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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14화 (314/425)

레스큐 시스템 314화

베를린까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 30분가량이었다.

본래라면 두 시간 이상은 걸릴 거리였지만, 규정 속도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달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동 수단은 수혁이 예상했던 것처럼 버스였다.

율리안은 한국 구조팀이 사용하던 다섯 대의 버스를 통째로 내주었다.

덕분에 수혁을 비롯한 대원들은 편하게 이동할 수가 있었다.

물론 그 속내는 전혀 편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버스 기사는 베를린에 진입하자 목적지를 물었다.

이들이 테러 현장에 지원 나온 것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결정이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덕분에 숙소와 같은 것들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바로 현장으로 가주세요.”

수혁 역시 숙소를 잡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기에 우선 현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알겠습니다.”

현재 한국 구조팀의 대장은 수혁이었다.

그러니 수혁의 결정은 곧 전체의 결정이나 다름없었다.

버스 기사는 수혁의 말에 따라 곧장 베를린 중앙역 쪽으로 향했다.

“……난리가 났네.”

박상태가 창문 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현재 베를린의 길거리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뒤엉켜 온갖 사이렌 소리가 귀를 울려댔고, 그것들로 인해 교통은 마비되기 직전이었다.

“심각할 거라곤 생각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박상태의 뒷자리에 앉아 있던 양희성이 어두운 음성으로 말했다.

“심각할 만하지.”

이곳으로 오면서 확인한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역 하나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으며, 그보다 거대한 호텔이 반파되었다.

테러가 일어난 지 두 시간을 훌쩍 넘어 세 시간이 다 되어가는 와중에도 피해 규모가 집계조차 되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우린 장비도 없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냐?”

급하게 오느라 미처 장비들을 챙길 시간이 없었다.

“율리안이 미리 베를린 구조대 쪽에 얘기해 두겠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다행인데…….”

이런 혼란 속에서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었을지도 의문스러웠다.

“딱히 전문적인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요.”

FINDER와 같은 인명 구조 레이더 탐지기나 드론 같은 장비들은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그것들은 사용 방법도 잘 모를뿐더러, 수혁에게는 그것들보다 더 정확한 탐지방법이 있었으니까.

자신들이 필요한 것은 빠르게 땅을 파고들어 갈 삽과 곡괭이 정도뿐이었다.

“그런데 지원은 우리만 오는 거냐?”

이번엔 양희성이 물었다.

“아니요. 그쪽 현장에는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두고, 모두 베를린으로 올 겁니다.”

율리안뿐만 아니라, 유럽 구조팀과 일본 구조팀도 모두 베를린에 투입하기로 했다.

독일 소방 당국에선 첫 테러 현장에 더 이상의 생존자가 없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했지만, 결국은 율리안의 말에 설득이 되었다.

아니, 설득된 척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을 외면해서라도 베를린에 더 많은 대원을 투입하고 싶을 테니까.

단순 규모로만 따지면 베를린에서 일어난 폭발의 여파는, 첫 테러 현장의 세 배가 넘었다.

그리고 예상되는 피해자의 숫자는 무려 다섯 배 이상.

게다가 폭발 현장이 독일의 심장인 베를린이었으니…….

“보인다.”

박상태의 말에 수혁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앞을 바라봤다.

과연 저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아직 화재조차도 진압하지 못한 상황인 것 같았다.

“불을 못 끄면 구조 못 할 텐데?”

단순 화재 현장이 아니라, 건물이 무너지고 그 안에 수많은 사람이 매몰된 현장이었다.

당연히 어느 정도 화재가 진압되지 않는다면, 구조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수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연기를 살폈다.

“연기가 한쪽에서만 나고 있어요.”

현장은 두 곳.

그중 연기는 한곳에서만 일어나고 있었다.

“한쪽은 잡혔다는 말이구만.”

“그럴 가능성이 높죠.”

그렇다면 이미 구조는 시작되었을 수도 있었다.

“조금 더 빨리 갈 수 있을까요?”

수혁이 버스 기사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는 난색을 표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도로 상황이 그리 좋지가 않습니다.”

경찰들이 총출동해 교통 통제를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지만, 진정이 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요. 이 정도면 아무리 빨라도 30분 이상은 걸릴 것 같습니다.”

수혁을 비롯한 대원들이 모두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렸던 것이다.

베를린까지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이 한 시간 30분이었는데, 저 눈앞에 보이는 현장까지 30분이라니.

너무도 오래 걸렸다.

“걷는 게 나을까요?”

“시간 차이는 별로 나지 않을 겁니다. 그럴 바엔 그냥 타고 가는 것이 체력을 조금이라도 더 비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버스 기사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렇긴 하겠군요.”

어차피 걸리는 시간이 비슷하다면, 이대로 버스를 타고 가는 편이 나았다.

문제가 있다면 현장을 눈앞에 두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한다는 것에 조급해진다는 것이었다.

당장 박상태만 해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표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이라면 모를까, 다른 대원들은 체력 소모를 걱정해야만 했다.

“상태 형.”

수혁은 조용히 박상태를 불렀다.

“왜?”

박상태는 똥줄이 타는 표정으로 수혁을 쳐다봤다.

“저는 먼저 현장에 가 있을게요. 이 뒤는 형이 좀 부탁해요.”

“뭐, 인마? 너 혼자 달려가겠다는 말이야?”

