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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401화 (401/425)

레스큐 시스템 401화

“괜찮으세요?”

“아, 아직은 버틸 만해.”

수혁의 걱정에 톰이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수혁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면체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톰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다리도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고, 숨소리는 거칠었다.

‘지금까지 내 뒤를 따라붙은 것만 해도 대단한 거지.’

율리안이나 손민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닐 정도로 강행군을 지속했다.

그런 것을 상대적으로 체력이 부족한 톰이 따라붙기에는 무리였을 것이다.

“잠깐 쉬고 계세요.”

수혁은 억지로 톰의 몸을 붙잡아 옆으로 이끌었다.

“나는 괜찮아.”

톰은 거부했지만, 수혁의 힘을 이겨낼 순 없었다.

너무도 쉽게 끌려간 톰은 그대로 땅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허허.’

아무리 지쳤다고는 하지만, 이토록 쉽게 제압되다니.

수혁이 대단한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당해보니 새삼 감탄스러웠다.

“그럼 자네도 휴식을 좀…….”

“아뇨. 저는 쉬면 안 되죠.”

자신은 톰과 다르다.

지금까지 100명이 넘는 요구조자를 구조했지만, 수혁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상태다.

앞으로 몇 시간은 휴식 없이 계속 움직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움직이다간 나중에 힘들어질 텐데?”

“저는 괜찮아요.”

수혁이 웃으며 톰을 안심시켰다.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고.

“조금 쉬시다가 체력 좀 돌아오면 다시 따라붙으세요. 아무리 그래도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톰과 함께 작업하면 편하다.

그의 경험은 수혁에게도 충분한 도움이 되었으니까.

지금이야 어쩔 수 없이 혼자 움직이겠지만, 톰이 함께할 수 있다면 더욱 효율이 좋을 것이다.

“……그러지.”

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은 수혁이다.

그러니 그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짐이 되었구나.’

톰은 속으로 자책했다.

처음 수혁의 제안을 듣고 FILO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는, 나름 커다란 포부가 있었다.

수혁도 대단하고, 다른 팀원들 역시 모두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힘과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들을 가르쳐 주며 팀원들이 성장하는 것을 생각했건만,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자신이 그저 짐인 것만 같았다.

홀로 요구조자들을 찾으러 떠나는 수혁의 뒷모습을 보며 톰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한 자괴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자책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체력을 회복해 수혁을 도와야만 했다.

톰은 두 다리를 쭉 뻗은 채 가장 편한 자세로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렇게 톰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 * *

“너무 많아.”

톰과 헤어진 수혁은 주변을 둘러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평소였다면 가장 위급한 순서로, 가까운 곳에 있는 요구조자들부터 구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스킬에 감지되는 모든 요구조자가 위급했으며, 어느 한 곳을 향하면 다른 쪽은 사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인력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수혁의 명령을 듣고 움직여 줄 사람이 단 몇 명만 더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이런 참혹한 결정을 강요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도와주던 톰도 체력이 다해 수혁의 주변에는 손과 발이 되어줄 사람이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수혁은 결정을 해야만 했다.

‘나에게 그럴 권리가 있을까?’

한 명을 살리면 다른 사람이 죽는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할지.

과연 수혁에게 그런 결정을 할 권리가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절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생명이 달린 일이었으니까.

포기한 사람에게도 가족이 있을 테고, 삶이 있을 것이다.

수혁의 선택 하나로 그 모든 것이 스러진다.

그런 결정을 단번에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결정해야 돼.’

늦는다면 구할 사람도 구하지 못하는 수가 있었다.

결국 수혁은 한쪽을 선택했다.

다른 이들과 비교해 조금이나마 상태가 좋아 보이는 곳이었다.

수혁은 그곳으로 달려갔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속으로 사과를 했다.

이 선택으로 인해 생명을 잃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평생 동안 수혁의 가슴에 화인처럼 박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 생에서도 몇 번이나 경험해 본 일이었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수혁의 능력이 닿지 않아서, 도저히 두 명을 동시에 구할 힘이 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다.

이번 생에서는 그런 경험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수혁의 능력은 이전 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고, 그를 뒷받침해 주는 조직도 생겼으니까.

그런데도 같은 선택을 강요받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수혁은 속으로 그렇게 자위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괴감에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으니까.

선택과 집중.

소방학교에서도 배우는 것이다.

소방관은 신이 아니다.

모든 사람을 구할 순 없다.

그렇다면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최선이다.

수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흘러나오며 입술을 적셨다.

‘젠장…….’

입술에서 피가 나는데 왜 뺨이 차가운 건지 모르겠다.

미안합니다.

수혁은 계속해서 속으로 외치며 달렸다.

* * *

“음?”

율리안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왠지 좋지 않은 기분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지만, 그런 그의 시선에 뭔가가 들어왔다.

“헬기네요.”

슈미츠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 헬기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꽤 많군.”

