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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30화 (330/425)

레스큐 시스템 330화

율리안은 손을 멈추었다.

‘뭔가 이상하다니? 무슨 말이지?’

대원의 표정을 보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율리안은 불안감을 느끼며 일단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주변에서 작업하고 있는 대원들에게 계속 진행하라고 명령한 뒤, 홀로 올라갔다.

“보고해.”

“이쪽으로 오시죠. 직접 보셔야 합니다.”

대원은 율리안을 데리고 탐지반이 장비를 설치해 둔 곳으로 갔다.

“들어보십시오.”

그러곤 녹음되어 있는 소리를 재생했다.

“……응?”

그것을 들은 율리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어제 들었던 소리 아닌가?”

대원이 재생한 소리는 분명 어제 들려주었던 것과 동일한 것 같았다.

바로 수혁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주었던 소리 말이다.

그래서 율리안은 대원이 실수로 같은 것을 틀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5분 전부터 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흠, 그런가?”

노트북에서는 뭔가가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 같은 소음이 반복적으로 흘러 나왔다.

“어제처럼 다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겠지.”

율리안은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히려 대원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럴 것이라 판단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을 보십쇼.”

대원은 지금부터가 진짜라며 노트북의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에는 뭔가 복잡한 숫자와 그래프들이 난잡하게 펼쳐져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율리안은 그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자 대원은 어느 한쪽에 있는 몇 자리 숫자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것이 소음이 발생하고 있는 위치입니다.”

아마도 좌표인 것 같았다.

“그래서?”

율리안이 계속하라는 듯 턱짓을 하자, 대원은 다른 숫자들을 가리켰다.

“이것은 어제 소음이 들렸던 곳의 위치이고요.”

율리안은 두 숫자를 비교해 보았다.

그리고 대원이 왜 그렇게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찾았는지 알 수 있었다.

“……바뀌었군.”

“그렇습니다.”

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가 변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사실은 하나였다.

“김수혁 씨가 이동하고 있습니다.”

대원은 자신이 말을 꺼내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대원의 입장에서는 옥상에서 붕괴와 함께 추락하며 매몰된 수혁이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율리안이 강력하게 구조를 주장하지 않았더라면, 탐지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수혁이 살아 있다는 것이 발견되어 놀랐는데…….

‘거기서 이동하고 있다고?’

물론 어제도 소음의 위치가 조금씩 이동하기는 했다.

하지만 어젠 그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장비를 갓 설치한 뒤라 사소한 오류가 발생한 것이라고 치부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보니 오류 따위가 아니었다.

게다가 속도가 느린 것도 아니었다.

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위에서 수십 명의 사람이 동시에 작업하는 것과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는 속도였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지금 이렇게 율리안과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도 수혁의 위치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었다.

조금씩 위로, 지상을 향해서 말이다.

“겨, 경로와 앞으로의 예상 위치는?”

율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만큼 놀랐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대원은 율리안의 말에 재난 대응팀의 대원을 불러 서로 뭔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르고 난 뒤.

“다 됐습니다.”

대원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별로 특이한 것은 없었다.

그저 어제 표시되었던 수혁의 위치부터 지상까지, 일직선으로 붉은 표시가 이어져 있다는 것만 빼면.

“정확히 위쪽을 향해 직선으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직 표본이 부족하긴 했다.

고작 두 번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둘을 이어보면 정확히 직선이었다.

대원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별로 특이할 것은 없었다.

그저 어제 표시되었던 수혁의 위치로부터 지상까지 일직선으로 쭉- 하고 붉은 표시가 이어져 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정확히 위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직 표본이 부족하긴 했다.

고작 두 번의 소리밖에 얻은 것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두 번의 소리가 발생한 위치를 이어보면 정확히 일직선이었다.

“각 팀장들 소환해. 지금 당장.”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율리안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 * *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은 지난 이틀보다 적은 거리를 이동했다.

체력에 한계가 도달해서는 아니었다.

어제 물이 흘러내리며 살짝 불안함을 느꼈던 탓이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 하나는 갖고 있어야지.’

만약 위쪽에서 실수해 추가 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저들의 실력과 계산은 믿고 있었지만, 사고란 언제나 예기치 못하게 일어나는 것이었으니까.

어제처럼 물을 공급하다 무너질 수도 있었고, 길을 뚫다 무너질 수도 있었다.

혹시 몰라 안전지대를 만들고 튼튼한 지지대로 지탱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혁은 ‘실드’ 하나를 아껴두기로 했다.

만에 하나 벌어질 수도 있는 악재를 위해서 말이다.

덕분에 그제와 어제보다는 조금 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큰 차이는 없어.’

