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93화
“이 새끼, 처음에 소방관 한다는 소리 듣고 얼마나 놀랐었는데.”
“그게 놀랄 일이었냐?”
“당연히 놀라지. 평범한 공무원도 아니고, 지방직 소방관 한다는데.”
“하긴. 대우도 별로 안 좋은 데다가, 일만 빡세니까.”
친구들은 수혁을 주제로 한참 동안이나 수다를 떨었다.
오랜만에 보는 수혁이 반갑기도 한 데다, 요즘 잘 나가는 친구를 보며 괜히 뿌듯한 마음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땐 내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렸었는데……. 이놈 인생을 조질 뻔했네.”
고승우가 허허- 웃으며 소주를 들이켰다.
‘그랬었지.’
고승우는 수혁이 소방관이 된다고 하자, 계속해서 말렸었다.
대체 어디서 찾아온 건지, 별의별 자료들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무슨 PPT 보는 줄 알았잖아.”
수혁이 낄낄- 웃었다.
그때는 귀찮은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자신을 걱정해 주는 사람은 고승우가 유일했다.
“아무튼 그때 니가 내 말 들었으면, 지금쯤 동사무소에서 서류나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나쁘진 않았을걸?”
실제로 이전 생에서는 차라리 고승우의 말을 들을 걸 그랬다며 후회한 적이 많았다.
너무도 힘들고 지쳤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 생에서는 뜻하지 않은 능력을 얻은 덕분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TV에서 보니까 무슨 돌덩이를 번쩍번쩍 들던데? 대체 운동을 얼마나 해야 그게 가능하냐?”
“나도 그거 봤어. 푸켓이었지? 사람이 그런 걸 들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고승우가 묻자, 다른 친구들도 그에 동의하며 궁금한 눈빛으로 수혁을 쳐다봤다.
아직 내일모레면 삼십대에 접어드는 나이었는지라, 슬슬 건강에 관심을 가질 때였다.
“소방관들 일과가 보통 어떻게 흘러가는 줄 아냐?”
“출동하고, 사람 구하고?”
“그게 주 업무긴 하지. 다녀와서는 장비 정비도 해야 하고, 보고서도 써야 하고. 의외로 서류 작업 같은 일도 처리해야 해.”
“그런 것도 하는 줄 몰랐네.”
그저 구조만 하는 줄 아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출동이 없으면 대부분의 업무는 금방 끝나거든? 그럼 남은 시간엔 뭘 할까?”
“……청소?”
틀린 말은 아니다.
청소 역시 본인들이 직접 해야 하니까.
하지만 수혁이 원하는 대답은 다른 것이었다.
“설마, 운동하냐?”
“정답.”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수혁을 제외하곤, 신일서나 특수 구조대의 대원들.
심지어 FILO 1팀의 팀원들 역시 운동에 시간을 투자했다.
말 그대로, 업무를 제외한 근무 시간에는 운동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수혁의 말을 들은 친구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 그렇게 많이 하냐?”
“당연하지. 그런 거 하나, 하나가 전부 생존에 도움이 되는 건데.”
나 자신의 생존도 그렇고, 요구조자의 생명도 그렇다.
“그럼 다른 소방관들도 너처럼 힘이 세냐?”
“그건 아니고.”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봐야, 수혁을 능가할 수는 없다.
가지고 있는 능력에 차이가 있었으니까.
평범한 소방관이라면 수혁이 아닌, 율리안이나 손민준을 목표로 하는 것이 옳다.
그것도 절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후에도 수혁은 친구들과 한참 동안이나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문득 고승우가 물었다.
“그런데 너. 갑자기 왜 소방관이 된다고 했던 거냐?”
“글쎄…….”
수혁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소방공무원 시험이 일반 공무원보다는 좀 더 쉬워 보였고, 경쟁률도 낮았다.
그리고 이왕 공무원을 준비할 거면, 남들을 돕는 쪽을 선택하는 게 더 나을 거란 생각을 했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했지만, 그게 거창하진 않았다.
투철한 사명감이나, 소방관이 되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겠다는 큰 포부 따위는 그 당시에 없었다.
소방관이 된 이후, 일을 하다 보니 그런 마음이 생긴 것이지.
“그냥 어쩌다 보니까.”
수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왠지 기대하고 있는 표정들을 보니, ‘경쟁률이 낮아서’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소방관도 관뒀잖아.”
친구 한 명이 말했다.
“아, 그러네. 이제 공무원 아니지, 너?”
“대체 왜 관둔 거냐? FILO인지 뭔지가 그렇게 조건이 좋아?”
공무원의 꽃은 연금이다.
하지만 수혁은 고작해야 재직기간이 3년밖에 되지 않는다.
근속 3년으로는 용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수혁이 소방관을 그만두고 FILO에 갔다면, 그만큼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뭐, 좋지. 월급도 소방관일 때보다 훨씬 많이 받고, 복지도 좋고.”
사실 수혁은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FILO를 선택한 것이지만, 그 말을 친구들이 믿을 리가 없었다.
친구들이 아는 수혁은 평범한 사람이었으니까.
조금 유명할 뿐인.
“복지가 어떤데?”
고승우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FILO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으니, 이 기회에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다른 팀이나 직원들은 모르겠는데, 일단 우리 구조 1팀에는 집을 한 채씩 줬어.”
“……집?”
친구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전세 대출이나 관사 같은 거 말하는 거지?”
당연히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어느 회사가 직원에게 집을 마련해 준단 말인가?
수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 명의로 된 집. 우리 팀은 전원 다 받았다.”
