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413화
탐지 장비에 움직임이 감지됐다.
위치는 지상에서 대략 32m 아래.
그것을 본 율리안은 독일에서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박상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수혁은 매몰된 장소에서 홀로 빠져나오기 위해 이동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이렇게 느리지?’
객관적으로 보자면 저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움직이는 것은커녕, 살아 있을 가능성도 희박했으니까.
그런데도 박상태와 율리안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독일에서 수혁이 보여주었던 속도에 비하자면, 느려도 너무 느렸다.
‘설마…….’
‘부상을 입은 건가?’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멈췄습니다.”
탐지 장비를 운용하던 대원이 고개를 저었다.
“움직인 시간이 얼마나 되지?”
“10분입니다.”
그것도 독일에서와 똑같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수혁은 하루에 고작 10분 정도만 이동했다.
그러고는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았다.
나중에 왜 그랬냐 물어보니 그냥 쉰 것이라고 했고…….
율리안은 수혁이 이번에도 같은 패턴으로 움직일 것이라 판단했다.
속도는 천양지차였지만, 어쨌든 수혁이 살아 있다는 게 중요했다.
“이동경로 표시하고, 그에 맞춰 구조 계획을 수립합니다.”
요구조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렇게 탐지가 된 이상 구조는 시간문제였다.
그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건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다시 팀장들이 머리를 맞댔다.
무턱대고 작업부터 시작하는 것에 반대했던 영국 구조팀장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들 베테랑이라 그런지, 회의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경험과 능력이 뛰어난 이들인 데다, 구조방법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쪽에서부터 지대를 안정시키며 천천히 길을 뚫는 방향으로…….”
“팀장님!”
대략적인 계획이 만들어지던 그때.
탐지 장비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대원이 그들을 불렀다.
모든 팀장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러자 대원이 새로운 사실을 알렸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 * *
‘끄으으윽!’
‘각성’의 유지시간이 끝났다.
그러자 그 반동인지, 온몸이 찢겨 나가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이 몰려왔다.
악다문 입에서 피가 주르륵- 하고 새어 나왔다.
하지만 입에서는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다.
부러진 뼈들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너무도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몸을 파르르- 떨며 아득해져 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여기서 멈추면 안 돼!’
휴식을 취하려면 적어도,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는 장소여야만 했다.
이곳은 안전하지 못하다.
지금 당장은 괜찮아 보였지만, 주위로 붉은색 표시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조금씩 짙어지는 것으로 봐선 시간이 흐르면 위험해질 게 뻔했다.
그러니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야만 했다.
“허억- 헉-!”
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아프다.’
아마 인생을 통틀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재래시장화재 때, 전신에 화상을 입었을 때도 정말 죽을 정도로 아프긴 했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 중 가장 심하다는 작열통을 온몸으로 느꼈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병원에서 진통제도 맞았고, ‘회복Ⅱ’ 덕분에 꽤 많은 부분 완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만있어도 모자랄 판에, ‘각성’을 쓴 채 제임스를 끌고 길을 뚫으며 이동했다.
평범한 사람은 만전의 상태에서도 불가능한 움직임을 보여줬으니, 육체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수혁은 그대로 바닥에 엎어진 채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만 버티자, 조금만…….’
격한 움직임 때문에 통증이 한 번에 몰려왔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어느 정도 안정될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의식을 부여잡고 참아야만 했다.
“무, 슨 일…….”
그때, 제임스의 입에서 신음과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잠시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수혁은 치밀어 오르는 비명을 가까스로 참아내고는 대답했다.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군…….”
제임스는 의식이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 온전한 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피를 많이 흘린 데다 다리까지 잘라냈으니, 제정신이면 그게 더 이상했다.
아마도 꿈처럼 몽롱한 상태일 확률이 높았다.
수혁은 그런 제임스를 안심시키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밖일 테니, 안심하고 더 주무세요.”
“그, 러지.”
수혁의 음성에 마음을 놓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더는 깨어 있을 체력이 없는 것인지.
제임스는 대답과 동시에 다시 의식을 잃었다.
“후우…….”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제임스에게 신경을 썼더니, 어느 정도 통증이 가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움직이는 것은 무리였다.
‘조금만 더 쉬자, 조금만.’
5분.
그 정도만 더 쉬고, 다시 움직여야만 했다.
수혁은 눈을 부릅뜬 채 통증을 가라앉히는 데 집중했다.
* * *
“조금 전보다 훨씬 느린 속도입니다.”
탐지 장비에 표시된 수혁의 움직임은 너무도 느렸다.
아까는 그래도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서둘러야겠습니다.”
그것을 확인한 율리안이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율리안은 수혁에게 한계가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도 당연했다.
매몰된 지 10일.
