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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412화 (412/425)

레스큐 시스템 412화

작업하고 있던 박상태가 고개를 들었다.

소란스러움이 그의 귀를 간지럽힌 것이다.

근처에는 자신들밖에 없어 크게 소리가 날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부산스러움과 함께 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왔나 봅니다.”

슈미츠가 떨리는 눈으로 박상태를 향해 말했다.

“그래. 이제야 도착했나 보다.”

박상태 역시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지원이야.”

길게 늘어서 있는 펌프차 뒤로 수많은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구조 4일 차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

짐 머레이가 말했던 것보다 하루 늦게, 미국과 유럽의 지원이 도착한 것이다.

대원들이 하던 작업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지원은 그간 사람이 부족해 사용하지 못했던 장비들을 이끌고 빠르게 다가왔다.

“누가 책임자이십니까?”

금세 현장에 도착한 이들 중 누군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러자 대원들의 눈이 율리안을 향했다.

하지만 율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톰을 가리켰다.

“저분이 지금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분입니다.”

“그렇다는군.”

율리안이 자리를 양보하자 톰이 어색하게 웃으며 나섰다.

그러자 질문을 던졌던 남자의 눈이 커졌다.

“혹시 뉴욕에서……?”

“맞네.”

그는 톰을 알아본 것 같았다.

수혁이나 율리안처럼 전설적인 영웅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시민들을 위해 헌신해 온 노익장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빌리라고 합니다.”

“나를 아나?”

톰이 의외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자신을 빌리라고 소개한 남자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3년쯤 전에 뉴욕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아아, 그…….”

톰 역시 기억이 난다는 듯했다.

애초에 세미나에 참가한 적이 몇 번 되지 않았기에 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3년 전 뉴욕 세미나라면 자신이 직접 강단에 서기까지 했으니까.

“아참, 이럴 때가 아니군요.”

빌리는 톰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바로 섰다.

그러곤 톰과 대원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미국과 유럽의 구조지원팀 총 236명. 여러분을 돕기 위해 도착했습니다.”

* * *

10일이 흘렀다.

‘안 좋아.’

더는 스킬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다행히 계속해서 물이 흘러내려, 말라 죽을 일은 없었지만…….

‘배가 고프다.’

오직 물만 마시며 버텨온 지 10일.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로 계속해서 제임스를 살피느라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수혁에 비해 체력이 약한 제임스는 하루의 대부분을 잠든 채로 보냈다.

의식이 깨어 있을 정도의 체력도 남아 있질 않은 것이다.

‘어찌한다…….’

지난 10일 동안 수백, 수천 번도 넘게 한 고민.

그리고 언제나처럼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지금이라도 움직여야 할까?’

만약 구조가 늦는다면?

자신도 한계에 다다랐는데, 제임스가 과연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위에 2백 명이 넘는 지원이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수혁은 계속해서 갈등했다.

‘움직이는 건 힘들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간 ‘회복Ⅱ’ 스킬의 효과로 부상이 조금씩 회복된 덕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적적으로 몸 상태가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회복Ⅱ’ 자체가 서서히 치유되는 성격의 스킬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10일 정도로는 눈에 띄게 치유가 되진 않았다.

‘그래도 뼈가 조금 붙기는 한 것 같으니까.’

통증도 개미 눈곱만큼 줄어든 것 같았다.

제임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움직일 때 조금이나마 수월해진 기분이었고.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어떻게 해서든 몸을 가눌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문제는 그때까지 버틸 수 있냐는 것,’

수혁은 조금 더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제임스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생존만 생각한다면 앞으로 10일은 끄떡없이 버틸 것이다.

수혁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제임스는?

“후우…….”

심호흡을 한 수혁이 눈을 감았다.

‘하려면 지금이어야 돼.’

감이 속삭이고 있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늦는다고.

눈앞에서 요구조자를 잃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지금 구조를 해야 한다고.

‘그런데 어떻게?’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수혁은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몰려왔고, 그것을 참기 위해 진땀을 흘릴 정도이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혼자도 아니고, 요구조자를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감은 이곳에서 빠져나가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수혁의 머리는 계속해서 움직이면 안 되는 이유만 떠올렸다.

‘체력은? 부상은? 통증은? 방법은?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괜히 움직였다가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어. 내 팀원들이라면 늦지 않게 여기에 도달할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그러면 적어도 나는 살 수 있……?’

생각을 이어가던 수혁이 눈을 번쩍- 떴다.

“미친.”

자신도 모르게 제임스를 포기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아무리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눈앞에 쓰러져 있는 요구조자를 포기한다는 생각을 하다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곤 결심했다.

“나가야겠다.”

더 이곳에 있다가는, 정말로 제임스를 포기하고 혼자 살기 위해 발버둥 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위험하긴 하겠지만…….”

이대로 누워만 있다가 요구조자를 잃는 것보단 나았다.

