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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375화 (375/425)

레스큐 시스템 375화

-국제 구조 단체(FILO) 설립.

-미국의 사업가 짐 머레이의 주도 아래, 사상 최대 규모의 구조 단체(FILO)설립 발표.

-FILO,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전 세계 어느 국가라도 출동할 계획.

First In, Last Out.

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는 뜻이다.

짐 머레이가 만든 단체인 FILO는 그것의 약어였다.

사실 승인을 받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게 바로 이름을 짓는 것이었다.

도저히 좋은 이름이 생각나질 않아,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상금을 걸고 공모전을 열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적당한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짐 머레이가 결정한 이름이 FILO였다.

소방관들을 묘사하는 가장 유명한 문장을 줄여서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생각보다 나쁜 것 같지 않아 만장일치로 이름이 결정됐다.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미국 대통령과의 밀약 덕분인지, 단체의 설립부터 각국과의 협의도 손쉽게 진행됐다.

몇몇 폐쇄적인 국가들을 제외하면, 긴급 지원을 위한 협약도 맺은 상태였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단체가 공식적으로 설립을 발표했다.

뉴스에서는 연신 그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어느 방송사에서는 속보로 내보낼 정도였다.

사실 국제 구조 단체가 설립됐다는 소식이 이토록 이슈가 될 정도로 중대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FILO를 설립한 것도 미국의 사업가였으니, 굳이 한국에서 대서특필할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이토록 난리가 난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수혁이 그곳에 소속되기로 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언론에서 다루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이것 때문에 그만두는 거였냐?”

강병규가 스마트폰의 화면을 수혁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화면에는 FILO와 수혁에 대한 기사가 떠올라 있었다.

“네.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수혁은 조금 편해진 표정이었다.

이제 발표가 되었으니, 아무 거리낌 없이 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언제부터 이런 걸 준비한 건데?”

수혁은 특수 구조대 내부에서도 그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왔다.

강병규가 보기엔 도저히 이런 걸 준비할 정도의 짬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 됐어요.”

사실 수혁이 따로 준비한 건 별로 없었다.

자신의 팀원이 될 몇 명에게 제안을 한 것 외에는 말이다.

나머지는 모두 짐 머레이가 도맡아 해주었다.

강병규가 조금 오해를 한 것이었지만, 굳이 그것을 바로잡아 줄 생각은 없었다.

“그럼 필로인지 필라인지 하는 곳에선 무슨 일을 하는 거냐?”

강병규는 수혁을 붙잡는 것을 포기했다.

수혁이 소방관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려고 한 것이었다면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세계에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특수 구조대를 나가는 것이다.

강병규에겐 그런 수혁을 막을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기본적으론 여기랑 똑같아요. 관할 구역이 전 세계로 넓어진 게 다를 뿐이죠.”

범세계적인 특수 구조대.

짐 머레이를 비롯해 후원을 약속한 이들의 막대한 자금력을 통해, 최고의 장비와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비슷했다.

“……자리 남는 건 없겠지?”

강병규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그 모습에 수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은 충원 계획이 없네요.”

“그러냐.”

수혁의 대답이 실망스러웠는지, 강병규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거기에 너 말고 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냐?”

“음…….”

강병규가 알 만한 사람이라면 박상태 한 명밖에 없었다.

‘민준이도 알려나?’

한국 사람이라고는 그 두 명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병규가 손민준까지는 모를 것 같았고, 박상태는 몇 번 얼굴이 본 적이 있었다.

“상태 형이요. 신일서에서 근무하시는.”

“아, 그분?”

강병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병규는 수혁의 생각보다 박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박상태가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수혁도 인정할 만큼 뛰어난 능력이 있는 소방관이었으니 같은 관할을 공유하는 강병규로선 모를 수가 없었다.

“그분 정도면 스카우트할 만하지.”

다행히 섭섭해하진 않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은? 또 누가 있냐? 대우는 어떻고?”

강병규는 FILO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아니, 사실 강병규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고 있었다.

수혁과 함께 일한 사람들은 당연했고, 뉴스로 소식을 접한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뉴스에서는 단편적인 이야기만 해줄 뿐, 속사정까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대충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는지, 어떤 식으로 일을 하는지, 또 어떤 대우를 받는지.

모든 것을 자세하게 말해줄 순 없었지만, 간략하게나마 말해주었다.

대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만 해도 강병규에게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FILO 내에 구조용 헬기와 출동을 위한 전용기까지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눈이 커졌다.

그리고 정점은 대원들의 복지에 대한 것이었다.

“말도 안 돼! 월급이 그렇게나 많다고?”

정확히 얼마인지는 말해주진 않았지만, 대충 대기업에 입사한 것과 비슷하다는 정도로 비유를 들었다.

‘사실 더 많긴 하지만.’

집에 대한 이야기나 그 외의 많은 복지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음에도, 강병규는 충분히 경악했다.

