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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27화 (327/425)

레스큐 시스템 327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랜턴의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꺼놨더니 빛이라고는 한 점도 들어오지 않아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하루가 지났나 보네.’

그럼에도 수혁은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실드’와 ‘각성’ 스킬의 재사용 시간이 되돌아 왔기 때문이었다.

‘자정은 지났을 테고…….’

수혁이 랜턴을 켰다.

시계를 확인하자, 역시나 오전 12시를 훌쩍 지난 상태였다.

잠깐 눈을 감고 쉬려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잠이 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오긴 하네.’

자신이 이렇게 대범한 성격이었나? 하며 픽- 웃었다.

어쨌든 한숨 잘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인 일이었다.

그만큼 체력의 낭비를 줄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움직이자.’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 슬슬 다시 움직일 때가 되었다.

수혁은 좁은 공간에서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풀어주었다.

그러곤 ‘실드’와 ‘각성’을 동시에 사용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축 처져 있었던 육체에 활기가 돋는 것이 느껴졌다.

당장에라도 날뛸 것만 같은 커다란 힘.

수혁은 그것을 붙잡지 않고 모두 쏟아붓기 시작했다.

콰콰콰콱-!

어제와 비슷한 속도로 땅을 파고 위쪽으로 나아갔다.

‘조금씩 힘이 드는데.’

‘각성’을 사용한 지금도 천천히 체력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은 신경쓸 정돈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점차 수혁을 압박할 게 뻔했다.

‘최대한 이동한 후 다시 쉬어야겠다.’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었다.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고, 물을 마실 수도 없었으니까.

고작해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잠을 청하는 것 외에는…….

수혁은 이를 악물고 스킬들의 사용 시간이 끝날 때까지 1초도 쉬지 않고 전진했다.

그 결과 어제와 비슷한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멈춰선 지점에서 다시 한 번 안전한 공간을 만든 수혁은 움직임을 멈추고 최대한 편한 자세로 몸을 뉘였다.

잠에서 깬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으니 다시 잠이 올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혁은 눈을 뜨지 않았다.

어차피 뜨나, 감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봄베를 가져올 걸 그랬나?’

봄베와 마스크를 벗어둔 것이 살짝 후회가 되었다.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 홀로 갇혀 있으려니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지.’

만약 그것들을 챙겨왔더라도 크게 쓸모가 있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짐만 되었을 확률이 컸다.

수혁은 애써 이런저런 생각을 계속 이어나갔다.

‘이런 공간에 계속 갇혀 있다면 정말 미쳐 버릴지도 모르겠네.’

‘은송 씨는 소식을 들었을까?’

‘수진 씨는 안전하게 구조됐겠지?’

‘빠져나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

‘구조대는 어디까지 왔지?’

부정적인 생각을 최대한 하지 않기 위해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던 수혁이 눈을 살짝 떴다.

그러곤 ‘미니 맵’을 실행시켰다.

처음엔 수혁 주변의 상황밖에 보이지 않았다.

온통 돌과 잔해들로 막혀 있는 답답한 위치.

수혁은 혀를 차며 ‘미니 맵’의 범위를 넓혔다.

한참을 넓히다 보니, 지상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몇 명이지?’

위쪽은 수많은 사람으로 분주했다.

수혁은 그들이 자신을 구조하기 위해 조직된 구조팀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나, 둘, 셋……. 어이구, 많기도 해라.’

놀랍게도 구조팀의 숫자는 수십 명에 달했다.

수혁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많다고 느낄 정도였다.

처음 수혁이 생각했던 것은 열 명 내외 정도였는데, 그 몇 배나 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태 형이 힘 좀 쓴 건가?’

현재 박상태는 수혁을 대신해 한국 구조팀의 지휘를 맡고 있었으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반발이 심할 텐데?’

수혁은 박상태가 혹시 무리한 것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고마움을 느꼈다.

아직 수많은 요구조자가 남아 있을 텐데…….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하지 않아요?’

수혁은 속으로 피식- 하고는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잠도 오지 않았으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될 것 같았다.

* * *

“탐지기 준비됐습니다.”

수혁의 구조팀에 합류한 대원 중 한 명이 율리안에게 보고했다.

“복합 탐지기(Leader-Hasty)인가?”

“그렇습니다.”

복합 탐지기는 전파와 음향을 동시에 탐지하여 매몰자의 유무와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장비였다.

“……다행이군.”

율리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것으로 발견할 수 있다면 다행이었지만, 솔직히 그는 회의적이었던 것이다.

‘사용하기엔 너무 제한적이야.’

음향 탐지는 주변의 소음이 너무 심하기에 정확히 작동할지 의문스러웠고, 전파 탐지는 잡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무전기 연락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단 훨씬 가능성이 높았기에 율리안은 탐지 장비들을 사용하기로 했다.

“지금 바로 설치하고 탐색 시작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대원은 대답하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매몰자 구조는 시간 싸움이었다.

