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20화
수혁은 박수진을 보며 황당해했다.
설마 여기서 그녀를 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혁은 그런 상황에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걸 쓰세요.”
바로 보조 마스크를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에 젖은 수건이 필터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해주긴 했지만, 마스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박수진이 가장 먼저 그것을 받아 얼굴에 쓰자, 다른 사람들도 재빨리 받아 들었다.
“아저씨, 여긴 어떻게……?”
“이야기는 나중에.”
수혁도 박수진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지금은 회포를 풀기엔 적절하지 않은 때였다.
요구조자들이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것을 확인한 수혁은 ‘미니 맵’을 확인했다.
‘어떻게 할까?’
이대로 내려가 이들만이라도 밖으로 내보내야 할지, 아니면 다른 요구조자들도 구조해 한 번에 이동해야 할지…….
수혁이 고민하다 문득 박수진을 쳐다봤다.
그녀는 마치 ‘저 잘했죠?’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릴 뻔했다.
물에 젖은 수건만 봐도 그녀가 아무런 생각 없이 이동한 게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수혁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들이 공포에 질려 아무렇게나 행동한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경솔했다는 건 변함없었다.
만약 자신을 이곳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박수진과 다른 요구조자들은 십중팔구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아래쪽은 위험했다.
수혁조차도 긴장해서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저런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박수진의 모습을 보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왜 이곳에서 헤매고 있었습니까?”
수혁은 일단 그녀에게 물었다.
박수진이라면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중앙역이 무너진 건 아시죠?”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호텔에서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어요. 아래쪽에선 화재도 일어났고요.”
박수진은 말을 하며 몸을 살짝 떨었다.
“그래서 여기도 혹시나 무너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수혁은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호텔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지 않았던가.
남은 절반도 언제 무너질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박수진은 한정된 정보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판단을 했다.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수혁은 박수진을 탓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으니까.
“위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요구조자들을 만나기 전에 미리 상황을 알아낼 수 있었다.
“다들 겁에 질려 있죠. 대부분 정신을 잃었다가 조금 전에 깨어난 것 같아요.”
그만큼 강력한 충격이 호텔을 뒤흔들었다.
수혁은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커다란 호텔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정도였으니, 사람이야 오죽할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고 있어요?”
“아직…….”
폭발의 여파인지 그녀의 스마트폰은 먹통이 되었기 때문이다.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수혁이 말하자, 박수진과 요구조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충격을 받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들도 대충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얼마 전에 커다란 테러가 일어났다는 건 이들도 잘 알고 있었다.
여행 중에 일어난 일이라, 다른 나라로 이동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차였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테러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수혁은 거기까지만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이 아래로 탈출하는 것은 힘들다는 것과 이 건물 반대쪽이 폭삭 내려앉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괜한 불안감을 더 심어줄 필요는 없었다.
“일단 위로 올라가죠.”
수혁의 말에 박수진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여러분만 데리고 나갈 순 없습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박수진에게 돌아가자고 말을 했던 요구조자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희부터 데리고 나가고, 위쪽은 다른 구조대가 구하면 될 일 아닙니까?”
셋 중 한 명이 수혁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이런 상황에선 그렇게 해야만 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말이다.
“저 외의 구조대는 당분간 없습니다.”
요구조자들이 눈을 끔뻑였다.
수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지금 아래쪽 화재가 너무도 심각해, 구조대가 진입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수혁은 그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곤,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그러니 위쪽으로 가셔야 합니다.”
한두 명 정도라면 어떻게든 밖으로 빼낼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겠지만, 하고자 한다면 가능했다.
하지만 네 명을 한 번에 구조하는 것은 수혁의 힘으로도 무리였다.
수혁이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하자, 사람들이 박수진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박수진을 따라 이곳까지 온 게 헛수고라는 뜻이었다.
당연히 괜히 자신들을 고생시킨 그녀에게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수진 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실제로 지금 상황이 평범한 화재 상황이었다면, 박수진 덕분에 구조대원들 역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조금 위험한 행동이긴 했지만, 수혁은 그것을 탓하지 않기로 했으니 그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문제라면 지금이 평범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
어쩔 수 없이 다시 위로 올라가야 했다.
그래도 마스크를 쓴 덕분에 기어가듯 이동할 필요는 없었다.
올 때와는 달리 편하게 걸어서 계단을 오른 이들은 4층에 도착했다.
“구조대다!”
수혁을 발견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 호텔에 갇힌 지 벌써 몇 시간이 흘렀다.
밖에선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까지 구조대가 올라올 기미는 보이지도 않았는데, 수혁이 나타나자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이쪽에 모여주세요!”
수혁이 사람들을 한쪽에 모았다.
