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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08화 (308/425)

레스큐 시스템 308화

일본의 작업 시간이 끝나고, 한국의 차례가 돌아왔다.

장비를 챙겨 자리를 떠나는 일본 구조팀의 표정은 그리 좋지가 않았다.

현장에 도착한 한국 구조팀은 그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듣기로는 한 명의 요구조자를 더 구조했다고 하던데, 분위기가 왠지 심상찮아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크게 신경쓰진 않았다.

수고하라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떠나는 이들에게 관심을 줄 정도로 상황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작업 시간이 되자, 쉬고 있던 독일 구조팀도 다시 현장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한국 구조팀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희망이 엿보였다.

어제와 오늘.

이틀 연속으로 요구조자를 구조해 냈기 때문이었다.

이런 추세라면 계속해서 요구조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구조가 계속됐다.

“와아아아!”

사람들이 환호했다.

구조대원, 기자, 기도하며 현장을 지켜보던 이들까지.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기쁨에 가득차 소리를 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벌써 세 명째야!”

“아까 아침에 구한 사람까지 치면 네 명이지!”

“정말 대단해.”

방금 막 구조된 사람은 사십대 여성.

오늘의 네 번째 요구조자였다.

기자들은 다시 한 번 기사를 쏟아냈다.

덕분에 낮에 있었던 율리안의 폭행 사건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히고 말았다.

물론 그것은 오래가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끝났네요.”

수혁은 구급차에 실리고 있는 요구조자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정말 마지막이냐?”

수혁의 옆에 서 있던 박상태가 조용히 물었다.

지치고 힘들기는 했지만, 제발 한 명이라도 더 숨을 쉬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느껴졌다.

하지만 박상태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었다.

“네. 정말 마지막이에요.”

수혁 역시 설마설마하며 수십 번이나 ‘생명감지Ⅲ’ 스킬을 사용해 봤다.

혹시나 자신이 착각해서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스킬에 한계가 있어서 찾지 못한 건 아닐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찾아봤다.

그렇지만 결과는 항상 같았다.

‘더는 살아남은 생존자는 없다.’

가슴이 미어질 듯이 아픈 현실이었다.

박상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수혁이 그렇다면 정말로 생존자가 없을 확률이 높았다.

“이걸 밝혀야 할까?”

구조할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면, 구조팀이 지금처럼 무리할 이유가 없었다.

수면도 최소한으로 취하고,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구조 작업에 쏟는다.

말 그대로 먹고, 자고, 싸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움직이는 것이다.

지금이야 어찌어찌 버티고 있긴 했지만, 분명 조만간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박상태는 차라리 요구조자가 더는 없다는 사실을 밝히는 게 어떻겠냐는 듯 물었다.

수혁은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구조대원들의 체력을 생각하면 박상태의 말대로 밝히는 것이 나았다.

그들이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제쳐 두고…….

한참을 고민하던 수혁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

“말 안 하는 게 좋겠어요.”

“왜? 저대로 두면 소방관들 사이에서도 탈진으로 쓰러지는 이들이 나올 거다. 그전에 얘길 하는 게…….”

“말하면, 저들이 고맙다고 할까요? 더는 체력을 낭비하지 않게 해주어서?”

그럴 리가 없었다.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저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희망이라는 이름의 불씨였다.

만약 생존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은 지독한 슬픔과 상실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간 알게 될 일이야.”

시간의 문제일 뿐이었다.

이대로 구조 작업이 지속된다면,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박상태는 작업 속도를 늦춰 구조대원들의 체력을 보존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안타깝지만, 시신 수습은 분초를 다툴 정도로 다급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 그것을 알게 되면, 분명 더 힘들어할 거다.”

자신들이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다면.

잠을 줄이고, 화장실 갈 시간도 아꼈다면.

그랬더라면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가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힐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박상태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음…….”

수혁은 다시 고민했다.

확실히 박상태의 말이 맞았다.

지금 다른 사람들은 요구조자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결국 앞으론 단 한 명의 요구조자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희망은 절망으로 변해갈 테고, 환희는 슬픔으로 물들 것이다.

‘말해줘야 할까?’

잘 모르겠다.

이렇게 해도 후회할 것 같았고, 저렇게 해도 후회할 것 같았다.

“하아.”

수혁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할게요.”

지금 당장 결정하기엔 머릿속이 너무도 복잡했다.

“그래.”

박상태가 더는 수혁을 재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당분간은 이 현장에서 떠날 수 없었다.

그들이 구해야 할 것은 생존자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인들의 사체도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야지.’

이 아래에 매몰되어 숨을 거둔 이들은 최소한 백 명 이상.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어야만 했다.

수혁과 박상태가 이야기를 나누는데, 뒤쪽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다, 수혁.”

