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57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수혁은 묘한 표정의 강병규를 쳐다보며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한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없었다.
수혁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최은송이나 짐 머레이, 그리고 박상태조차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 강병규에게 사실을 밝힐 이유가 없었다.
‘결국은 대충 둘러대야 한다는 건데…….’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러니까 이게, 음.”
수혁이 머뭇거리자, 강병규의 눈에 의심이 더욱 짙어졌다.
사실 이상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처음 오는 현장에서 요구조자들을 척척 발견하질 않나, 사람 같지도 않은 괴력을 뿜어대질 않나.
미국이나 독일에선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 일들을 하고 왔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은 그 의심에 기름을 붓는 것과 다름없었다.
“너, 무슨 외계인 같은 거냐?”
“……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데.”
너무도 어이가 없는 추리에 수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외계인은 무슨, 그런 실없는 소리 할 거면 와서 요구조자들 옮길 준비나 해요.”
수혁은 일단 변명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변명도 없었고, 이런 얘기로 시간을 때울 만큼 여유가 있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아, 뭐해요! 서둘러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강병규를 향해 소리치자 그가 움찔- 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궁금하긴 했지만 수혁의 말대로 지금은 요구조자들이 우선이었으니 말이다.
‘이거 좀 위험한데.’
강병규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혁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아이 때문이었다.
상태가 더는 악화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호전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이 상태만으로도 아이는 꽤나 심각했다.
‘정신을 잃은 게 다행인가?’
아무리 ‘응급 처치I’로 통증이 완화되었다고 해도, 아이가 버티기엔 너무 버거운 상태였다.
“안 되겠다.”
“응? 뭐가 안 돼?”
요구조자들을 살펴보던 강병규가 수혁의 혼잣말에 반응했다.
“이 아이요. 상태가 심상찮아요. 아무래도 폐까지 손상된 것 같은데.”
“뭐?”
그 말에 깜짝 놀란 강병규가 뛰어와 아이의 상태를 체크했다.
확실히 호흡도 정상이 아니었고, 바이탈 징후도 좋지 않았다.
“급성 호흡 부전이야.”
유독 가스로 인해 폐의 기능이 저하되고, 폐부종이 발생해 정상적인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다행히 연기에 노출된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아서 손상이 크진 않은 것 같았지만…….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겠어요.”
스킬 덕분에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그래도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는 편이 좋았다.
“저 먼저 출발할게요.”
지금쯤이면 다른 대원들이 거의 도착할 때가 되었다.
그들이 도착하면 이곳은 강병규에게 맡겨놓을 수 있었다.
“그래, 서둘러라.”
강병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구조자들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지 알지 못하는 강병규로선, 수혁보다 이 상황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들었다.
“지원 오면 팀장님 지시에 따르면 될 겁니다.”
“나도 알아, 인마.”
수혁이 아무리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경력은 강병규가 몇 년은 더 많았다.
굳이 수혁의 조언이 없다고 해도 알아서 잘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강병규도 베테랑이었으니까.
수혁은 괜한 걱정을 집어치우고 움직이기로 했다.
“저 먼저 갑니다.”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요구조자에게 충격이 가는 것은 그리 좋지 못한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예외였다.
수혁은 빠르게 달렸다.
아이가 없을 때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그런 수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병규가 중얼거렸다.
“겁나 빠르네.”
어느새 그의 머릿속에선 조금 전 수혁이 보여준 이상한 광경이 지워져 있었다.
***
“이분이 마지막입니다.”
전승철이 요구조자 한 명을 구급대에게 인계하며 말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요.”
총 132명.
백화점 내부에서 구조한 요구조자들의 숫자였다.
다행히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정도 규모의 화재에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피해도 없던 것은 아니었다.
“병원에 간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다행히 너무 늦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치료하면 모두 나을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그거 다행이네요.”
연기를 들이마신 요구조자가 꽤 많았다.
처음 수혁이 발견한 열아홉 명 외에도 연기를 마신 이들이 무려 열 명이나 더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다행히 수혁이 모두 발견해 ‘응급 처치I’를 사용한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도 놀라워하더라고요. 하나같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큰일 났을 거라고…….”
“늦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구조대분들이 수고해 주신 덕분이죠.”
구급대원은 전승철을 향해 대단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평범한 구조대도 아니고 무려 특수 구조대다.
저들 여섯 명이 오늘 하루 구조한 요구조자가 무려 90명을 넘었다.
나머지는 지원을 온 구조대원 12명이 구조했고.
단순히 숫자만 놓고 비교해 봐도 압도적으로 특수 구조대가 많았다.
그러니 ‘역시 특구!’라는 눈빛을 보낼 수밖에.
그것이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전승철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병원까지 부탁드립니다.”
“예, 걱정하지 마십쇼. 안전하게 이송하겠습니다.”
구급대원은 전승철을 향해 경례하고는 구급차에 탑승했다.
“휴우.”
진이 다 빠졌다.
구조 작업만 무려 열두 시간이 넘게 지속됐다.
전승철은 온몸에 진이 다 빠진 기분이었다.
아니, 전승철뿐만이 아니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 모두가 녹초가 된 상태였다.