당연히 부상도 입었을 테고, 음식물은 입에도 대지 못했을 것이다.
지속적인 방수를 통해 탈수는 막았을지 몰라도, 그것만으로는 몸 상태의 악화를 완전히 막을 순 없었다.
그러니 현재 수혁의 상태는 최악일 터.
저 움직임도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는 것일지 모른다.
“지금 당장 작업 시작하세요.”
율리안의 말에 100명이 넘는 인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은 인원은 교대를 위해 일단은 휴식을 취하러 갔다.
마음 같아서는 전원을 동원하고 싶었지만, 그건 오히려 효율이 나쁘다.
‘이틀. 길어야 이틀이야.’
요구조자의 위치도 파악했고, 인력과 장비도 충분하다.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내일쯤 수혁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제발 그때까지만 버텨라, 수혁.’
율리안의 눈빛에 간절함이 떠올랐다.
* * *
“중국으로 가겠어요.”
“은송아!”
“여기선 못 기다려요. 수혁 씨가 위험한데 어떻게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란 말이에요?”
최문식은 자신의 딸을 만류하려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지는 싸움이었다.
자신의 남편을 위해 가겠다는데, 그것을 최문식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통제구역이다.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짐에게 연락해서 준비는 다 끝내둔 상태예요. 비행기 편도 FILO에서 마련해 줬고.”
최은송의 말에 최문식은 고개를 저었다.
혹시나 했는데 모든 일의 준비를 끝내 둔 상태였다.
지금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허락을 구하기 위함이 아닌 통보를 하려는 것이었다.
최문식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설득을 해보려 했다.
하지만…….
“갈 거예요.”
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알았다. 대신, 이 아비도 같이 가마.”
“아빠?”
“너 혼자 그 위험한 곳을 어떻게 보내!”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최은송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최문식의 말을 거부했다간, 다시 긴 설전을 이어가야 할지 몰랐다.
지금 당장 중국으로 가도 모자랄 판인데, 더능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요.”
최은송이 허락하자 최문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기다리고 있어라.”
최문식은 한국의 장관이다.
가고 싶다고 해서 바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준비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최은송은 아버지가 나가자 곧장 TV를 켰다.
지금 수혁의 소식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뉴스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수혁에 대한 뉴스는 지금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러니 TV나 인터넷에선 하루 종일 수혁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지금도 마찬가지.
뉴스에서는 중국의 모습과 함께 수혁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던 최은송은 살짝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며칠 전과는 달리 수많은 구조대원이 수혁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김수혁 씨의 생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생존자를 발견한 것입니다만. 발표에 따르면 그 생존자가 김수혁 씨일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세한 상황은 밝히지 않았기에,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저희도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뉴스를 보던 최은송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은 수혁을 모른다.
아니, 수혁의 능력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기껏해야 자신과 짐 머레이, 그리고 FILO의 구조팀원과 신일서 대원들 정도뿐.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지금 현장에 있었다.
‘수혁 씨가 확실해.’
저들이 수혁이라 판단을 했으니, 아직 살아 있다는 건 확실했다.
수혁의 능력을 언론에 밝힐 수가 없으니,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최은송은 안도했다.
‘수혁 씨가 구조됐을 때, 옆에 있어야 해.’
수혁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함에 심장이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
최은송은 자꾸만 떨려오는 몸을 진정시켰다.
예전과는 다르다.
수혁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던 그때와는.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수혁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더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꿋꿋하게, 그리고 의연하게.
수혁이 구조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어.’
최은송은 중국으로 가서 마냥 수혁을 기다리고 있을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직접 구조에 나설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구조대원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위해 짐 머레이에게 이미 부탁까지 해둔 상황.
최은송은 자기 나름대로 수혁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노력할 생각이었다.
“은송아.”
최은송이 그렇게 다짐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최문식이 들어왔다.
“이제 가자.”
“……벌써요?”
처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방을 나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자는 것일까?
의아해하는 최은송의 표정에 최문식이 픽- 웃으며 말했다.
“대통령께 직접 허가를 받았다.”
최문식은 수혁의 장인이라는 이유를 들어, 최은송과 함께 중국으로 가겠다는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대통령은 흔쾌히 허락해 준 것이다.
지금 전 세계가 수혁의 안위에 관심을 쏟고 있었으니, 허락해 줄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라는 명분도 무시할 수 없었을 테고.
최은송은 TV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발 준비는 이미 끝내 놓은 지 오래였다.
“가요.”
최은송은 최문식과 함께 방을 나섰다.
현재 인천국제공항에는 짐 머레이가 준비해 둔 비행기가 있었다.
최은송이 연락하기만 하면 언제든 출발이 가능한 비행기가.
‘기다려요, 수혁 씨.’
최은송이 자신이 갈 때까지 제발 수혁이 무사하길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