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423화
소방청장이 비리로 구속되었다는 소식은 짤막한 뉴스로 송출되었다.
하지만 그 뉴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한국에는 그것 말고도 이슈가 되는 것이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중 가장 뜨거운 감자는 당연히 수혁에 대한 소식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수혁의 상태에 대해 방송을 했고, 의료종사자들까지 나와서 설명을 해주고는 했다.
알려진 정보를 바탕으로, 수혁의 회복 가능성이나 현재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것.
그들의 말 역시도 화제가 되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것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한 달, 두 달, 세 달…….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수혁에 대한 소식은 줄어들었다.
별다른 변화도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점점 수혁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그렇게 5개월.
가끔 인터넷에 회자되는 것을 제외하면, 수혁의 소식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 * *
“도끼 가져와!”
박상태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여기 있습니다!”
손민준이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건넸다.
도끼를 받아 든 박상태는 망설이지 않고 팔을 휘둘렀다.
콰득-!
하지만 앞을 막고 있던 벽은 너무도 단단했다.
구조용 파괴 도끼로도 흠집만 조금 갔을 뿐이었다.
“젠장!”
박상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놈이었다면…….’
수혁이 떠올랐다.
만약 자신이 아닌 수혁이 도끼를 휘둘렀다면, 이딴 벽은 한 방에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없는 놈을 생각해 봤자 시간 낭비지.’
박상태는 고개를 흔들며 잡생각을 떨쳐 버렸다.
“야, 네가 쳐!”
아무래도 피지컬은 자신보단 손민준이 훨씬 좋았기에, 박상태는 뒤로 물러났다.
“흐읍!”
손민준이 도끼를 휘둘렀다.
콰지직-!
박상태가 휘둘렀을 때와는 소리부터가 달랐다.
도끼날은 벽 속에 깊숙이 박혔고, 덕분에 틈이 생겼다.
“좋아, 계속 부숴!”
벽 너머에 갇혀 있는 요구조자의 수가 무려 다섯 명이다.
연기가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으니, 1초라도 빨리 벽을 뚫고 길을 만들어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손민준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도끼를 내리찍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했을까?
사람 머리통만 한 구멍이 뚫렸다.
“됐습니다! 요구조자 확인!”
구멍 사이로 건너편을 확인한 손민준이 크게 외쳤다.
정보가 정확했는지, 그쪽에는 다섯 명의 요구조자가 몸을 떨며 구석에 몰려 있었다.
“구조대입니다!”
이번엔 박상태가 나섰다.
품에서 챙겨온 마스크들을 꺼내 구멍 안으로 집어 던졌다.
“어서 이 마스크를 쓰세요!”
방 안은 열기로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아직은 사람들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닫혀 있는 문틈으로 연기가 스며들고 있다는 것.
지금 당장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중독이 될 수도 있었다.
박상태가 다급하게 소리를 치자, 요구조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좋아.”
일단 마스크를 착용했으니, 시간은 벌었다.
“여기서 구멍 넓히고 있어.”
“선배님은요?”
“탈출로 점검하러 간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험난했다.
온갖 불길과 잔해들로 인해, 몇 번이나 위험한 상황을 겪었던 것이다.
자신들이야 어떻게든 뚫고 왔지만, 요구조자들은 아니다.
그들이 무사히 탈출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손민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요구조자들에게 손짓을 했다.
뒤로 좀 물러나라는 뜻이었다.
요구조자들이 다시 구석으로 향하자 손민준은 도끼를 휘둘렀다.
예의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박상태는 그 소리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힘도 좋구만.’
방화복과 장비를 착용한 채로 도끼를 휘두르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그런데 저렇게 쉬지도 않고 미친 듯이 움직이다니…….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손민준의 피지컬에 새삼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요구조자들에게 위험이 될 만한 요소들을 찾기 위함이었다.
‘쯧.’
박상태가 혀를 찼다.
왠지 오늘따라 수혁이 생각났다.
그놈이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그놈이라면 금방 찾아냈을 텐데.
그놈이라면, 그놈이라면…….
자신이 이렇게나 수혁을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랄 정도였다.
수혁이 없는 동안, 그의 빈자리가 여실히 느껴졌다.
지금도 수십 명의 요구조자가 집과 빌딩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절로 수혁의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박상태뿐만이 아니었다.
구조 1팀은 은연중에 모두 수혁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나마 대원들의 실력이 출중하기에 어떻게든 성과를 내고는 있었지만, 슬슬 한계가 오고 있었다.
‘움직이자.’
수혁은 이곳에 없다.
그러니 자신들만으로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그놈 없이도 잘만 해왔잖아.’
구조 1팀은 전원 능력을 인정받은 인재들이다.
그런 대원들이 모여 있는 팀이었으니,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박상태는 빠르게 주위를 살펴보며 위험이 될 만한 것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애매한 것들은 차라리 먼저 무너뜨려 위험 가능성을 제거해 버렸다.
“후우- 후우-”
숨이 차올랐다.
톰을 제외하고는 팀에서 가장 연장자였으니, 다른 이들에 비해 체력이 좀 부족했다.
지금까지 쉬지도 못하고 구조에 매진했으니, 슬슬 체력이 떨어질 때도 되었다.