‘생명감지Ⅲ’로 모든 사람이 모인 것을 확인한 수혁이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구조대가 도착했으니 이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으니,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옥상으로 가야 합니다.”
연기는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중앙계단과 연결된 3층과는 달리 4층부터는 방화문 덕분에 연기가 확산되는 속도가 느렸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었다.
무너진 쪽을 향해 연기가 유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재 발생시에는 아래쪽으로 대피하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으니 일단은 위로 올라가야 한다.
요구조자들을 데리고 옥상으로 대피한 뒤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연기가 차기 전에 올라가시죠.”
수혁이 앞장섰다.
5층, 6층, 그리고 7층.
각 층을 돌며 모은 요구조자의 수는 전부 32명.
스킬로 감지한 모든 인원을 찾았다.
그러자 수혁은 더 이상의 인명 수색을 하지 않았다.
옥상에 도착할 때까지.
수혁이 요구조자들과 함께 옥상에 도착하자,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아래쪽의 화재로 인해 주변은 대낮처럼 밝았다.
옥상에 올라 주변의 상황을 파악한 요구조자들의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
테러가 일어났다는 것은 수혁의 말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감하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접 눈으로 상황을 보니, 그제야 공포심이 가득 몰려왔다.
호텔 한쪽이 무너져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봤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만약 내가 저쪽에서 묵었더라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건물 밑에 깔려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저씨, 이제 어떻게 하죠?”
박수진이 수혁의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은 몇 초만 주변을 둘러봐도 알 수 있었다.
아래쪽을 확인한 박수진은, 수혁이 왜 더는 구조대가 오지 못한다고 말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불길이 너무 심해 소방관들은 접근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다리차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사다리차로는 구조가 불가능해 보였다.
무너진 호텔의 잔해와 폭발의 여파 덕분에 엉망이 된 주변 지형.
호텔 근처에는 사다리차는커녕 펌프차도 제대로 댈 수 없었다.
‘그러니까 아직 구조가 지지부진하겠지.’
사다리차로 구조가 가능했다면 수혁이 오기 전에 이미 구조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남은 건 하늘인데…….’
소방 헬기가 뜬다면 손쉽게 구조가 가능했다.
32명 정도는 구조 바스켓을 장착한 헬기가 한 번만 왕복해도 모두 구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헬기는 오지 않았다.
‘문제가 있나?’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까지 헬기 구조가 시도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수혁은 심각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상태 형.”
[너 인마!]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박상태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 괜찮은 거냐? 호텔에 들어간 거, 너 맞지?]
수혁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경찰과 소방관들을 날려 버리고 호텔 안으로 들어간 소방관.
박상태는 그 소문의 주인공이 당연히 수혁이라고 짐작했다.
“전 괜찮아요. 요구조자들도 모두 발견했고요.”
수혁은 박상태가 더는 잔소리하지 못하도록 말을 돌렸다.
요구조자를 전원 발견했다는 말에 박상태가 깜짝 놀랐다.
호텔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 구했단 말인가?
[몇 명이냐?]
“총 32명이요.”
너무도 적은 수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그만큼이라도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폭발의 영향에서 떨어진 곳에 있던 사람들이에요.”
[그래, 알았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여기 지금 옥상이거든요.”
수혁은 호텔 내부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헬기가 코빼기도 안 보여요.”
분명 헬기는 날아다니고 있었다.
대부분은 방송국 소속의 헬기들이었지만, 소방 헬기들도 심심찮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은 호텔 주변으로 오지 않았다.
오직 붕괴된 역 근처만 맴돌 뿐이었다.
[이곳에 위급한 요구조자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박상태가 심각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 덕분에 심각한 요구조자들을 많이 구조했어. 당장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급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구급차로 이송하면 늦는다.
수혁도 버스를 타고 현장에 올 때 느끼지 않았던가?
지금 베를린의 교통 상황은 거의 마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곳에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늦지 않게 도착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래서 헬기를 동원해서 이송하고 있는 건가요?”
[그래, 맞아.]
아무리 독일이라 한들, 소방 헬기가 넘쳐나진 않을 것이다.
요구조자 이송만 하는 것으로도 헬기가 부족했다.
수혁이 골치 아픈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일단 대기하고 있어봐. 옥상이라면 당분간은 안전할 테니까.]
“알았어요. 혹시 상황이 변하면 알려줘요.”
수혁은 무전기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호텔 안으로 들어오면 뭔가 이들을 모두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방법이 없는 것은 똑같았다.
‘기다려야 하나?’
불안한 표정의 요구조자들을 보던 수혁이 얼굴을 굳혔다.
“…젠장.”
호텔 전체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