기적적으로 잔해 밑에 깔린 채 생존해 있다 하더라도, 구조 시간이 길어진다면 사망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때문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체력과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할 테고, 가장 큰 것은 물과 음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라면 호흡에도 지장이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추가 붕괴로 인해 사망할 가능성도 극히 높았다.

그러니 최대한 조심히, 그리고 신속하게 구조와 수색을 진행해야만 했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율리안의 옆에 서 있던 박상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요. 위치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이곳에 투입된 구조대원만 거의 백 명에 가깝다.

수혁이 낙하한 지점을 대충 알고 있었으니, 수색 범위도 많이 좁혀진 상태였고.

그러니 땅을 파고 길을 만드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수혁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겠죠.”

박상태와 율리안은 수혁이 살아 있을 것이라 믿었다.

수혁의 능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죽었다고 믿고 싶지 않은 이유가 더 컸다.

하지만 그 둘도 그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살아 있더라도, 분명 크게 다쳤을 것이다.

8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데, 잔해들에 파묻혔다.

그 어떤 사람도 무사할 순 없었다.

“그놈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박상태는 수혁을 믿었다.

그는 수혁의 육체가 기적처럼 치유되는 것을 직접 목도했다.

전신에 화상을 입고, 세포가 괴사하는 상황에도 수혁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것을 생각해 보면 아무리 큰 부상을 입었다 해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이 무사하길 바라는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탐지 준비가 되었다는 보고입니다.”

그때, 슈미츠가 두 사람에게 달려오며 보고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준비를 마친 지 오래입니다.”

슈미츠가 대답하자, 율리안이 시계를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수색 시작한다. 수혁을 찾을 때까지 절대 멈추지 말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수혁이 매몰된 지 한 시간이 지난 시점부터 수색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대장님!]

박상태와 함께 잔해들을 걷어내고 있던 율리안의 무전기에서 다급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슈미츠였다.

“말해.”

율리안은 손에 들고 있던 장비들을 내려놓고는 무전기를 들었다.

슈미츠의 음성에서 뭔가 특이사항이 발생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뭔가가 탐지되었습니다!]

그 말에 율리안은 곧장 탐지반이 작업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입니까?”

그 모습에 박상태가 놀라 묻자, 율리안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고개만 돌려 소리쳤다.

“따라오세요!”

박상태 역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대로 율리안의 뒤를 따라 뛰었다.

“뭔가 발견했다고?”

탐지반에 도착한 율리안이 다짜고짜 물었다.

“그렇습니다.”

탐지기를 조작하고 있던 대원이 그런 율리안을 향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보고를 시작했다.

“10분 전 상황입니다.”

탐지기 옆에 붙어 있던 노트북을 조작하자,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 같기도 했고, 추가 붕괴가 일어나는 것 같은 소리 같기도 했다.

“이게 뭐지?”

“바로 이 아래에서 들려온 소리를 녹음한 것입니다.”

대원의 말에 박상태와 율리안은 집중해서 소리를 다시 들어보았다.

하지만 이것이 수혁이 내는 소리라고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냥 안쪽에서 잔해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아닌가?”

율리안이 물었다.

하지만 대원은 그것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이쪽을 확인해 보시면…….”

대원이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무슨 그래프 비슷한 것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길 보시면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대원의 말처럼 마구잡이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소리였다.

그것이 뜻하는 건…….

“인위적으로 나는 소리란 말이군.”

“그렇습니다. 이건 분명 사람이 내고 있는 소리입니다.”

대원은 확신에 가득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율리안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금 이 아래에 생존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단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위치는 파악됐나?”

“그렇습니다. 이미 대원들에게 위치를 전파하였습니다.”

“최단 루트를 설정해야겠군.”

율리안이 말하는 최단 거리는 직선이 아니었다.

수혁으로 짐작되는 이의 위치를 확인했으니, 최대한 그곳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하며 다가갈 수 있는 길이었다.

필연적으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

문제라는 말에 율리안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뭐지?”

“조금 전부터 소리가 끊겼습니다.”

처음 소리를 포착한 후, 분석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소리가 사람이 인위적으로 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낸 후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뚝 끊어졌다.

“설마……?”

“아직 확신은 할 수 없습니다.”

율리안의 표정이 살짝 다급해졌다.

“각 팀장을 소집하도록.”

“지금 바로 모이라고 연락하겠습니다.”

율리안의 명령에 슈미츠가 빠르게 무전기를 꺼내 각 팀장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사이 율리안은 박상태에게 지금까지의 대화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역시 살아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놈이 명줄 하나는 기니까.”

“하지만 소리가 끊겼다고…….”

“조금 쉬고 있는 걸 겁니다.”

박상태는 율리안과 달랐다.

일단 살아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니, 수혁의 회복력을 생각하면 절대 쉽게 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일단 팀장님도 회의에 참석하시죠.”

“물론입니다.”

수혁을 구조하기 위한 회의다.

그런 자리에 자신이 빠질 순 없었다.

구조팀의 구성원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연합의 대원들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회의는 영어로 진행될 테니 소통에는 문제가 없을 터.

‘조금만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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