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26화
수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죽을 뻔했다.’
아래쪽을 보고 있던 수혁은 몰랐지만, 수혁의 바로 위에선 커다란 돌덩이가 같이 떨어지고 있었다.
만약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대로 그 아래에 깔렸을 터.
그랬다면 그토록 단단한 수혁의 육체도 묵사발이 났을 것이다.
수혁은 식은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랜턴을 켜 주변을 살펴보았다.
‘실드’의 효과로 주변의 잔해들은 수혁의 일정 범위 내로 침범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래로 떨어지며 무전기도 어디다 흘렸는지 보이지 않아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었다.
“얼마나 떨어진 거지?”
일단 사방이 막혀 있어 어딘지 짐작도 되질 않았다.
‘미니 맵’을 실행하자, 주변의 상황을 알 수가 있었다.
‘대충 지하 2층 정도인가?’
현재 수혁이 있는 위치는 그쯤인 것 같았다.
위치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지하 4층까지 떨어지진 않았으니까.
문제는 주변의 상황이었다.
‘실드’의 범위 밖은 잔해들로 인해 모조리 막혀 있었다.
그야말로 무덤에 생매장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무덤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만 달랐다.
‘20분?’
어림도 없었다.
20분이 아니라 두 시간이 지나도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망했군.”
수혁은 허탈하게 웃었다.
이건 답이 없었다.
“후우…….”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서 가만있을 순 없었다.
아직 ‘각성’의 효과가 3분가량 남아 있었으니, 그사이 최대한 위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수혁은 방화복과 장비를 벗어 던지고는 팔을 들어 위쪽에 있는 돌덩이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콰앙-!
커다란 소리와 함께 돌덩이가 쩍- 하고 갈라졌다.
균열이 생기자 수혁은 그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양쪽으로 벌렸다.
돌들이 부서지며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틈이 생겼다.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그곳을 통해 위쪽으로 올라갔다.
푸스스- 하며 돌가루들이 ‘실드’를 스쳐 지나가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마치 두더지처럼 빠르게 잔해와 돌들을 파헤치며 위쪽으로 나아갔다.
“쉽지 않구만.”
그 속도는 엄청 났지만, 이내 ‘각성’의 효과가 끝이 나며 확연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10m 정도밖에 못 움직였어.”
3분간 10m.
돌을 부수고 흙을 파헤치며 땅속을 이동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거리를 생각해 보면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후우, 움직이자.”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 다섯 번째 ‘실드’를 사용한 수혁은 일단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멈추었다.
‘버틸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야 해.’
올라갈 수 있는 만큼 올라왔다.
더는 무리였다.
이대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선, ‘실드’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압사당할 것이다.
때문에 수혁은 이곳에 안전한 장소를 만들기로 했다.
땅을 파 공간을 넓히고, 돌과 철골을 이용해 지지대를 만들었다.
크기는 사방 1m 정도.
편히 누울 수도 없는 크기였지만,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할 것도 아니었으니 상관없었다.
‘실드’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에 어느 정도 안락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휴우.”
수혁은 쪼그려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떻게 한다?”
지금 당장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실드’도 없었으니,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계속해 지지대를 만들어줘야만 했다.
그건 절대 쉽지 않았다.
속도도 한숨이 나올 정도로 느릴 테고.
하루 종일 움직여도 ‘각성’ 상태의 3분간 이동한 것보다 많이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체력을 비축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언제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몰라.’
음식은 둘째치고, 물이 없다.
아무리 수혁이 인간을 벗어난 힘과 체력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물 없이 살 순 없었다.
‘3일? 4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상황에선 수혁도 그게 한계였다.
몸을 많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 한계는 더욱 빨리 찾아올 것이다.
때문에 수혁은 쉬기로 했다.
‘움직이는 건 하루에 25분만.’
‘실드’와 ‘각성’의 재사용 시간이 되면 그때만 움직이기로 했다.
‘운이 좋으면 3일 안에 빠져나갈 수도 있어.’
수혁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대원들과 경로만 맞는다면, 3일내에 빠져나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물론 그들이 수혁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상태 형이라면 분명 나를 구하러 올 거야.’
수혁은 박상태를 믿었다.
구조대의 경로를 파악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미니 맵’을 통해 확인하고 자신이 그에 맞춰 움직이면 될 일이었으니까.
‘그래. 그렇게 하면 돼.’
수혁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괜히 웃음이 났다.
꼭 이런 상황에 처하는 자신의 처지가 우스웠다.
박수진을 비롯한 요구조자들이 모두 무사하게 호텔을 빠져나갔으니 다행이긴 했지만, 결국 자신은 또 이런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최은송이 얼마나 잔소리를 할지 걱정되었다.
‘분명 엄청 혼나겠지.’