바로 율리안이었다.

“……괜찮으세요?”

오늘 율리안은 구조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일본 구조팀의 대장인 이와타의 얼굴을 뭉갠 대가로 조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금세 풀려나긴 했지만, 현장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다시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별것 아니다.”

율리안은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픽- 하고 웃어 보였다.

그것을 본 수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수혁은 자신이 직접 이와타의 뚝배기를 깨버릴 생각이었다.

그만큼 분노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율리안이 먼저 움직인 덕분에 수혁은 나설 기회조차 없었다.

“일본 구조팀은 앞으로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이번엔 박상태가 물었다.

그의 솔직한 심정으론, 일본 구조팀이 돌아가지 않았으면 했다.

그들이 아니꼽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박상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20명이라는 인력은 큰 도움이 된다.

앞으로 수습해야 할 희생자들의 시신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남아서 계속 일을 돕기로 했습니다.”

율리안의 말에 박상태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율리안과는 정반대였다.

“그냥 꺼졌으면 좋았을 텐데요…….”

수혁이 투덜거렸다.

율리안은 자신들이 좀 더 힘들더라도, 일본 구조팀과는 같이 일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결정된 이상, 굳이 떠나라고 등을 떠밀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수혁. 묻고 싶은 게 있다.”

“네, 물어보세요.”

수혁이 무슨 일이냐는 듯 율리안을 쳐다봤다.

“혹시 이제 요구조자가 몇 명이나 남았는지 알 수 있나?”

수혁과 박상태가 자신도 모르게 서로를 쳐다봤다.

둘의 표정은 한눈에 보기에도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내가 잘못 질문한 건가?”

율리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걸 저한테 물어보신 이유가 뭐죠?”

수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라면 왠지 알고 있을 것 같아서.”

사실 그동안 힌트는 많았다.

오늘 하루 동안 요구조자들만 봐도 그렇다.

그들은 모두 어제 수혁이 가르쳐 준 수색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니 수혁이 요구조자들이 어디 있는지, 몇 명이나 되는지 알고 있을 거란 사실을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율리안을 쳐다봤다.

“흠흠.”

수혁의 시선이 조금 불편했는지, 율리안이 헛기침을 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율리안은 수혁이 뭔가 자신은 알 수 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초능력이라 불리는 힘이든, 아니면 다른 것이든.

자신의 생각이 정말이라면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남들에게 밝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수혁이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비밀을 감춰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힘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수혁은 율리안의 말에 혀를 찼다.

‘그렇게 티를 내놓고 모르길 바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

지끈거리는 두통에 이마를 몇 번 두드린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수혁의 대답에 율리안이 미소를 지었다.

수혁에게 직접 그 말을 들었다는 사실보다, 앞으로 구조가 조금 더 수월해질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요구조자가 몇 명이나 남았느냐고 물어보셨죠?”

“그래. 이왕이면 어제처럼 자세한 위치도 알았으면 좋…….”

“없습니다.”

율리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뭐라고 했지?”

“이제 남은 생존자는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수혁의 말은 율리안을 깊은 절망의 늪 속으로 끌고 내려갔다.

* * *

“준비는?”

“만반을 기했습니다.”

알 바그다디는 부하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의 일은 꽤 만족스러웠지. 하지만 그건 예고편에 불과하다.”

무려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폭탄 테러.

그것을 알 바그다디는 그저 예고편에 비유했다.

“내일 치러질 두 번째 거사는 처음보다 강력하고, 공포스러우며, 무자비할 것이다.”

놀랍게도 알 바그다디는 두 번째 폭탄테러를 선언했다.

그것도 얼마 전 일어난 테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로 말이다.

“신의 뜻대로 저 간악한 서방 국가의 목덜미를 물어뜯어라!”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알 바그다디의 부하들이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 숫자는 열두 명.

그들은 아랍인뿐만 아니라, 여러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시아인도 있었고, 백인도 있었으며, 심지어 흑인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여섯 명은 등에 묵직해 보이는 배낭을 메고 있었다.

“가라. 가서 신의 뜻을 보여주어라. 그리하여 저들이 피와 눈물로 참회하게 하라.”

알 바그다디의 명령과 함께, 열두 명의 신의 전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을 나가 밖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알 바그다디가 한쪽 놓여 있던 위스키병을 집어 들었다.

잔에 한가득 위스키를 따른 알 바그다디는 단숨에 그것을 비우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섬뜩한 웃음소리가 조용한 공간에 울려 퍼졌다.

광기로 가득찬 웃음은 마치 즐거워서 참을 수 없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잔에 위스키를 다시 채운 알 바그다디는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부하들을 향해 잔을 들었다.

“알라후 아크바르.”

내일이면 지옥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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