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50화
“이것 참…….”
집으로 가는 차 안.
수혁은 운전하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받아들일 것 같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대답할 줄은 몰랐는데.”
손민준.
수혁이 괴물이라고 인정한 피지컬의 소유자는, 정말이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히려 제안한 수혁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뭐, 나쁘진 않은 상황이긴 한데.”
손민준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
경험 많은 다른 대원들이 뒤를 받쳐 준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손민준의 신체 능력은 그 정도로 대단했다.
‘일단 세 명인가?’
박상태는 아직 확답을 주지 않았지만, 수혁은 그가 받아들일 것이라 확신했다.
수혁이 알고 있는 박상태라면 두 팔을 걷어붙일 것이다.
가족이라는 장애물이 남긴 했지만, 그 조건이라면 충분히 설득하고도 남았다.
그럼 수혁을 포함해 총 세 명.
이제 남은 건 율리안과 슈미츠, 그리고 톰이었다.
“어떻게 한다?”
이런 이야기는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빼서 독일과 미국으로 갈 수도 없는 일.
수혁은 잠시 고민하다 짐 머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야기는 잘됐나?]
잠시의 신호가 울린 후, 곧장 전화를 받은 짐 머레이는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다.
수혁이 손민준을 영입하러 간 사실을 이미 들은 덕분이었다.
“네. 제가 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좋아하더라고요.”
수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다행이군. 꽤 괜찮은 인재 같던데.]
짐 머레이는 수혁을 믿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수혁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기에, 짐 머레이는 손민준에 대해서도 조사를 좀 해두었다.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수혁이 장담한 대로 손민준이라는 소방관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저와 상태 형까지 포함하면 이제 세 명이에요.”
[박상태란 사람은 아직 확답을 해주지 않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긴 한데, 아마 받아들일 거예요.”
확신에 가득찬 말투에 짐 머레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수혁이 저 정도로 믿고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이제 남은 건 세 명인데…….”
수혁과 짐 머레이가 생각하고 있는 대원의 수는 세 개 팀, 열여덟 명이다.
그중 수혁이 다섯 명을 뽑고, 나머지는 짐 머레이가 선발하기로 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력을 통해, 가장 뛰어난 이들을 찾아내는 중이었다.
[율리안과 톰, 그리고 또 누구였지?]
“슈미츠라는 녀석입니다.”
[아, 그렇지.]
솔직히 슈미츠는 짐 머레이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조사하긴 했지만, 딱히 나오는 게 없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게, 소방관이 된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애송이었으니까.
이해할 수 없는 인선이기는 했지만, 수혁이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짐 머레이는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그 셋에게 어떻게 제안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고민할 게 뭐가 있나?]
수혁의 말에 짐 머레이는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웃었다.
[자네가 가기 힘들다면, 그들을 부르면 되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일단 톰은 다음 주에 한국으로 들어갈 걸세.]
짐 머레이의 말은 뜻밖이었다.
갑자기 톰이 한국에 온다니?
[대통령이 이번 방한을 하며 한국 정부와 논의할 사항 중에는 장비 지원도 있거든.]
명예시민증만 틱 주고 바로 돌아올 순 없는 일이었으니, 보좌관들이 열심히 만들어낸 이유들 중 하나였다.
“톰이 그 실무자 중 한 사람이었죠?”
[맞네. 그래서 대통령과 함께 한국으로 갈 예정이네.]
장비 지원에 관한 조율은 거의 끝난 상태였다.
이제 남은 절차는 싣고 오는 것만 남았을 정도였다.
아마 이번 논의를 통해 완벽히 마무리되고, 장비 지원이 시작될 것 같았다.
“톰은 그때 이야기하면 되겠군요.”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수혁은 반색했다.
[율리안과 슈미츠란 녀석은 내가 어떻게든 한번 해보겠네.]
“방법이 있으십니까?”
[자네는 이제 독일하고도 꽤나 각별한 사이 아닌가? 수혁이라는 이름을 좀 팔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지.]
짐 머레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물론 수혁의 이름만 팔 생각은 없었다.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선 기름칠도 좀 해줘야 하니까.
그리고 짐 머레이는 그것에 필요한 기름을 아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부탁드립니다.”
그 두 사람이 한국으로 오기 위해선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의 일에 지장이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물론이네.]
짐 머레이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대답했다.
그는 그렇게 생각이 얕은 사람이 아니었다.
[또 따로 할 말 있는가?]
“한국에는 언제까지 계실 예정입니까?”
수혁은 짐 머레이가 한국에 들어온 첫날 보고는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기 때문이다.
[자네가 명예시민증 받는 것까진 보고 돌아가야겠지.]
“그동안 뭐하고 계시려고요?”
수혁이 묻자 짐 머레이가 껄껄- 웃었다.
[나름대로 준비할 게 많다네.]
짐 머레이가 구상하고 있는 단체는 사람들을 모아서 짜잔! 하고 발표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법적인 부분과 절차상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그뿐인가?
사람도 더 모아야 했다.
구조대원이 아닌, 그들을 서포트해 줄 인력들을 말이다.
그런 것들을 준비하려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좀 쉬엄쉬엄하셔도 될 텐데요.”
수혁은 짐 머레이가 걱정되었다.