물도 없고, 오직 혼자서 탈출해야 한다면 그 적은 거리도 아쉬웠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위쪽에서도 수혁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제와 같이 자리에 누워 ‘미니 맵’을 통해 위쪽의 동태를 살폈다.

‘응? 왠지 분주한데…….’

구조 작업은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한쪽에선 꽤 많은 사람이 빠르게 모여들고 있었다.

‘뭐지?’

무슨 일이 발생한 건 아닐까? 고민하던 수혁은 이내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나 때문인가 보군.’

어제도 탐지기로 자신의 위치를 찾았다.

그러니 오늘 역시 탐지기를 가동 중이었을 테고, 자신이 이동하는 소리를 들었을 게 분명했다.

‘쩝.’

수혁이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구조팀에서 탐지 장비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난리가 났겠는데.’

수혁이 이동하는 소리를 위에서 들었다면, 지금쯤 혼란으로 가득할 것이다.

지금 수혁이 한 행동은 상식선에서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수혁은 현재 심각한 부상을 입고 죽음과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당연했다.

입장을 바꿔본다면 수혁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까.

그런데 엄청난 속도로 지상을 향해 뚫고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모여드는 것도 이 상황을 논의하기 위함일 것이다.

‘곤란하게 됐어.’

수혁이 흙으로 범벅이 된 뺨을 긁적였다.

살아 있는 것도 놀라운데,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잔해들을 뚫고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니…….

만약 언론에 이 이야기가 흘러들어 간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있을 순 없잖아.’

만약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면, 언제 구조가 가능할지 알 수 없었다.

3일은 턱도 없었다.

5일? 그것도 부족했다.

일주일, 혹은 그 이상.

그 정도면 수혁도 버티기 힘들 정도였으니, 어쩔 수 없이 탈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짐이나 율리안의 도움을 받아야겠군.’

수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걱정을 머릿속에서 떨쳐 냈다.

지금은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걱정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나중 일은 나중에 고민하면 된다.

‘어떻게든 되겠지.’

수혁은 일단 지금 당면한 문제들을 직시했다.

‘화장실이 급해.’

소변이라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큰 볼일이었다.

이건 좀 골치가 아팠다.

이동할 때는 볼일을 볼 시간도 없었다.

1초라도 더 아껴서 앞으로 전진을 해야 했으니까.

이렇게 멈춰선 상태에선?

냄새 때문에라도 쉽사리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이걸 어쩐다?’

수혁은 크나큰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해서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더 늦기 전에.

* * *

“너무 빠른 것 아닙니까!”

팀장 중 한 명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팀장 역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구조 본부에 모인 율리안과 각국의 팀장들은 심각하게 회의를 이어갔다.

만약 지금 수혁이 가장 크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저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다행히 저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기에 혼란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이어갔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어떤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쨌든 요구조자가 현재 빠르게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율리안이 담담한 음성으로 떠들썩하던 분위기를 잠재웠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자, 율리안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여기 자료를 보면, 요구조자는 하루에 15분에서 20분 사이의 시간 동안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수혁은 잠잠했다.

힘이 빠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고작 그 정도의 시간밖에 움직이지 않는데, 저 정도의 거리를 이동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오늘 하루만 거의 10m에 가까운 거리를 이동했다.

수혁이 현재 처한 상황과 혼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수혁을 구조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일이었다.

율리안은 말을 꺼낸 팀장을 한번 지긋이 쳐다봐 주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저희가 논의할 것은 구조 경로입니다.”

율리안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화면이 넘어갔다.

그곳에는 예상 구조도와 수혁의 위치, 그리고 어제 결정했던 구조 경로 등이 표시되어 있었다.

“여길 보시면 요구조자가 어떤 식으로 이동하고 있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붉은 선이 나타나며 수혁의 예상 이동 경로를 나타냈다.

“음…….”

사람들이 신음 소리를 냈다.

경로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을 뿐이었으니까.

율리안은 그런 사람들의 분위기를 애써 무시하며 이번엔 파란 선을 가리켰다.

“이것이 저희의 구조 경로이고요.”

붉은 선과는 달리 파란 선은 구불구불했다.

율리안은 레이저 포인터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바로 붉은 선과 파란 선이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요구조자의 이동 속도와 구조대의 이동 속도를 고려하면, 이곳이 첫 번째로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팀장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것을 확인했다.

오류는 없는지,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계산했다.

“예상 시간은?”

누군가 묻자 율리안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내일 오후, 7시쯤입니다.”

팀장들이 모여 회의를 시작하기 전.

재난 대응팀과 탐지반의 인력을 동원해 도출한 결과였다.

그리고 율리안은 교차 지점을 뚫어지듯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을 랑데부 지점으로 상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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