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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05화 (305/425)

레스큐 시스템 305화

“……뭐?”

“거절했습니다.”

헛웃음이 나왔다.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 정말로 지원을 거절할 줄이야.

수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새끼들이 진짜.’

당장 달려가서 이와타인지 아바타인지 하는 놈의 얼굴을 박살 내놓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원을 얻어낼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행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시간만 더 잡아먹을 것이다.

‘어쩔 수 없나?’

수혁은 자신의 힘을 쓰기로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니엘에게 다른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율리안에게 가서 지원을 요청해라.”

“대장님께 말입니까?”

다니엘의 눈이 커졌다.

독일 구조팀은 밤새 구조 작업을 하고 몇 시간 전에 휴식을 취하러 갔다.

그런 사람들을 다시 불러오라는 명령에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독일이든, 이탈리아든, 어디든, 최대한 협조를 구해. 요구조자의 생명이 네 손에 달렸다.”

다니엘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수혁이 다시 한 번 사안의 중요성을 주지시켰다.

“…알겠습니다.”

다니엘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이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조금 걸리긴 했지만,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더한 것도 감수할 수 있었다.

“빨리 가!”

수혁이 소리치자, 다니엘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며 뛰었다.

다니엘이 사라지자 수혁이 이번엔 슈미츠를 쳐다봤다.

그러곤 옆으로 손짓하며 말했다.

“비켜.”

한창 열심히 잔해를 옮기고 있던 슈미츠는 의아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명령을 거부하진 않았다.

슈미츠가 옆으로 비켜서자, 수혁이 심호흡했다.

“지금부터 보는 건 일절 함구하도록.”

“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아, 알겠습니다.”

슈미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할게요, 형. 잔해 치우면 주변 정리 좀 부탁드려요.”

“걱정하지 마라. 알아서 따를 테니까.”

박상태가 맡기라는 듯 대답하자, 수혁이 움직였다.

콰드득-!

수혁의 손가락이 거대한 돌 더미에 박혀들어 갔다.

옆에서 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킨 것이다.

‘어떻게 사람 손가락이?’

수혁의 힘과 체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이상했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의 육체가 어떻게 돌을 파고든단 말인가?

‘무슨 돌이 치즈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아니던가?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돌에 손가락을 박아 넣은 수혁이, 그대로 그것을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미친!”

돌의 크기는 여기 있는 세 사람을 모두 합친 것보다 커다랬다.

성인 남성 세 명의 면적보다 큰 돌을 혼자서 든다?

슈미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콰앙-!

수혁은 자신이 들어 올린 돌을 한쪽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자 커다란 소리와 함께 먼지가 풀썩 솟아났다.

“뭐, 뭐야?”

“무슨 소리지?”

설마 또 붕괴가 일어난 건 아닌가 싶어, 일본 구조팀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저긴가?”

그러다 수혁이 일으킨 먼지를 발견하곤 시선을 집중했다.

그때였다.

“뭐하고 있나? 빨리 주변 정리 안 해?”

박상태가 멍하니 서 있는 슈미츠에게 소리쳤다.

“아, 네. 네!”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슈미츠가 당황하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금 수혁이 왜 지금부터 보는 건 일절 함구하라고 말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슈미츠는 널브러진 잔해들을 치우며 수혁을 힐끔거렸다.

‘진짜… 진짜 히어로였어.’

* * *

“방금 봤어?”

SAT1에서 나온 기자, 로버트는 자신의 눈을 비비며 물었다.

“뭘?”

옆에 있던 다른 기자가 로버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방금 그걸 못 봤다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뭐가 있었는데?”

로버트는 답답한지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수십 명의 기자 중 자신이 본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처음 수혁이 도착했을 때, 멀리서라도 열심히 사진을 찍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일본 지원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120명에 달하는 구조대.

수혁만큼은 아니지만, 그들도 화제가 되기엔 충분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수혁이 뭔가를 보여주고 있지도 않았고.

덕분에 수혁의 행동을 본 사람은 로버트가 유일했다.

로버트는 자신이 방금 본 것을 이야기하려다, 움찔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아니, 아니지.’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니라면, 지금 그것을 본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그걸 굳이 다른 기자들에게 나누어줄 이유가 없었다.

‘내 거다.’

로버트는 입을 다물고 남몰래 수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과연 자신이 본 것이 정말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이걸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로버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저, 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버트는 좀 전에 자신이 본 것이 정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종이다!’

로버트는 다른 기자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를 대며 조심스럽게 자리를 옮겼다.

수혁이 최대한 잘 보이는 곳으로 간 로버트는, 카메라를 들었다.

‘한 장만 건지자, 한 장만.’

수혁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만 있다면…….

로버트는 기대감을 갖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진짜 미쳤네.”

혹시나 다시는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쓸데없는 짓이었다.