“지원인 것 같습니다.”

조금 전 무전으로 들어온 소식을 떠올린 슈미츠가 대답했다.

눈에 보이는 헬기의 수만 해도 20대가 넘는 것 같았다.

저 안에 지원 인력이 타고 있다면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도착할 것이다.

“중국 소방관들인가?”

“그럴 겁니다. 저게 전부는 아닐 테고요.”

적어도 만 명 단위의 소방관들이 몰려올 것이다.

지금 보이는 건 헬기가 전부였지만, 차량으로도 계속 이동하고 있을 터.

“빨리 왔으면 좋겠군.”

힘이 드는 것은 율리안 조도 마찬가지였다.

무거운 장비들을 매고 무너진 건물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지치는 일이었다.

거기에 주변의 불길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혀올 정도로 공기가 뜨거웠다.

만약 지금이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었다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원은 지원이고, 우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율리안의 말에 슈미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이 오면 조금 편해지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변하진 않았다.

사람을 구하는 것.

“이번엔 저기를 들어가 보는 게 좋겠군.”

율리안은 반쯤 무너진 건물을 가리켰다.

주변 다른 건물들은 형체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되었지만, 저 건물은 어느 정도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 정도라면 안에 요구조자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지원을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슈미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율리안의 생각대로 요구조자가 있을 확률은 높았지만, 고작 두 명으론 진입하기가 좀 힘들어 보였다.

“시간 없다. 일단 수색부터 하고, 그 후에 지원을 요청한다.”

“……알겠습니다.”

율리안은 대단한 소방관이다.

지금이야 수혁에게 밀려 조금 빛이 바랬지만, 그런데도 슈미츠가 가장 존경하는 이들 중 하나였다.

율리안이 그렇다고 하면, 자신은 그저 따르면 된다.

슈미츠는 율리안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으음…….”

내부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예상한 일이기는 했지만, 직접 눈으로 목도하니 지진이 일어났을 당시의 상황이 절로 그려졌다.

“회사 건물이었나 봅니다.”

이곳저곳 부서지고 무너져 내려 자세히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간간이 보이는 사무용품들은 이 건물의 용도를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회사라…….”

지진이 일어난 것은 평일 밤.

독일이나 유럽이었다면 사람이 없다고 판단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중국.

야근하는 사람이 없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수색한다.”

율리안은 사람이 있을 만한 곳들을 찾아내며 건물 안을 천천히 수색해 나갔다.

“계십니까?”

“구조대입니다. 구하러 왔습니다!”

혹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둘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움직였다.

“여, 여기! 사람 있…….”

그때,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영어?’

분명 영어였다.

시선을 마주친 율리안과 슈미츠는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어딥니까? 구조대가 왔습니다!”

그러자 예의 그 음성이 들렸다.

“이쪽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율리안이 위치를 파악했다.

지금까지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것과는 달리, 쏜살같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슈미츠!”

율리안의 부름에 슈미츠는 빠르게 반응했다.

독일에서부터 손발을 맞춰왔는지라, 지금 상황에 율리안이 무엇을 원하는 건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구급대! 요구조자 발견!”

바로 무전기를 들어 이곳의 위치와 상황을 설명했다.

그사이 율리안은 요구조자를 발견했다.

“이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욕을 해야 하나?

요구조자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건물이 무너지며 위쪽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잔해 사이에 우뚝 솟아 있던 철근에 몸에 꿰뚫렸다.

등으로 들어간 철근이 복부로 빠져나온 상태였던 것이다.

그 외에 다른 부상은 없는 것 같았지만…….

저것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했다.

“젠장.”

보고를 끝내고 뒤늦게 도착한 슈미츠 역시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욕을 해야 할 상황이 맞나 보군.’

율리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요구조자의 상태를 살폈다.

“출혈은 별로 없고, 바이탈도 괜찮다.”

의식은 약간 흐릿한 것 같았지만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고, 뼈가 상한 곳도 없어 보였다.

문제는 철근인데…….

가지고 있는 장비들로는 구조할 수가 없었다.

“F, FILO?”

요구조자가 율리안의 방화복에 새겨진 글자를 보고는 물었다.

“그렇습니다.”

“다, 다행이네요.”

고통이 상당할 텐데도 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들바들 떨리는 얼굴 근육이 안쓰러워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만약 중국 소방관들이었으면 그냥 버리고 갔을 겁니다.”

요구조자의 말에 율리안이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봤다.

“같이 일하던 놈들도 두고 갔는데, 소방관들이라고 다를 리가 어, 없으니…….”

율리안과 슈미츠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니까, 동료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도 그냥 둔 채 도망쳤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들도 정신이 없었으니 이해를 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것을 직접 경험한 요구조자의 입장에선 그 배신감과 좌절감이 얼마나 컸을까?

율리안은 그런 요구조자의 손을 붙잡았다.

“저흰 버리지 않습니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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