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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01화 (301/425)

레스큐 시스템 301화

“알겠습니다.”

구급대원은 수혁의 말을 듣고는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며칠 동안 그가 직접 구급차로 이송을 한 희생자들의 시체가 20구가 넘는다.

하지만 도무지 무뎌지질 않았다.

그것은 20구가 아니라 2백 구가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수혁은 구급대원에게 정중히 부탁하고는 몸을 돌렸다.

“다시 움직이죠.”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를 얹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아직 저 밑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요구조자가 일곱 명이나 남았으니까.

‘오늘 하루에 다 구하는 건 힘들 것 같은데.’

수혁은 하루든, 이틀이든 휴식을 취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대원들은 아니었다.

박상태만 하더라도 벌써 기진맥진한 표정이었다.

물론 수혁과 함께 보조를 맞춰 움직였기 때문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체력에는 자신이 있는 그가 벌써 지쳤을 정도였으니.

앞으로 장시간 구조 작업은 무리인 것 같았다.

‘그건 일단 나중에 생각해야겠다.’

정 안되면 다른 나라의 대원들과 연계해서 작업을 이어나가는 방법도 있었다.

언어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이제는 수혁이 영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다음은 어디냐?”

박상태가 다가오며 수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음, 잠시만요.”

수혁은 한쪽에 마련된 보급품들로 향했다.

독일 정부와 시민들이 보낸 구호 물품과 지원 물품들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많기도 하다.’

물품들이 쌓여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작은 산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수혁은 거기서 물 한 병을 꺼내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확히는 땅속을.

‘급한 사람부터 구조해야 돼.’

아직 살아 있는 일곱 명의 요구조자 중 위험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 수혁은 그중에서도 우선순위를 선택해야만 했다.

‘이 사람은 조금 더 버틸 수 있겠다.’

‘여기는 도움이 조금 필요할 것 같은데?’

수혁은 요구조자들의 생명 징후와 주변 상황을 고려해 다음 구조할 요구조자를 선택했다.

기다려야 할 다른 사람들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요구조자를 선택한 수혁은 대충 구조 계획을 생각한 뒤 박상태와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이번엔 여기예요.”

박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다른 곳과 이곳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겠지만, 수혁이 골랐으니 그러려니 했다.

“시작하죠.”

수혁이 움직였다.

* * *

“벌써 세 명째랍니다.”

“……몇 명?”

부하의 보고를 받은 율리안이 헛웃음을 지었다.

“오늘 하루, 한국에서 온 지원팀이 세 명의 요구조자를 구조했습니다.”

“음.”

율리안은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 명이라니…….’

율리안과 그의 부하들은 이틀간 단 한숨도 자지 않고 구조에 매진했다.

그동안 발견한 것이라곤 모두 숨이 끊어진 희생자들뿐.

한 명의 요구조자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교대하고 휴식을 취한 여덟 시간.

고작 그 여덟 시간 사이에 세 명이나 구조해 냈다.

“역시나라고 해야 하나.”

율리안이 독일 당국에 한국의 지원을 강력하게 요구한 이유는 바로 수혁 때문이었다.

그가 아는 수혁이라면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리 경고도 해줬었지.’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란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수혁이 지원을 와준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잠깐 자고 일어난 사이 세 명이나 구조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역시라니요?”

율리안의 말을 들은 부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율리안은 대충 말을 돌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국 지원팀은 지금 어딨지?”

“아직 현장에서 구조 중입니다.”

“이제 슬슬 교대해야겠군. 애들보고 준비하라고 전달해.”

“알겠습니다.”

독일 소방관들은 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동하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해,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씻지도 않은 채 잠에 든 것이다.

주위는 소음으로 시끄러웠지만, 피곤에 찌든 그들은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군.”

일어나서 몸을 풀던 율리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숨 푹 잔 덕분에 피로가 조금 가시긴 했지만, 아직 육체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독일에서도 괴물이라 불리는 율리안이 그 정도였으니, 다른 대원들의 상황은 안 봐도 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수혁에게 모두 맡길 순 없지.”

율리안은 빠르게 제복으로 갈아입고는 밖으로 나왔다.

해가 조금씩 지고 있었다.

“대장!”

율리안을 본 부하 한 명이 뛰어왔다.

“얘기 들었습니까?”

“요구조자를 구조했다는 거라면 이미 들었다.”

“어? 벌써 말입니까?”

부하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한국 지원팀이 세 명이나 구했다면서. 우리도 쉬고 있을 틈이 없다. 얼른 식사하고 다시 투입…….”

“세 명이 아닙니다.”

말을 하던 율리안이 입을 다물었다.

“방금 한 명을 더 구조해서 총 네 명을 구조했답니다.”

율리안의 입은 열릴 줄을 몰랐다.

* * *

“율리안.”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수혁이 율리안을 반겼다.

“고맙다.”

율리안은 수혁에게 곧장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아니, 왜 그래요?”

