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89화
사람은 죽는다.
우리나라에서도 하루 평균 수백 명씩은 사망한다.
전 세계로 그 범위를 넓히면 만 단위는 우습게 넘어갈 정도였고.
그리고 이곳 술라웨시 섬에서도 사람은 죽었다.
단 하루.
단 한 차례의 지진과 그로 인해 일어난 쓰나미로…….
무려 4천 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나왔다.
거기에 더해 2천 명이 넘는 실종자까지 발생했다.
푸켓에서 일어났던 쓰나미보다 족히 두 배 이상 발생했다.
인도네시아 전역에는 눈물이 흘렀고, 슬픔과 절망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수많은 사람이 피해자들을 애도했으며, 그들의 가족과 지인들을 위로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
그토록 참혹했던 현장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눈에서 흐르던 눈물은 점차 줄어들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한 달이었다.
한 달간 전 세계는 술라웨시 섬의 생존자들을 돕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인력은 물론이고, 돈과 물자까지.
덕분에 폐허가 되었던 섬의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슬픔보단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제 갈 때가 됐네요.”
더는 요구조자가 없었다.
남은 것은 숨이 멎은 사망자와 다 무너진 건물들뿐.
“더 할 일이 없으면 돌아가는 게 맞지.”
박상태 역시 복귀를 환영했다.
“아쉽네요.”
“뭐가?”
“더 많은 사람을 구할 방법이 있지 않았나 싶어서요.”
손민준의 말에 박상태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재난 현장에 온 건 처음이지?”
손민준이 근무했던 부천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출동을 나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장은 건물 화재나 교통사고 정도였다.
수십, 수백 명의 소방관이 모여들 정도의 대형 재난 현장에는 이곳이 처음이었다.
“그건 그런데…….”
“이 정도면 많이 구한 거야.”
박상태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해외지원에 몇 차례 참가해 본 경험이 있는 박상태는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이뤄낸 성과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말이다.
작게는 수혁 덕분이었고, 크게 보면 FILO 덕분이기도 했다.
짐 머레이가 발 빠르게 움직여 준 덕분에, 세계도 그에 맞춰 움직여 준 것이다.
만약 FILO가 아니었다면, 지원이 시작되는 데 며칠 더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을 테고.
피해자가 많긴 했지만, 이 정도로 막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애초에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정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팀원들의 발바닥에 전부 물집이 잡혀 제대로 걸어 다니는 것도 힘들어할 정도였으니까.
그 이상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인가?
“그래도요…….”
손민준이 한쪽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의사들이 아직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살펴보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몇 배는 많아진 숫자였다.
“이제 뒷일은 저 사람들한테 맡기면 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수혁이 말했다.
아직 남은 일은 많았다.
부상을 입은 사람들의 치료도 해주어야 했고, 쓰나미에 휩쓸려 무너진 건물들도 다시 세워야 했다.
그리고 부러진 마음도 다시 일으켜야 했고…….
하지만 수혁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저들이 할 일이었다.
수혁과 그의 팀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더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손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저 안타까움에 한 말이었을 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언제 돌아가냐?”
“여기서 쉬는 것보단, 돌아가서 편하게 쉬는 게 낫겠죠?”
“당연한 말을.”
쉬고 돌아가겠다면, FILO에서도 최선을 다해 좋은 숙소를 잡아줄 것이다.
이전에 휴식 날에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숙소라 한들 집에 비할까?
팀원들은 당연히 집으로 가기를 희망했다.
“그럼 내일 돌아가는 걸로 하죠.”
복귀하려면 준비할 것도 있었고, 일단 시간도 많이 늦었다.
오늘 하루는 이곳에서 묵고, 내일 준비가 되는 대로 떠나는 것으로 결정됐다.
서포트 직원들은 수혁에게 연락을 받고는,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일단 차량을 보내기로 했다.
수혁은 차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며, 팀원들과 대충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왠지 올 때보다 짐이 더 많아진 느낌입니다?”
슈미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동안 보급된 물자도 상당하니까.”
“아, 그랬죠.”
대답을 한 건 톰이었다.
톰은 꽤나 지쳤는지, 피곤한 얼굴로 웃으며 짐을 챙겼다.
“이거 다 들고 가야 하는 겁니까?”
챙겨야 할 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숙소로 사용하던 텐트에는 온갖 장비들이 쌓여 있었다.
개인 짐이야 당연히 챙겨야겠지만, 솔직히 놓고 가도 상관없을 것 같은 장비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이런 로프 같은 거요.”
슈미츠가 로프 한 묶음을 꺼내 들었다.
지난 한 달간 꽤나 사용을 했는지라 많이 낡기는 했지만, 충분히 더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흠…….”
수혁은 잠시 로프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놓고 갈 수 있는 것들은 놓고 갑시다.”
두고 가면 이곳에 쓸 수 있는 장비들은 모두 두고 가기로 했다.
율리안이 피식- 웃었다.
“팀장의 명령이니 따라야지.”
자신들의 장비는 고가였다.
짐 머레이가 최고의 것들만 구해준 덕분이었다.
이 로프 하나만 해도 수십 만원에 달할 정도였으니, 다른 장비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것들을 모두 두고 간다면, 손망실로 엄청난 금액이 처리될 게 뻔했다.
그런데도 수혁과 팀원들은 기쁜 마음으로 장비들을 분류했다.