수혁의 시선이 제임스의 다리 쪽을 향했다.

잔해에 파묻혀 짓이겨진 다리.

이곳에서 빠져나간다고 해도, 저건 살릴 수가 없었다.

‘저것부터 해결해야겠군.’

잔해를 들어 올릴 순 없었으니,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엔 다리를 절단할 만한 장비가 없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제임스의 다리는 이미 걸레짝이 된 상태다.

뼈는 부러졌고, 근육과 피부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척추가 다치며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니…….

수혁이 쓸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수혁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러곤 ‘각성’ 스킬을 사용했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힘이 수혁의 육체에 깃들었다.

느낌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통증도 많이 가신 것 같았다.

‘빨리 움직여야 돼.’

스킬이 발동되는 것과 동시에 수혁이 제임스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힘을 주자…….

투둑-

너무도 손쉽게 다리가 잘려 나갔다.

‘우윽!’

그동안 볼 꼴, 못 볼꼴 많이 본 수혁이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한 사람의 다리를 뜯어내는 건 절대 쉽지 않았다.

수혁은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참아내며 남은 다리 한쪽도 떼어냈다.

‘각성’의 효과도 있었지만, 그만큼 제임스의 다리가 엉망이었기에 별다른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다리는 떨어졌다.

허벅지에 묶여 있는 벨트를 더욱 꽉 조였다.

그러자 절단면에서 흘러나오던 출혈이 조금 줄어들었다.

‘이제 움직이자.’

스킬의 효과가 끝나기 전에 최대한 많이 움직여야 한다.

이전에 사용했던 ‘미니맵’을 떠올린 수혁이 한쪽 방향을 정했다.

‘위는 안 돼.’

위로 향하는 것은 힘도 들었고, 너무 위험했다.

거기다 스킬의 효과를 최대한 활용하려면, 위가 아닌 옆이 좋았다.

‘좀 알아차렸으면 좋겠는데.’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팀원들은 아직 위쪽에서 구조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고작 열 명도 되지 않는 인원으로는 균열 아래로 내려와 구조할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율리안과 톰은 어쩔 수 없이 위에서부터 파 내려오는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게 효율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만약 수혁이 옆으로 빠져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저들이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수혁은 그것을 노렸다.

“갑시다. 밖으로.”

수혁이 정신을 잃은 제임스의 팔을 붙잡고 앞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제임스에게 충격이 좀 가긴 하겠지만, 이 방법밖에 없었다.

“훅- 훅-!”

‘각성’을 썼음에도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독일에서 매몰됐을 때와 비교하면 몇 배나 느린 속도.

그만큼 수혁의 몸 상태가 최악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스킬들도 사용하고 싶은데.’

‘위험감지Ⅲ’는 자동적으로 발동되는 것이지만, ‘미니맵’과 ‘생명감지Ⅲ’는 아니다.

하지만 스킬을 사용했다가 또 정신을 잃거나 하면 난감했으니, 무턱대고 사용할 수도 없었다.

‘주변 상황만 좀 알 수 있어도 훨씬 나을 텐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혁은 잡생각을 집어치우고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1㎝라도 더 전진하기 위해.

* * *

수혁이 아래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위쪽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구조 계획을 다시 세웁니다.”

미국과 유럽의 구조팀장들까지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상황이 달라졌으니, 접근법을 바꾸도록 하죠.”

톰은 3D로 스캔한 현장을 모니터에 띄웠다.

확실히 인원이 많아지니 갖가지 장비를 사용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위쪽에서 아래로 파 내려가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겠군요.”

빌리가 톰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렇습니다. 인력이 많아졌으니, 균열 아래로 내려가 구조 작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심지어 교대도 가능했다.

“요구조자의 위치는 파악이 됐습니까?”

영국에서 온 구조팀장이 질문했다.

하지만 톰은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요구조자 위치 파악이 가장 우선적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막무가내로 파고들어 가기엔…….”

말을 끝까지 하진 않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슨 말이 이어질지 알고 있었다.

위험하다.

아무리 수많은 계산을 하고, 조심스럽게 길을 뚫는다 해도 붕괴의 위험성은 있었다.

그리고 작은 붕괴에도 요구조자들은 생명이 위험해진다.

요구조자 위치를 파악했다면 그 위험요소를 최대한 줄일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쉽사리 작업에 착수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계속해서 탐지 장비와 탐지견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럼 구조는 파악이 된 이후에 해야겠군요.”

그의 말이 맞았다.

시간이 없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움직일 순 없었다.

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이 맞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정말로 늦을지 모른다.

톰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작업을 재개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작도 전에 이런 반대에 부딪히니 골치가 아팠다.

“그 부분은…….”

그때였다.

누군가 천막 안으로 다급하게 뛰어들어 왔다.

“율리안!”

박상태였다.

그는 붉게 상기된 표정으로 톰과 율리안을 향해 소리쳤다.

“수혁이 놈의 위치를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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