짐 머레이의 나이는 절대 적지 않았다.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놀라울 정도로 말이다.
무리하다가 건강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짐 머레이는 호탕하게 웃었다.
[걱정하지 말게. 그렇지 않아도 주치의와 함께 다니고 있으니까.]
짐 머레이 역시 자신의 몸이 옛날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의사를 대동해 가며 대비하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 한번 내주세요. 은송 씨랑 같이 식사나 해요.”
[그러면 나야 좋지.]
수혁은 짐 머레이와 몇 마디의 잡담을 더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상황은 대충 해결된 건가?’
만나기 힘든 세 사람이 한국으로 온다면 일이 한결 수월해진다.
율리안과 슈미츠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괜히 자신 때문에 이 머나먼 한국까지 부른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수혁은 애써 찜찜한 마음을 떨쳐 내고는 운전에 집중했다.
이제 집까지 남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 하자.”
“……뭘요?”
집으로 찾아와 다짜고짜 말을 꺼낸 박상태를 보며 수혁이 움찔했다.
“전에 말한 거 있잖아. 그거 하자고.”
“그렇게 말하면 은송 씨가 오해하지 않을까요?”
수혁이 피식- 웃으며 일단 박상태를 집 안으로 들였다.
“어머! 웬일이에요?”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최은송이 박상태를 보며 반가워했다.
“아, 제수씨. 저녁 시간에 죄송합니다.”
“무슨 그런 말을 해요?”
박상태라면 언제 와도 환영이었다.
“아직 식사 안 하셨죠?”
최은송이 주걱을 들어 보이며 묻자, 박상태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셈으로 온 것은 아니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최은송이 차려준 밥도 먹고 가면 좋을 것 같았다.
“일단 이야기 나누고 계세요. 준비 다 되면 부를게요.”
최은송은 박상태가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눈치채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래서, 뭘 하자고요?”
수혁이 슬쩍 시치미를 떼자, 박상태가 얼굴을 구겼다.
“인마, 장난치지 말고.”
정말이지 지난 며칠 동안 숙고에 숙고를 더했다.
매일같이 아내와 함께 상의했고, 결국 결정한 뒤 곧장 달려왔건만.
수혁이 웃었다.
“형수님은 뭐라고 하세요?”
더 놀리면 박상태가 폭발할 것 같았기에 수혁은 적당히 장난을 멈추었다.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아 하더라고.”
당연한 이야기였다.
박상태가 지방직 공무원이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철밥통이다.
잘릴 위험도 없고, 정년 후에는 연금도 따박따박 나온다.
안정, 그 자체라는 뜻이었다.
그런 직장을 그만둔다는 걸 쉽게 허락할 리가 없었다.
“월급 이야기는 했어요?”
“물론이지.”
그래도 마음이 바뀌진 않았다.
살짝 혹 하기는 한 모양이었지만, 안정을 버리고 갑작스런 변화를 선택하기엔 약했다.
“그런데 가족하고 함께 보낼 시간이 많다는 말에 고민하기 시작하더라고.”
돈보다는 가족과의 시간이 더 중요했다는 뜻이었다.
소방관은 여타 공무원보다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
퇴근하면 언제나 녹초가 된 상태였고, 비번에도 쉬는 데 집중해야만 했다.
덕분에 박상태는 자신의 딸과 언제 놀러 가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변화를 선택하면 해결이 될 수 있다니 고민이 될 수밖에.
게다가 의료나 법적인 지원 같은 복지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만에 하나, 박상태가 잘못된다 해도 남은 가족들이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다.
“결국에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말을 듣고 있던 수혁의 미소가 짙어졌다.
율리안, 손민준, 슈미츠, 톰.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고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함께 일을 해야 할 사람을 단 한 명만 뽑으라고 한다면, 수혁은 망설임 없이 박상태를 선택할 것이다.
실력은 둘째치고, 수혁과 박상태 사이에는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신뢰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상태 형이라면 언제라도 내 뒤를 맡길 수 있지.’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고마워요.”
수혁은 어려운 결정해 준 박상태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뭐래. 나 좋으려고 한 걸 왜 네가 고마워해?”
갑작스런 수혁의 태도에 박상태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같이해 줘서 고맙다고요.”
“까고 있네. 야, 닭살 돋으니까 개소리 집어치워.”
말은 저렇게 해도 속으로는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온 지 3년째.
본래 박상태는 수혁을 구하려다 순직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달라졌다.
박상태는 아직 살아 있었고, 그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운 동료가 되어주었다.
수혁은 이런 변화가 기꺼웠다.
“이야기 끝났으면 식사하세요. 준비 다 됐으니까.”
“고딴 식으로 느끼하게 쳐다보지 말고 밥이나 먹게 일어나.”
수혁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박상태가 헛기침하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이고, 제수씨. 뭘 이렇게 많이 차렸어요?”
“평소에 먹던 것들이에요. 연락하고 왔으면 더 맛있는 걸 준비했을 텐데.”
“아니, 이 정도도 충분합니다. 오랜만에 위가 호강 좀 하겠네.”
최은송과 박상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평범한 일상에 수혁은 괜히 기분이 편안해졌다.
“아, 형! 고기만 먹지 말고 야채 좀 먹어요. 형이 애야?”
수혁은 기분 좋은 웃음을 띠며 식탁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