그 모습에 수혁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덕분에 네 명의 소중한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구조된 요구조자들의 소식을 들었다.

네 명 모두 심각한 탈수와 부상을 입긴 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란 소식이었다.

그것을 들은 율리안은 바로 수혁에게 달려왔고, 감사를 전했다.

“그렇게 인사받을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한 것뿐이니까요.”

“그래도 고맙다.”

율리안은 수혁의 사양에도 계속해서 감사인사를 했다.

“이제부턴 우리에게 맡겨라.”

수혁은 조금 괜찮아 보였지만, 주위에는 다른 한국 대원들이 바닥에 널브러지듯 쓰러져 있었다.

머나먼 독일까지 날아와 아직 시차에 적응하기도 전에 고강도 작업을 했으니 지칠 만도 했다.

“그렇게 하죠.”

수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요구조자의 수는 네 명.

그들의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힌트를 조금 준다면 내일 저녁쯤에는 모두 구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체력을 비축해 둬야 해.’

이 현장의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재난이 몰려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체력을 아껴야만 했다.

만약 수혁이 없어 구조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끝까지 함께 해야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다.

“이쪽을 중점적으로 수색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수혁이 미리 준비한 지도를 꺼내 건네자 율리안이 고개를 갸웃하며 살폈다.

“이게 뭐지?”

“조금 쉬면서 생각해 본 거예요. 그 지점에 생존한 요구조자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어떻게?”

그걸 확신한단 말인가?

수혁은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믿으라는 눈빛만을 보냈을 뿐이었다.

수혁의 눈빛을 본 율리안도 입을 다물었다.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가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은 이틀간 단 한 명의 요구조자도 구하지 못했지만, 수혁은 네 명을 구조했다.

고작 여덟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말이다.

그것만 봐도 수혁의 말을 따라볼 이유는 충분했다.

“알았다. 네 말대로 이곳들을 집중적으로 수색해 보겠다.”

율리안이 지도를 품속에 소중히 넣었다.

“그럼 이제 교대하도록 하지. 숙소로 돌아가 쉬어라.”

“내일 아침에 다시 오면 될까요?”

본래 일정에 관한 얘기는 팀장급과 하는 것이 맞았지만, 율리안은 수혁과 의견을 조율했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 지원팀의 대표는 바로 수혁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내일은 조금 더 쉬다 나와도 될 것 같다.”

“그럴 여유가 있어요?”

엄청난 숫자의 소방관들이 투입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모두 지친 상태였다.

조금 쉬었다고 체력이 완벽히 회복되었을 리가 없었다.

반면 한국 지원팀에게 주어진 휴식 시간은 꽤나 길었다.

지금부터 내일 아침까지였으니까.

그런데 더 쉬어도 된다니?

“내일 아침에는 일본 지원팀이 오기로 했다.”

“아…….”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슈미츠가 오늘 일본 지원팀을 맞이하러 공항에 간다고 했었다.

“한국의 대원들도 많이 지쳤을 테니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내일은 저녁 식사 후에 출발해도 충분하다.”

율리안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수혁을 제외한 다른 대원들은 녹초가 되어 있었으니, 긴 휴식은 앞으로의 일에 많은 도움이 될 터였다.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전달할게요.”

율리안은 수혁과 악수를 나누고는 몸을 돌렸다.

이제 다시 생명을 구하기 위한 사투를 벌일 시간이었다.

“아, 율리안.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요.”

그때 수혁이 율리안을 다시 불렀다.

“무슨 부탁이지?”

율리안은 수혁의 부탁이라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해줄 생각이었다.

아니, 자신이 불가능하다면 위쪽을 쪼아서라도 어떻게든 들어주겠다는 표정이었다.

“어, 심각한 건 아닌데요.”

수혁이 귀찮다는 기색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 양반들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될까요?”

율리안이 수혁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수십 명의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기자들 말이군.”

“네. 아무래도 좀 귀찮아질 것 같아서요.”

기자들은 처음 한국 지원팀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물론 독일의 직접적인 부탁을 받고 지원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호기심은 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들이 네 명을 구조했다.

이틀간 독일과 유럽의 연합 구조팀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에서 온 구조대원들이 해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구조의 중심에 있는 대원이 얼마 전 미국에서 테러를 막은 영웅이란다.

게다가 예전에 독일의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언론에서 흥분할 수밖에 없는 소재였다.

때가 때인지라 막무가내로 마이크를 들이밀며 인터뷰를 요청할 순 없었지만,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수혁을 주시했다.

그것을 눈치챈 수혁이 율리안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알았다. 저들은 내가 처리하지.”

“고마워요.”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이야기해라.”

“그럴게요.”

수혁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기자들은 갑자기 출동한 경찰들에 의해 통제되기 시작했고, 수혁과 일행은 버스에 올라타 숙소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한 수혁은 로비에 모여 있는 일단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교관님!”

수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슈미츠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수혁은, 저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일본 구조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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