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33화
“안 돼.”
율리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모든 사람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살아 있기는 했지만, 저 깊은 땅속에서 3일이나 갇혀 있었고.
그런 상황에 뭐?
‘병원을 안 가고 이대로 구조에 참가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저 정말로 괜찮습니다만…….”
수혁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실제로 배가 조금 고프다는 것을 제외하면 육체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수혁의 입장일 뿐이었다.
구조대장으로서, 또한 수혁을 아끼는 한 사람으로서.
수혁의 제안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 병원으로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라. 그 후, 정말로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면 그때 고려해 보도록 하지.”
율리안 역시 수혁의 도움이 간절하게 필요하긴 했다.
그가 도와준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요구조자들을 구조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요할 순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되었고.
“상태 형, 말 좀 해줘요.”
수혁은 옆에서 연신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 박상태를 쳐다봤다.
박상태라면 자신이 이 정도에 몸이 상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이놈 말이 맞습니다. 이놈이라면 3일이 아니라 30일을 갇혀 있었어도 멀쩡했을 겁니다.”
박상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바지와 반팔의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는 그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수혁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잠을 자다 곧장 뛰어나온 덕분이었다.
정신없는 옷차림과는 달리 눈빛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수혁이 지금 완벽히 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아예 걱정을 안 하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눈에 보이는 부상이 없다고 해도, 지난 며칠간 겪었을 일을 생각해 보면 휴식은 필수였으니까.
그런데도 박상태는 수혁의 말을 지지했다.
걱정보다 신뢰가 더 컸기 때문이었다.
뭐, 자신들이 말한다고 해서 듣지 않을 거란 것도 이유 중 하나였고…….
차라리 이런 일로 실랑이를 하며 시간을 낭비하느니, 수혁의 말대로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율리안은 박상태마저 동조하고 나서자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하니 그가 이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수혁이 매몰되어 있는 동안 박상태는 자신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걱정을 했었다.
쉬지도 않고 구조 작업에 매진한 탓에 오죽하면 율리안이 강제로 끌어내 숙소로 보냈을 정도였다.
그런 박상태가 수혁이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할 줄이야.
왠지 모를 배신감마저 들 정도였다.
“하아.”
율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수혁을 향해 물었다.
“정말로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안 좋아 보이면 그대로 병원으로 보내도 괜찮겠지?”
“그렇게 하시죠.”
수혁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결국 율리안은 뜻을 굽혔다.
“단, 현장에 직접 투입하는 것은 간이 검사가 끝난 후다. 그전까지는 지시만 내리도록.”
수혁이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율리안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 정도는 양보를 해야지.”
“…알겠습니다.”
결국 수혁은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이것마저 거부한다면, 율리안은 수혁을 그냥 병원으로 보내 버리는 것을 선택할지도 몰랐다.
“좋아.”
수혁이 순순히 대답하자, 율리안은 구급대원을 불렀다.
“병원 이송은 없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구급대원이 기겁하며 물었다.
율리안은 그런 구급대원에게 대강의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고는 간단하게 검사할 수 있는 장비들을 챙겨 오도록 지시했다.
“이곳에서는 정밀한 검사를 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바이탈 체크 정도밖에는…….”
구급대원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혈압과 맥박, 호흡과 체온의 확인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미 체크가 끝났다.
“나도 알고 있다. 그래도 가져와.”
구급대원은 율리안의 명령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결국은 알겠다며 구급차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수혁이 박상태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도 좀 주세요, 형.”
요구조자들의 위치를 표시해 주어야 했다.
그런데 그것에 반응한 것은 박상태가 아니라 율리안이었다.
그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품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 수혁에게 건네주었다.
수혁이 웃으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러곤 ‘미니 맵’을 실행시켰다.
지난 3일간 수도 없이 들여다보았던 것.
하지만 그 3일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너무 많이 줄어들었어.’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던 요구조자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했다.
물론 무사히 구조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것보단…….
‘죄송합니다.’
구조가 되기 전에 목숨을 잃은 이들이 더욱 많았다.
이제 남은 사람은 기껏해야 아홉 명.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
수혁은 저 밑에 있는 동안 요구조자들의 생명 반응이 사라지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다.
한 명, 한 명…….
구조되어 병원으로 이송되는 이들을 볼 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점차 약해지다 마지막 힘을 다한 촛불처럼 꺼져 버리는 이들을 볼 땐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차라리 보지 못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곳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한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수혁은 작게 떨리는 손으로 펜을 들어 지도에 표시하기 시작했다.
