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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44화 (344/425)

레스큐 시스템 344화

미국 정상의 갑작스런 방한 소식에 한국이 들썩였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는 일이 그렇게 희귀한 일은 아니었다.

정권이 바뀌면 그래도 한 번씩 찾아오곤 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경우가 달랐다.

사전 조율도 없었고, 방한할 이유도 없었다.

그야말로 느닷없는 방한이었다.

당연히 언론들은 이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혁은 다른 의미로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거 뻥이죠?”

[내가 이런 걸로 농담할 사람으로 보이나?]

“아니,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수혁은 짐 머레이와 통화하며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못 믿는 것은 어쩔 수 없네만, 사실이라네. 내가 케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야.]

케인 로저스가 그렇게 말했다면, 사실일 확률이 높았다.

“미국 대통령이 저 하나 때문에 한국으로 온다고요?”

[정확히는 자네에게 미국 명예시민증을 수여하기 위해서지.]

한 국가의 정상이 이렇게 쉽게 움직여도 되는 것인지 고민해 보았다.

그것도 미국의 정상이.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게. 이번 대통령은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네. 어떻게 행동해야 사람들이 더 좋아할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 그래서 이번 한국행을 결정했을 거네.]

“아무리 그래도요.”

수혁의 상식으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지만, 어찌하랴.

짐 머레이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오는 것은 정해진 일이다.

‘젠장. 부담스러워서 안 받으려고 한 일이 이런 식으로…….’

차라리 미국으로 가서 받는 게 훨씬 나을 뻔했다.

만약 미국 대통령이 이렇게 행동할 것이라 예상했다면, 절대 이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공식적으로 자네와 한국에 연락이 갈 걸세.]

아직은 방한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와 일정을 밝히지 않았지만, 조만간 실무진 회의에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혁에 대한 이야기도 나올 터.

‘이번엔 거절도 못하겠네.’

수혁은 머리를 감싸 안았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나도 다음 주쯤 한국으로 들어갈 예정이니,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하도록 하지.]

“네. 다음 주에 뵐게요.”

짐 머레이가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지만, 수혁은 그것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한다…….”

전화를 끊은 수혁이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뭘 어떻게 해?”

전승철이 양손에 커피를 든 채 수혁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아, 팀장님.”

오늘은 수혁의 복귀 날.

힘들었던 독일 지원과 휴가를 끝마치고, 마침내 특수 구조대로 돌아와 일상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짐 머레이의 전화 한 통이 수혁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것이다.

“일단 받아라.”

대원들을 위해 사 온 것인지, 전승철의 손에는 커피 캐리어가 한가득이었다.

수혁은 냉큼 그의 손에서 커피를 건네받은 다음 나란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음.’

그리 길지 않았던 시간이었음에도, 수혁은 이 공간이 너무도 반가웠다.

이제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오, 왔냐?”

“이번에도 활약 엄청 했던데?”

특수 구조대의 동료들이 그런 수혁을 맞아주었다.

“잘 다녀왔습니다.”

수혁이 웃으며 선배들에게 인사했다.

“김수혁은 잠시 따라오도록.”

인사가 끝나자, 대원들에게 커피를 모두 나누어준 전승철은 수혁을 따로 불렀다.

“대장님께 복귀 신고하러 간다.”

“알겠습니다.”

수혁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수 구조대 대장 진태수.

전승철의 말에 의하면 그는 수혁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한다고 했는데…….

막상 수혁이 직접 겪어본 바로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진태수는 항상 수혁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괜한 트집을 잡아 잔소리를 할까 싶어 긴장한 마음으로 진태수의 사무실 앞에 섰다.

똑똑똑-

“누구야?”

걸걸한 진태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접니다.”

전승철이 대답하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진태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팀 김수혁이 금일로 복귀하였기에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전승철의 말에 진태수가 고개를 들었다.

진태수는 가만히 수혁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고 많았다.”

의외로 진태수는 수혁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왠지 진태수라면 이번에도 잔소리를 할 것 같았는데 말이다.

“앉지.”

진태수는 하던 일을 대충 정리하고는 수혁과 전승철에게 소파를 가리켰다.

“고생 많았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굳이 다른 루트를 통한 보고를 받진 않았지만, 뉴스만으로도 충분히 파악하고도 남았다.

그만큼 수혁에 대한 방송이 많이 나왔던 것이다.