“일단 저라도 먼저 가서 상황부터 확인해 보려고요.”

수혁은 그렇게 말하며 버스를 나설 준비를 했다.

“30분이나 걸린다는 말 못 들었어?”

“저 알잖아요. 그 정도는 저한테 문제없어요. 30분씩이나 걸리지도 않을 테고.”

수혁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박상태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수혁이라면 30분이 아니라, 15분 내에도 충분히 도착하고 남을 테니까.

‘이 괴물 같은 놈은 지치지도 않겠지.’

수혁이라면 풀 마라톤을 뛰어도 전혀 지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 알았다.”

결국 박상태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수혁을 막을 명분도 없었다.

수혁이 모든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이상, 명령하면 따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 부탁드려요.”

수혁이 버스 기사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버스 문이 열렸다.

‘10분 내로 끊는다.’

길은 사람들로 복잡했지만, 수혁은 자신 있었다.

‘미니 맵’을 사용해 가장 빠른 경로를 탐색했다.

‘미니 맵’은 도로 사정과 유동 인구를 순식간에 파악해 낸 뒤, 최단 거리를 표시했다.

‘가자!’

수혁이 달리기 시작했다.

한 발, 두 발.

처음에는 느렸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수혁은 그야말로 쏜살같은 속도로 질주했다.

“꺄아악!”

수혁이 스쳐 지나가자, 부딪히는 줄 알았던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뭐, 뭐야?”

“어떤 미친놈이……!”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길을 미친 듯이 뛰어가는 수혁을 보며 욕을 하려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수혁이 입고 있는 옷이 어떤 것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소방관!’

‘소방관이다.’

수혁이 향하는 방향은 바로 폭탄이 터진 현장.

사람들은 욕 대신 수혁을 향해 응원을 보냈다.

‘제발 사람들을 구해주세요.’

수혁은 수많은 사람의 응원을 등에 업고 현장으로 향했다.

* * *

“젠장! 저쪽에 더 투입해!”

“그럴 인력이 없습니다!”

부족하다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람이 없었다.

“그럼 다른 쪽에서라도 빼서 보내!”

베를린 중앙청 소속 구조대장 마르코는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의 호통에 부하는 입술을 짓씹으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다른 쪽이라고 해서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대장의 명령이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사람을 빼서 보내야만 했다.

그것을 본 마르코가 혀를 찼다.

‘망할. 사람이 필요해.’

베를린의 소방관이란 소방관은 모조리 출동한 상태였다.

비번이고 나발이고 모조리 소집한 지 오래였고, 오죽하면 은퇴한 이들과 일반 시민들까지 구조에 손을 보태고 있었다.

그럼에도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만큼 피해 규모가 엄청났던 것이다.

“지원은 언제쯤 도착한다고 하나?”

인근 도시에서 지원팀을 꾸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지 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조만간 도착할 것 같습니다.”

부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그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와중에 그런 것을 체크할 시간 따윈 없었다.

마르코 역시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는 묻지 않았다.

다만 짜증이 가득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사람은? 보냈나?”

“그, 그건 아직…….”

부하가 말을 더듬었다.

아무리 찾아도 손이 남는 곳이 없었다.

“이런, 망할! 준비해. 내가 간다.”

“대, 대장님!”

마르코의 나이는 60에 가까웠다.

솔직히 구조 현장에 직접 투입되기엔 너무 늙었다.

하지만 마르코는 개의치 않았다.

일손이 부족하다면 자신이라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큰 도움은 되지 못하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

주변에서 구조 활동을 하고 있는 대원들과는 확연히 다른 복장의 누군가가, 현장으로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소방관?”

베를린의 소방관들과는 다른 복식이었지만, 소방관 제복인 것만은 확실했다.

마르코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며 그를 쳐다봤다.

혹시 다른 지역에서 온 지원이 도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복장의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뭐지?’

지원을 한 명만 보냈을 리가 없었다.

왠지 모를 이질적인 모습에, 마르코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저게 뭐야!”

그가 홀로 커다란 돌덩이를 들어 올리며, 그 안에 깔려 있는 요구조자를 발견하는 장면을 말이다.

* * *

‘너무 많아.’

현장에 도착한 수혁은 곧바로 ‘생명 감지Ⅲ’를 사용했다.

그리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이 아래에 깔려 있는 요구조자의 숫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열 명, 스무 명.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최소한 백 명은 넘는 것 같은데.’

그마저도 확실하지가 않았다.

수혁은 잠시 당황했지만, 빠르게 정신 차렸다.

자신이 멍하니 있는 사이에도 사라져 가는 생명 반응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곳!’

수혁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생존자의 위치로 빠르게 이동했다.

구조하고 있던 대원들이 수혁을 힐끔 쳐다봤지만, 그 누구도 제지하거나 정체를 물어보진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도 바빴던 것이다.

덕분에 수혁은 수월하게 목표로 한 위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지금 당장 구하지 않으면 위험한 생존자가 있는 위치.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땅에 쌓여 있는 거대한 잔해에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그러곤 힘을 주어 그것을 들었다.

콰드드득-!

못해도 수백 킬로그램은 되어 보이는 돌덩이가 마치 스티로폼처럼 들어올려졌고, 그 아래에 깔려 있던 요구조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당신 정체가 뭐야!”

수혁의 뒤에서 누군가 경악에 찬 음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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