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64화
아수라장이었다.
그 커다랗던 수원역이 마치 포탄에 맞은 것처럼, 본래의 형체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신일역 붕괴 당시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물론 규모 자체가 달랐으니 이쪽이 훨씬 심각하겠지만.
수혁은 근처에 대충 차를 세워두고는 수원역을 향해 뛰었다.
그사이 출동한 소방관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다.
“거기 멈추세요! 더는 다가오시면 안 됩니다!”
수혁이 접근하자, 통제하던 소방관 한 명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수혁은 외투를 벗어 안에 입고 있는 옷을 보여주었다.
특수 구조대 제복이 드러났다.
“어?”
그것을 본 소방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경기 남부 특수 구조대 1팀의 김수혁입니다. 지나가다 발견하고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기, 김수혁이다!”
그제야 수혁을 알아본 소방관이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주변이 혼잡했는지라 그것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수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에게 물었다.
“구조 본부 어디 설치되어 있습니까?”
“아, 저, 저쪽에…….”
젊어 보이는 소방관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쪽에는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고,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이 어리바리한 소방관을 뒤로하고 구조 본부를 향해 달려갔다.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원인을 규명해야……!”
“요구조자 파악부터 하시죠.”
회의가 한창이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난입한 수혁을 돌아봤다.
“김수혁?”
그들은 수혁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당연했다.
지금 수혁은 우리나라에서 그 어떤 사람보다 유명한 인물이었으니까.
조금 전 바로 알아보지 못한 젊은 소방관이 이상한 것이었다.
“여긴 어떻게?”
수원역이 붕괴한 지 아직 2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이제 막 본부를 설치하고 구조와 사태 수습을 위한 회의를 시작한 상태였는데, 지원도 요청하지 않은 경기 남부 특수 구조대가 도착했다.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지나가던 길에 발견하고 왔습니다.”
붕괴 사실을 미리 알고 왔다고 할 순 없었기에 대충 둘러댔다.
그리고 지금은 이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요구조자 파악이 가장 시급합니다.”
출근 시간은 지난 상태였다.
하지만 싱크홀로 인해 교통이 통제되며, 지하철을 이용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대체 저 아래에 몇 명이나 매몰되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수혁 역시 ‘생명감지Ⅲ’를 통해 알아보았지만,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지금 지시를 내려둔 상태네.”
이곳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나서며 수혁에게 대답했다.
“지원 요청은 하셨습니까?”
수혁의 말에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듣던 것과 달리 특수 구조대는 기강이 해이한가 보군.”
소방 조직은 수직 계급 사회다.
보통 처음 보는 사람에겐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추는 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급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는 지금 수혁에게 상급자에 대한 태도를 고치라고 말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상황이 급해 실수했습니다.”
수혁은 순순히 사과했다.
적어도 두 계급 이상 차이가 나는 이에게 잘못 보여봐야, 구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말이다.
“지원 요청은 아직 하지 않았네. 일단은 정확한 피해 규모부터 파악한 뒤에…….”
“그러면 늦습니다.”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고 말았다.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수혁은 살짝 후회하긴 했지만, 이왕 내뱉은 말.
끝까지 하기로 했다.
“지원 요청부터 하셔야 합니다. 지체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겁니다.”
지금도 심각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손에 꼽힐 정도의 큰 피해로 기록될 것이다.
이것은 이전 생에서 직접 겪어본 수혁이 가장 잘 알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인다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있었다.
“특수 구조대는 제가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인근 다른 서에 연락 부탁드립니다.”
수혁은 반론 따위 듣지 않겠다는 듯,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허허.”
그 모습을 보던 지휘관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요즘 주목을 받는다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구나.’
이곳에는 수혁보다 낮은 계급이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최소한 팀장급, 그 이상.
수혁이 함부로 입을 열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할 말을 다 하고는 자신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바로 전화를 거는 모습이 거슬렸다.
하지만 수혁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피해 규모는 겉으로만 봐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오고 있을 터.
지휘관은 수혁이 괘씸하긴 했지만,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문책은 나중에 하도록 하지.’
물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이 일이 마무리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문제 제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지원 요청을 하게. 안양, 오산, 의왕, 용인. 전부 다.”
“알겠습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사이 수혁은 진태수와 통화 중이었다.
“뉴스 보셨습니까?”
[봤다.]
“제가 지금 그 현장에 있습니다.”
[상황은 어떻지?]
진태수는 수혁에게 어떻게 그곳에 있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현장 상황을 먼저 물어봤다.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역시.’
진태수는 특수 구조대의 대장을 맡을 만한 사람이었다.