한 개, 두 개, 세 개.
그리고 마지막 아홉 개.
수혁이 펜을 내려놓자 박상태와 율리안이 의아한 눈으로 수혁을 쳐다봤다.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박상태는 수혁이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어떤 종류인지, 어떠한 방식으로 발동되는 건지는 알지 못했다.
때문에 현재 수혁이 지친 상태라 표시하는 것을 잠시 멈춘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혁의 반응은 다른 두 사람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게 끝이에요.”
“뭐?”
박상태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수혁과 지도를 번갈아 쳐다봤다.
“남은 요구조자는 아홉 명. 더 이상의 생존자는 없습니다.”
수혁의 음성은 무겁기 짝이 없었다.
“아홉 명?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 아홉 명밖에 없다고?”
그제야 수혁의 말을 이해한 율리안이 눈을 부릅뜨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적어도 30명 이상의 생존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아도, 20명 정도는 아직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홉 명?
수혁은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와 오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위에서는 수혁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분 공급을 위해 철저한 계산 끝에 물을 뿌렸다.
물론 어디에 몇 명의 요구조자가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계산이 정확할 순 없었지만…….
최대한 구조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공급을 해왔다.
그 결과 수혁은 가벼운 탈수 증세 정도로 끝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매몰되며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공급되는 수분 이상으로 출혈이 심했기에, 체력과 생명력이 빠르게 소진되었다.
그 한계 지점이 바로 어제와 오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혁은 수십 명의 사람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
“……믿을 수 없다.”
율리안은 본능적으로 수혁의 말을 거부했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이해합니다.”
자신도 이리 슬픈데 율리안이야 오죽할까?
수혁은 율리안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하지만 부정한다고 해서 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믿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지금은 저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수혁은 말하며 지도의 표시들을 가리켰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사람들을 구하는 겁니다.”
후회와 애도, 좌절은 그 후에 해도 된다.
살아 있는 아홉 명의 요구조자는 그나마 상태가 좋아 아직은 버티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 중 몇 명은 빠르게 생명 반응이 약해지고 있었다.
저들마저 잃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움직여야만 했다.
“지금 당장 대원들을 보내세요. 더는 사람들을 잃어선 안 됩니다.”
손도 쓰지 못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은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율리안은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는지,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빨리 움직이라고요!”
수혁이 그런 율리안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옆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던 박상태가 깜짝 놀랄 정도로 큰 소리에 율리안 역시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하지.”
정말로 수혁의 말대로 남은 요구조자가 아홉 명밖에 없는지, 아니면 더 많은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혁이 보여주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적어도 아홉 명의 요구조자는 표시된 장소에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확인된 요구조자들부터 구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율리안은 애써 머릿속에서 수혁의 말을 지웠다.
“팀장급 모두 모이라고 해!”
율리안이 급히 어디론가 이동하며 팀장들을 소집했다.
“우리 팀은 지금 휴식 시간이죠?”
빠르게 멀어지는 율리안을 잠시 쳐다보다 수혁이 박상태에게 물었다.
“이다음 교대가 우리 차례니 지금쯤이면 모두 일어났을 거다.”
“우리도 조금 빨리 모이라고 하죠.”
수혁이 돌아온 이상, 한국 구조팀의 지휘는 다시 수혁에게로 돌아갔다.
교대까진 몇 시간 정도 남긴 했지만, 수혁의 말대로라면 분초를 다투는 일이었다.
조금 더 빨리 현장으로 나와 손을 보태야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터.
“연락하마.”
박상태는 곧장 전화를 들어 숙소에서 쉬고 있을 팀장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수혁은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지금 당장에라도 일어나서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율리안과 약속했다.
‘일단은 검사부터.’
몸에 이상은 없었으니, 간단한 검사에서 문제가 발견될 가능성은 없었다.
수혁은 검사가 끝나면 한국 구조팀과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 조금 전 율리안에게 명령을 받았던 구급대원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몇 가지 장비가 들려 있었다.
간단한 검사를 할 수 있는 것들로 보였다.
“다들 네가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더라.”
“……고맙네요.”
자신을 걱정해 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사실에 수혁은 괜히 머쓱해졌다.
“저, 대장님은 어디에……?”
수혁이 있는 곳에 도착한 구급대원이 율리안의 행방을 물었다.
“급한 일이 있어 회의에 참가했습니다. 검사는 굳이 율리안이 없어도 할 수 있죠?”
“그렇습니다만.”
“그럼 바로 시작하죠.”
수혁이 구급대원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그런 수혁의 눈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