구조대, 구급대, 화재 진압대 할 것 없이 모두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수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괜찮나?”
전승철은 구급차가 떠나자 앉아서 쉬고 있는 수혁을 향해 다가가 물었다.
“……죽겠습니다.”
수혁은 그 누구보다도 많이 움직였다.
요구조자가 130명이 넘는 데다, 한 번에 구조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미친 듯이 뛰어다닌 탓이었다.
제아무리 수혁이라 할지라도 지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고 많았다. 네 덕분에 전원 구조할 수 있었어.”
“그게 뭐 저 혼자 한 일입니까? 다 같이 한 거지.”
수혁은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아무리 수혁이 난다 긴다 해도 혼자였다면 저 많은 수의 요구조자를 절대 구할 수 없었다.
모두 다른 대원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네 역할이 가장 컸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
예전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전승철은 꽤나 꽉 막힌 사람이었다.
“뭐, 그럼 그렇다고 쳐요.”
수혁이 뒤로 벌러덩 누우며 성의 없이 대답했다.
공로를 가지고 다툴 기운도 없었다.
“아.”
땅바닥에 누운 수혁이 하늘을 보며 신음성을 터트리자, 전승철이 쳐다봤다.
그 시선을 느낀 수혁이 피식- 웃었다.
“해 뜨네요.”
하늘이 어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너…….”
“하, 피곤해 죽겠는데.”
수혁이 울상을 지었다.
오늘은 미국 명예시민증 수여식이 있는 날이었다.
***
“으음…….”
신음과 함께 김연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왔다.
“정신이 드세요?”
그것을 본 간호사가 다가오며 상태를 살폈다.
“여, 여기는……?”
“병원이에요. 기억나요? 백화점에서 화재가 일어나는 바람에.”
“아!”
간호사의 말에 조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아이는요? 저랑 같이 있던 아이는!”
김연희가 눈을 번쩍- 뜨며 간호사에게 물었다.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손을 잡고 있던 아이가 연기를 들이마시고 괴로워하며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무슨 일이 더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잘 생각은 나지 않았고.
어쨌든 아이가 쓰러졌다는 것을 상기한 김연희는 잔뜩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간호사를 쳐다봤다.
안절부절못하는 김연희의 모습에 간호사가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혜정이 말씀하시는 거죠? 혜정이도 괜찮아요. 조금 위험할 뻔했는데, 다행히 늦지 않아서 지금은 순조롭게 회복 중이에요.”
“아아.”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혹시나 잘못되었으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무사하다니…….
‘그나저나 그 아이 이름이 혜정이었구나.’
너무도 정신이 없어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아, 맞다. 아이 엄마는요?”
“찾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혜정이보다 김연희 씨 몸부터 챙겨야 해요.”
천만다행이었다.
무사히 구출도 했고, 잃어버렸던 엄마도 찾았고.
괜히 눈물이 났다.
훌쩍- 하며 눈물을 집어삼키자, 간호사가 당황했다.
“왜 울고 그래요. 다 괜찮다니까요? 김수혁 알죠? 그 영웅 소방관.”
김수혁이라는 말에 김연희가 눈물을 닦아내고는 고개를 들었다.
“김연희 씨랑 혜정이 구한 것도 그 사람이거든요. 이번에 화재가 꽤 컸는데, 그분 덕분에 한 명도 안 죽고 모두 살았어요. 다들 기적이라고 하더라고요.”
간호사의 말을 듣던 김연희의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방금 전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던 기억이었다.
노란 방화복과 무거운 장비를 착용한 채 다급하게 돌아다니던 소방관의 뒷모습.
‘그게 김수혁이었구나.’
그렇게 유명한 소방관이 자신을 구해주었다는 말에 김연희는 괜히 마음이 벅차올랐다.
‘역시 영웅이었어.’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대로 말이다.
김연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그러곤 뉴스 채널을 틀었다.
-잠시 후, 김수혁 소방관이 미국의 명예시민증을 획득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오전 9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수여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각계각층의 인사들도 참관한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명예시민의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은 역사상 여덟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김수혁 씨가 아홉 번째가 되는 것이지요. 아시아권에서는 첫 번째인 만큼 그만큼 상징성도 높다 보니, 한국과 더불어 미국에서도 행사의 규모를 크게…….
뉴스에서는 수혁의 명예시민 수여식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참 대단하죠?”
“네, 그러네요. 역사상 아홉 번째라니.”
김연희는 간호사의 말에 순순히 동의했다.
아나운서와 전문가들이 하는 말만 들어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간호사는 그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대단하긴 한데, 저는 다른 의미로 말을 한 거예요.”
김연희가 간호사를 쳐다봤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분.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거든요.”
“그 말은……?”
“밤새도록 사람들을 구하고 수여식에 참석하는 거예요. 보통 사람이라면 쓰러져도 열 번은 더 쓰러졌을 걸요?”
김연희의 눈이 커졌다.
지금 시간은 아침 8시 30분.
‘내가 쓰러진 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저녁 7시가 조금 넘었던 것 같았다.
그 말은 곧 12시간이 넘도록 사람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저기에 참석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