약하지만 동공 반응도 있었고, 작게나마 입술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너무도 지친 탓에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수혁과 박상태가 들었던 미약한 절규.
아마도 그것이 엠마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힘이었던 것 같았다.
“죽으면 안 돼. 나가서 부모님도 만나고 해야…….”
순간 수혁의 입이 다물어졌다.
잔해를 치우고 있던 움직임도 멈추었다.
‘……손?’
상체를 덮고 있던 잔해를 걷어내자, 누군가의 손이 엠마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수혁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설마?’
속으로 제발 아니길 빌었다.
“요구조자 한 명 더 발견했습니다.”
“한 명 더?”
박상태가 깜짝 놀라며 수혁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박상태도 보았다.
차갑게 식어 있는 손을 말이다.
“요구조자 한 명을 추가 발견했다.”
아마 죽었을 것이다.
아니, 분명히 죽었다.
손을 제외하고 신체를 모두 덮고 있는 잔해들을 치우면, 숨쉬지 않는 희생자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박상태는 요구조자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살아 있을 수도 있잖아.”
수혁이 쳐다보자 박상태가 변명하듯 말했다.
“구하죠.”
수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엠마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도 꺼내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낸 여자는 엠마와 똑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와 먼지가 뒤덮여 있는 상태였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그리고.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이 아이의 어머니인가?’
폭탄이 터지고,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잔해들이 쏟아져 내리며 몸을 덮치는 순간에도.
마지막 숨을 내뱉으며 목숨을 잃는 그 순간까지도.
어머니는 딸의 손을 놓지 않은 것이다.
‘하아.’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당시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
수혁은 조심스럽게 엠마와 어머니를 잔해 속에서 빼냈다.
“들것입니다!”
그사이, 위쪽에서 박상태의 무전을 들은 대원들이 들것에 줄을 묶어 아래쪽으로 내려보냈다.
“아이부터.”
당연한 말이었지만, 이미 숨이 멎은 사람보다는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우선이었다.
수혁은 엠마의 육체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엠마를 잡고 있는 손이 풀리질 않았기에, 수혁이 천천히 풀었다.
굳어버린 손가락을 폈다.
‘얼마나 놓치고 싶지 않았으면…….’
하나하나 손가락이 펼쳐질 때마다 수혁은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마치 자신이 모녀를 떼어놓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딸을 살리기 위해선 손을 놓아야만 했다.
수혁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어머니의 손가락을 모두 풀었다.
다시 엠마를 들었다.
주르륵-
“출혈이 심합니다.”
몸을 압박하던 잔해가 사라지자, 막혀있던 피가 터져 나왔다.
덕분에 엠마의 눈동자가 빠르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더 늦으면 쇼크 온다. 빨리 올려!”
엠마의 상태를 확인한 박상태가 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들것이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심, 조심!”
혹여나 들것이 부딪혀 충격이 갈까, 대원들은 조심스럽게 들것을 끌어 올렸다.
“우리도 올라가죠.”
“……이분은?”
박상태가 희생자를 가리켰다.
“제가 업고 올라가겠습니다.”
“뭐? 굳이 왜?”
들것으로 옮기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안전했다.
장비가 없는 것도 아니고, 굳이 이렇게 업어서 옮길 이유가 없었다.
수혁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요.”
박상태가 그런 수혁을 가만히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옮겨라.”
수혁이 왜 직접 하려는지 알 것도 같았다.
다른 대원들이었다면 웃기지 말라며 머리를 쥐어박았겠지만, 수혁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었으니 반대하지 않았다.
수혁은 어머니를 등에 업었다.
말라붙은 피와 먼지가 잘게 부숴서며 수혁의 등에 묻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따님에게 데려다 드릴게요.’
죽어서까지 딸의 손을 놓지 않은 어머니.
그녀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딸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어머니를 등에 업은 채 위로 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위로 올라간 수혁이 주위를 쳐다보았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첫 번째 생존자 구조.
그 소식을 들은 대원들이 달려온 것이었다.
한국 대원들은 물론이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독일과 유럽의 소방관들까지 모두 모인 것 같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선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어 이쪽을 촬영하고 있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생존자가 구조되었으니, 기쁠 만도 했다.
하지만 수혁은 그 기쁨에 동참하지 않았다.
대신 옆에 있는 구조대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방금 구조된 아이의 어머니인 것 같습니다.”
수혁의 말에 환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던 대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딸의 곁에 있을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