“엉망입니다. 요구조자의 수와 피해 규모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인근의 모든 서에 지원 요청한 상태고, 아무래도 저희도 출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본래 근무를 해야 하는 1팀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기에, 비번이었던 2팀이 대신 근무 중이었다.
만약 출동한다면 2팀이 올 터.
하지만 수혁은 그 정도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1, 2, 3팀 전부 와야 합니다.”
바로 전 근무였던 3팀은 이제 막 퇴근을 했을 테니, 지금 당장 출동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쉬고 있는 1팀은 와야만 했다.
고작 한 개 팀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알겠다. 지금 바로 조치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곳 지휘관이 누구지?]
진태수가 물었다.
“아, 이름은 저도 잘…….”
통성명도 하지 않은 상태였는지라, 수혁은 그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바꿔.]
진태수는 당연하다는 듯 수혁에게 명령했다.
“지금 말입니까?”
수혁은 살짝 당황했다.
설마 전화를 바꾸라는 명령을 들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시간 없다. 빨리 바꿔.]
딱딱한 진태수의 음성에 어쩔 수 없이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선 지휘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저희 대장님이 통화하고 싶으시다고 하십니다.”
수혁은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그에게 전화를 넘겼다.
‘휴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진태수는 아무리 겪어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이름이 뭐지?]
그는 진태수가 대뜸 반말하자 얼굴을 구겼다.
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수혁의 대장이라면 특수 구조대 대장이다.
그것만으로도 자신보다 훨씬 높은 계급이라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었다.
“김민철입니다.”
[김민철, 김민철…….]
그의 이름을 몇 번 되뇌어 본 진태수가 입을 열었다.
[수원 남부서 구조대장이군.]
놀랍게도 진태수는 그의 이름만으로 누구인지 알아맞혔다.
“……그렇습니다만.”
김민철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진태수는 망설이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김수혁에게 구조팀 하나 맡기고,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자율적으로 구조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해.]
“그게 무슨!”
이건 월권이었다.
아무리 특수 구조대의 대장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명령을 내릴 순 없었다.
이곳에도 엄연히 지휘 체계라는 것이 있는데…….
[너희 서장에게는 내가 말해두지.]
하지만 서장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김민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왜 대답이 없지?]
“알겠습니다.”
진태수의 재촉에 김민철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바꾸시란다.”
용무가 끝났는지, 김민철이 전화를 다시 수혁에게 건넸다.
대체 무슨 내용의 통화를 했는지 궁금했던 수혁이 냉큼 그것을 받아 들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구조팀 하나 너에게 배정할 거다. 우리 애들 도착할 때까지 네가 팀장 맡아서 구조하고 있어.]
“아, 알겠습니다.”
그제야 수혁은 김민철이 왜 그렇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이건 나라도 빡치겠네.’
김민철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면서도, 진태수의 과감함에 치를 떨었다.
확실히 진태수는 사람을 구하는 일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보통 그런 자리에 앉게 되면 소방관의 사명감은 옅어지고, 조직 내 정치나 승진에 관심을 둘 법도 한데.
진태수는 오히려 일선의 소방관들보다도 더 열정적이었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얼음장 같아서 문제지.’
어쨌든 수혁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한 개 구조팀을 맡게 되어 지금부터 구조를 시작하게 되면, 시간 단축에 용이해지니 말이다.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선에서 해라.]
끝으로 진태수가 수혁에게 걱정을 내비쳤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태수는 내색하진 않아도, 그 누구보다 부하들을 아끼는 상관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수혁은 이전에 신일역 붕괴 사고 때의 전적이 있었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바로 구조 시작해.]
“옙!”
수혁은 힘찬 대답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전화 끝났나?”
“아, 네.”
수혁이 어색한 표정으로 김민철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진태수 덕분에 괜히 김민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 따라오게.”
김민철은 수혁을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주목.”
김민철이 향한 곳에는 구조대원들이 모여서 장비 점검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김민철이 다가오자 무슨 일인가, 싶었던 대원들은 수혁의 얼굴을 보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임시로 너희 팀을 맡게 될 김수혁이다.”
“……팀을 맡는다뇨?”
수혁이 누군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이건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말 그대로다.”
“대장님!”
본래의 팀장으로 보이는 대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김민철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다. 특구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만 같이 행동해. 이건 명령이다.”
그러고는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덕분에 수혁은 황당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대원들 사이에 혼자 남겨져 버렸다.
농담이라도 건네 분위기를 풀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수혁은 다시 한 번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벌써 몇 번짼지.’
자꾸만 한숨을 쉬게 되는 상황이 답답했지만, 할 일은 해야만 했다.
“김수혁입니다.”
수혁이 대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곤 곧장 말을 이었다.
“갑시다. 사람 구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