수혁은 계속해서 사람보다 커다란 돌들을 들어올렸다.

한 개, 두 개, 세 개…….

평범한 사람이라면 하나를 옮기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들어 올리며 길을 열었다.

‘안 되겠다.’

로버트는 카메라를 집어넣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정적인 카메라보단,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는 것이 훨씬 더 생생할 것 같았다.

그렇게 수혁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고 있는데, 일단의 무리가 그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어?”

줌을 당겨 그들이 누구인지 확인한 로버트가 눈을 크게 떴다.

‘율리안이다!’

* * *

율리안은 갑작스런 전화벨 소리에 얼굴을 찌푸리며 손을 스마트폰을 들었다.

피로가 극에 달아 눈을 뜨는 것도 힘이 들었다.

“다니엘?”

간이침대에 누운 채, 액정에 표시된 이름을 확인한 율리안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지?”

웬만해선 무시하고 싶었지만, 다니엘은 현재 일본 구조팀과 함께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 대원이었다.

혹시 문제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대장님, 저 다니엘입니다.]

“알고 있으니까 말해.”

다니엘의 음성은 왠지 모를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 말에 율리안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제가 생겼나?”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시원찮은 설명에 율리안이 짜증을 냈다.

“제대로 보고해. 문제가 생긴 건가?”

[김수혁 교관님이 요구조자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지원이 필요하시다고…….]

“알았다. 지금 바로 나가지.”

수혁이라는 이름에 율리안은 더는 고민할 것도 없이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지금 바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율리안은 전화를 끊고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땀에 전 옷이 찝찝하기 그지없었지만, 율리안은 빠른 속도로 옷과 장비들을 갖추고는 천막 밖으로 나왔다.

“대장님!”

때마침 전화를 주었던 다니엘이 달려오며 소리치는 것이 보였다.

“상황은?”

율리안의 물음에 다니엘이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갑자기 수혁이 현장에 찾아왔고, 다급한 표정으로 일본 구조팀에 지원을 요청한 일.

그리고 일본 구조팀에서 거절했기 때문에 율리안에게 직접 연락한 일까지.

다니엘의 말을 들은 율리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에게 연락한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 측에서 지원을 거절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따질 수는 없었다.

시간도 없었고, 따질 사람도 없었으니까.

“지원은 몇 명이나 필요하다고 하던가?”

“최소한 열 명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려라.”

율리안은 수혁의 요청을 거절할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다니엘을 세워둔 율리안은 주위에 있는 천막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잠을 자고 있던 대원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총 스무 명.

하늘 같은 대장의 명령에 대원들은 꿀맛 같던 휴식을 포기하고 모두 일어나 출동 준비를 했다.

“빨리! 서둘러라!”

율리안의 재촉에 대원들은 졸린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장비들을 챙겨 밖으로 튀어나왔다.

“가자.”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것 같자, 율리안이 다니엘에게 안내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율리안과 스무 명의 대원을 데리고 수혁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래?”

“글쎄, 나도 자다 지금 일어나서 잘 모르겠는데.”

“대장이 아무 이유 없이 우리를 깨울 리는 없으니까 가보면 알겠지.”

율리안은 대원들의 의문을 뒤로한 채 달렸다.

* * *

그사이 수혁은 꽤나 깊은 곳까지 길을 뚫은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은 부족했다.

‘이제 15분 정도 남았나?’

이대로는 시간 내에 구조할 수가 없었다.

점점 줄어드는 시간에 초조해져 갈 때쯤.

“수혁!”

마침내 기다리고 있던 음성이 들려왔다.

“율리안!”

율리안이 대원들을 데리고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스무 명!’

생각보다 많은 숫자였다.

할 수 있는 작업이 한정되어 있으니 사람이 많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저 정도 숫자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좋아.’

해볼 만하다.

“무슨 상황이지?”

순식간에 도착한 율리안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요구조자가 이 아래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상태가 그리 좋지가 않아요. 길어봐야 15분. 그 이내에는 구조해야 합니다.”

“여기는……?”

수혁의 설명을 들으며 주위를 살펴보던 율리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제 제가 가르쳐 드린 지점 중 한 곳입니다.”

“그런데 일본 구조팀은 왜 안 보이지? 내가 분명 그곳들을 집중적으로 수색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수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율리안은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시했군.”

율리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토록 신신당부했음에도, 일본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것이 틀림없었다.

수혁의 지원 요청을 거부했다는 것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는데, 자신의 말도 무시한 그들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요구조자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율리안이 이를 갈았다.

자신들을 돕기 위해 지원을 보낸 나라에게 품을 감정은 아니었지만, 율리안은 진심으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필요하다면 현장에서 내쫓을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도움이 아니라 방해를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그건 나중에 생각해요. 지금은 구조에 집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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