최은송에게 미안했다.
독일로 떠나기 전에 그토록 약속했는데…….
또 어기고 말았다.
아직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신일역 사고 때를 생각해 보면 그녀가 얼마나 충격받을지 예상이 되었다.
그녀가 이 소식을 듣지 못하는 것이 최선이긴 했지만, 그건 아마 어려울 것이다.
분명 언론에도 이 이야기가 흘러 들어갈 테니까.
수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나중 일은 나중에 고민하자.’
지금은 쉬어야 했다.
* * *
박수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바스켓에 올라탄 이후부터 병원으로 이송된 지금까지.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무너지는 호텔 아래로 떨어져 내리던 수혁의 모습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그것을 어찌 잊을까?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사람인데.
그동안 한국을 비롯한 세계 언론에선 수혁을 영웅이라고 추켜세웠다.
박수진도 그것엔 동의했다.
수혁은 사람들에게 영웅이라고 칭송받기 충분한 일들을 해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수혁이 정말로 영화에서나 나오는 슈퍼 히어로일 리가 없었다.
그런 곳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박수진은 자책을 거듭했다.
‘차라리 내가 죽고 아저씨가 살았어야 했어.’
평범한 의대생.
자신과 같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한국만 수천, 수만 명은 될 것이다.
하지만 수혁은?
자신과는 달랐다.
수많은 사람을 살린 사람이고,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사람이다.
그런 이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진정하셔야 합니다.”
너무도 큰 죄책감과 슬픔에 박수진의 멘탈은 정상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의사들이 그녀를 찾아와 신경 안정제의 투약을 고민할 정도였다.
“박수진 씨, 진정하지 않으시면 저희도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는 박수진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의 귓가에는 의사의 말이 단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박수진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결국 신경 안정제 투약을 결정했다.
더는 그녀의 정신이 무너져 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순 없었다.
박수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고.
그런데 그때였다.
병실 내부의 TV에서 흘러나오는 단어 하나가 그녀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김수혁?’
독일어라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김수혁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박수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TV를 쳐다봤다.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혁의 소식을 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수혁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 지금 저기서 뭐라고 하는 거죠?”
박수진이 중얼거리듯 말하자, 간호사가 약물을 가져오길 기다리던 의사가 눈을 크게 떴다.
방금 전까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떤 것 말입니까?”
재빨리 박수진의 말에 반응해 주었다.
“저기 저 뉴스요.”
손을 들어 TV를 가리키자, 의사는 뉴스의 내용을 듣고는 안색을 굳혔다.
‘박수진 씨가 있던 호텔의 소식이군.’
의사는 굳이 이 내용을 통역해 주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에 또다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가 고민하고 있자, 박수진이 재촉했다.
“빨리요!”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음성이었다.
힘이 없고 어눌한 말투이긴 했지만, 그 안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의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앵커의 말을 통역하기 시작했다.
“호텔의 붕괴 소식과 그곳에 매몰된 한국의 구조대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는 어떻게 됐는지 말해줘요!”
박수진이 다급하게 물었다.
의사는 잠시 당황하며 뉴스에 귀 기울였다.
“그, 그러니까. 조금 전부터 그 김수혁이라는 분의 구조 작업에 착수했다고…….”
박수진이 병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 구조라고 했죠?”
살벌하게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기세에 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살아 있다는 말인 거죠? 그렇죠?”
반쯤 죽어 있던 박수진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의사는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고 해서, 반드시 수혁이 살아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기엔 그가 의사 생활을 하며 본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저런 현장에 매몰된 사람이 살아 있을 거란 생각은 지나치게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자신의 생각을 박수진에게 말하진 않았다.
수혁의 구조팀이 만들어져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렇게 기뻐하고 있었다.
희망을 주진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을 순 없었다.
“이쪽에선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살아 있다는 증거가 있으니 저렇게 구조하기 위해 움직이는 걸 겁니다.”
의사의 말에 박수진은 완전히 제정신을 되찾았다.
죄책감과 자책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희망과 간절함이 대신 차지했다.
“제발…….”
아저씨가 살아 있길.
하늘에 빌고 또 빌었다.
그때 간호사가 신경 안정제를 들고 병실에 들어섰다.
그것을 본 의사가 손을 뻗어 멈춰 세운 뒤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더 지켜보자는 뜻이었다.
이대로라면 굳이 약물 처방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이후 수혁의 사망 소식이 들린다면 상황이 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전까지 멘탈을 회복시키면 된다.
최대한 충격을 덜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의사는 간호사를 돌려보내고는 박수진과 함께 TV 화면을 쳐다봤다.
그곳에선 수십 명의 구조대원이 무너진 호텔의 잔해 위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박수진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것을 지켜봤다.
수혁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전까진, 그 모습 그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