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397화
수혁은 요즘 들어 부쩍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왜 과거로 돌아왔지?’
처음엔 아니었다.
그때는 왜? 보다는 어떻게? 가 훨씬 더 궁금했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한 자신을 과거로 보냈는가?
충분히 할 수 있는 고민이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답을 찾지 못한 고민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이 왜 과거로 왔는지가 궁금했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누가, 왜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자신을 과거로 보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라고?’
가장 타당해 보이는 이유이기는 했다.
소방관인 수혁을 과거로 보내, 사람들을 구조하기에 알맞은 능력들을 주었다.
그 말은 곧 이전 생에서 구하지 못한 많은 사람을 구하라는 뜻이었다.
‘……부족해.’
하지만 수혁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그렇지 않던가?
이런 능력이나 힘을 갖게 된 사람이 꼭 막아야 할 재난이 일어난다거나 하는.
“무슨 생각 하십니까?”
슈미츠의 물음에 수혁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슈미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혹시 일전에 퍼진 그 기사들 때문에 걱정이 되십니까?”
슈미츠가 저런 걱정을 할 정도로 표정이 좋지 못했나 보다.
수혁은 피식- 웃으며 슈미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 거 아니니까 괜한 걱정하지 마라. 그냥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생각을 조금 한 것뿐이니까.”
슈미츠는 조금 미심쩍은 표정이었지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하늘 같은 교관이자 팀장인 수혁의 말이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이 마음 편했다.
“그나저나, 다들 왜 이렇게 안 와?”
“율리안은 거의 도착했을 겁니다. 다른 분들도 아까 출발했다고 하니 금방…….”
슈미츠가 말을 하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슈미츠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어으, 춥다. 슬슬 날씨 풀릴 때쯤 되지 않았냐?”
“아직은 이르죠. 못해도 한두 달은 더 있어야 따뜻해질 겁니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구조 1팀의 나머지 팀원들이 수혁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추워요?”
“말도 마라. 귀 떨어지는 줄 알았으니까.”
박상태가 몸을 부르르- 떨며 엄살을 피웠다.
“무슨 일이지? 이렇게 갑자기 다 소집을 하고.”
여기를 마치 제집처럼 드나들어 자연스러운 박상태와는 달리, 톰은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일단 몸 좀 녹이고 얘기하죠.”
일이 있긴 했다.
하지만 분초를 다툴 정도로 급한 일은 아니었기에, 수혁은 일단 팀원들을 거실로 안내했다.
“커피 드실 분?”
손민준을 제외한 모두가 손을 들었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들어가자, 손민준과 슈미츠가 따라붙었다.
“저희가 타 오겠습니다.”
아무리 수평관계를 지향하는 조직이라고는 하지만, 팀장이 직접 팀원들의 커피를 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수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저들은 부하라기보단 동료였고, 지금은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이었으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냥 앉아 있어.”
수혁은 둘을 거실로 돌려보내고는 커피잔을 꺼내 사람 수대로 타기 시작했다.
‘민준이는 커피를 안 마시니까…….’
찬장을 뒤적거리던 수혁은 마테차를 발견했다.
‘이걸 타주면 되겠네.’
순식간에 커피와 차를 준비한 수혁이 쟁반에 그것들을 담아 거실로 나왔다.
“커피 한 잔씩들 하시고. 너는 이거 마셔라.”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
박상태의 말대로 밖이 춥긴 했는지, 다들 반색했다.
잠시 잡담을 나누며 얼었던 몸을 풀었다.
근래 들어 팀원들이나, 가족까지 함께 모이는 자리를 자주 만들긴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점심도 채 되지 않은 아침에는 처음이었다.
수혁이 갑작스럽게 소집을 했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수혁은 자신의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예측 시간이 나왔어요.”
순간 팀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예측 시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언제지?”
율리안이 물었다.
“가장 확률이 높은 건 다음 주.”
며칠인지는 모른다.
그 정도의 예상은 아직 불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측팀에서 분석한 결과, 커다란 지진이 발생한다면 그건 바로 다음 주 내에 발생할 확률이 가장 크다고 했다.
“신뢰할 만한가?”
톰은 아직도 예측팀의 존재를 미더워하지 못했다.
세상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톰의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FILO에는 수혁이 있었다.
“90% 정도는요.”
자신이 기억하는 시기와도 얼추 비슷했고, 계속해서 동태를 감시하고 분석을 해왔으니…….
정확도 측면에서는 꽤나 신뢰할 만한 예측이었다.
“그럼 우리는 뭘 하면 되냐?”
지진이 다음 주에 발생한다고 해도, 지금 미리 가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단 가족 분들한테 알려주세요. 다음 주에는 출동을 해야 한다고.”
인도네시아 때처럼 갑자기 출동하는 것과 미리 알려준 뒤 출동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가족들에게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단순한 출장이 아닌, 위험천만한 재난지역으로 사람들을 구하러 가는 일이다.
