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42화
환영식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던 남자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했던 행사만큼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준비한 행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짧고 간결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심지어 청와대에서 주관하고 대통령이 참가한 행사였음에도 말이다.
대원들은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수혁의 표정은 조금 좋지 않았다.
별로 보고 싶지 않았던 인물이 행사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보는군.”
강현성.
그는 예전의 일은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수혁에게 다가오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지난주에 공항에서 봤습니다만.”
“그땐 정신이 없지 않았나. 이렇게 따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지.”
수혁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여기서도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따로 하는 걸로 하고, 일단 들어가지.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 같으니.”
강현성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먼저 만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체 뭔 꿍꿍이인지 모르겠네.’
서로 웃는 낯으로 이야기할 사이는 아니었다.
수혁도 그러했고, 강현성 역시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계속 아는 척을 해오는 것을 보면 분명 다른 속셈이 있는 게 분명했다.
“청장이랑 아는 사이였냐?”
멀어지는 강현성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박상태가 다가오며 물었다.
“몇 번 본 적 있어요.”
그리고 볼 때마다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았다.
특히 지난번 청와대에서의 만남 이후로는 더욱 꺼려지는 사람이었다.
“별로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고.”
박상태는 수혁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차렸다.
“마음에 안 들어요.”
수혁이 뚱하게 대답하자, 박상태가 킥킥- 웃었다.
“관료들이 뭐 그렇지.”
박상태는 이해한다는 듯 수혁의 어깨를 몇 번 토닥이고는 앞으로 밀었다.
“골치 아픈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밥이나 좀 먹으러 가자. 배고파 돌아가시겠다.”
박상태의 손에 이끌려 만찬장에 도착한 수혁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대원들과 기타 참석한 사람의 숫자를 보면 거의 백 명에 육박한다.
때문에 당연히 독일에서처럼 뷔페로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5~6명씩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었고, 웨이터처럼 갖춰 입은 이들이 음식을 서빙하고 있었다.
“엥, 뷔페가 아니었어?”
박상태 역시 뷔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앉아요.”
만찬에는 당연히 대통령도 참석한다.
괜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가 찍힐 필요는 없었다.
‘뭐, 신경도 안 쓰겠지만.’
일개 소방관 한 명에게 신경쓰기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너무도 바쁠 것이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기에 수혁과 박상태는 표정을 풀고는 자신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이런……. 하필이면.’
자리에 앉은 수혁이 앞에 적혀 있는 이름 하나를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야, 여기 혹시?”
“하아.”
박상태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고, 수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이군요.”
부담이 팍팍 느껴지는 음성과 함께, 대통령이 웃으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 * *
케인 로저스는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명예시민증을 한국에 있는 대사관에서 수여하자는 말이군.”
“죄송합니다.”
헛웃음이 들려왔다.
“자네가 김수혁과 안면이 있다기에 일을 맡긴 것인데.”
담담한 음성.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뜻은 질타가 분명했다.
케인 로저스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세계 최강국의 정점에 서 있는 자이자, 미국의 최고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흠…….”
미 대통령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평소 그의 성격은 화끈하고 호탕했다.
사람을 대하는 것에 차별이 없었고, 웬만한 일은 웃으며 넘어갈 정도로 배포도 컸다.
하지만 그런 대통령도 참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미국이 무시를 당하는 것.
본인을 깎아내리는 것은 얼마든지 참아도 미국을 무시하는 일은 절대 참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자존심이었고, 절대 넘어서는 안 될 선이었다.
그래서 케인 로저스는 긴장했다.
만약 대통령이 수혁의 뜻을 미국이 무시당한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명예시민이고 지원이고 다 날아가는 거지.’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져선 안 된다.
케인 로저스가 직접 약속한 일이기도 했고, 이미 실무자 회의까지 끝난 상황에 취소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문제가 생긴다.
국가 간의 신뢰성은 사실 별것 아니었다.
그보다 큰 문제는, 바로 미국 국민들이 수혁을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혁이 위험을 무릅쓰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진 영상이 억 단위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뿐인가?
조금 잠잠해졌던 수혁에 대한 기사가 다시 언론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독일에서의 활약상이 또 한 번 회자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미국 국민들은 수혁에게 열광했다.
그런 상황에 지원도, 명예시민도 없던 일로 하자고 한다면?
‘다음 선거 때 영향이 미칠 수도 있다.’
그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어쩔 수 없군.”
한참 동안이나 생각에 잠겨 있던 대통령이 눈을 뜨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 수혁의 위상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지도.
그 모든 것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 말씀은?”
“명예시민증은 한국에서 수여하는 것으로 하지.”
케인 로저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대통령이 허가해 주었으니, 이제 거리낄 게 없었다.
“그럼 대사관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수여자는 대사인…….”
“아니.”
