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404화
“젠장, 난리도 아니군.”
“대체 피해가 얼마나 큰 거야?”
“잡담할 시간에 움직여!”
엄청난 숫자의 지원이 도착했다.
1차로 도착한 헬기에만 2백 명에 가까운 수였고, 2차, 3차 지원과 차량으로 이동하는 이들을 생각해 보면, 몇 시간 내로 수천 명에 달하는 인력이 도착할 예정이었다.
중국의 구조대원들은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에 이를 악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통솔이 불가능했다.
워낙 많은 지역에서 지원을 온 탓에 지휘 체계가 일원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구조대원들은 우왕좌왕하며 시간만 낭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대체 뭐지?”
한 대원이 의아하다는 듯 자신의 동료에게 물었다.
“뭐가?”
“지금 여기.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한 것 아니었어?”
지금 도착한 지원 인력은 현장 소방관들을 제외하면 가장 먼저 도착한 지원이었다.
그런데 이 많은 숫자의 인원이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정돈되어 있는 베이스캠프가 있다니?
지금까진 정신이 없어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어, 그러네?”
단순히 공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엄청난 숫자의 물자와 더불어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텐트, 천막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현장 소방관들이 만들었다고 하기엔 그 규모가 너무 컸다.
“걔들이 이런 거나 만들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을 테고.”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이런 캠프를 만들 시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제3의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소린데…….
“야, 저거 봐.”
주변을 둘러보던 대원이 한쪽을 가리켰다.
“FILO?”
“축구 협회 아니야?”
물자에 적혀 있는 로고를 본 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머저리들아, 제발 상식 좀 길러라. FILO라잖아, FIFA가 아니라!”
FILO는 중국에 그리 널리 알려진 기관은 아니었다.
애초에 출범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데다, 미국과 연관이 되어 있는 곳이다 보니 중국에서도 크게 다루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FILO를 알고 있는 이들이 동료들에게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 누가 소속되어 있는지.
대략적인 설명이었지만, 이해하기엔 충분한 내용들이었다.
“완벽히 이해했어.”
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걔네들이 왜? 아니, 도와주러 온 것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준비를 한 거지?”
게다가 구조되어 치료받고 있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 숫자가 수백에 달할 정도였으니,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답은 아무도 할 수가 없었다.
FILO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저 의심과 의문이 가득한 눈길로 쌓여 있는 물자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어이, 거기! 빨리 움직여!”
그때 마침 구조 준비가 모두 끝났는지, 작업 지시가 떨어졌다.
대원들은 더 이상 FILO에 대한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지금부터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에만 집중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FILO의 정예 구조대원들을.
* * *
“이제 시작하나 봅니다.”
수혁은 뒤쪽에서 소란이 느껴지자, 고개를 돌려보고는 말했다.
수혁의 표정은 조금 전과는 달리 한결 편안해 보였다.
율리안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이 조금 진정된 덕분이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후회와 속죄가 아닌, 구조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 것 같군. 이제 좀 여유가 생기려나?”
톰 역시 지원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여유가 생길 리가 없다는 건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저 정도의 인원으로는 턱도 없었다.
조금은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피해지역이 워낙 광범위하다 보니, 언 발에 오줌 누기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의사소통이나 되려나 모르겠네요.”
중국인들의 특징 중 하나는, 다른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인색하다는 것이었다.
중국어 하나만 사용해도 사는 것에 전혀 지장이 없었으니, 굳이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배우지 않았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힘들겠는데.’
수혁은 저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길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의 구조 작업이 꽤나 피곤해질 것만 같았다.
“거기 누구냐!”
저쪽에서도 수혁을 발견한 것 같았다.
요구조자 수색을 하던 중국인 대원 몇 명이 이쪽으로 다가오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FILO 소속 구조팀입니다.”
수혁이 영어로 대답을 하자, 그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뭐야, 영어? 우리나라 애들 아니었어?”
처음 수혁만 보고 당연히 중국 구조대라 생각했던 이들이, 옆에 있는 톰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엄청난 거구의 외국인.
그 모습을 확인한 그들은 수혁과 톰이 중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방금 FILO라고 했지?”
“아까 베이스캠프에 있던…….”
그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수혁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물론 수혁은 그들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는지라, 눈만 끔뻑이며 서 있을 뿐이었다.
“뭐라는지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자네도 모르는 걸 내가?”
수혁의 말에 톰이 농담하지 말라는 듯 웃었다.
아직 한국말도 제대로 모르는데, 중국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수혁은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관찰하듯 쳐다보는 중국 대원들에게 물었다.
“혹시 영어나 한국말 할 줄 아시는 분 있습니까?”
정중한 지문이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쯧.’
수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걱정했던 부분이 저들을 마주치자마자 발생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되면 곤란한데.’
저들과 협력해야만 한다.