돈을 쓰는 짐 머레이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그 역시 이것들을 모두 챙겨가는 것보단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팀원들이 모두 달려들어 짐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끝나갈 때쯤.
서포트 직원들이 도착했다.
“아니, 이게 다 뭡니까?”
그들은 정리된 짐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설마 팀원들이 짐을 정리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저희가 할 일인데…….”
“누가 하면 어떻습니까? 뭐, 힘든 일도 아니고.”
수혁이 웃으며 말하자, 직원들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옆에 빼둔 건 뭡니까?”
직원 중 한 명이 한쪽으로 빠져 있는 장비들을 보며 물었다.
“아, 이것들은 여기 기부하고 갈 생각입니다.”
“……기부 말입니까?”
“여기에 필요할 것 같아서요.”
직원들은 잠시 고민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의 말은 최대한 수용하고, 웬만하면 그의 뜻을 따르라는 위쪽의 지시가 있었다.
이 정도쯤은 얼마든지 따를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져갈 짐은 여기 있는 게 전부입니까?”
“네. 아, 두고 가는 장비들은 NGO 쪽에 연락해서 가져가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건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구조팀은 자신들이 할 일을 다 했다.
그 외의 일은 자신들이 최선을 다해 서포트한다.
그것이 FILO의 업무 지침이었다.
“여러분은 이제 숙소로 돌아가 쉬시는 것만 생각하세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직원들은 빠르게 흩어져 짐을 싣고, 어딘가로 연락을 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사이 수혁과 팀원들은 차에 올라타 눈을 감았다.
‘첫 출동도 이제 끝이네.’
수많은 피해자를 낸 첫 출동.
비록 많은 사람을 구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조금 전 손민준이 느꼈던 감정은 그 혼자만 느낀 게 아니었다.
수혁은 창밖으로 펼쳐진 폐허를 바라봤다.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이라고는 텐트와 천막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최소한 몇 년은 걸릴 터.
‘힘내세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수혁은 그들을 응원했다.
그리고 언젠간.
출동이 아닌, 좋은 일로 다시 이곳에 찾아올 수 있길 바랐다.
* * *
FILO의 이름이 전 세계에 퍼졌다.
처음 설립될 때부터, 수혁의 이름값 덕분인지 화제가 되긴 했다.
수혁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소방관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런 수혁이 직접 움직여 팀원들을 모으고, 엄청난 자산가가 투자를 했으며,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설립된 단체.
화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수혁의 이름보다 FILO의 이름이 더욱 울려 퍼졌다.
등에 FILO라는 글자를 새겨 넣고 술라웨시 섬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활약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수혁이 팀장을 맡고 있는 구조 1팀뿐만이 아니었다.
구조 2팀과 3팀 역시 많은 사람을 도왔고, 흔히 서포트 직원이라고 불리던 지원팀들도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그 외에도 구급팀을 비롯해 의료팀까지.
수많은 직원이 술라웨시 섬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들이 낸 성과는 한 국가에서 파견한 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물론 그중에서도 구조 1팀이 가장 눈에 띄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FILO 전체의 이름이 전 세계에 퍼졌다.
“한 고비를 넘겼군.”
짐 머레이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말했다.
“축하하네.”
케인 로저스는 그런 짐 머레이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짐 머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갈 길이 멀어. 그리고 별로 축하받을 일도 아니고.”
이번 기회에 이름을 알렸으니, 앞으로 FILO의 활동에는 큰 장애물이 없을 것이다.
대놓고 뒤를 봐주기로 한 미국에서도 거리낄 게 없었고.
게다가 후원 역시 계속해서 들어올 터.
앞으로의 활동을 위한 단단한 초석이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통령께서도 수혁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네.”
“직접 하지 그랬나?”
“왠지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의 말에 짐 머레이가 픽- 웃었다.
확실히 수혁은 케인 로저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가 수혁에게 준 부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수혁으로선, 케인 로저스를 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말은 전해주도록 하지.”
“고맙군.”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케인 로저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수혁과 그의 팀은 계속 한국에 있겠다고 하던가?”
“그렇다네.”
“계속 활동을 하려면 미국이 더 편할 텐데?”
수혁이 오기만 한다면, 미국은 그에게 수많은 혜택을 줄 수 있었다.
작게는 생활 전반에 걸친 혜택들부터, 크게는 세금 감면까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줄 생각이었지만, 수혁은 도무지 미국으로 건너올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한국이 좋다는 걸 내가 어쩌겠나?”
그렇지 않아도 짐 머레이 역시 설득을 해봤다.
FILO의 본사도 미국에 있었고, 자신도 미국에 있었으니, 이쪽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수혁은 한사코 거절했다.
결국 짐 머레이는 포기하고 말았지만, 케인 로저스는 아직도 아쉬운 것 같았다.
“대통령이 계속 쪼던가?”
짐 머레이의 물음에, 케인 로저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꼭 옆에 두고 싶으신 모양이네.”
사실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었다.
수혁이 미국으로 온다면, 대통령은 그것을 자신의 공으로 포장을 할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선거에 써먹겠지.’
미국에서 수혁의 위상은 생각보다 컸다.
무려 대통령이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헛물 그만 켜라고 전하게.”
대통령이 무슨 짓을 해도 수혁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 수혁은 뭘 하며 지낸다던가?”
케인 로저스가 입맛을 다시며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첫 출동을 성공리에 마쳤으니,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했던 것이다.
“글쎄…….”
짐 머레이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다음 출동이 있을 때까지 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