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09화
율리안은 수혁의 말을 믿지 못했다.
아니, 믿고 싶지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수혁이 특별한 능력이 있을 거란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도…….
차라리 수혁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헛소리하는 것이길 바랐다.
하지만 수혁의 표정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정말로 더는 생존자가 없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믿고 싶지 않으면, 믿지 않아도 좋아요.”
수혁도 지금 자신의 말이 제발 거짓이길 바랐다.
그 역시 율리안 못지않게 절망스러웠고, 안타까웠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조금 전 박상태가 이야기했다시피, 지금 거짓말을 했다간 나중에 더 큰 충격과 후회만 남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알겠다.”
율리안은 당장에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있을까?”
생존자가 없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 정도면, 희생자가 몇 명인지도 알 것 같았다.
“죄송해요.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수혁의 스킬 중엔 사망자의 위치를 찾는 것은 없었다.
“결국은 이곳을 계속해서 파헤쳐야 한다는 뜻이군.”
“……그렇죠.”
생존자가 없다고 해서 작업을 중단할 순 없었다.
지금처럼 밤낮없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움직일 필요는 없겠지만.
“이렇게 되면 일본 구조팀은 정말로 필요가 없겠군.”
인명 구조가 아닌 희생자 시신 수습이라면, 독일의 인력만으로도 충분했다.
중장비가 투입되면 금방이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 믿을 거예요. 생존자가 없다는 사실을요.”
“그렇겠지.”
수혁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자신 정도가 유일할 것이다.
‘아니, 슈미츠 녀석이라면 믿어줄 수도 있겠군.’
부하 중 하나인 슈미츠는 자신보다 수혁을 훨씬 더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섭섭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수혁이라면 그런 신뢰를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었으니까.
이성적이고 냉철한 다니엘은 수혁을 존경하긴 해도, 이런 말까지 믿어줄 것 같진 않았다.
‘그럼 결국 두 명이 전부란 이야기인데…….’
아무리 율리안의 영향력이 크다고 해도, 이젠 생존자가 없으니 중장비를 투입하자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미친놈 취급을 당하는 건 둘째치고,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쩔 수 없어요, 지금처럼 계속하는 수밖에.”
“하지만 그러면 대원들의 체력 소모가 너무 심하다.”
가치가 없는 일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생존자도 없는 상황에 수백 명의 사람이 오직 손과 삽만으로 구조 작업을 지속하는 건, 솔직히 낭비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감수하는 수밖에요.”
수혁은 이 많은 구조대원이 흩어지길 바라지 않았다.
정확히 언제 또다시 테러가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지원을 온 구조대원들이 독일에 남아 있길 바랐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희생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틀렸길 바라야죠.”
수혁은 진심으로 자신이 틀렸길 바랐다.
단 한 명의 생존자라도 아직 살아 있길 간절히 원했다.
“일단 알겠다.”
율리안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은 수혁의 말처럼 계속 현상 유지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쉬어라. 아침부터 고생했을 테니.”
수혁과 박상태는 한국의 다른 대원들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현장에 나왔다.
그러니 꽤 지친 상태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교대 시간이 다 되어가니, 조금 일찍 복귀시켜도 될 것 같았다.
“……오늘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수혁이 난감한 표정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수혁이 가리킨 곳에선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수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서 있는 곳이 현장 한복판이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달려올 기세였다.
“알아서 처리하지.”
오늘도 율리안은 부하들을 보내 한국 구조팀이 무사히 숙소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 * *
짐 머레이의 얼굴은 심각했다.
“그게 사실인가?”
[내가 굳이 전화해서 농담할 사람으로 보이던가?]
“그건 아니지.”
케인 로저스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신빙성이 높다는 건데…….’
방금 들은 소리가 사실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시간이 임박했네. 늦기 전에 피신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글쎄, 나도 그러고 싶네만. 내 말을 듣지 않을 것 같군.”
[그런가?]
짐 머레이의 말에 케인 로저스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자신은 할 도리를 다했다는 듯이.
“아무튼 알려줘서 고맙네.”
[수혁은 자네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니,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뿐이야.]
사정이야 어쨌든, 이렇게 미리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수혁에게는 내가 알리겠네. 혹시 다른 정보가 들어오면 연락 주게.”
[그렇게 하지.]
짐 머레이는 통화를 종료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테러가 또 일어난다고……?”
독일에서 테러가 일어난 것이 고작 며칠 전이다.
그런데 또다시 테러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단다.
그것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다.
아직 이전 테러의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테러가 일어난다니…….
독일과 공조해 최대한 막아보겠다고는 하지만, 케인 로저스는 솔직히 막기 힘들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혹시 수혁은 알고 있을까?’
미국에서 테러가 일어날 것도 미리 알아차린 수혁이다.
그러니 독일에서 테러가 일어날 것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알고 있었다면 연락했을 거야.’