그때였다.
“선배님!”
뒤에서 손민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손민준이 요구조자들을 데리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요구조자들은 부상을 입지 않은 것 같았다.
살이 발갛게 익은 것이, 약간의 화상을 제외하면 움직이는 것에 지장도 없어 보였고.
박상태가 눈짓을 보내자, 손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괜찮습니다.”
저 다섯 명은 이 건물에 남아 있는 마지막 요구조자들이었다.
이들만 무사히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당분간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앞장서라.”
손민준에게는 미안한 말이었지만, 길을 뚫는 것은 박상태보다 그가 훨씬 나았다.
요구조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뒤에 서는 게 맞았다.
“조심히 따라오세요.”
손민준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앞장서서 복도를 걸어가며 주위를 확인했다.
박상태 역시 요구조자들의 뒤에서 주변을 살폈다.
붕괴나 폭발의 위험성이 높았기에, 조짐이 보이면 곧장 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이동을 할 때였다.
“정지!”
갑자기 박상태가 손민준에게 외쳤다.
손민준은 곧장 발을 멈췄고, 요구조자들도 덩달아 멈춰 섰다.
손민준이 무슨 일이냐는 듯 돌아봤지만, 박상태는 대답 대신 눈을 감고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스으으-
공기가 새는 것 같은 듯한 소리.
‘잘못 들은 게 아니야.’
박상태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뒤로 물러나!”
손민준은 판단하지 않았다.
그저 박상태의 말을 믿고 움직일 뿐이었다.
“뒤로!”
손민준이 뒤쪽으로 몸을 날리며 요구조자들을 밀어냈다.
그리고 동시에…….
콰과과과광-!
폭발이 일어났다.
* * *
흠칫-!
율리안이 깜짝 놀랐다.
갑작스러운 폭음과 함께 땅이 떨리는 것을 느낀 것이다.
율리안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저긴…….’
조금 전 박상태와 손민준이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들어간 건물이었다.
“젠장, 톰!”
율리안은 재빨리 톰을 불렀다.
톰 역시 폭발을 눈치채고는,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갑시다!”
저 정도의 폭발이라면 붕괴의 위험까지 있었다.
아니, 분명 어딘가 무너졌을 것이다.
땅이 흔들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화재로 인해 약해진 건물이 무너질 확률이 높았다.
율리안은 톰과 슈미츠를 데리고 달렸다.
순식간에 건물 앞에 당도한 율리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야단났군.”
건물이 무너졌다.
다행인 것은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치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입 베어 먹은 것처럼, 윗부분만 무너진 상태였다.
“무전 쳐봐.”
율리안이 슈미츠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슈미츠의 무전기에선 아무런 응답도 오지 않았다.
그것이 뜻하는 건 하나였다.
저 무너진 부분에 대원들이 있다는 것.
붕괴에 휩쓸렸거나, 아니면 폭발 때문에 무전기가 고장이 났거나.
둘 중 어느 하나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어쨌든 폭발 현장에 있었다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돌입 준비.”
“……들어갈 건가?”
율리안이 건물로 진입하기 위해 준비하려는데, 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무슨 말입니까?”
“건물 상태를 보게.”
톰의 말에 율리안이 고개를 들어 건물을 확인했다.
“으음.”
톰이 걱정할 만했다.
건물의 외벽은 마치 거미줄이 쳐진 것처럼 금이 쩍쩍- 가 있었던 것이다.
“잘못하면 그대로 붕괴할 수 있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은 이렇게 서 있지만, 조금만 충격이 더해지면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아니, 무너질 것이다.
그만큼 건물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선택지가 없습니다.”
동료가 저 안에 있다.
그리고 다섯 명의 요구조자도 있다.
이대로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건 저들을 포기한다는 것과 진배없는 말이었으니까.
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네. 바로 준비하지.”
위험하다고 포기하는 건 소방관이 아니다.
눈앞의 요구조자를 포기할 순 없다.
톰은 망설이지 않고 슈미츠와 함께 돌입 준비를 끝냈다.
‘조심해야겠군.’
톰은 마른침을 삼켰다.
저 건물은 정말로 위험했다.
중국에서 수혁과 구조 2팀을 집어삼켰던 건물 정도는 아니었지만…….
‘잘못했다간 우리도 그 꼴이 될 수가 있어.’
안에 요구조자가 없었다면 절대 발을 딛지 않았을 것이다.
“돌입.”
율리안의 낮은 음성과 함께, 셋은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 *
“크으윽!”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등이 쪼개지는 것 같은 통증이 엄습해 왔다.
“괘, 괜찮으십니까?”
손민준의 음성이 들려왔다.
박상태는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요구조자들은?”
자신의 상태보다 요구조자들을 먼저 확인했다.
“다행히 괜찮습니다.”
박상태의 경고 덕분에 폭발에 직접적으로 휘말리진 않았다.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그렇다고 안심을 할 순 없었다.
‘젠장…….’
박상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답하는 손민준의 등 뒤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잔해가…….’
붕괴로 인해 무너진 잔해들이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것이 뜻하는 건 하나였다.
‘고립됐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 안에서, 탈출로 하나 없이 갇히고 말았다.