월급의 차이가 너무 심했던 것이다.

물론 공무원의 특성상 연금이 나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차이가 많이 났다.

그런 강병규의 모습에 수혁은 말을 아끼기로 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야, 엄청나네.”

“그만큼 힘들 테니까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하루하루의 업무량으로 보자면 이곳이 더 많겠지만, 구조의 난이도를 따지자면 FILO 쪽이 훨씬 강했다.

위험한 상황도 후자가 더 많이 발생할 테고.

그런 것을 따지면 월급의 격차 정도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도 강병규는 부럽다는 듯 수혁을 바라보다 ‘흠흠’ 하고는 헛기침을 했다.

“혹시라도 나중에 자리가 생기면, 알지?”

은근한 표정으로 말하는 강병규를 보며 수혁이 웃었다.

“하시는 거 봐서요.”

FILO는 현재의 규모에서 멈춰 설 생각이 없었다.

일단은 시범적으로 세 개의 팀만 운용하겠지만, 일이 익숙해지고 필요성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더 키울 생각도 있었다.

아니, 키워야만 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짐 머레이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

‘사람이 더 필요하게 되면, 부탁할 수도 있지.’

강병규 정도면 괜찮은 소방관이었다.

특수 구조대원인 만큼 실력도 보장이 되어 있었고, 성격 역시 괜찮았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인원을 보충한다면 데리고 오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때는 팀장님도 고려해 봐야겠군.’

수혁은 전승철을 떠올리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아, 그럼 언제 그만두는 거지?”

FILO 설립 발표가 났다.

그 말은 이제 곧 수혁이 특수 구조대를 나갈 때가 다가왔다는 뜻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인수인계만 마치면요.”

“……어때? 괜찮은 것 같냐?”

수혁이 얼마 전에 들어온 신입을 떠올렸다.

특수 구조대에 합격할 정도였으니 능력 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다만 수혁이 보기엔 성격이 너무 가벼웠다.

단순히 쾌활한 성격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신입의 경우엔 그런 게 아니었다.

‘너무 현장을 쉽게 보고 있어.’

나이는 수혁보다 조금 많았다.

그만큼 현장 경험도 많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위험한 상황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는지, 현장에서의 태도가 너무도 경솔했다.

‘그것만 고치면 괜찮을 텐데.’

수혁은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는 거의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그만두기 전, 신입의 행동을 조금 바꿔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지금처럼 행동했다간, 다른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조금 더 봐야겠어요.”

“흠, 그래?”

왠지 떨떠름해 보이는 수혁의 표정에 강병규의 얼굴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수혁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나한테도 얘…….”

[구조 출동, 구조 출동.]

타이밍 좋게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가요!”

수혁과 강병규가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네요.”

구조차에서 현장 정보를 듣고 있던 수혁이 말했다.

단순 교통사고.

3중 추돌이긴 했지만,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 국도였는지라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부상자는 네 명. 위급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가장 심한 부상이 늑골 골절 정도였다.

당사자는 엄청난 고통에 빠져 있겠지만, 그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차에 갇혀 있는 요구조자군.”

사고로 인해 차가 찌그러지며, 운전자가 핸들과 좌석 사이에 다리가 끼어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빼내려고 해봤지만, 다리가 부러졌는지, 너무도 고통스러워하는 바람에 구하지 못하는 중이라고 했고.

“도착하면 곧바로 스프레다 준비해.”

“알겠습니다.”

전승철의 명령에 대답한 것은 이번에 수혁을 대신해 들어온 신입이었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

꽤나 단단한 몸이었다.

수혁은 그런 신입을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얼굴에서 긴장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사고라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지나치게 긴장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런 식으로 마음을 놓는 것도 문제였다.

현장에선 어떤 일이 발생할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긴장 풀지 마세요.”

수혁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예? 아, 네.”

신입은 수혁을 보며 대충 고개를 주억였다.

누가 봐도 귀담아듣지 않는 모습이었다.

수혁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제가 당신보다 경력이 적긴 합니다만, 이곳에선 선배입니다. 제 말 무시 안 하셨으면 좋겠네요.”

수혁이 조금 더 강한 어투로 말했다.

그러자 신입 역시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수혁의 충고를 받아들였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수혁의 말에 기분이 상한 것처럼 보였다.

“현장에서 그렇게 방심하고 있다간 큰일 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작은 교통사고에서 무슨…….”

신입이 작게 투덜거리는 것이 들렸다.

제딴은 혼잣말하는 것이겠지만, 구조차 안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원들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참지 못한 강병규의 입술이 들썩이다 이내 다시 다물어졌다.

신입의 교육은 수혁의 몫이었다.

그라면 자신보다 훨씬 잘해낼 것이라 믿었다.

수혁은 신입을 잠시 쳐다보다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줘야겠네.’

자신이 나간 후의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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