친구들의 입이 벌어져 닫힐 줄을 몰랐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복지가 잘되어 있다. 의료지원도 되고, 자기계발에 필요한 자금도 주고.”
수혁이 몇 가지 더 말을 해주긴 했지만, 집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친구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집이라니, 미친.”
“작은 집 아닐까?”
“아무리 작아도 집은 집이야, 인마.”
서울이 아닌 영종도에 있긴 했지만, 집은 최소한 억 단위는 들여야 살 수 있었다.
현재 수혁의 나이 또래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것은 대기업에 다니는 고승우 역시 마찬가지였고.
“좋은 데 갔네…….”
어느 정도 충격에서 벗어난 친구들이 부러운 눈으로 수혁을 쳐다봤다.
수혁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건 자랑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앞으로 걱정은 안 하겠지.’
수혁이 공무원을 때려치운 것으로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고승우도 그랬고, 다른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철밥통을 박차고 나왔으니 걱정될 만도 했다.
하지만 복지도 이렇게 좋고, 대우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젠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시간 나면 우리 집에나 놀러와라. 집들이해야지.”
수혁은 말 나온 김에 친구들을 초대했다.
다들 직장도 있고 사생활도 있었으니 시간을 맞추기는 힘들겠지만, 언제든 여유가 되면 집들이를 하기로 했다.
“물론이지. 내가 조만간 연차를 써서라도 놀러간다.”
“한 번 시간 맞춰봐. 다 같이 가게.”
“많이 가면 집이 좀 좁지 않으려나?”
누군가 걱정을 했지만, 수혁은 속으로 웃었다.
짐 머레이가 마련해 준 집의 크기는 저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컸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다 와. 여자친구 있으면 같이 와도 되고. 내 와이프 소개시켜 줄 테니까.”
결혼식 때 보긴 했지만, 너무 바쁜 나머지 잠깐 인사를 한 정도에 불과했다.
이 기회에 최은송과도 제대로 안면을 익히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콜! 내가 좋은 술 갖고 간다.”
고승우가 소주잔을 들어올리며 외쳤고, 친구들 역시 각자의 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좋네.’
너무도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니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왜 잊고 지냈는지 후회할 정도로 말이다.
‘앞으로는 시간 날 때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야겠다.’
출동을 나가지 않는다면 그럴 여유는 충분했다.
“야, 마셔! 오늘 한번 죽어보자!”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수혁이었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빼지 않고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 * *
“어우…….”
수혁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머리가 깨질 것 같네.’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떠보니, 침대 옆에 물통과 컵이 보였다.
수혁은 별다른 생각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본능적으로 컵에 물을 따랐다.
“아이고, 머리야.”
계속되는 숙취에 수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때마침 방으로 들어오던 최은송이 수혁을 향해 물었다.
“나 어제 언제쯤 들어왔어요?”
“한 새벽 2시쯤이요.”
최은송의 음성은 딱히 화가 난 것 같지 않았다.
슬쩍 그녀의 눈치를 본 수혁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없이 그렇게 술을 진탕 마시고 들어왔으니, 당연히 화가 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눈치 안 봐도 돼요.”
최은송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화 안 났어요?”
“제가 화를 왜 내요. 오히려 보기만 좋은데요?”
그동안 최은송은 자신의 남편이 너무 일에만 빠져 있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일도 거의 없었고, 쉬는 날에는 항상 집에 혼자 있었기 때문이었다.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닐 텐데, 그렇게 지내다가 나중엔 연락할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런데 어제는 친구들과 새벽까지 놀다 집에 들어왔으니, 최은송으로선 한시름 놓을 수가 있었다.
“보기 좋다고요?”
“그런 자리 오랜만이잖아요. 가끔은 그렇게 친구도 만나고, 스트레스도 풀고 해야죠. 어떻게 사람이 일만 하고 살아요?”
최은송의 말에는 틀린 게 없었다.
“너무 자주 그러지만 않으면 돼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는 듯한 최은송의 말에, 수혁이 미소를 지었다.
어제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결정이 잘한 것 같았다.
“얼른 씻고 내려와서 해장해요. 콩나물국 끓였어요.”
머리도 아프고, 속도 울렁거리는 덕분에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최은송이 아침부터 준비해 준 걸 무시할 순 없었다.
수혁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신체 능력이 그렇게 좋아졌는데도 술은 못 이기네.’
그 많은 능력도 숙취는 도리가 없는 것 같았다.
안방 화장실에서 찬물로 대충 씻고 나니, 정신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았다.
“얼른 식사해요.”
1층으로 내려오자 최은송이 수저를 건넸다.
식탁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풀릴 것만 같은 콩나물국이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었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얼큰하게 끓인 콩나물국을 먹자, 속이 사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먹어요. 그러다 체할라.”
급하게 국물을 떠먹자, 최은송이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한 요리를 언제나 맛있게 먹어주는 수혁의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이다.
“아참.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소방청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콩나물을 건져 먹던 수혁이 고개를 들었다.
“소방청이요?”
뜬금없이 소방청에서 웬 연락이?
무슨 일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최은송을 쳐다보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수혁 씨 자고 있다니까 다음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별로 급한 일은 아닌 것 같던데.”
“그래요?”
수혁은 왠지 좋지 않은 느낌에 미간을 찌푸렸다.
소방청과는 이제 인연이 없다.
굳이 따로 연락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고 하니, 괜히 기분이 찝찝해졌다.
수혁은 남은 밥을 콩나물국에 말며 생각에 잠겼다.
‘대체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