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02화
수혁의 예상대로, 로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정체는 바로 일본에서 파견 나온 구조대였다.
‘생각보다 적은데?’
로비에 있는 일본 구조대의 숫자는 삼십여 명에 불과했다.
“교관님, 수고하셨습니다.”
수혁이 그들을 관찰하고 있는 사이 슈미츠가 다가와 인사했다.
그가 공항에서 일본 구조대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이, 한국 구조대는 구조 작업을 했다.
심지어 그사이 네 명이나 구했다는 뉴스도 봤다.
슈미츠는 수혁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수고는 무슨.”
수혁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조용히 물었다.
“일본 구조대는 저분들이 전부인가?”
해외에 파견을 보낸 구조대치고는 인원이 너무 적었다.
하루 만에 구조대를 결성해 파견한 한국보다도 적은 수였으니, 의문을 가질 만했다.
“아, 총 120명입니다. 한 번에 모두를 수용할 숙소가 없어서 세 군데에 분산시키는 바람에…….”
“아.”
그럴 만도 했다.
이 근처의 호텔과 숙소들은 이미 지원 온 다른 구조대들과 실종자 가족들로 꽉 들어차 있었을 테니까.
120명이나 되는 대인원이 머물 수 있는 숙소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제 이곳도 풀로 찼습니다.”
“그렇겠군.”
자신들만으로도 이 작은 숙소는 거의 꽉 찼다.
독일의 배려로 모두 1인 1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이제 일본 구조대들도 사용한다니, 슈미츠의 말대로 남은 방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알았다. 이제 우리는 가서 쉬어야겠다.”
수혁이 슈미츠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뒤에선 대원들이 지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궁금해서 듣고 있기는 했지만, 솔직히 방으로 가서 씻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 보였다.
“그렇게 하시죠.”
슈미츠가 죄송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각 팀장급 대원들은 자신의 팀원들을 방으로 올려 보냈다.
수혁 역시 방으로 향하려는데 누군가의 음성이 발목을 붙잡았다.
“한국에서 지원 나온 분들이십니까?”
수혁에게 직접 한 질문은 아니었다.
질문을 받은 것은 바로 박상태였다.
“그렇습니다.”
“많이 지쳐 보이시는군요. 현장이 많이 곤란합니까?”
수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가 일부러 박상태를 지목해 질문한 것을 눈치챈 것이다.
박상태는 오늘 하루 종일 수혁의 뒤를 따라다니며 자신의 한계를 경험했다.
거의 탈진 직전의 상황까지 간 것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수혁처럼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은 건너뛰고 박상태를 붙잡아 물었다.
이건 왠지 악의가 섞여 있는 행동 같았다.
수혁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박상태 쪽으로 돌아갔다.
“상태 형.”
수혁의 음성에 박상태가 돌아봤다.
“제가 맡을게요. 형은 들어가서 쉬세요.”
수혁이 한국말로 그렇게 말하자, 박상태가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서 있는 것도 힘들었지만 마냥 무시할 수도 없어 대답해 주고 있었는데, 수혁이 대신해 준다면 바랄 것이 없었다.
“그래, 부탁 좀 하자.”
박상태는 질문하던 일본인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곧장 위로 올라가 버렸다.
“궁금한 것 더 있으십니까?”
수혁이 정중하게 물었다.
아무리 일본에 그리 좋지 못한 감정을 품고 있다고 하지만, 이들은 머나먼 타국까지 사람들을 구하러 온 이들이었다.
그러니 초면에 그런 감정을 내보일 이유가 없었다.
일본인은 가만히 수혁을 쳐다보다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김수혁 씨입니까?”
“그렇습니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일본인은 신기하다는 기색으로 수혁을 훑어봤다.
“생각했던 것보단 왜소하시군요.”
그 말에 수혁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게 그쪽이 할 소리인가?’
누가 봐도 일본 쪽 대원들보다 수혁의 키나 덩치가 월등하게 컸다.
당장 눈앞에 있는 그보다 수혁이 주먹 두 개 정도는 키가 컸으니까.
수혁이 황당해하는 표정을 짓자, 일본인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저 제가 상상해 왔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러고는 자신의 소개를 했다.
“저는 이번 파견 구조대의 책임을 맡고 있는 이와타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김수혁입니다.”
이와타가 손을 내밀자 수혁은 조금 찜찜한 표정으로 그 손을 마주 잡았다.
“한국에선 어제 도착했다고 들었는데, 구조에 진전이 있었습니까?”
아무래도 공항에서 바로 숙소로 오는 바람에 현장의 소식을 알지 못하는 듯했다.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그거 다행이군요.”
이와타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지금 현장 상황은 어떻습니까? 다들 지쳐 보이는 것이, 꽤나 안 좋은 상황 같은데.”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자세한 건 저에게 듣는 것보다 직접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아무리 말로 해봐야 직접 보기 전에는 현장이 얼마나 처참한지 실감할 수 없었다.
수혁도 그랬으니까.
“뭐, 그게 나을 수도 있겠군요.”
