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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403화 (403/425)

레스큐 시스템 403화

관통된 곳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출혈을 이런 현장에서 제대로 지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팔과 다리라면 그래도 압박을 통해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겠지만, 상처가 난 곳은 복부.

그런 지혈 방법을 사용할 수도 없었기에, 수혁은 단순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거즈.”

수혁이 뒤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슈미츠가 한 무더기의 거즈를 건넸다.

그것을 받아 든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거즈들을 상처 안에 쑤셔 박았다.

“으, 으윽!”

갑작스러운 수혁의 행동에 요구조자가 깜짝 놀라며 신음을 터트렸다.

“아파도 조금만 참으세요.”

이렇게라도 해야 출혈을 막을 수 있었다.

힘들게 꺼냈으니, 병원까지는 가야 할 것 아닌가?

거즈들을 쑤셔 박자 출혈이 어느 정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붕대로 감아.”

“알겠습니다.”

슈미츠는 수혁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수혁이 뒤로 빠지자, 이미 손에 붕대를 들고 있던 슈미츠가 요구조자에게 다가가며 붕대를 감기 시작한 것이다.

“괜찮군.”

슈미츠의 재빠른 대처에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죠?”

“자네가 왜 저 녀석까지 바라나 싶었는데 말이야.”

슈미츠의 잠재 능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은 율리안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피지컬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사명감과 눈치 또한 빠르다.

경험만 쌓으면 훌륭한 소방관이 될 수 있을 거란 사실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수혁이 이런 대우를 해줘 가며 FILO로 끌어들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말이다.

그래서 조금 의아했는데…….

“팀워크가 나쁘지 않아.”

“한 번 손을 맞춰봤거든요.”

한국에서 슈미츠와 일주일간 같이 출동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의 슈미츠는 그야말로 햇병아리였지만, 호흡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그래서 데려온 건가?”

“……설마요.”

수혁이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긴 했지만, 팀워크는 매우 중요했다.

일의 효율을 상승시키고, 요구조자의 생존율이 덩달아 높아지니까.

하지만 팀워크만을 생각했다면 슈미츠가 아닌, 신일서의 선배들을 데리고 왔을 것이다.

그러니 슈미츠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수혁과 잘 맞기 때문은 아니었다.

율리안이 수혁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가 생각하기엔 그 이유밖에 없다고 여긴 것이다.

수혁이 픽- 웃었다.

“뭘 그리 깊이 생각하세요. 그냥 쓸 만한 녀석이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데려온 거예요.”

거기에 더해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것까지.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훗날에는 엄청난 실력의 소방관이 될 수 있을 거란 믿음 때문에.

지금은 좀 부족할지 몰라도, 나중을 위해 선택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제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손민준과 더불어 아직 경험이 일천하지만, 나름대로 방해되지 않으며 열심히 움직여 주는 중이다.

지금처럼.

“……그렇군.”

율리안이 더는 캐묻지 않았다.

수혁이 아무 생각 없이 팀을 구성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단은 요구조자부터 이송해야겠어요. 구급대는 불렀습니까?”

“발견하자마자 호출했다.”

율리안은 수혁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동시에 구급대를 호출했다.

그런데 구조가 끝날 때까지, 구급대원은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많이 바쁜가 보군요.”

“그렇겠지.”

FILO에서도 구급대를 파견하긴 했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아직까진 그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

구급대 특성상 인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이런 식으로 일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네요, 직접 옮기는 수밖에.”

“슈미츠!”

이곳에서 구급대를 기다리고 있느니, 얼른 한 명이 옮기는 편이 훨씬 빨랐다.

“알겠습니다.”

요구조자의 지혈을 끝낸 슈미츠는 재빨리 그를 업었다.

다행히 여기서 베이스캠프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출혈도 어느 정도 막았으니, 이송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빠르게 다녀와라.”

“네.”

슈미츠가 요구조자를 업은 채 빠르게 멀어졌다.

자신의 할 일을 끝낸 수혁이 다시 톰에게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려는데, 율리안이 붙잡았다.

“잠깐 얘기 괜찮나?”

시간에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거절하기에는 율리안의 표정이 꽤나 심각해 보였다.

“무슨 일인데요?”

“네 이야기다.”

수혁이 묻자 율리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무슨……?”

“이런 대형 재난 현장을 몇 번이나 경험했지?”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글쎄요?”

이번 생에서는 푸켓과 독일, 인도네시아 정도였다.

미국에선 희생자가 많이 나오긴 했지만, 이런 곳들에 비하자면 대형 재난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했고.

“그리 많진 않군.”

이전 생에서도 몇 번의 경험이 더 있긴 했지만, 율리안의 말대로 많은 건 아니었다.

“네.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선택.”

단 한 마디.

고작 그 한 단어에 수혁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 생각이 맞았군.”

율리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수혁이 무전을 받았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는 단순히 이 엄청난 재난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고 넘겼는데…….

