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04화
“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수혁의 갑작스런 외침에 박상태가 당황했다.
“설명은 나중에! 일단은 구조 준비부터 해요!”
수혁은 그렇게 말하곤 곧장 장비들을 모아둔 천막으로 뛰어갔다.
“젠장.”
박상태가 얼굴을 찌푸리며 수혁의 뒤를 따라 달렸다.
“어? 교관님!”
천막에 도착한 수혁을 누군가 반겼다.
“슈미츠.”
그리고 다니엘.
천막 옆에는 수혁에게 교육을 받았던 그 두 사람이 장비들을 챙겨 든 채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아니, 벌써 나오셨습니까?”
슈미츠가 반가운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교관님과 같이 행동하고 싶었는데 잘됐군.’
슈미츠는 수혁의 팀에 섞여 구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제 일본 구조팀을 마중 나간 사이 이미 대원의 배정은 끝난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일본 구조팀에 섞여 구조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수혁이 빨리 왔으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잠깐 대기해라.”
수혁은 마침 잘됐다고 생각을 하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대체 무슨 일인데?”
박상태가 장비들을 챙기며 수혁에게 물었다.
“요구조자가 위험해요.”
“…어느 정도나?”
“지체해선 안 될 정도로. 지금 당장 작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잃을 수도 있어요. 아니, 분명 잃을 거예요.”
수혁의 말에 박상태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수혁이 저렇게 말을 할 정도면 정말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박상태가 더는 질문을 하지 않고, 준비하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수혁과 박상태는 순식간에 준비를 끝내고는 천막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슈미츠와 다니엘이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멀뚱히 수혁을 쳐다봤다.
“따라와. 지금 바로 구조에 들어간다.”
“자, 잠시만…….”
다니엘이 그런 수혁을 만류했다.
“지금은 일본 구조팀이 작업하는 중입니다. 사전에 조율이 되지 않으면 현장에 혼동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각자 구역과 역할을 나누어 계획대로 구조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 수혁이 갑자기 끼어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딴 건 나중에 생각해.”
하지만 수혁은 다니엘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요구조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황에 그런 건 신경쓸 가치도 없는 사소한 문제였다.
다니엘은 조금 머뭇거렸지만, 수혁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물론 슈미츠는 처음부터 그런 고민 따윈 하지도 않고 있었고.
수혁은 박상태, 슈미츠, 다니엘을 데리고 요구조자가 매몰되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이거, 김수혁 씨 아니십니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을 텐데, 벌써 오셨군요.”
이와타였다.
그는 왜 벌써 현장에 나왔냐는 듯한 표정으로 수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조금 일찍 눈이 떠져서. 그리고 시간이 문제겠습니까?”
어차피 이곳에 모인 지원팀들의 목적은 단 하나다.
바로 사람을 구하는 것.
그 지상 과제 앞에선 그 어떤 것도 우선할 수가 없었다.
“뭐, 그렇긴 합니다만…….”
왠지 이와타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수혁의 행동을 막을 수 있는 명분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수혁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자신을 쫓는 이와타의 시선이 느껴졌다.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수혁은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서둘러야 해.’
이와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요구조자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하, 젠장.”
요구조자가 있는 위치에 도착한 수혁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분명 수혁은 어제 율리안에게 요구조자들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를 건네주었다.
그곳들을 최우선 적으로 수색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색한 흔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제 작업한 독일 구조팀의 것이었다.
율리안이 일본 구조팀에게 수색 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음에도, 지금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무시한 건가?’
그럴 확률이 높았다.
율리안의 정보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었다.
‘아니,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지금 이 자리에 아무도 없다는 것.
그 말은 곧,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여깁니까?”
수혁이 움직임을 멈추자, 슈미츠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래.”
“저흰 뭘 하면 됩니까?”
슈미츠의 물음에 수혁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일단 파.”
생각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았지만,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일단은 최대한 빠르게 잔해들부터 치워내야만 했다.
‘오늘 능력을 보여야 할지도 모르겠어.’
의혹 섞인 시선을 받고 귀찮은 일이 발생하는 것이, 사람을 잃는 것보다 낫다.
슈미츠와 다니엘은 수혁의 말에 곧장 잔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곡괭이로 커다란 잔해들을 부수고,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위한 길을 만들었다.
수혁과 박상태 역시 일을 거들었다.
“여유 시간은?”
“최소한 30분 내로 구조해야 돼요.”
“…가능해?”
30분이라니.
어제 엠마를 구하는데 걸린 시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았다.
독일 구조팀이 어느 정도 수색을 진행시킨 상태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걸릴 것 같냐?”
박상태가 진지하게 물었다.
