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29화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이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하는 것은 그야말로 곤욕이었다.
생리 현상조차 수혁에게는 큰 문제로 다가왔다.
‘오줌을 모아둘 필요는 없겠지?’
계획대로라면 이틀 후에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 정도는 물 없이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니 굳이 소변을 받아서 마실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목이 마르긴 한데…….’
물론 버틸 수 있다 뿐이지 갈증은 수혁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목이 타는 것은 생각처럼 쉽게 참아지질 않았다.
수혁은 한참을 고민했다.
수분을 보충할 수 없었으니, 소변도 한계가 있었다.
만약 그냥 바닥에 싸버린다면, 다신 모으지 못할 수도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모아두는 게 나을까?’
수혁이 예상하지 못한 상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구조대와 만날 시점이 늦어진다면 낭패였다.
물론 그렇다 해도 5일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그때까지 갈증을 참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모아두자.’
지금 당장은 조금 참더라도, 버티지 못할 때를 대비해 수혁은 소변을 모아두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어디에 모아야 하지?’
랜턴을 켜고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수색했다.
작은 공간이긴 했지만, 의외로 수많은 잔해가 섞여 쓸 만한 것들이 꽤 보였다.
‘생수통이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아쉽게도 생수통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찾은 것은 작은 종이컵이었다.
“음…….”
수혁이 신음했다.
종이컵에 볼일을 보면 일단 모아둘 수 있긴 했지만, 내일 움직이기 시작하면 갖고 다닐 수가 없었다.
‘이건 일단 보류.’
종이컵을 한쪽에 놓아둔 수혁은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없구나.’
한숨이 나왔다.
하긴, 이런 곳에서 형편 좋게 딱 생수통이 발견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리 높진 않을 것이다.
수혁은 어쩔 수 없이 종이컵에 소변을 보기로 했다.
보는 사람 한 명 없었음에도, 왠지 민망해졌다.
“흠흠.”
괜히 헛기침하며 주섬주섬 바지를 내리고 있을 때였다.
“응?”
수혁의 얼굴 위로 축축한 뭔가가 떨어져 내렸다.
바지를 벗던 것을 멈추고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쓰다듬었다.
“……물?”
얼굴에 떨어진 것은 물방울이었다.
한 방울에 불과했지만, 분명 시원한 물이었다.
수혁이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혹시?”
위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자, 또다시 천천히 물방울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물이다!’
수혁은 속으로 환호했다.
그리고 동시에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펌프차로 물을 뿌려주고 있구나!’
이전 테러 현장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매몰자들을 위해 물을 뿌려주던 펌프차.
걸러지고 고이며 요구조자에게 도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적겠지만, 그렇게 하면 최소한의 수분을 보충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위에서 펌프차를 이용해 물을 뿌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하…….”
수혁이 웃으며 종이컵을 들어 물방울이 모이는 곳 아래쪽에 가져다 댔다.
톡톡- 하는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컵 안으로 떨어졌다.
‘다행이다, 오줌을 안 마셔도 돼서.’
웃음이 실실 나왔다.
이 속도라면 한 컵을 채우는 데도 한 시간 이상 걸릴 것 같았지만, 그건 별문제가 아니었다.
소변 대신 물을 마실 수 있다면 말이다.
다행히 물방울의 양이 점차 늘었다.
덕분에 한 시간이 아니라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종이컵이 가득찼다.
수혁은 기쁜 마음으로 그 물을 한 번에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크으!”
바짝 말라 있던 목에 수분이 들어가며 참을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새삼스레 물의 소중함을 다시 느낀 수혁은 종이컵을 다시 가져다 댔다.
물방울이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기에 이런 식이라면 갈증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괜찮으려나?’
수혁은 물줄기가 흘러내리며 추가적인 붕괴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지지대를 튼튼하게 만들어두었기에 웬만한 충격이 아니면 무너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위험하긴 했다.
혹시 몰라 ‘미니 맵’으로 주변 상황을 살펴보았다.
‘위험감지Ⅲ’와 연동이 된 ‘미니 맵’은 수혁 주변의 위험 요소들을 모두 표시해 주었다.
“흠.”
아까 확인했던 것과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그 말은 물로 인해 붕괴가 위험에 빠질 일은 없다는 뜻이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 계산하고 행동했겠지.’
위에 있는 구조대원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런 현장을 몇 번이고 경험해 본 이들이 넘쳐날 것이다.
당연히 어떠한 위험이 있는지 잘 알고 있을 테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숙고를 했을 터였다.
수혁은 안심하고 계속해서 물을 받았다.
‘일단 이렇게 물배라도 채워야겠다.’
이런 식으로 배를 채우려면 한참 걸리겠지만, 딱히 할 일도 없었으니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물이라도 받는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동안은 지루함과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 * *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고?”
“그렇습니다.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분명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보내는 신호였습니다.”
율리안은 탐지반 대원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박상태와 달리 소리가 끊긴 뒤, 설마 하며 좋지 않은 예감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애써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상황이 그리 희망적이진 않았다.