직접 눈으로 본 수혁의 얼굴을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모습이었지만, 율리안의 눈에는 마치 수혁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현장에서 수혁이 저토록 괴로워하고 슬퍼할 일이 뭐가 있을까?

율리안은 생각해 봤다.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요구조자를 잃었을 때.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수혁의 능력이라면, 그가 눈앞의 요구조자를 잃을 만한 상황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수많은 소방관이 갖고 있는 딜레마지.”

화재현장.

두 명의 요구조자.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

그 상황에서 소방관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버릴지.

잔인하기 그지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소방관은 선택해야만 한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겪지 못하는 소방관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누구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했다.

언제, 어디에서 자신이 그런 상황을 맞닥뜨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특히나 이런 자연재해현장에서는 그런 선택을 해야 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율리안 역시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고, 그 후로 오랫동안 힘겨워했기에 수혁의 상태를 눈치챈 것이었고.

“알고 있습니다.”

수혁은 조금 전까지 짓고 있던 미소를 지웠다.

요구조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로 짓고 있던 미소였으니,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물론 알고 있겠지.”

수혁은 특별하다.

율리안이 알고 있는 그 어떤 소방관보다 특별한 존재였다.

단순히 능력이 뛰어나기에 하는 말이 아니었다.

율리안은 수혁의 능력보다, 다른 것들을 더 높게 평가했다.

예를 들면,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그 어떤 것도 불사하는 사명감과 희생정신.

그것은 율리안이 본 누구도 수혁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오죽하면 자신의 부하들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연수까지 준비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다른 것도 있지.’

수혁의 나이, 경험을 생각해 보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능숙한 상황 대처.

현장에서 수혁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10년 이상 구조에 매달려 온 베테랑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런 수혁이었으니, 이런 소방관의 딜레마를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그것도 알고 있겠지?”

수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율리안의 말에 틀린 건 없었으니까.

하지만 무엇을 말하기 위해 자신을 붙잡은 것인지는 아직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위로하기 위해?

아니면 정신을 차리라며 호통을 치기 위해?

제발 그런 건 아니길 바랐다.

‘그딴 것에 시간을 낭비할 정도로 여유롭진 않으니까.’

이럴 시간에 한 명의 요구조자라도 더 찾아내서 구해야만 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한 사람의 생명.

둘 중 어느 것이 더 무겁고 가치 있는 것인지는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정해져 있었으니 말이다.

수혁의 표정을 본 율리안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얼굴을 보니 대충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군.”

율리안의 말에 수혁이 흠칫- 했다.

나름대로 표정 관리를 한다고 했는데, 그게 겉으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시간 낭비라……. 네 말이 맞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지금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는 율리안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수혁과 같은 능력이 없기에 더욱 마음이 급할 것이다.

전체적인 상황을 알 수 없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도움을 필요해 하는 사람이 숨을 거두는 일이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율리안은 자신의 말을 끝까지 이어나갔다.

그에게는 요구조자만큼, 수혁 역시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람도 너에게 선택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

설사 그것이 신이라 할지라도.

소방관에게 사람의 생명을 두고 선택할 권리 따위는 줄 수 없었다.

“선택의 결과는 오롯이 네 책임이기도 하지.”

한 명이 목숨을 잃을 때마다, 그 생명의 무게가 소방관의 두 어깨를 짓누른다.

“그런데도 너는 선택을 해야 해.”

“알고, 있습니다.”

수혁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굳이 율리안이 말해주지 않아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뭘 알고 있지?”

율리안이 물었다.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씹어뱉듯 대답했다.

“누구를 살려야 할지 말입니다.”

그들이 선택하는 것은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살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틀렸어, 김수혁.”

그런데 율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고?”

아니다.

틀리지 않았다.

수혁은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수혁 역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율리안은 그런 수혁의 생각이 틀렸다고 단언했다.

“누구를 포기하는가? 이게 우리가 선택하는 거다.”

살릴 사람을 선택한 것이라고?

그것은 단순히 멘탈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한 명의 요구조자를 포기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평범한 소방관이라면 그냥 그렇게 생각해 두도록 내버려 둬도 무방하겠지만, 수혁은 아니었다.

수혁은 자신들을 이끌어줄 팀장이었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을 구할 소방관이니까.

“너는, 그리고 우리는 죽을 사람을 선택하는 거다. 그리고 그 대가는 훗날 치르면 돼.”

생을 마감한 뒤.

직접 그들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다.

더 빨리 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때 구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대로 죽게 버려둬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받을 때까지 그들에게 사과하고, 또 사과를 해야만 한다.

“그때 네 옆에는 내가 있을 거다.”

아니, 율리안뿐만이 아니다.

FILO의 팀원들.

특수구조대의 대원들.

신일서의 선배들.

그들 역시 수혁과 함께 용서를 구할 것이다.

“그러니까 정신 차려라, 팀장. 지금 네 머릿속을 채워야 할 건 죄책감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니까.”

율리안의 말이 쓰리게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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