“더는 질문 없으시면 이만 올라가고 싶습니다만.”
별다른 영양가도 없는 대화를 지속하기보단, 방으로 돌아가 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이거 피곤하신 분을 앞에 두고 괜히 귀찮게 만들었군요. 죄송합니다.”
가장 좋았던 건 죄송스러운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겠지만, 이제 와서 그것을 따지는 것도 우스웠기에 수혁은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며 몸을 돌렸다.
“그럼 전 이만.”
“내일은 저희에게 맡기고 푹 쉬십시오.”
그러면서 ‘하하하!’ 하며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수혁은 그것을 뒤로한 채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교관님,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옆에서 대화를 지켜만 보고 있던 슈미츠가 냉큼 따라붙었다.
“오버하지 마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몇 층만 올라가면 되는 것을 무슨 안내란 말인가?
그래도 수혁은 슈미츠를 보내지 않았다.
그의 표정에서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저 사람들 말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슈미츠가 입을 열었다.
“누구? 일본 사람들?”
“느낌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 말에 수혁이 슈미츠를 쳐다봤다.
“무슨 말이지?”
“이곳으로 오는 동안 그들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120명이나 되는 대인원이었기에 버스도 여러 대를 운행했다.
슈미츠는 그중 자신을 책임자라고 소개했던 이와타가 탄 버스에 탑승했다.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해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만…….”
분명 수혁의 이름이 여러 번 언급되었다.
“그리고 교관님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웃음이 터졌는데, 그게 마치 비웃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혁이 혀를 찼다.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지원 요청을 하지도 않은 일본이 갑자기 뜬금없이 파견을 결정한 것이 이상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나 때문인 것 같은데…….’
현재 일본은 빠른 속도로 우경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은 이전 생만큼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충분히 주변국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런 일본에서 한국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었다.
일본은 그 누구보다 한국을 발밑에 두고 싶어 하는 국가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한국에서 김수혁이라는 소방관이 영웅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았고, 특히나 얼마 전에는 미국에서 그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일본은 수혁이 영웅으로 불리는 것이나, 미국의 명예시민이 된다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한국인이 해낸 일이라면 자신들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확률이 높았다.
‘한심하기는…….’
수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슈미츠에게 말했다.
“신경 꺼라.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것에 신경쓸 정도로 좋은 상황이 아니야. 그 시간에 어떻게 사람들을 더 구할 수 있을지 고민해.”
“알겠습니다.”
슈미츠는 수혁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듯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수혁이 내리자, 슈미츠가 따라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수혁은 그를 다시 밀어 넣으며 말했다.
“너는 바로 현장으로 가서 율리안을 도와. 그쪽은 지금 손 하나가 아쉬운 상황일 테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그래, 수고해라.”
수혁은 홀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흙먼지가 몸에 가득 묻어 있었기에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좀 씻고 한숨 자자.’
찝찝함을 얼른 털어버리고 싶었다.
옷을 벗자 묻어 있던 흙먼지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며 방이 엉망이 되었다.
‘화장실에서 벗을 걸 그랬나?’
수혁은 살짝 후회했지만, 이왕 벌어진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옷을 모두 벗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하고 나온 수혁이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찝찝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본이라…….”
바로 일본이란 존재 때문이었다.
이전 생에서 일본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짓들을 많이 벌였다.
공중파 방송에서 타국을 깎아내리며 혐오 발언을 하는 것은 이상한 축에도 끼지 못했다.
혐한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길거리에서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등.
비상식적인 것이 일상이 되어갔다.
특히나 한국이 잘되는 꼴을 도저히 볼 수 없다는 듯 경제와 정치, 심지어 문화 예술 방면에까지 나서서 딴지를 걸어댔다.
덕분에 한국 내의 반일 감정이 극도로 치솟아 올랐다.
양국의 사이는 점점 파국으로 치달으며 종국에는 일본과 국교 단절을 하자는 국민 청원까지 올라올 지경이었다.
수혁은 그런 시대를 살다 과거로 돌아왔다.
당연히 일본에 좋은 감정을 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수혁이 생각하기엔, 저 일본의 구조대도 뭔가 목적이 있어 파견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상관없나?’
솔직히 일본이 무슨 짓을 꾸미든, 그것이 수혁에게 문제가 될 가능성은 낮았다.
그렇다면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앞으로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고, 120명이라는 인원은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상관없었다.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말이지.”
일본이 수혁에 대한 질투심을 갖든, 아니면 적개심을 갖든.
그것을 원동력으로 삼아 더욱 열심히 해준다면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좋다.
수혁에게 지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테니까.
수혁이 곡괭이질을 한 번 하면 그들은 두 번 할 테고, 돌을 하나 옮기면 그들은 두 개를 옮길 것이다.
“속도가 더 붙겠네.”
본래 수혁은 내일 저녁때쯤, 구조 작업이 완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일본까지 가세했으니, 조금 더 빠른 구조가 가능할 것 같았다.
‘이걸 이용하면 다음 테러 현장에서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겠어.’
피식-
수혁은 웃으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