케인 로저스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계획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대통령이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나 싶어 쳐다보자, 대통령이 미소를 지었다.
“주는 김에 좀 화끈하게 줘보자고.”
케인 로저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에 연락해, 내가 방문하겠다고.”
“대통령님!”
케인 로저스는 경악했다.
지금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지 의심이 되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시간은……. 그래. 2주 후 정도가 좋겠군. 그때 별다른 스케줄 없지?”
없기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니, 별다른 일이 없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타국의 방문을 결정할 순 없었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다?
수혁에게 미국의 명예시민증을 수여하러 간다는 명분이었지만, 그것만 주고 돌아올 순 없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양국의 정상 회담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1, 2주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뜻이었다.
최소한 한 달 이상은 준비해야만 했다.
그것은 상대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호부터 시작해 의전까지.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런 갑작스런 통보가 마치 날벼락처럼 느껴질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걸림돌이 너무도 많았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하지만 대통령은 마치 옆집에 놀러 간다는 듯한 말투였다.
“중요한 건 쇼맨십이야.”
‘우리는 너를 이렇게나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
대통령은 한국과의 대화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저 겸사겸사 인사나 나누고 돌아오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케인 로저스는 몰려오는 두통에 머리를 짚었다.
이런 파격적인 행보가 대통령의 장점이긴 했다.
하지만 단점인 것도 사실이었다.
대통령은 아무렇지도 않게 결정한 사안 때문에 밑의 실무자들은 정말 머리가 터져 나갈 지경이었으니까.
“한번 잘 준비해 봐. 최대한 이슈가 되게.”
대통령은 자신의 결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가는 케인 로저스의 표정과는 반대로.
* * *
“이번에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더군요.”
한국의 대통령은 수혁을 칭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수혁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이번에는 좀 편하게 먹나 싶었는데.’
어림도 없었다.
수혁의 옆에는 대통령과 소방청장, 그리고 장인어른까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가시방석.
“장관도 참 너무하십니다. 이런 훌륭한 사위를 두고 언질 한번 안 주시다니.”
대통령은 최문식을 보며 부럽다는 듯 말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문식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평소 수혁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사위가 대통령에게 칭찬을 받자 싫진 않은 모양이었다.
최문식의 미소를 본 수혁의 표정도 좋아졌다.
반면 강현성은 수혁이 최문식의 사위라는 말에 놀람을 넘어 경악한 표정이었다.
수혁의 목이 뻣뻣하기 그지없다고 생각은 했는데, 설마 저런 뒷배경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다.
수혁은 그런 강현성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안 그래도 불편한 자리에서 저런 불편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대통령은 한참 동안이나 최문식과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수혁을 쳐다보았다.
“이거 주인공을 앞에 두고 너무 우리끼리만 이야기를 나눈 것 같군요.”
“아, 아닙니다.”
수혁은 차라리 이게 더 좋았다.
괜히 관심을 받았다간 정말로 체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제 수혁을 타깃으로 잡은 것 같았다.
“이번에 활약이 대단했다지만… 크게 위험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몸은 좀 어떻습니까?”
수혁이 매몰된 일은 한국에서도 크게 다루었다.
평범한 소방관이 그런 일을 겪었어도 난리가 났을 판에, 대상이 수혁이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수혁에게 관심을 두고 있던 대통령에게 보고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 별문제는 없었습니다. 독일 측에서 신경써 준 덕분에 빠르게 구조될 수 있었으니까요.”
정신적인 문제가 조금 남아 있긴 했지만, 굳이 그런 건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다행이군요. 대한민국의 훌륭한 인재 한 명을 잃는가 싶어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수혁은 근래 들어 한국의 위상을 가장 널리 알려주고 있는 존재였다.
K-pop이나 스포츠 스타들 못지않은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그런 수혁에게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돌아왔으니, 이전에 약속했던 것들을 실행할 때가 된 것 같네요.”
대통령의 말에 최문식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수혁을 쳐다봤다.
“아, 그게…….”
장인어른의 시선에 황급히 대답하려는데, 대통령이 한발 빨랐다.
“이전에 표창과 1계급 특진을 약속한 적이 있었어요. 갑자기 독일에 지원 나가는 바람에 미뤄졌지만, 더 미룰 순 없겠죠.”
최문식의 눈이 반짝였다.
표창도 표창이었지만, 1계급 특진이라는 것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자네가 이번에 진급하면 계급이 소방장이던가?”
“네, 그렇습니다.”
“3년 차에 소방장이라…….”
최문식은 뭔가가 마음에 든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정을 언제로 잡는 게 좋겠습니까?”
강현성이 대화에 끼어들며 물었다.
그러자 대통령은 잠시 생각을 하다 미소 지었다.
“늑장 부릴 것 있나요? 최대한 빨리하는 것으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