그런데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니, 이제 좀 안심이 되었다.
“위치는?”
“처음 감지했을 때와 변함없습니다.”
“좋군.”
운 좋게도 안전한 곳에 매몰된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 안전한 곳이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말이야.’
율리안은 속으로 픽- 하고 웃으며 다시 대원을 쳐다봤다.
“물 공급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아, 그건 이 녀석이…….”
대원은 보고하는 대신 옆에 있던 슈미츠를 가리켰다.
물 공급에 관해선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슈미츠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입을 열었다.
“현재 펌프차를 동원해 가장 안전하리라 생각되는 곳을 통해 물을 뿌리는 중입니다.”
“확실히 안전한가?”
“재난 대응팀에서 보장했습니다.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재난 대응팀에서는 탐지반과 연계해 아래쪽의 지형을 파악하고, 그것을 토대로 안전한 경로와 물의 양을 계산했다.
그 결과 펌프차에서 뿜어져 나온 물이 수혁에게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슈미츠의 자신 있는 대답에 율리안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이면 교관님이 계시는 곳에 물줄기가 도착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다행이군.”
가장 컸던 문제가 해결되었다.
일단 수분 공급이 해결되었다면, 구조에 조금 더 신중할 수 있었다.
급하게 구조하다 추가 붕괴가 일어나는 것보단, 조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길을 뚫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수분 공급이 된 것은 큰 성과였다.
“그럼 남은 건 길을 뚫는 것뿐이군.”
율리안이 슈미츠를 쳐다봤다.
진행 상황을 보고하라는 뜻이었다.
“현재 다섯 개 팀으로 나뉘어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지금까지 약 3m가량 길을 뚫은 상태이고, 이 속도라면 교대 전까지 10m까지는 전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작업 속도가 빠르군요.”
“아직 초반이라 그렇지.”
탐지반 대원은 감탄했지만, 율리안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본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작업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율리안의 기준에선 지금도 너무 느린 속도였다.
“조금 더 속도를 내라고 전해라. 교대하기 전까지 최소한 15m는 파야 해.”
“알겠습니다.”
아직 위쪽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면, 하루에 전진할 수 있는 거리가 5m나 되면 다행일 것이다.
‘그것도 힘들 수 있고.’
안전에 유의하며 섬세하게 움직이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내는 것이 좋았다.
“교대까지 다섯 시간 남았다. 그때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특이 사항이 발생하면 곧장 보고하고.”
“옙!”
슈미츠와 대원들은 큰소리로 대답하고는 다시 돌아갔다.
“후우.”
율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구조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었지만, 율리안은 가슴 한가운데에 커다란 돌이 올라가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내가 괜히 불러서…….’
수혁은 자신이 직접 도와달라는 부탁을 해서 독일에 오게 되었다.
덕분에 이런 일이 생긴 것 자체가 자신의 부탁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괜한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누군가 대화라도 해서 이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박상태 역시 수혁을 구조하는데 자신이 가만있을 순 없다며 현장으로 간 상태였으니…….
한참이나 천막으로 만들어진 본부에 앉아 한숨을 내쉬던 율리안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느니, 박상태처럼 손을 보태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부하들은 절대 반대하겠지만 본부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너무도 힘겨운 일이었다.
물론 본부에 누군가는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각 팀의 상황을 보고 받고 그것을 전달해야만 했으니까.
율리안은 다니엘을 불렀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슈미츠와 달리, 다니엘은 행정적인 능력 역시 뛰어났다.
무전기로 부른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다니엘이 급하게 본부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너, 내 대신 본부 좀 지키고 있어라.”
“……예?”
다니엘은 순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끔뻑였다.
그러다 곧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얼른 다녀오십시오. 그동안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각 팀장들에게 보고가 들어오면 정리해서 나에게 알리도록.”
“옙!”
율리안은 별다른 질문도 하지 않고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다니엘이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종종 써먹어야겠군.’
율리안은 그런 생각을 하며 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반면 본부에 남은 다니엘은 의자에 앉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오래 참으셨나 보네, 이렇게 급하게 찾을 정도면.”
다니엘은 율리안의 의도와는 달리 작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언제쯤 오시려나. 많이 급하신 것 같으니 좀 걸리실 듯한데.”
본부를 지키고 있던 다니엘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율리안이 설마 화장실이 아니라 현장으로 갔을 것이라곤 말이다.
결국 다니엘이 본부에서 율리안을 맞이한 것은 다섯 시간이 지난 후.
유럽 연합 구조팀과의 교대 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전신에 흙먼지를 가득 묻히고 들어온 율리안은 다니엘을 보며 수고했다는 듯,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대장님!”
어제처럼 다니엘을 본부에 둔 채 작업을 하고 있던 율리안을 탐지반 대원이 다급하게 찾았다.
“무슨 일이지?”
왠지 심상찮은 분위기에 율리안이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그러자 붉게 상기된 대원의 얼굴이 보였다.
“뭔가 이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