“며칠간 매몰됐었다지?”

“그렇습니다.”

수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수혁을 찬찬히 훑어보던 진태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스트레스가 심했겠군.”

“심각할 정도는 아닙니다.”

진태수의 말에 수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뺨을 긁적이며 대꾸했다.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게 마련이지.”

하지만 진태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듣기로는 독일에서 정신과 진료도 받았다고 하던데. 돌아와서도 받고 있나?”

수혁이 독일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뉴스에서도 보도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진태수는 알고 있었다.

‘역시 특수 구조대 대장 쯤 되는 사람이면 이런 정보도 쉽게 알 수 있구나.’

박상태도 모르는 이야기를 설마 진태수가 알고 있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신과 진료?”

전승철 역시 처음 들은 이야기라는 듯 눈을 크게 뜨며 수혁을 쳐다봤다.

그것을 본 수혁은 괜히 민망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별것 아닙니다. 병원에서도 스트레스로 인해 일시적으로 우울감이 드는 정도일 뿐이라고 얘기했고.”

소방관은 정신적인 문제가 많은 직종 중 하나였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보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구조자의 죽음이나 동료의 순직을 바로 옆에서 경험한 이들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평생을 죄책감과 슬픔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때문에 소방당국에서는 그런 소방관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수혁은 자신의 상태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겪고 있는 일이니까.’

‘이 정도는 별것 아니야.’

‘버틸 수 있어.’

수혁만이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많은 소방관이 같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너무 쉽게 보고 있군.”

진태수는 그런 수혁을 나무랐다.

“소방관 사망률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뭔지 아나?”

진태수가 물었다.

그리고 수혁은 그것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었다.

“……자살입니다.”

구조 중 사고도, 후유증과 질병으로 인한 것도 아니었다.

바로 자살.

소방관들 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은 1,500명에 가깝다.

전체 소방관의 5%에 달하는 숫자였다.

1만 명당 자살자의 수가 약 2.2명으로, 미국보다 두 배 많고, 일본보다 다섯 배는 많은 수다.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숫자였다.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의 정신이 너보다 약할 것 같나?”

진태수가 조금은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

‘정신력이 약하냐고?’

모른다.

다행히 수혁의 주위에 있는 동료들 중엔 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트라우마를 너무 쉽게 보지 마라.”

진태수의 말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상담도 정기적으로 받고, 의사가 더는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때까지. 이건 명령이야.”

왠지 수혁은 전승철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태수가 자신을 아끼고 있다는 것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진심으로 충고해 줄 리가 없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스로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진태수의 말을 들어 나쁠 것은 없었다.

수혁이 순순히 대답하자 진태수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아, 대장님. 그리고 공문이 하나 내려왔습니다.”

“공문?”

옆에서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전승철이 끼어들며 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진급식이군.”

그것을 읽어본 진태수가 수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다음 주에 이 녀석의 진급과 표창 수여식을 진행하니, 협조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그래. 알았다.”

바쁘긴 했지만,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일이다.

아무리 진태수라 해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부하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거니 딱히 싫어할 이유도 없었고.

“이제 돌아가서 업무 보도록.”

진태수가 손짓하자, 수혁과 전승철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전승철이 경례를 하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가려는데, 뒤에서 진태수가 수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수혁.”

수혁이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 할 말이 더 남았던가?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진태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수혁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진태수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책상에 머리를 파묻고는 일하기 시작했다.

수혁은 그런 진태수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다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 * *

“명예시민증 수여?”

“그렇습니다.”

최문식의 말에 대통령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번 방한의 목적이 그것이란 말입니까?”

“제가 알아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대통령의 명대로 최문식은 짐 머레이에게 연락을 취해 이번 일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에게서 충격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것만을 위해 오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이왕 한국에 오는 것, 겸사겸사 논의할 일들도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주된 목적은 자신의 사위, 수혁에게 미국의 명예시민증을 수여하기 위함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최문식은 괜히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아니, 그것을 왜 한국까지 와서 준단 말이죠?”

“그것이…….”

최문식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대통령의 표정은 더욱 이상하게 변해갔다.

“이것 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간이 부었다고 해야 할지.

“자세한 일정은 실무진 회의에서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미국 측에선 수여식을 좀 성대하게 하길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성대하게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가요?”

대통령의 물음에 최문식이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미국 대통령이 방한을 결정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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