당연히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출동할 준비를 갖추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최대한 좋은 시간을 보내세요.”
절대 바라지도 않고, 절대 일어나서도 않을 일이긴 했지만.
사람의 일은 모르는 것이다.
특히 이번 중국에서의 지진은 그 규모와 강도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구조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수도 없이 여진이 들이닥칠 테고, 그로 인해 많은 구조대원들이 목숨을 잃는다.
그런 환경에서 100% 안전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신경을 쓰긴 하겠지만…….’
수혁도 신은 아니다.
수혁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이 벌어진다면, 그조차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었다.
그래서 말했다.
가족들과 최대한 많이, 최대한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민준이도 잠시 부모님 집에 다녀오고.”
수혁의 시선이 슈미츠를 향했다.
율리안과 달리 슈미츠는 혼자 한국으로 왔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독일에 있었다.
“너는…….”
“전 괜찮습니다.”
슈미츠가 미소를 지었다.
“부모님께는 자주 전화를 드렸으니까요.”
팀에 괜한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듯, 수혁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수혁은 픽- 웃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집에 다녀와라. 이미 지원팀에서 네 티켓도 다 마련해 놨으니까.”
“……예?”
“너에게는 미안하지만, 시간을 그리 많이 주지는 못하겠다. 늦어도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돌아오도록.”
“아,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가족이 보고 싶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만약 자신이 독일로 간 사이에 일이 터진다면?
팀원들에게 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애써 마음을 접었는데…….
“너 하나 늦는다고 문제될 거 없으니까, 보내줄 때 다녀와. 빨리 못 보내줘서 미안하다.”
사실은 조금 더 일찍 독일로 보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 몇 가지 일이 생기며 지원팀에 부탁한다는 걸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수혁은 예측팀의 연락을 받고 나서야 그 사실을 떠올리고는 자책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지원팀의 도움을 받아 가장 빠른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를 예약해 두었다.
“왕복 시간을 생각하면 그리 여유 있는 일정은 아니겠지만, 조심히 다녀와라.”
“가, 감사합니다.”
슈미츠가 일어나 수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버하지 말고.”
오늘 팀원들을 부른 목적은 달성했다.
“할 말은 이제 끝났는데, 괜찮으면 점심이나 같이하실래요?”
* * *
“계속 풀어, 계속!”
강현성이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방법이야 그쪽에서 알아서 하고. 정보도 이만큼 줬으면 됐잖아. 지금처럼만 하란 말이야!”
한참 동안이나 소리를 지른 강현성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하여간 제대로 하는 놈들이 없군.”
평소의 사람 좋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잔뜩 일그러진 표정만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엇을 떠올린 것인지 강현성의 표정이 사르르- 풀렸다.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계획대로 되고 있긴 하니까.”
강현성은 스마트폰을 꺼내 김수혁의 이름을 검색해 봤다.
주르륵- 하고 기사들이 떠올랐다.
대부분은 수혁의 활약을 칭찬하는 기사들이었지만, 중간중간 악의적인 제목의 기사들도 있었다.
며칠 전에 확인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확연히 늘어난 숫자.
그가 지시한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조금만 더 진행되면 그놈도 난감해지겠지.”
언론의 힘은 강하다.
그 사실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관료였으니까.
수혁이 아무리 날고뛴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권력자들에게 찍히면 어떻게 될지는 자명했다.
‘미국 대통령이 나서도 그건 못 막지.’
미국 명예시민?
영웅?
그딴 수식어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저 먹물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덮여 버릴, 아무런 힘도 없는 이름이었다.
강현성은 자신이 있었다.
다른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감히 내 뒤통수를 치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강현성이 스마트폰 액정에 떠올라 있는 수혁의 사진을 보며 비웃었다.
지금이야 제 잘난 맛이 설치고 다니겠지만, 그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한 번에 빵!
그때가 되면 수혁은 영웅이 아니라, 쓰레기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 땅에는 발도 제대로 못 붙이고 살 테고.
마음 같아선 직접 박살을 내고 싶었지만, 그것까지는 무리였으니…….
“바닥까지 처박혀서 허우적대는 꼴이라도 봐야지.”
다행히 쓸 만한 재료는 넘쳤다.
수혁이 천방지축으로 날뛴 덕분이었다.
MSG를 조금만 치면, 수혁의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한 인성 쓰레기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강현성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그는 수혁을 시궁창에 빠뜨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FILO의 홍보팀장이 수혁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 역시 FILO의 힘을 얕보고 있었던 것이다.
FILO는 강현성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NGO 단체가 아니었다.
엄청난 자금과 미국, 독일과 같은 강대국의 권력자들이 비호하고 있는.
강현성과 한국 소방청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단체였다.
그리고 그 강력한 단체가 조금씩 강현성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물론 강현성은 그 사실도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