서로 신경쓰지 않고 각자 나뉘어 구조 작업을 해도 되겠지만, 그래서야 효율이 나빴다.
수혁의 스킬을 이용한 정보를 전해주기만 해도 몇 배는 많은 요구조자를 구조할 수 있었으니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전이 울렸다.
[김수혁 팀장님.]
당연히 다른 팀원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무전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예상치 못한 사람의 것이었다.
“말씀하세요, 팀장님.”
바로 구조 1팀을 현장까지 데리고 온 지원팀의 팀장이었다.
[지금 위치가 어디입니까?]
“베이스캠프에서 남동쪽으로 450m쯤 떨어진 곳입니다.”
갑작스러운 위치 확인에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원팀장의 의도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수혁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통역이 팀장님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금방 도착할 테니, 중국의 대원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대체 이 사람은 어디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수혁은 저들을 볼 때까지 생각도 못하고 있던 문제를, 이미 대비까지 끝마쳐둔 상태였다.
지원팀이라는 부서를 맡고 있기에 이보다 적합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필요했는데, 감사합니다.”
[그게 저희가 할 일이니까요.]
지원팀장은 할 말이 끝났다는 듯 무전을 끊었다.
그는 지금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쁠 것이다.
힘이야 구조팀이 더 들겠지만, 지원팀이 맡아야 할 일은 자신들보다 몇 배는 많았다.
그런 와중에도 이런 세세한 일까지 챙기고 있었으니…….
수혁은 지원팀장에게 고마웠다.
서로 어색한 분위기 속에 마주보고 서 있은 지 몇 분이 지나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김 팀장님!”
지원팀장이 말한 통역인 것 같았다.
그의 모습을 본 수혁과 톰의 표정이 풀어졌다.
난감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잠시 멈췄던 구조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지원 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니 그 속도도 지금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다.
“고생 많으십니다.”
금세 수혁의 곁으로 다가온 통역이 고개를 숙였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통역부터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물론이죠. 그러려고 온 거니까요.”
통역은 지원팀 소속의 직원이었다.
여기뿐만 아니라 율리안과 박상태 조에게도 한 명씩 갔다니, 지원팀에서는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상정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일단 저희 소개부터…….”
통역사는 수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국 대원들을 향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분위기를 보아하니 수혁과 FILO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 같았다.
중국 대원들은 그의 말을 가만히 듣다 의외라는 눈빛으로 수혁을 쳐다봤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수혁에 대한 설명을 한 것 같기는 한데,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저런 눈빛을 보내는 것일까?
왠지 그들의 눈빛이 부담스러워진 수혁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잠시 통역사와 중국 대원들의 대화가 이어진 뒤.
“이야기가 잘됐습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래도 지원팀에서 중국 정부 쪽과 협의를 끝낸 상태라, 최대한 FILO와 협력하라는 명령이 내려올 겁니다.”
아직까진 일선 대원들에게까지 전달이 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명령이 떨어지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협력을 하겠다고 했단다.
수혁은 잘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들도 지도를 꺼내달라고 해주세요.”
통역사의 말을 듣고 지도를 꺼내 들자, 수혁은 그곳에 표시하기 시작했다.
‘생명감지Ⅲ’로 파악을 한 요구조자들의 위치였다.
한 명씩 표시하기엔 그 수가 너무도 많았기에, 수혁은 범위를 지정해 주었다.
“제가 표시한 곳을 중점으로 수색을 진행해 달라고 하시고, 다른 지역으로 간 분들에게도 전달해 달라고 해주세요.”
통역사는 빠르게 수혁의 말을 통역했다.
그들은 조금 미심쩍은 표정이었지만, 알겠다는 듯 엄지를 들어올렸다.
“아, 그리고 한 팀 정도는 저희와 함께 움직여 줘야겠습니다.”
“그건 이미 이야기해 두었습니다.”
통역사는 단순히 통역만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소방과 구조에 대한 기본 지식도 갖추고 있었고, FILO에서 교육을 그에 대한 교육을 받은 지원 인력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수혁을 도와줄 인력이 필요할 것이라 예상을 했고, 한 팀의 지원을 요청해 둔 상태였다.
수혁은 만족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준비됐으면 다시 움직이죠.”
시간이 꽤 흘렀다.
꼭 필요한 일이긴 했지만,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수혁은 새로 합류한 대원들과 통역사를 이끌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니맵’에 표시되어 있는 요구조자의 숫자는 대충 봐도 수천 명을 헤아린다.
수혁은 최대한 냉정해지려고 애를 썼지만, 조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사람이 늘었다.
그 말은 조금 전 수혁의 멘탈을 강하게 흔들었던 선택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수혁은 왠지 모를 든든함을 느끼며 발을 박찼다.
“이쪽으로!”
현장에 도착한 지 일곱 시간째.
본격적인 구조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최대한 많이 구한다.’
수혁은 다시금 굳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