“이 속도라면 아무리 빨라도 두 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미친…….”
박상태는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들어올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방법은 있고?”
“글쎄요.”
중장비를 투입한다면 30분이 아니라 10분만으로도 충분했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몇 가지 방법이 있긴 했다.
수혁이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바로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수혁의 힘과 체력이라면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시킬 수 있었다.
다른 세 사람이 합심해서 수혁을 도울 테니, 그 시간은 더욱 짧아질 것이다.
두 번째로 생각한 것은 바로 일본 구조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120명에 달하는 인력.
그 사람들이 모두 한 번에 이곳을 도울 순 없겠지만, 최소한 열 명 정도의 인력만 붙여준다면 그 속도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과연 일본이 도와줄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도움을 줄 것이다.
그들도 사람을 구하러 온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전 생에서 일본의 만행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수혁은, 쉽사리 그들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
‘가장 좋은 건 일본의 도움을 받으면서 내 능력도 함께 사용하는 거지.’
그렇게 되면 30분 내로 충분히 요구조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수혁은 일단 일본 구조팀에게 말이라도 꺼내보기로 결정했다.
“다니엘.”
수혁이 다니엘을 불렀다.
곡괭이를 내려치려던 다니엘은 수혁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일본 애들한테 가서 지원 좀 받아와라.”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이 아래에 요구조자가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자신들만으로 작업하는 것보단, 일본의 도움을 받는 편이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몇 명이나 붙여달라고 하면 됩니까?”
머리가 좋은 다니엘은 순식간에 수혁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물었다.
“최소한 열 명. 더 많으면 좋긴 하겠지만, 그 정도면 충분해.”
“알겠습니다.”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든 곡괭이를 내려놓고는 일본 구조본부 쪽으로 뛰어갔다.
“걔들 오면 가능할 것 같아?”
“안 돼도 되게 해야죠.”
수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다니엘은 수혁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일본 구조 본부에 들어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구조 본부 안에서 지휘하고 있던 이와타가 다니엘을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원이 필요합니다.”
“지원 말입니까?”
이와타가 묘한 눈으로 다니엘을 쳐다봤다.
‘김수혁과 함께 있던 녀석이군.’
수혁과 무슨 사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단순히 오늘 처음 만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렇습니다. 교관님께서 최대한 빨리 지원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교관님?”
이와타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니엘이 교관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누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김수혁 옆에 있던 사람인가?’
당연히 수혁이 그 교관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수혁이 아무리 영웅이라 불리는 소방관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젊다.
눈앞의 다니엘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박상태를 교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아, 김수혁 교관님 말입니다.”
다니엘은 당연하다는 듯 수혁의 이름을 꺼냈다.
이와타의 눈이 살짝 커졌다.
“김수혁 씨가 당신의 교관이란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시행한 연수……. 아니, 지금은 그런 걸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군요. 급합니다.”
수혁과의 인연을 설명하려던 다니엘이 멈칫하며 고개를 저었다.
수혁의 말투와 표정을 보면 1초라도 빨리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이와타는 그리 급해 보이지 않았다.
“지원이라…….”
다시 의자에 앉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잠시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이와타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어쩌죠? 저희도 지금 인력이 부족해서.”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각자 맡은 곳을 수색하는 것도 벅찹니다. 그런 상황에 지원을 보내 드릴 인력을 따로 뺀다는 것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니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와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저희가 수색하는 곳에 요구조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곳에 지원해 줄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확실합니까?”
“뭐요?”
“그곳에 요구조자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냐는 말입니다.”
다니엘이 입을 다물었다.
물론 그는 확신한다.
수혁이 한국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곳엔 100% 요구조자가 있었다.
“물론입니다.”
다니엘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와타가 눈을 빛냈다.
수혁에 대한 신뢰가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대체 수혁이 어떤 사람이기에 저토록 강한 신뢰를 보일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호기심과는 별개로, 이와타는 수혁에게 지원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증거는 있습니까?”
“증거라니요?”
“그곳에 요구조자가 있다는 증거가 없다면……. 안타깝군요.”
이와타는 일본에서 출국하기 전에 받았던 명령을 상기했다.
“무조건 김수혁보다 뛰어난 공적을 세워야 한다.”
수혁에게 집중되어 있는 세계의 관심을 일본이 가져와야만 했다.
어제 수혁이 네 명이나 되는 요구조자를 구조하는 바람에 이와타는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 아침 뉴스와 신문은 온통 수혁의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 수혁이 또 요구조자를 구한다면?
역전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와타는 절대 해선 안 될 판단을 하고 말았다.
“저희는 지원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와타가 쐐기를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