테러는 수혁 혼자 막을 수 없는 영역의 재앙이었다.
수혁이 알고 있었다면, 미국에서처럼 자신에게 연락을 취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연락은 받지 못했으니,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니까.’
짐 머레이는 일단 수혁에게 연락을 취해 물어보기로 했다.
스마트폰을 들어 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수혁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짐일세.”
[어머, 짐! 무슨 일이에요?]
수혁 대신 전화를 받은 최은송의 놀란 음성이 들려왔다.
“수혁이 전화를 두고 갔나 보군.”
[네. 깜빡하고 안 가져갔더라고요.]
짐 머레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연락할 방법이 없나?”
[일단 숙소 연락처 가르쳐 드릴게요. 저도 거기 통해서 수혁 씨랑 연락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해주겠나?”
[잠시만요.]
잠시 후, 최은송이 수혁의 숙소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숙소에서도 여전히 수혁과는 연락이 닿질 않았다.
아침에 현장으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프런트 직원의 말에, 짐 머레이는 메모를 남긴 뒤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 지금 도착한 것 같습니다.]
프런트 직원이 짐 머레이를 붙잡았다.
타이밍 좋게도 짐 머레이가 전화한 그 시간에 수혁이 숙소에 돌아온 것이었다.
[여보세요?]
“수혁! 날세.”
[어, 짐? 무슨 일이세요?]
전화를 받은 수혁이 당황한 음성으로 물었다.
짐 머레이는 수혁에게 물어볼 말이 많았지만, 다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혹시 독일에서 테러가 또다시 일어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나?”
수혁의 대답은 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짐 머레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수혁의 침묵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알고 있습니다.]
“뭐? 알고 있다고!”
짐 머레이의 눈이 커졌다.
설마하니 수혁이 정말로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 언제 일어날지도 알고 있나?”
[아쉽게도 그것까진 모르겠네요.]
수혁의 음성이 작아졌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것 같았다.
[하지만 또 일어날 겁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최소한 두 번 이상.]
짐 머레이가 입을 다물었다.
‘한 번이 아니라고?’
수혁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큰일이었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수혁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케인에게 연락이 왔다네. 조만간 독일에서 테러가 더 일어날 것 같다더군.”
[…언제쯤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적어도 3일 이내. 그중 독일 시간으로 내일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더군.”
수혁은 전화를 끊었다.
“누구냐?”
그러자 로비 한쪽에 서 있던 박상태가 다가오다, 수혁의 표정이 심상찮다는 것을 보곤 물었다.
“짐이요.”
“아, 그 돈 많은 양반?”
박상태는 짐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려 보다 생각이 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 양반이 왜? 무슨 일 있냐?”
독일까지 연락을 해왔을 정도면 단순한 안부 전화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전화를 받은 수혁의 표정이 변한 것 봐도 알 수가 있었다.
“그냥요. 별것 아니에요.”
수혁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
굳이 말을 해서 혼란을 줄 필요는 없었다.
“……그래?”
다행히 박상태는 분위기를 보곤 캐묻지 않았다.
“그럼 먼저 들어가서 쉬어라. 나는 잠깐 팀장들이랑 얘기 좀 하고 들어갈 테니까.”
수혁은 생각에 잠긴 채 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내일이라고?’
테러가 또 일어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게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몰랐다.
‘어떻게 하지?’
이번 테러는 미국과는 달랐다.
수혁이 알고 있는 정보가 너무도 부족했으니까.
그나마 짐 머레이 덕분에 날짜는 어느 정도 유추를 할 수 있었지만, 그 정도 정보만으로 테러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일단 짐에게 정보 공유를 요청했으니까.”
지금은 그것이 최선이었다.
미국의 정보를 공유받는다면, 테러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가능성이 적긴 하지만.’
아마도 미국은 이번 테러를 막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더라면 이전 생에서도 막아낼 수 있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두 손 놓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었으니 수혁도 최대한 막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수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일본 구조팀도 거슬렸고, 율리안에게 능력의 일부를 밝힌 것도 신경이 쓰였다.
그런 상황에 두 번째 테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까지 들으니, 정말로 머리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몰려드는 무력감에 수혁이 몸을 뉘었다.
‘테러는 못 막아.’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수혁이 내린 결론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무리였다.
그렇다면 수혁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사람을 구하는 것.’
소방관인 수혁이 해야만 하는 근본적인 일이었다.
‘많은 사람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수혁의 능력을 활용하면 된다.
‘위기감지Ⅲ’와 ‘생명감지Ⅲ’만 잘 사용해도 이전 생의 몇 배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선 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일개 대원으로선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도 작았다.
최소한 팀장 급.
혹은 그 이상은 되어야 제대로 능력을 활용할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지휘권을 내가 가지고 와야겠어.”
수혁이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